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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01 01:30
루이스 책은 mere Christianity 링 miracle 만 봤는데 저런 책도 있었군요. 근데 고통의 문제는 매년 수많은 소아암을 발생시키는 그 분 앞에서는 파리 날개나 뽑는 우리가 명함을 내밀 수가....
16/08/01 02:16
상대적으로 생각하면 파리 날개 정도가 아니라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발로 걷어차 죽여도 명함 못 내밀거 같아요... 크... 그만큼 이 세상에는 아주 나쁜 놈들이 많으니까요...
16/08/01 01:33
저도 기독교가 신본주의 소리를 듣는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매우 인간중심적인 종교라고 봅니다. 인간중심적인 종교가 아니었다면 그정도로 번성하지도,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져오지도 못했겠죠.
16/08/01 02:18
네... 로마의 국교라는 지위를 얻었던 그때부터... 크... 아니 어쩌면 그저 인간의 머릿속에 하느님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순간부터...
16/08/01 01:39
저는 한국에서 개신교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모태신앙인데, 개신교인을 볼 때마다
입으로 말하고 추구하는 건 초월적인데 실제로 행동하는 건 굉장히 세속적이다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본문을 읽으니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네요...
16/08/01 02:20
반대로 생각해서, 종교가 없고 아주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일반인들도 의외로 초월적인 걸 많이 추구하기도 하는거 같아요. 국가를 위한 충성이라든가..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혁명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너무 거창하다면 연인간의 사랑 같은 것에도 어느정도는 초월적인 요소가 들어가지 않나 싶습니다.
16/08/01 01:49
비기독교인이신듯 한데도 쉽지않은 책을 다 읽으신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C.S.루이스는 변증법을 이용해 기독교를 이해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만 본인 스스로 실패했다 봅니다 자신도 머리로는 그걸 이해했겠지만 말년에 이 고통의 문제를 뛰어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죠. 부인의 죽음에 대해 하느님을 비난하다시피 했으니까요. 위에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내용들은 성경-기독교 교리 내용들입니다. 신앙없이 이를 받아드려라라고 하는것 자체가 모순될듯 하네요. 신학을 배우면 신앙이 생기는게 아니듯 말이죠.
16/08/01 02:29
비기독교인이기는 하지만 나름 모태천주교로 세례명도 있고 한 10살때 정도까지는 진지하게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후 무교로 돌아섰다가 30대 넘어서면서 종교라는 형식에 얽매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신'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냥 편리한대로 어려서 배운 교리도 조금 기억나는것도 있겠다 해서 성경도 대충 믿기는 하게 됐어요 흐. 제가 위에 '불쾌감이 느껴진다'라고 적은건 비기독교인들이 읽을때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예상되어서 그런 거구요.
16/08/01 01:53
당장 경전기술상 자유의지를 물먹이시고 마음대로 하셨던 기록도 있는데, 세상의 악이나 우리의 죄악에 대해서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거라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40년대에 써서 아직 연구결과가 부족한 상황이라 그럴테지만) 단지 사회적으로 구성된 자유의지에 의존해서 고통의 문제가 해소된다면 창조섭리 차원에서 문제가 생길듯 합니다...
16/08/01 02:45
기독교인 집안에서 태어나 지금은 제가 기독교인인지 무신론자인지 몹시 헷갈리는 처지지만
다만 기독교인은 약하고 그래서 초월적인 것을 지향하지만 본디 약하기 때문에 이 지향성은 항상 체념되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와 같은 체념을 통해서 신을 의지하는 삶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뭐 적어도 제가 보는 기독교인의 삶은 이렇습니다. 체념하는데도 낙관하고, 낙관하는데도 체념하는 뭔가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제가 이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당장은 죽어서 귀신이 될 것만 같네요. 아무것도 되지 않거나요 간만에 종교글이길래 감상에 젖어봤습니다 크~
16/08/01 03:04
얼핏 파우스트라는 단어를 본거 같은데 수정하신건지 제가 졸려서 헛것을 본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서 읽으면서 저거 메피스토가 내기 이겼는데 왜 파우스트 구원받는거지? 하느님 사기꾼아냐! 하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선 안도감을 느꼈던... 체념하면 기대치가 낮아지고 기대치가 낮아지면 의외의 것들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다보면 기대치가 높아지고 기대치가 높아지면 실망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러면 또 체념하고... 무한 반복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이들이 삶이 다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해요 크..
16/08/01 09:02
저 책은 빌려다놓고 놀았지만 고통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죠...
인간이 자아가 있음으로서 받는 고통은 '왜 인간에게 자유가 있는가?' 로 들리네요... 제 한두줄로 정리될수 있는 문제는 절대 아니어서 조심스럽지만 신은 인간이 자기 일만 시키는대로 하는 기계로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어린아이 하나로서 여러 차원을 통과하기를'기대하며' 기다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 인간이 신의 기대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차원에서는 인간이 자기를 위해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믿어요. 물론 고통스럽지만 자기만족을 위한 오만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족을 위해서요.
16/08/01 09:15
영화 쉐도우랜드 떠오르네요.(앤서니 홉킨스 주연)
거기서 C.S 루이스가 인간을 조각상에 비교하죠. 인간은 원래 돌덩어리였는데(아니면 원석) 하느님이 정으로 쳐가면서 조각상으로 만들었다고... 그래서 인간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하느님이 정으로 내려치시는 순간이기 때문에 견뎌야 한다고... 그러다가 미국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자기가 얼마나 무리한 이야기를 했는지 알게되죠. 미국인 여자가 죽을 병에 걸리자 자기는 그야말로 엄청난 고통에 빠지게 되고 타인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자신도 일부 이해하게 되죠. 단순히 하느님이 멋진 조각상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니 참아라 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니아 연대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작가라고 생각못했었는데 기독교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하셨던 분인것 같습니다.
16/08/01 10:18
C S 루이스가 기독교의 유명인사이긴 하지만 그분의 말로 기독교 전체를 인본적이다 재단하는 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사실 저런 질문에 답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독교 변증론은 크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게, 결국 넌크리스챤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인본적인 논리를 사용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순환 논증에 빠질 수 밖에 없죠. 제 생각에는 결국 믿음의 영역인 것 같아요. 대표적인 예로 구원의 방식에 대한 건데, 하나님은 왜 공평하게 모든 민족, 모든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시는가? 라는 질문은 성경학자들이 수천 수백년간 연구해왔겠지만 아직까지도 답은 없는 상태죠. 이 질문에 변증적으로 접근하기 보단, 그냥 하나님은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16/08/01 10:24
어제 첫 문장 보고 삭게행인가 싶었는데 수정됐... 곧 개봉하는 영화 <사일런스>의 원작 <침묵>이 같은 출판사 책인데요. 저 주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고통을 견디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그럼 이건 어떠냐!!" 순교하겠다고 왔는데 자긴 안 죽이고 너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신은 침묵하고 있는 경우에도 그 알량한 신념을 지킬 거냐 물어보는 내용이지요.
16/08/01 14:18
C.S 루이스는 본격적인 신학자라기보다, 원래 철학자, 또는 인문학자에다가 무신론자였는데, 기독교로 개종(?) 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지식과 기독교철학을 결합한 글들을 써낸... 그런 쪽인지라.;; (요즈음 우리나라의 석학이신 이어령씨가 비슷한 스탠스가 됐죠.)
그러다보니, 오히려 기독교철학의 발전과정(?)과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지나치게 복음주의적인 성향도 좀 보이고요... 그의 저서들은, 워낙 문장력이 좋기 때문에,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구나... 정도의 관점으로 읽어보기에는 좋으나, 그것을 기독교계 전체의 일반적인 견혜라고 판단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뭐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당시 기독철학의 주류사상을 알아보려면,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라인홀트 니부어나, 칼 바르트의 저서들을 읽어보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게다가 두 신학자의 관점 또한 꽤나 극명하게 갈리니... "기독교의 사상이란 이러이러하다." 라는 말을 하기에는, C.S 루이스의 저서 하나만으로는 좀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오히려 스크류테이프의 편지나 나니아 연대기등으로 일반 대중이 기독교 교리에 쉽게 접근하도록 만든 것이 C.S 루이스의 공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16/08/01 21:51
야훼를 믿는 종교는 불교와 달리 신을 인정하고(믿고) 회계하면 모든 죄가 사하여지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인스턴트급 종교입니다. 심지어 예수 오른편에 못박힌 강도는 죽기 직전에 단박대출처럼 죄를 면하고 천국으로가는 직행열차를 탔지요.. 하지만 이 종교를 들여다 보면 진입장벽만 낮고 그 안에 머무르기는 참으로 어려운 종교입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했으면 신의 말씀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하는거죠.. 신의 말씀에 복종하며(구약) 욕심을 버리고 원수도 사랑해야 합니다.(신약) 하지만 그런 삶이 쉬울리가 없죠 그리하야 점차 세속화된 종교는 인스턴트 믿음은 유지하면서 천근처럼 무거운 말씀의 복종은 점점 깃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여기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 그게 참회이자 기도입니다. 말씀에 따르지 않고 마음데로 살아도 주말에 가서 교회가서 통성기도 한번 드리고 참회한셈 치면 모든 죄가 사하여지는 믿음의 간편함이죠 그래서 주말에 교회나가보면 제법 많은 독실한 신자의 삶이 신의 말씀을 따르는 삶과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정도의 거리를 가지고 있는 이유이지요 목회자의 의도적 묵인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천근같은 무게를 논하면 신자들이 도망가버리니 말이죠 사회에 죄가 많을 수록 이 종교가 흥하는 아이러니는 이런 까닭입니다. 저는 이종교를 "믿는다" 라는 주변인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전략...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니시며...후략" 이런 사실을 믿는것이 너의 믿음의 본질이냐? 너는 이사실을 믿고 무엇이 달라졌느냐? 이 사실을 믿고 너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건만 어찌 말씀을 지키지 않느냐? 이 사실을 의심없이 믿음에도 말씀을 따르지 않는것은.. 마치 너가 이건희 회장의 숨겨진 자식이고 유산을 대부분 상속받을것을 믿으면서도 돈쓰기를 주저하는것과 같은 아이러니이다.. 라구요 이 종교의 믿음은 인스턴트이지만 스스로 믿음에 대한 의심을 떨쳐버리는것은 천근같이 무거운 일이지요.. 스스로 이 종교를 믿는다는 분들은 사실 본인의 믿음에 대상을 의심하지는 않는지 .. 의심하지 않는다면 어찌 말씀을 따르지 않는지 묻고 싶군요.. 그런면에서 11제자(한놈은 부활을 못 보았으니)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도마는 심지어 롱기누스 창에 찔린 예수님 배에 손도 넣어봤지요.. 부활(마가 복음 원문에는 부활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서도..)이라는 강력한 믿음의 증거를 보았으니 불구덩이라도 무섭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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