키프로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상적인 여인상을 조각한다. 조각상이 완성되자,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피조물인 여인상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한낱 돌덩이인 여인상은 피그말리온에게 아무런 교감을 주지 못한다. 일방적인 짝사랑에 괴로워하는 피그말리온을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가여워하여 여인상을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피그말리온과 인간이 된 여인상은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19세 나이에 집필한 책 한 권이 베스트 셀러가 된 캘빈은 유명한 작가다. 하지만 처녀작 이후 10년 동안 이렇다 할 책 한 권 제대로 쓰지 못한다. 복잡한 가정사와 어린 나이에 성공을 한 탓에 유명세에 시달린 캘빈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고 이성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쑥맥이 되었다.
어느 날 캘빈의 꿈에 자신의 이상형인 루비가 나타난다. 캘빈은 꿈속의 루비에 대한 기억을 강렬하게 남아 잊지를 못한다. 정신과 상담사의 권유로 캘빈은 루비를 소재로 자신을 주인공으로 투영한 연애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캘빈 앞에 캘빈을 사랑하는, 캘빈의 꿈속에서 나왔던, 캘빈을 사랑하는, 캘빈의 소설 속에 루비가 현실로 나타났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상형이 있다. 어떤 사람은 뛰어난 외모를 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지성이나 가치관 등등 여러 가지 저마다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맞는 사람들 찾고는 한다. 하지만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 현실은 겨울이 지나 어느새 찾아온 봄 향기 같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연인이 되고는 한다.
하지만 캘빈은 정말 자신이 소설 속에 써낸 루비가 현실로 나타났으니, 아니 기쁘지 아니할 수가 있으랴. 캘빈은 행운처럼 찾아온 루비를 사랑한다. 하지만 연애에서 아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쑥맥인 캘빈은 자신만을 아는 찌질한 남자였다. 자신의 창조물인 루비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캘빈은 루비를 마음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루비의 사소한 감정, 루비의 돌발적인 행동을 자신의 기준대로 해석하기만 한다. 찌질한 캘빈에게 지친 루비는 서로 시간을 가지길 원하고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
현실의 루비를 만나고 나서 캘빈은 루비에 대한 소설을 쓰지 않았다. 이때부터 루비의 행동은 캘빈의 생각에서 벗어나길 시작했다. 분명 자신만의 루비인줄 알았는데, 타인을 상대하는 루비를 보며 질투를 하고, 감정에 복받친 루비가 자신에게 모진 말을 할 때 실망을 한다. 그러자 캘빈은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루비를 이해하고 루비를 알아가며 해결해야 할 많은 다툼이 소설 한 문장으로 해결이 되었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했다. 소설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루비를 조종하지만, 캘빈은 마음이 편치 않고 연애를 하면서 얻는 성숙함과 충만함을 전혀 얻지를 못한다. 다시 다투는 과정에서 자신이 캘빈의 피조물인 걸 알고 고통스러워 하는 루비를 보고 결국 캘빈은 루비와의 관계의 종말을 고하고 루비를 놓아준다.
찌질한 남자 캘빈은 혼자 연애 소설을 썼다. 아니, 사랑에 실패하는 대부분의 찌질한 사람들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가 혼자 연애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실재하는 연인을 나와 다른 인격체인 연인을 자신의 잣대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자신의 예측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연인의 행동이 못마땅하기 그지없다. 자기 앞에 연인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상상 속에 투영된 연인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에 내 생각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연인에게 실망하고 때론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연애는 혼자서 하는 짝사랑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방적인 생각과 행동은 연인을 지치게 하고 연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주관대로 벌이는 행동과 생각은 결국 상대방을 실망하게 하고 다치게 하기 마련이다.
캘빈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수많은 찌질한 사람들의 연애 실패담을 보여주는 것 같이 씁쓸한 기분이 든다. 혼자 하는 공상이나 티비 드라마, 영화에서 나올 법한 완벽한 이성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혹여 그런 사람이 있어서 서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원하는 것만을 추구한다면 종국에 가서 찾아오는 건 허망함과 성숙한 사랑이 아니었다는 후회뿐일 것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