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인도의 벵골에서 식민국 아들로 태어난 조지 오웰은 1922년 미얀마에서 경찰관 생활을 하다가 경찰의 직무가 그의 생리에 맞지 않고 식민 정책의 비리가 역겨워고, 또한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1927년 경찰관 생활을 그만두고 문학 수업 차 런던으로 건너간다. 타고난 반골 기질을 가진 조지 오웰은 그 후로 사회적. 정치적 근본 문제에 맞서는 작품들을 써낸다.
그가 죽기 5년 전 써낸 동물농장은 이솝우화와 같이 동물을 의인화시켜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농장에 동물들은 농장 주인의 폭거와 지배에 맞서 싸워 혁명을 일궈낸다. 하지만 그 혁명의 달콤한 축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저주가 되기 시작한다. 여러 동물 중 돼지들은 똑똑한 두뇌를 앞세워 다른 동물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돼지 중 우두머리인 이상주의자 스노볼과 전체주의자 나폴레옹은 정치적 갈등을 빚고 결국에는 나폴레옹이 무력을 빌어 스노볼을 쫒아 낸다.
전체주의자 나폴레옹은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쫓겨난 이상주의자 스노볼을 그들의 체제를 위협하는 커다란 위험으로 규정한다. 다른 동물들에게 공포를 주입하여 전체주의로 물들게 하며, 공포를 무기 삼아 농장 주인이 동물들에게 했던 폭거와 지배를 돼지들이 고스란히 답습한다…. 이른바 `동물주위`라는 혁명의 기조는 어느새 돼지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되며, 다른 동물들은 돼지들의 노예가 되었다. 이제 돼지는 어느새 동물들을 지배했던 인간들과 구분할 수 없을 지경에 까지 이른다.
소련의 체제에 착상을 얻어 펴낸 동물농장은 소련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왔던, 혹은 지금도 겪고 있는 모습들에 실감한다. 과거 독재자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시절, 북한에 대한 공포로 시민들을 겁박하고, 때론 없는 간첩을 만들어 내어 흔히 말하는 `용공 분자`를 모진 고문으로 만들어 내어 체제에 반기를 드리는 시민들을 굴종하게 만든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는 혁명이라는 이상 아래 혁명의 지도자들이 그들이 추방한 독재자의 허울을 쓰게 되고 스스로 자신들이 질책하던 독재자, 즉 가해자의 입장으로 끌어올린다.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간의 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역사는 그렇게 반복된다.
조지 오웰은 차등 없는 사회를 표방한 이념이 나중엔 권력의 전횡으로 파생되는 흉측한 계략으로 변해 버리는 독재자, 전제·전체주의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여러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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