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장마, 아니 동남아의 우기처럼 비가 연일 오락가락하며 쏟아진다. 비에 젖은 땅을 걷고 있었다. 작은 물웅덩이를 딛고 나자 왼쪽 양발이 젖어 온다. 물이 튀어서 그러나 생각하고 신발을 자리에 앉아 벗어보니 신발 뒤꿈치 부분이 다 해져서 구멍이 송송 나 있다. 분명 여기로 빗물이 스며들어 온 거 겠지. 신발은 여러 켤레 있지만, 항상 신던 발 편한 신발만 신다 보니 금세 망가졌다. 비가 새는 신발을 버릴까….
중학교 1학년, 신고 있던 신발은 시골에 내려오기 전 중학교 때 어머니가 사준 신발이었다. 이름도 유명한 니코보코 밑창이 고무가 아닌 스펀지 같은 재질이 되어 있어서 발은 편했지만 금방 닳아 없어질 것 같았다. 갑자기 아버지를 따라 시골에 내려오게 되었을 때 옷이나 신발을 나에게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중학교는 촌스럽지만, 교복을 입고 다녀서 비록 새 교복은 아니지만, 선배들에게 얻어 입어서 옷으론 남을 의식하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신발이다. 일 년 정도 신고 나니 밑창이 이제 남아나질 않았다.
어찌나 헤졌는지, 밑창이 갈기갈기 찢겨 신발창이 바닥에 닿을 지경이었다. 신발로의 제 기능이라곤 이젠 발등이나 보호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신발을 신지 않고 다닐 수 없기에 그거라도 신고 학교에 다녔다. 옷이나 신발, 돈에 대해선 거의 포기를 했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그걸로 부끄럽지는 않았다. 다만 비가 오면 항상 양말이 축축이 젖은 게 너무나 싫었다. 게다가 닳아진 밑창만큼이나 부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걸음걸이가 짜증이 났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던 중 학생들이 많이 가는 오락실 바깥 어느 한쪽 구석에 이름도 유명한 아디다스 운동화가 버려져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왜 그런지 몰라도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과 버려져 있는 신발을 비교하니 땅에 버려진 신발이 훨씬 쓸 만 해 보였다. 누가 볼세라 주위를 둘러보고 신발을 들어보니 밑창이 헤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신고 있는 니코보코에 비하면 새것과 진배없었다.
한 오 분간 고민하다가 혹여 동창이나 선배들이 볼까, 신발을 가방에 얼른 가방에 넣고 집으로 갔다. 그날 저녁 아디다스 신발을 빨고 또 빨았다. 그리곤 내 신발을 버렸다.
다음날 채 마르지도 않은 신발을 신고 학교로 가는 길은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푹신했고 가벼웠다. 행여 그 신발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우가 버린 게 아니길, 그래서 남이 버린 걸 신었다고 놀림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조심스럽게 신발이 눈에 띄지 않게 한쪽 구석으로 길을 지났다. 다행히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학교에 도착했다. 이젠 아무도 뭐라고 하진 않겠지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근처 보육원에서 학교에 다니는 녀석이 슬쩍 나를 불렀다.
"너, 그거 어제 내가 오락실 밖에다 버린 거 주워서 신고 있네."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 말이었다.
"아니야…."
얼굴이 빨개진 채로 부정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애써 모르는 척하고 애써 나를 속여 가진 게 없어서 부끄러운 것, 불편한 것들이 댐이 무너지듯 한 번에 가슴으로 쏟아 졌다.
"에이 맞는데, 뭐 어쨌든 버린 거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 친구가 갔다. 그리고 난 맨발로 집으로 걸어갔다.
비 좀 샌다고 버리긴 아까운 생각이 든다. 슈구라도 발라서 좀만 더 신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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