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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23 23:21
독일에서 다하우 강제수용소 가니까 나치가 어떻게 권력을 잡고 반대파들을 제압했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더라구요. 놀라웠던건 좌파에 대한 테러가 엄청났던 것, 우리는 유대인학살만 주로 아는데 집시학살 역시 주요했던 것 이었습니다.
17/07/23 23:23
나라가 힘들고 불안할 때 극우, 급진 세력이 집권하는 건 상당히 흔한 케이스죠
전 오히려 오바마 이후에 트럼프 케이스가 휠씬 이상하다고 봅니다.
17/07/24 00:11
오바마 시대가 치세는 아니지만 나라가 힘들고 불안한건 아닌데 극우인 트럼프가 당선 되어서 이상하다는 말씀 아닌가요? 미국이 1차대전 이후 독일처럼 어지럽고 혼세여야 트럼프의 당선이 안 이상한건데 이상하다 라는 뉘앙스 신 것 같은데...
17/07/24 00:14
저도 그렇게 이해했는데. 나라가 힘들고 불안하지 않은데 트럼프가 당선된 희한한 케이스죠.
오바마 지지율도 엄청 높았는데. 결국 힐러리를 뽑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으니 미국 선거제도가 일으킨 참극입니다.
17/07/23 23:31
국회의사당에 불을 낸건 당시 사민당에서 나치의 자작극이라고 추정했으나, 실제 네덜란드 공산주의자가 홀로 저지른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당시 나치가 제1당이긴 했으나, 2당과의 차이가 점점 좁혀지고 있는 상황이라 나치당이 막 나가고 있다는걸 독일 국민들이 정상적으로 감지 중이었습니다. (덤으로 독일과 결혼했다던 히틀러의 여자 관련 사생활 문제, 게르만족이 아니라는 의혹으로 지지율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는 중이기도 했지요.) 나치 입장에서는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그야말로 행운의 뜬금포였고, 히틀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 행운의 사건 하나로 인해 수권법이 통과되게 만들었고, 이후 선거결과도 나치당의 압승이라고 괴링이 대놓고 주작된 결과를 방송으로 공표합니다. 이게 이른바 나치 일당 독재의 신호탄이 되었던겁니다.
17/07/24 01:07
그런 의미에서 흔히들, 나치스의 승리는 민주주의적으로 이뤄졌다고 허는디, 실제로는 온갖 협잡과 뽀록 협박과 폭력으로 이뤄진 것이지, "정상적인 민주적 과정" 을 밟아서 이뤄진건 아니죠. 민주주의적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봐야... 나치스는 민주주의적으로 승리했다, 이 말이 과하게 많이 돌아다니는데, 저는 좀 자제되어야 할 표현이라고 보니다.
17/07/24 07:03
수정의 밤, 장검의 밤 사건 생각하면 절대 민주적인 방법이 아니죠. 단지 민주적인 선거 결과만 이겼을 뿐 수단과 방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7/07/24 22:17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1933년 처음 제1당이 되었을 때는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겠죠. 물론 그 이후에는 일단 잡은 권력을 절대 내려놓지 않기 위해 온갖 종류의 불법과 폭력을 무자비하게 실행했습니다.
17/07/25 16:28
오히려 그 1당이 되는 과정이야말로 폭력과 협박이 난무했죠. 돌격대가 한 일이 뭔데요. 지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는게 아니라, 그 지지를 유도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민주주의적이지 않고 민주주의의 약점을 최대한 악용하였기에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집권했다는 말이 어폐가 있다는겁니다. 물론 반대편인 공산당도 만만찮게 정치테러를 저질렀으니, 저 시기는 굳이 한국과 비교하자면 해방정국처럼 서로가 피로 피를 씻는 상황이었지, 제대로 민주주의가 작동한 시기라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물론 순결한 독일 국민을 사악한 나치가 속였다, 라는 신화를 쓰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러나, 민주주의가 나치라는 괴물을 낳았다, 라는 서사는 역설적이면서도 강력하면서 매혹적이라, 악용되기 쉬운데, 그런 이야기를 자세한 부연없이, 그니까 맥락없이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17/07/23 23:39
사실 전쟁이전 베르사유조약을 가볍게 부수는 라인란트 재무장, 오스트리아 합병, 체코합병만 봐도 독일국민의 지지를 안받을수가 없었을듯 합니다.
물론 어느정도만 고개끄덕여주면 그쯤 해서 그만두겠지한 주변국이 한몫해버린것도 있고.....
17/07/23 23:45
이런 상황에서 대중을 탓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위정자라는 양반들이 스스로 선택권을 지워버리는 상황에서 행해진 행동들은 그저 시행착오를 통한 야만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고요. 이 당시의 독일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시민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때였다고 봅니다.
17/07/24 00:13
실제로 경제도 잘 나가고 외교만으로도 영토를 넓히는 상황이었는데 지지를 안하는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죠.
박근혜정부도 경제만 클린턴 수준으로 부흥시켰으면 아마 무당이 정치 잘했네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17/07/24 00:37
경제는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우토반 깔고, 군수 인프라 구축으로 뉴딜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 그리고 군사 증강으로 장교 채용 및 친위대 규모 확대로 실업률은 감소한건 맞습니다. 근데 독일은 석탄 이외에 자원이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머지 자원을 수입해서 군수물자를 생산했는데, 국고에 있는 금으로 자원들을 수입했습니다. 그리고 군대 월급은 세금으로 지급하겠죠? 이렇게 되다보니 국가 빚은 늘어나고, 국고는 거덜납니다. 근데 침공하기에는 군사력이 허접합니다. 그래서 히틀러의 얻어걸리는 촉으로 피 안 흘리고 오스트리아, 체코 합병을 성공합니다. 체코 합병되자마자 독일이 가장 먼저한게 체코에 있는 금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는 현대에서도 나치 독일의 군사, 정치 얘기에 대비해 경제 얘기는 잘 언급도 안 될뿐더러 묻혀서 잘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그리고 저 자원문제때문에 침공은 무조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유럽 침공한 것도 연합국에 의해 철광석 수입이 끊길 수 있어 미리 선수친거였습니다.
요약하자면, 경제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디폴트되기 일보직전이었다.
17/07/24 01:29
부흥시킬거 까지도 없고, 만약 작년에 태블릿이 터지지 않았다면, 지금 수출 살아나고 재정수지 좋아진 거 전부 창조경제의 성과로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있었을 겁니다.
17/07/24 10:12
절단신공이 아니라 딱 여기까지 적고 "아 이정도면 집권한 원인은 대충 설명했어"하고 피곤에 쩔어 글올리기 버튼을 누른게 아닌가 사료되옵니다.
17/07/24 22:15
맞아요 크크크. 사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기 전에 막 쓴 글이어서 흑흑... 그래도 2편은 없을 예정이랍니다 (죄송...)
17/07/24 10:32
독일 뿐만 아니라 일본,이탈리아,스페인,동유럽의 신생 독립국 들도 비슷한 정권이 생긴걸 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식민지 정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7/07/24 11:00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19세기에 식민지로부터 자원을 끌어모으던 유럽이 더 이상의 새로운 식민지를 얻어내지 못하니까 벌어진게 1차 세계대전이죠. 그리고 남아있던 식민지들도 2차대전 등을 통해서 모두 독립하게 되어 새로운 경제질서로 들어서게 된 거죠. 그런데 그 이후로도 대규모 전쟁이 안 일어난 것이 경제체제가 무력을 기반으로 한 식민지 경제에서 자본을 기반으로 한 무역 경제로 변화가 일어나서 전쟁의 필요성이 적어져서인지, 아니면 2차 대전 마지막에 핵폭탄의 위력을 봐서 대규모 전쟁에 대한 공포가 생겨서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17/07/24 22:21
꼭 식민지라고 보기엔 어렵고, 경제적 양극화와 경기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Establishment라고 불린 정치권이 전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봐야겠죠. 신생독립국들에서 이런 경향이 가장 크게 나타내는데, 이는 Establishment라고 불릴만한 기득권이 기존의 강대국 만큼 성숙하지 못했서, 그리고 그만큼의 권위나 리더십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합니다.
17/07/24 12:54
사실 수권법 하나만으로도 민주적인 절차는 끝장났다 볼 수 있죠. 입법부의 권한을 가져오는 것도 그렇고 입법 과정에서의 탈법적인 행동도 그렇구요.
17/07/24 19:56
1. 사실 "Stabbed in the back"이란 통념은 그런게 역사 속에 존재했다는 자체로도 아주 교훈적입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사람들을 최면에 빠뜨리는 아주 좋은 사례지요. 우리가 여전히 그것을 신앙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으므로 더더욱 이런 교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2.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스가 쓴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란 책이 최근 번역됬는데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482562, 오랫동안 저 책 제목의 Consequence를 '귀결'이라고 번역하는 게 관행적이었는데 '결과'라는 번역어가 사용된 모습입니다.) 이 책은 베르사유 조약의 '경제적 부분'의 불공정성에 대해 영국인인 케인스가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했던 책입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책이 찬사만 받은 것은 아니었고, 당대인들의 분노어린 비판도 많이 제기됬던 바 있습니다.) 연합국 사람들의 도덕적 감각에서만 비춰보면 독일에 천문학적 배상금을 물리고, 자원을 박탈하는 등의 '징벌'이 필요하겠지만 이미 유럽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독일 경제에 타격을 가하면 결국 유럽 경제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단 것입니다. 실제로 케인스의 관측 자체가 타당한 것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독일 배상금 문제는 전후 금융질서에 괜스런 불안정성만 초래하며 결국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여러 불씨 중 하나가 된게 사실이었지요. 3. 본문이 제시한 3가지 이유 말고 다른 이유를 꼽자면 대공황의 발발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독일에서의 대공황의 경과에 관해서는, 좀 난삽하게 쓰여 있지만 이 글도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https://cdn.pgr21.com/?b=8&n=58333) 나치는 소위 케인스적 경제정책을 펴서 경기회복에 성공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나치가 확장 재정정책을 쓴 것인지 자체조차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다 나치 시절 이룩된 경기회복이 장기지속 가능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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