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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9/07 00:35:46
Name 위버멘쉬
File #1 20170906_135157_199_1504706517938.jpg (258.1 KB), Download : 61
Subject [일반] 마광수 교수 '권태' 를 읽고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고를 보고 문득 마광수 교수의 책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즐거운 사라가 대표작이었죠. 개인적으로 이 소설 '권태'가 마광수 교수의 내면을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사를 보니 자살로 생을 마감하신 것 같더라구요. 이 세상의 모든 쾌락과 자극을 맛보고 난 주인공처럼 마교수 본인도 깊은 권태에 빠져버린 것은 아닌지 안타까우면서도 참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음증과 페티쉬로 시작해서 사디즘에 이르기까지 점점 고조되는 구성은 배고픔 조차 잊고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사회적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부끄러움 마저 잊은 대담하고 발칙한 묘사가 놀랍습니다. 물론 더 야하거나 성적 묘사가 노골적인 글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권태는 스탠리 큐브릭이나 장 르느와르 같은 거장들이 찍은 포르노를 보는 것 같습니다. 현장에 있는듯 오감을 자극시키는 선연한 묘사와 고급스러운 필력은 솜씨 없는 야설과 비교를 불허합니다. 도입부 여주인공의 외모 묘사하는 부분이 거의 30페이지 가량 될 정도로 표현이 정교하고 풍부합니다. 어두침침한 조명, 달콤한 화장품 냄새, 손에 만져질 듯한 촉감까지, 독자의 상상속 여인들이 의식 안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웃고, 유혹하고, 움직이게 만든다고 할까요.

후반부로 갈수록 '진짜 다른 남자들은 이런 상상을 한단 말야?'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더러 있습니다. 저는 온순한 편이라 주인공들처럼 과격한 습벽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요. 송로버섯이나 철갑상어 알 같은 초고급 재료를 햄버거에 넣고 케쳡과 마요네즈를 잔뜩 뿌려서 먹는 맛입니다. 자극적이면서 물흐르듯 매끄러운 내면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500페이지 가까운 책이 뚝딱 넘어가 버립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기회에 한권 구입하시거나 가까운 도서관 이용하셔서 읽어 보셔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마광수 교수가 시사프로에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표현을 즐기는 작가들 알고 보면 너무 평범하고 가정적이고 소심한 사람들이라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욕망을 작품을 통해서 표출하고 완성시키는 종족들이 작가라고 합니다. 마광수 교수는 모든 성적 욕구 충만한 사춘기 소년들의 후견인이자 이 시대 소심남들의 대변인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자기 신조에 걸맞는 삶을 살고 가신 것 같아서 스스로의 삶에 만족했으리라 추측해봅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사회적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작품세계를 관철한 용기 하나 만큼은 박수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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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남자
17/09/07 03:23
수정 아이콘
마광수 교수님의 그것만큼이나 간결하고 명료한 글이네요.
돌아가신 후 고인의 아포리즘 몇개를 봤는데 한구절
한구절이 가슴을 쿵하고 치더군요. 확실히 시대가 품기 벅찬 인물이었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닉 로즈
17/09/07 05:33
수정 아이콘
마광수 다음에 진짜 폭탄이 터졌습니다 서태지.

마광수 탄압은 우리 일 아니다 무시하던 사람들이 서태지 현상에 우왕좌왕하던게 생각나네요. 서태지는 마광수와 마찬가지로 부패한 자본주의의 개인주의적 결과물에 불과한가 혹은 아닌가.
결국 이렇게 정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우들은 항상 새 것을 좋아하며, 그러한 학우들의 요구를 활동가들은 적극 받아 안고..." 운운.
서태지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전에 없던 단지 '새' 것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서태지 따위는 받아 안아 가뿐하게 운동권이 소화시킬 수 있다고 그 들은 믿었습니다.

어쨌든 그 후 교내 방송에서도 비로소 서태지가 틀어졌고 학생들은 해방이 온 양 환호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웃기고 자빠진 말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안경환을 추천한게 조국으로 압니다.
17/09/08 00:30
수정 아이콘
아.. 오랜만이네요 영등포 서점에서 읽기 시작해서 이런책이 서점에 있을수 있다는거에 놀랐던... 그러면서도 끝까지 읽었던..

차마 혼자 낮부끄러워서 구매할수가 없었던...

아직도 기억합니다 첫페이지에 있던... "수음에 지쳐갈무렵..."

그리고 소단락... 제목.. "꿈에서 나는 왕이 되지"..였나 암튼... 3사람이 나옵니다. 남자하나 여자둘... 끝까지.. 이 세사람만..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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