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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7/04/24 16:44:55 |
Name |
깐딩 |
Subject |
[일반] 동물의 고백(7) |
-니 사진 한장 찍어서 보내줘.
-네, 준비 좀 하고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준비는 무슨 준비야 걍 대충 줘.
-네 행님, 금방 드릴게요 잠시만요.
토요일 점심때쯤이었다.
소개팅 주선자로부터 연락이 와서 외출도 하지 않는데 씻고 바르고 칠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앞머리를 다 넘기는 게 나은가?
아니 요즘은 양 가르마가 유행이던데...
아- 그냥 무난하게 할까.
무슨 옷을 입고 찍어야 될까?
셔츠에 니트 면바지?
후드에 블루종 청바지?
케쥬얼 정장?
티셔츠 헨리넥 슬랙스?
소개팅을 받아보는 게 처음이라 사진도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몰라
상대방에게 넘겨주는 사진을 찍는 것도 두시간이 지나서야 주선자에게 겨우 넘겨줄 수 있었다.
주선자는 뭘 했길래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툴툴거렸고
나는 무안함에 다른 일이 있어서 볼일 좀 보고 바로 찍어서 보내드렸다고 둘러댔다.
여튼 사진을 저쪽에 보여주고 OK하면 연결 바로 시켜준다고 한다.
소개팅이 원래 이런 건가?
그냥 서로 사진 연락처 정도 주고받는 거 아닌가?
어쨌든 이미 사진은 넘어갔고 기다림만이 남아있다.
내가 회사 면접 볼 때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는데 소개팅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가슴이 뛰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야 성공이다! 여자쪽 사진이랑 연락처 줄게 잘해봐!
당시 심박수를 측정했으면 200은 넘지 않았을까?
넘겨받은 사진을 보니 이게 진짜 실화인가 싶었다.
'아니 내가 뭐라고 이렇게 예쁜 여자를 만나도 되는 건가?'
'이렇게 잘난 여자가 남자친구가 없다고???'
'이거 혹시 몰래카메라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혹시나 사진빨 각도빨인가 싶어 얼른 연락처를 저장해서
카톡 프로필을 훑어보았다.
"X발!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진짜로 집에 혼자 있었는데 육성으로 터저 버렸다.
흥분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운동을 하러 갔다. 이 흥분에너지를 운동량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이 묘한 흥분감이 가시질 않았다.
오늘은 연락하지 말자.
분명히 실수할 것 같다.
그날은 잠을 설쳤다.
-안녕하세요 OO형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정말 예쁘시네요.
당연한 일이지만 칼답장은 오지 않는다.
30분쯤이나 지나서야 답장이 온다.
-네 안녕하세요^^ 저도 많이 들었어요. OO이가 모임에서 알게 된 분이라고 하던데
-맞아요! 동네 모임에서 알게 됐어요. 제가 그 형덕분에 모임에서도 잘 어울리게 되고 이런 자리도 가져보게 되네요
그렇게 드문드문 시시콜콜한 대화를 서너 시간 이어나갔다.
-맥주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저 맥주 마시는 거 좋아해요. 근데 소주는 잘 못마셔요^^;;
-그럼 시간 괜찮으실 때 같이 맥주 한잔 하러 가실래요?
-좋아요! 이번 주 목요일 괜찮으세요?
-저는 언제든지 괜찮아요. 그럼 목요일 7시에 XX역에서 보실래요?
-네, 그럼 그때 봐요~
음...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갔다.
하긴 저쪽도 남자를 만나고 싶어서 소개팅에 나오는 건데 잘 안 풀리면 오히려 더 이상하지.
그리고 약속 당일까지 단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소개팅 전까지 너무 조잘대다 잘 안되는 경우를 많이 봐서 약속날 까지 연락을 끊었다.
약속 시각은 7시지만 나는 6시 20분쯤에 이미 도착하여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오늘 맥주 마시기 좋은 날씨네요. 퇴근하셨어요?
연락이 온다. 또다시 가슴이 뛴다.
-네 칼퇴하고 가고 있어요. 빨리 안 오셔도 되요, 천천히 오세요.
내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미 와있으니 너만 오면 된다는 말을 할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다.
약속 시각이 다가오니 저 멀리서 사진에서 봤던 그 여자가 오는 것이 보였다.
'미쳤다'
당시 내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단어가 저 한 단어 뿐이었다.
힐을 신긴 했지만 그렇게 높은 힐도 아니었고 그것을 고려해도 여자치고 큰 키였다.
167~9 정도?
누가 봐도 직장인이라는 느낌이 드는 옷을 입었으나
그 옷이 굉장히 세련됐고 그 세련된 옷을 받쳐주는 몸매가 엄청났다.
그래도 날이 아직 추운데 저런 옷을 입으면 추워서 감기 걸릴 텐데 감사합니다.
나는 일부러 몰라 본척하며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자가 날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래도 누구냐는 듯 여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5초 정도 뚫어져라 바라본 뒤 깜짝 놀라며 말했다.
"와, 사진보다 훨씬 더 예쁘시네요. 못 알아볼 뻔 했어요"
여자가 쑥쓰러워하며 웃는다.
칭찬과 인사는 할수록 좋다고 했다.
아니 이건 벌써 작업 들어간게 아니라 내가 그냥 장난 치는걸 좋아해서 장난 좀 쳐본것이다.
그리고 거짓말이 아니고 진짜 예쁘니까 예쁘다고 한거다.
"배고프시죠? 여기 근처에 맥주 마시기 좋은데 있으니까 거기로 가요"
장소는 이미 다 알아봐 둔 상태다.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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