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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4/17 15:43:40
Name
깐딩
Subject
[일반] 동물의 고백(5)
"OO아 내가 니한테 2월에 빌려준돈 생각나나?
니 그때 다음달 월급 받으면 바로 준다 해놓고 벌써 5개월째 되간디.
그게 작은돈도 아니고 우리입장에서는 진짜 큰돈인데 니 믿고 빌려준건데
니가 내한테 이라믄 되나?
내 더이상 못기다려주니까 무조건 이번달 안에 갚아도"
"엄마, 이번달부터 용돈 조금씩 더 드릴테니까 걱정말고 하던대로 하고 다니라.
동생도 알아서 쫌 더 챙겨주겠지, 걱정이 그래 많아서 어디 살겠나?
아빠도 이때까지 고생했으면 됬지 뭘 더 고생하노?"
"이번일은 제가 분명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이런일 없도록 저도 더 꼼꼼하게 일하고
아래 애들도 잘 알려주겠습니다. 근데 저는 저대로 회사에도 섭섭한거 많습니다.
3년동안 제가 오버워크할때는 회사에서 당연한듯이 있다가 문제 한두번 터졌다고 바로 이러시는게 진짜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고 그렇습니다. 어쨋든 지금까지 저 해온거 봐서라도 기회를 한번 더 주시면 좋겠습니다."
힘들다.
너무 많은 일을 한 번에 처리하려고 하니 힘에 부친다.
그래도 하나하나 처리해갈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평안해져 갔다.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 달이 지나고 내 주위의 수많은 문제를 다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아직 하나가 남았다.
후배 문제가 아직 이렇게나 내 머릿속에 크게 남아 있었다.
다시 한숨이 나온다.
'내가 이러려고 서울에 올라온 게 아닌데... 이러려고 취직한 게 아닌데...'
일단 좀 더 여유를 되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유로운 모습으로 포장하여 회사에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후배와 남아 야간작업을 하던 때였다.
"선배님"
?
"저는 선배님이 제 선배라서 좋아요."
...
"선배님 없었으면 회사 계속 못다녔을지도 몰라요. 선배님이 제 선배라는 게 정말 다행이에요."
가슴 한쪽이 시리고 아렸다.
마치 내가 본인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고 자기는 그걸 돌려서 거절하듯이 말하는 표정과 말투였다.
눈치가 제법 빠른 녀석이니 알아채도 진작 알았겠지...
또다시 말도 못 해보고 차인 건가?
답답하다.
나란 놈은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연애도 제대로 못 하는, 뭣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구제 불능인가.
머리가... 아프다...
그날 늦은 시간에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친구를 불렀다.
친구를 앞에 두고 신세 한탄을 시작한다.
친구는 묵묵부답,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듣기만 한다.
그래도 나는 이 거지 같은 서울살이를 비관하며 술에 취해갔다.
새벽 2시쯤 대부분 가게들이 다 정리를 할 무렵 친구가 말했다.
"병신새끼야 투정은 다 끝났나?"
"뭐라고?"
"투정 다 끝났냐고 정신병자새끼야. 니말 듣고있음 내가 다 불행해진다.
나는 무슨 매일같이 야근에 주말출근에 특근에 외근에, 사랑은 무슨 X바 사랑에 빠질 시간도 없다.
근데 니는 내 앞에서 그딴 행복에 넘치는 투정이나 부리고 쳐 앉아있나? 장난하나 지금?
내 같았으면 진작 고백하고도 남았다. 차이는게 무섭나?
X바 세상에 절반이 여자라고 했는데
그중에 니 좋아해 주는 사람 한 사람이 없겠나?
뭐하는데 X바. 그렇게 언제까지 앓고만 있을끼가?
시원하고 말하고 시원하게 차이고 빨리 딴사람 알아봐라 븅딱같은놈아."
친구는 그렇게 말하고 계산대로 향했다.
나는 친구가 사라지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졸아드는 감자탕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십여 분을 앉아있다 결심을 했다.
'그래 내가 비록 차일지언정 말도 못 하고 사그라지는 건 더는 참을 수 없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차게 술집을 나간다.
"아이고 삼촌! 술값은 계산하고 가셔야지!"
...술값 계산하고 간거 아니었니?
다음날 퇴근 후 나는 조심스럽게 후배에게 커피 한 잔 하자고 불렀다.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조용하게 후배에게 터놓기 시작했다.
후배는 그저 그 말을 들으며 웃으며 조용히 웃기만 했다.
"───────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는것 같아, 아니 내가 너 좋아한다."
말을 내뱉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잡생각이 모두 사라졌다.
수능이 끝났던 그 날처럼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리고 친구말대로 시원하게 차이고 말았다.
헌데 이상하게도 절망, 슬픔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은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맥주를 한캔 마실 수 있었다.
"선배 저도 선배가 좋아요. 근데 저는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요. 죄송하지만 선배 마음은 받아드릴 수 없네요."
"선배, 제가 예전에 드린 열쇠고리 아직도 갖고 다니시죠? 그건 빼지 말고 계속 갖고 다녀 주세요."
"그 열쇠고리는 제가 선배님에게 미안한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선배님이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로 골라 선물해 드린거에요."
"선배님은 좋은 선배, 사람, 남자예요. 분명 저보다 더 좋은 분을 만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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