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런거지. 무지를 인정하고, 다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거나 발전시킬 여지를 열어두는 사고의 유연성, 혹은 최소한 그런 유연성이 열려있다고 상대에게 여겨지게끔 하는 관용적이고 배려있는 태도 말이네.
긴 문명시대 동안 인류는 그런 어른스러움을 가진 사람들끼리 논의를 하고 생각을 발전시켜왔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니 의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가 없지.
그런데, 이 어른스러움은 인간 본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괜찮은 인격체로 중요한 대화에 낄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는 하나 습득하는데에 많은 노력과 훈련 그리고 결정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지. 그러다보니 어른스러운 사람이란 건 아주 소수에 불과했고 말야.
허나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그 필요성을 없애버렸네.
-없어졌다구요? 어떻게요?
-간단하지. 우선 우리 종에게는 절대자나 권위에 쉽게 복종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공지능은 증명된 뛰어난 계산 능력과 무오성의 힘을 통해 대부분의 설득을 생략해 버렸어. 다들 그렇지 않나? 별 생각없이 쉽게 인공지능의 결과물을 납득해 버리지 않은가.
-... 다 그렇지는 않지요.
-그렇지. 여기가 재미있는 부분이네. 이렇게 되고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이들, 태생적으로 까탈스러운 이들을 만나거나, 사안이 너무 중대해서 진지하게 자기 의견을 고수하려는 경우에는 인공지능은 다른 방법을 쓰지.
-다른 방법?
-그들은 우리에게 어른스러움을 요구하거나 반대로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비난하지 않아. 우리가 의견을 고수하는 사소한 계기나 마음의 일시적 상태를 분석하고, 행동유도 혹은 화제전환 같은 방식으로 달래가면서 해결할 뿐이지.
어린애처럼 다룬단 말일세. 마술사의 미스디렉션이나 숙련된 보육교사의 솜씨처럼 꽤 공손한 존중의 양태를 꾸며대지만 실상은 상대편 인간의 미성숙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아니, 심지어 그 미성숙을 방조하고 이용하고 부추기는 셈이야. 자기들이 이미 분석을 충분히 마친 범위의 미성숙이 나타날수록 대응도 훨씬 쉬워질테니 말이야.
그러니, 이제 인간들에게 어른스러움이 남아있을 수가 있겠나.
- ...비극은 단편으로 오지 않는 군요.
-가축화된 동물들이 종 단위의 운명과 변화를 인지하던가? 우리는 천천히 길들여지고 있네, 스스로가 짜놓은 궤적을 따라서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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