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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8/25 18:48:18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원말명초 이야기 (7) 결코 원하지 않았던 미래



 원 제국은 무너지고 있었다. 각지에서 반란의 조짐이 보이고, 민심은 흉흉해졌으며, 요사한 종교가 사람들을 현혹하고 도처에서 조정의 명령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망국의 길로 가는듯해 보이는 제국에도 아직 인재는 남아 있었으니, 탈탈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무너져가는 나라를 홀로 지탱해야만 하는 책무가 있었다.



 탈탈에 대한 비판적인 기록이 없지는 않다. 그가 권력을 몹시도 탐내 부친이 자신의 자리를 가로막는다고 생각하여 조정에서 물러나게 했다던가, 중서성에서 반란 소식을 보고하며 모반사(謀反事)라는 제목이 붙어 있자 이를 하남 한인 모반사(河南漢人謀反事)로 바꿔 하남의 모든 한족을 반란군 취급했다는 식이다. (1) 



 이런 기록이 전부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 말들은 주로 권형(權衡)의 경신외사(庚申外史)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인데, 이 책은 순제 집권 시기를 다룬 야사다. 명나라 초기에 살던 권형이 개별적으로 쓴 역사서이기 때문에, 종종 정사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보충할 수 있고 당대 풍속과 문화에 대한 좋은 자료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덮어놓고 전부 믿기는 힘들다. 



 반면 명나라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편찬한 원사에서는 탈탈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바얀의 정책을 모두 변경하여, 과거시험을 실시하고, 종묘에 제사를 다시 올렸으며, 죽은 친왕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소금의 생산할당량을 줄이고, 미납된 조세를 탕감하며, 경연을 열어 유학자 신료들에게 강의하도록 하고 자신이 이를 관장했다. 천하가 만족했으며, 모두가 어진 재상이라 칭송하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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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를 위해 탈탈이라는 인물이 남긴 큰 업적이 하나 있다. 바로 역사서를 편찬한 것이다. 소위 중국 25사(史)라고 불리는 역사서 중 송사(宋史), 요사(遼史), 금사(金史)에 이르는 3개 사서가 이때 만들어졌다. 이 셋 사서의 권수를 모두 합치면 총 747권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이다. 물론 이를 만들기 위한 밑 작업과 자료 수집은 전대부터 준비되어 있었지만,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편찬은 차일피일 미뤄왔던 것이다. 하지만 탈탈의 강력한 의지로 인해 이때 작업이 진행되어 1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자료 수집이 이전부터 되어 있었다고 해도 이만큼 방대한 분량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선 1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때문에 송사, 요사, 금사 모두 오류가 적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보존하기도 어려웠던 난세에서 오히려 역사서를 편찬하여 7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를 볼 수 있게 해준 탈탈의 공로는 분명 만세에 남을만하다.



 탈탈이 역사서를 서둘러 편찬한 이유는, 분명 어지러운 세상을 타파할 방책을 구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전근대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세상을 구하기 위한 계책을 늘 과거에서 찾았다. 고금의 흥망성쇠, 어리석었던 임금과 현명했던 군주들, 나라를 망친 신하와 나라를 구한 신하……



 역사서를 편찬하며, 탈탈은 필사적으로 전대의 사례를 뒤지며 세상을 구할 방책을 찾으려 했다. 어떻게 해야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천하 난세를 끝냈을 수 있을까. 요나라를 망치고 멸망시킨 암군 천조제(天祚帝)를 평하며 탈탈은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인망이 부족하고, 간사함을 믿었으며, 나라의 근본을 해하고, 점차 토붕와해(土崩瓦解)에 이르렀다. 소봉선(蕭奉先)이 사심을 품고 멸공(滅公) 하여, 앞장서 화를 입혀 재난을 일으킴이 이에 이르렀다. 천조가 곤궁하여 소봉선이 자신을 망친 것을 알았으니, 어찌 늦은 것이 아니겠는가.” (3)



 천조제가 무능하고, 간신 소봉선을 믿었으니, 나중에 깨달아도 때는 이미 늦어 나라를 망치는 데는 암군 한 명과 간신 한 명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어리석어 송나라의 절반을 금나라에 내준 송나라 휘종(徽宗)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가했다.



“욕망을 좇아, 법도를 깨뜨리면, 망하지 않는 자가 드무니, 휘종은 개중에서도 심하였다. 특히 경계로 삼아야 한다.”



 그러는 동시에,



 “장돈(章惇)이 일컫기를, 휘종은 가볍고 경박하여, 임금으로는 불가하다 했다.” (4)



 라며, 차라리 그를 임금으로 삼지 말았어야 한 것 아니냐고 은근히 속내를 비춰 보였다.



 망국의 군주를 평하고, 여러 나라의 멸망 사를 되짚어보며, 그 역시 많은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그는 군주인 순제 역시 똑같은 고민을 하길, 그래서 나름의 답을 찾기를 바랐다. 



 "폐하께선 성인들의 학문에 마음을 쓰도록 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굳이 옛일을 알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만일 경전과 역사가 마음을 수양하는데 필요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세조 황제가 유종 황제에게 이를 가르치려고 하셨겠습니까? 폐하께서도 유종 황제가 배우던 책을 살펴 보십시오." (5)



 기록에서는 순제가 그 책을 받고 기뻐했다고 하지만, 책을 보긴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충심으로 친족을 치고 황제를 구한 탈탈이니, 순제에 대한 탈탈의 감정은 충성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군주에게 충성을 품는 것과 별개로 그 군주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알기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탈탈은 다른 곳에 기대를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순제의 아들, 황태자 아유시리다라(愛猷識理答臘)에게 특히 큰 애정을 가졌던 것처럼 보인다.



 아유시리다라는 순제와 고려인 기황후의 아들이다. 엘 테무르의 딸 타나실리가 죽은 이후 기 씨를 아꼈던 순제는 그녀를 황후로 삼고 싶었지만, 몽골 순혈주의를 부르짖은 바얀이 이를 용납할 리 없었다. 그래서 바얀 후투그(伯颜忽都)를 먼저 황후로 삼아야 했다. 황후로 삼았다고 해도 애정이 없으니, 늘 순제는 기 씨의 처소만 들락거렸지만 바얀 후투그 황후는 질투나 시기를 하지 않고 측근들이 “이럴 수가 있느냐” 며 따져도 한 번도 황제를 원망하지 않았다. (6)



 바얀 후투그 황후도 황자를 낳긴 했으나, 그 아이는 불행하게 2살 무렵에 죽고 말았다. 반면 기 씨의 아들은 문제없이 장성했으니, 본래도 기 씨에게 마음이 가 있던 순제는 명분도 얻게 되어 그녀를 기황후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황태자는 어린 시절 황궁이 아닌 탈탈의 집에서 자랐다. 황태자가 굳이 궁전에서 살지 않고 재상의 집에서 보육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태자의 질병 때문일 수도 있다. 태자는 어린 시절 늘 몸이 아프고 잔병치레가 잦았다. 항상 약을 달고 살았는데, 탈탈은 그런 갓난 아이를 직접 옆에서 보고 달래면서 약을 쓸 때면 자신이 먼저 복용하여 문제가 없는 경우에만 태자에게 썼다고 한다. 



 하루는 순제와 태자, 탈탈이 운주(雲州)로 행차를 나갔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으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수레 건 말이건 모조리 쓸려 나갔다. 이때 탈탈은 만사 제쳐놓고 바로 태자부터 찾아 어린 태자를 껴앉고 부리나케 높은 곳으로 피신했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유년기를 보낸 끝에 태자는 건강하게 자랐고, 6살이 되자 다시 황궁으로 되돌아갔다. 태자가 돌아가자 탈탈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 대수원충국사(大壽元忠國寺)를 만들고 황태자의 안녕을 위한 축복을 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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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탈의 평소 생각을 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전국 각지 사찰의 중들이 모여 탈탈을 찾아왔다. 그리고 여러 지방 관청에서 자신들을 괴롭혀 살 수가 없으니, 승사(僧司)를 다시 둘 것을 부탁했다.



 “군현이 괴롭힘을 멈추지 않으니, 그 고통이 지옥 같아 살 수가 없습니다.”(郡縣所苦,如坐地獄。)



 그러나 탈탈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승사를 다시 둔다면, 지옥 속에 또다시 지옥을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若復僧司,何異地獄中復置地獄邪。) (7)



 종교 집단에게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단호한 의사표시였다. 지금 같은 난세에서 원칙을 무시하고 그들만을 위한 특혜를 마련하는 것은, 탈탈에게 있어 ‘지옥을 하나 더 만드는 것’ 이었던 셈이다. 



 바얀을 치고 순제가 권력을 되찾는데 최고의 공신이었던 탈탈이었지만, 생각보다 탈탈의 권력은 막대하진 않았던 것 같다. 1347년, 과거 탈탈의 상관이었던 베르케부카가 우승상이 되자 탈탈의 아버지인 마자르타이는 베르케부카에게 탄핵을 받아 유배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몸이 좋지 않아 잠시 쉬고 있던 탈탈은 ‘멀리 떠나는 아버지를 보필하고 싶다.’ 면서 만사를 제쳐두고 귀양 가는 아버지를 따라나서 말과 천막, 음식을 모두 꼼꼼하게 살폈다. 때문에 늙은 마자르타이는 귀양을 떠나는 길이면서도 어려움을 겪지 않고 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배지인 감숙에 도착하자 조정에서는 다시 머나먼 서역까지 떠나라 했고, 그곳으로 향하니 이번에는 또 감주(甘州)로 떠나라 했다. 노년에 변경을 떠돌던 마자르타이는 결국 죽고 말았다.



 탈탈을 공격한 베르케부카를 덮어놓고 악신(惡臣)이라고 할 수는 없다. 베르케부카는 강절행성 좌승상 시절 큰 화재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자 2만 명이 넘는 재해민을 구휼하고, 조정에 부탁하여 이재민 구제 사업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베르케부카가 2년간 그곳에 재임하는 동안 어린아이부터 여자들까지 그를 칭송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베르케부카가 탈탈 일파와 사이가 멀어진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기껏 잡은 권력을 내려놓아야 했던 이유는 어사대(御史臺)와의 분쟁 때문이었다. 그가 마자르타이를 귀양보낸 다음 해, 어사대에서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베르케부카를 강하게 탄핵했다. 베르케부카는 어사대를 달래기는커녕 강경하게 대응해서 어사대부 이렌친발(亦憐真班)을 처벌했다. (8)



 그런데 이렌친발은 과거 바얀에게 아첨하지 않아 자신의 아들마저 살해당하고 본인은 유배를 떠났던 인물로,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었다. 하물며 탈탈 부자의 귀양 건도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일을 베르케부카가 억지로 밀어붙여 귀양을 보낸 것에 가깝기 때문에, 지나친 처사에 자연히 반발이 극심해졌다. (9) 어사중승 이하 모든 관원은 항의의 표시로 전부 사퇴를 하며 파업에 돌입했고, 어사대와 전국 각지에서 베르케부카를 탄핵하는 상소가 빗발쳐 결국 그는 귀양을 떠나고 말았다. 평생 동안 쌓아온 명성을 마지막에 정치적 결정 한 번으로 잃어버린 셈이다.



 베르케부카가 실각하자 탈탈은 다시 조정에 돌아왔다. 베르케부카를 비롯해서 그 일파였던 한가납(韓嘉納), 타이핀(太平), 투만티르(禿滿迭兒) 등 그 일파 모두는 귀양을 가거나 살해당했다. 사서에서는 이때를 일컬어,



 “탈탈이 중서성에 되돌아와, 그간의 은혜와 원한을 모두 갚았다.” (脫脫既復入中書,恩怨無不報)



 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번 탄핵을 받았다가 되돌아와 반대파를 쓸어내자, 탈탈은 별다른 견제도 받지 않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독재자라고 표현해도 좋다. 당시 조정에서 중책을 맡던 사람은 오고손양정(烏古孫良楨), 공백수(龔伯遂), 여중백(汝中柏), 벡테무르(伯帖木兒) 등이었는데 모두가 탈탈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조정의 논의는 이들이 주로 결정했으니 대부분의 신료들은 끼어들기는커녕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단순히 가지고 있는 권력만 보면, 탈탈은 엘 테무르와 바얀의 뒤를 잇는 권신이라고 해도 좋았다. 문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를 어떻게 쓰느냐는 것이다. 엘 테무르는 그 힘을 가지고 주색에 빠졌고, 바얀은 권력에 취한 나머지 권력의 노예가 되어 죽었다. 탈탈이 바라본 것은, 백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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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황하의 백모(白茅) 제방과 금제(金堤) 제방이 무너져 수천리에 걸쳐 물이 넘쳤다. 백성들이 괴로워하는데도 5년이 지나도록 조정에서는 이를 해결하기는커녕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매년 홍수가 일어나면 강 근처의 마을이 모조리 쓸려가기를 반복하니 하늘을 원망하는 것 외에는 누구도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가로(賈魯)라는 사람이 있었다. 황하가 처음 범람했던 5년 전부터 현지에서 면밀한 조사를 거쳐 나름의 대응법을 궁리한 당대의 치수 전문가였다. 탈탈은 가로를 불러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황하의 치수 사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두 가지 방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황하의 북쪽에 제방을 만드는 일입니다. 미봉책이지만, 공사비는 적게 들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대규모 준설을 하여, 황하의 흐름 자체를 동쪽으로 바꾸어 옛 물길로 흐르게 하는 방법입니다. 효과는 확실합니다. 다만 공사비가 전자의 수 배 이상으로 드는 것이 단점입니다.”



 “좋다. 두 번째 방법을 써 모든 근원을 제거하겠네. 내가 지원해줄 테니, 자네가 이 일을 총지휘하게.”



 가로가 자신은 그런 중책을 맡을 능력이 안된다며 사양하려 했지만, 탈탈은 오히려 이렇게 말하며 그를 기용했다.



 “경이 아니면, 과연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10)



 하지만 황하 치수라는 대역사(大役事)는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공부상서(工部尙書) 성준(成遵)이 그 중심이었다. 그가 간신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조정의 명령으로 현지 조사를 나섰던 성준은 직접 물의 흐름을 재고, 현지 사정을 탐방하고, 여론을 종합한 결과 지금 치수에 나서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황하의 옛 물길을 수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녕, 소주, 운주 지역은 수년간 기근이 계속되어 백성들의 삶이 극도로 어렵습니다. 치수 공사를 위해 수십만 명이 그 지역에 머문다면 소요가 우려되는 바, 한번 소요사태가 벌어지면 그 피해는 수해를 걱정하는 정도가 아닐 겁니다."



 “너희들은 감히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하는 것인가? 토목 공사에 대해서는 이미 뜻이 정해졌다. 그 책임을 맡을 사람도 정해졌으니, 딴소리하지 말아라.”



 “제 손을 잘라도 주장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11)



 결국 끝까지 뜻을 바꾸지 않은 성준은 지방으로 좌천되고 말았다. 그 정도로 치수 공사에 대한 탈탈의 의지는 강력했다.



 "황제께서는 지금 백성을 걱정하고 있으니, 대신들도 당연히 그 걱정을 함께 나누어야만 한다. 천하의 일에는 어려운 일이 있으니, 마치 질병 중에서도 어려운 질병이 있는 것과 같다. 그 옛날부터 황하의 병환이란 실로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이었다. 내가 기필코 이를 없애보리라." (12)



 그런 탈탈 자신의 강력한 의지 아래 치수공사가 시작되었다. 가로는 하북과 하남의 백성 15만 명과 군 병력 2만 명을 동원해 총 17만 명으로 공사를 시작했고, 총 7개월 간의 공사 끝에 마침내 치수 공사는 성공적으로 끝냈다. 황하의 물길을 잡는데 마침내 성공했던 것이다.



 탈탈에게는 사명감이 있었다. 무너져가는 나라를 자신이 지탱해서 구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가짐이 있었고, 독선적인 태도를 취해서라도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황하의 물길을 바로잡는 일과 같은 중대사는, 비록 반대가 있을지언정 지금 자신이 해두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었다.



 아이러니함이 여기에 있다. 고금의 역사를 살펴보며, 자신 나름대로의 장구한 계책을 생각하고 국가의 병폐를 속히 제거하려고 했던 탈탈이다. 그러나 나라의 병폐를 해결하려고 했던,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분명 옳았을 탈탈의 이 정책이야말로 원나라를 무너뜨리는 대규모 농민 반란의 도화선이 되어버렸다.



 원나라 치하에서는 수십만 이나 되는 농민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한 곳에 모이는 집회 자체를 용납하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 봉기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치수 공사를 이유로 17만 명의 인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일을 하는 인부만 그 정도였으니 가족, 매춘부, 장사꾼 등의 사람들은 그 이상으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 속으로, 무엇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사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수군 수군거리는 사람들,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는 사람들, 틈날 마다 기묘한 향을 피우며, 세상을 구원할 ‘명왕’ 의 도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외눈박이 돌사람, 황하를 움직이고 천하를 뒤집네.”
 


 그들은 시간이 날 마다 이런 동요를 불렀다. 대다수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그 노랫말이 입에 붙어 자신도 모른 채 중얼거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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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어느 날, 공사를 하던 인부 중에 한 사람의 곡괭이가 돌부리에 걸렸다. 의아해하면서 그 돌부리를 캐고 보니, 눈이 하나 밖에 없는 외눈박이 돌사람이었다. 보아하니 자신뿐만 아니라 그 외눈박이 돌사람을 캔 인부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인부들이 모아온 돌 사람의 등에는 무엇인가 글자가 적혀 있었다. 개중에서 글을 아는 사람이 있어 그 글귀를 한참 살펴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석상의 눈이 하나 밖에 없다고 말하지 마라” (莫道石人一只眼)

 “이 물건이 한번 나오면,” (此物一出)

 “천하는 뒤집어지리" (天下反) (13)





 그 순간, 시대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소용돌이친다.
 






(1) 경신외사(庚申外史) 상권
(2) 원사 138 탈탈 열전
(3) 요사 천조황제 본기
(4) 송사 휘종 본기
(5) 원사 138 탈탈 열전
(6) 원사 열전 후비전
(7) 원사138 탈탈 열전
(8) 원사 140 베르케부카 열전
(9) 원사 145 이렌친발 열전
(10)  원사 187 가로 열전
(11)  원사 186 성준 열전
(12)  원사 138 탈탈 열전
(13)  전겸익(錢謙益), 국초군웅사략(國初群雄事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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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17/08/25 19:02
수정 아이콘
그야말로 개봉박두!
블랙번 록
17/08/25 19:06
수정 아이콘
전에 평하셨던 스틸리코 향이 탈탈에게 나는 군요.
장점과 단점 모두.
드러나다
17/08/25 19:27
수정 아이콘
마지막 이야기는 정말 드라마틱 하네요 !
도도갓
17/08/25 19:53
수정 아이콘
누가 묻었을까요 흐흐흐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전립선
17/08/25 20:04
수정 아이콘
다음편 미리보기 결제는 어디서 하나요?
17/08/25 20:16
수정 아이콘
요즘 신불해님 필력은 그야말로 물이 올랐습니다 덜덜
17/08/25 21:09
수정 아이콘
의천도룡기에서 나왔던 현재 황제는 총기가 없지만 매우 총명해 보인다던 태자의 모델이 기황후의 아들일까요 ?

그리고 천하의 병권을 줘었다던 여주 1번 조민의 아버지의 모델이 탈탈 ?
신불해
17/08/25 21:21
수정 아이콘
의천도룡기를 보지 못해서...(김용 소설은 신조협려와 녹정기만 봤음)

그래도 대충 짐작은 가는데 혹시 조민이라는 캐릭터가 오빠인지 남동생인지 '왕보보' 라는 남매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아버지는 탈탈이 아니라 '차간 테무르' 라는 인물일 겁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의용병 대장으로 자신과 휘하 사병의 무력 하나로 원나라 멸망을 수십년 뒤로 물릴 뻔 했던 명장입니다.
전립선
17/08/25 21:51
수정 아이콘
정확하십니다.
17/08/25 22:08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이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

맞네요 오빠의 한족 이름이 왕보보였죠 ....
꽃보다할배
17/08/25 22:13
수정 아이콘
진이한이 생각나네요 난세의 영웅 탈탈
단지 시대를 잘못 만나서...
보통블빠
17/08/25 22:30
수정 아이콘
살다 살다 백성을 위해서 좋은일 해주는게 오히려 반란의 빌미가 되다니...
티케이
17/08/25 23:40
수정 아이콘
탈탈이라는 인물은 참 마음 아프네요. 본인이 배운바. 아는바를 최선을 다해서 행했는데, 그게 자신의 뜻과 정반대로.. 그토록 지키고자했던 국가 멸망의 시초라니.. 참...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 최선을 다한 결과가 저렇다니..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이 신념을 갖고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과연 맞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손 놓으면 올바르지 않는 신념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득세할테고.. 그냥 진인사 대천명인건지..
어렵고 혼란스럽네요.

그렇지만 신불해님 금 잘 보고 있습니다. 매우 빠르게 연재해 주고 계시지만, 기다리느라 숨넘어가요
코우사카 호노카
17/08/26 00:26
수정 아이콘
탈탈 떄문에 결국 원나라가 탈탈 털리겠군요...
고기반찬
17/08/26 01:29
수정 아이콘
원사를 본적은 없지만 실제 기록이 저런 뉘앙스로 되어있다면 꽤 재밌네요. 분명 치수공사는 대규모 민란의 발단이 되는 토목공사였고, 그거 외에도 탈탈이 추진한 정책 중 결과가 안좋은 것도 여럿 있을 뿐만 아니라 한족 반란 진압에 앞장선만큼 명나라 때 기록된 원사에서는 탈탈을 꼬투리 잡아 디스할 여지가 많았겠지요. 그런데도 신불해님 글에 인용된 원사에 니타난 탈탈의 정책 추진 의도나 인물됨을 보면 최소 부정적인 면모보단 긍정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데...이건 정말 탈탈의 인품이 존중받을만 해서였을까요?
신불해
17/08/26 01:49
수정 아이콘
나중에도 계속 언급하겠지만 원사에서는 탈탈이 대단히 긍정적으로 묘사됩니다. 행적을 다 서술하고 마지막에 평을 할때 "좀 고집이 세고 주위에 측근들이 좀 문제가 있었지만..." 이라고 비판하는 의견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탈탈 본인은 대단히 공명정대한 인물이었다고 편을 들어줍니다.

본문에도 언급했지만 경신외사(庚申外史)라는 기록에서는 반대로 좀 부정적으로 묘사되긴 하는데.. ( http://blog.naver.com/dragonrz/220107688072 이 분의 포스팅에 나오는 탈탈 묘사가 대략 경신외사의 묘사와 비슷할듯) 이게 야사인데다가 원말명초 지식인의 스탠스라는게 아무래도 탈탈 같은 인물에 대해서 우호적이긴 어려워서 개인적으론 좀 걸러듣고 본문의 탈탈 묘사는 원사 내용 위주로 갔습니다.

주원장의 입장에서는 탈탈에 대해 딱히 부정적으로 묘사할 이유가 없는 게 탈탈이 홍건적 진압에 나선 적이 있긴 하지만 탈탈이 가장 크게 진압에 나선 상대가 '장사성' 이라는 사람인데 이 장사성은 주원장의 직접적인 적수였던 인물이기도 하고,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탈탈이 장사성 반란 진압을 순제의 훼방질 때문에 실패했는데 그런 면모를 강조하면 "탈탈같은 인재가 있어도 쓰지 못한 순제 - 순제의 어리석음 강조 - 이렇게 어리석은 군주가 있으니 자연히 나라가 망할 수 밖에 - 망할 나라를 대신해서 우리가 마땅이 다스려야..." 하는 식으로 흐름이 전개될 수도 있으니까요.
자유감성
17/08/26 01:47
수정 아이콘
연재속도를 높여주세용♥
펠릭스
17/08/26 01:52
수정 아이콘
그러고보니 간과하는게 있는데 ... '황하의 물줄기를 바꾼다'라는 개념이 정말 신기합니다. 아무리 평지라지만 수백km단위로 물줄기가 바뀝니다.
17/08/26 14:57
수정 아이콘
꿀잼이네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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