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루입니다. 너무 이벤트 기간에만 글을 쓴 것 같아서 솔직히 좀 찔리는 관계로(...) 이번에도 가볍게... 아니, 어쩌면 가볍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세계에는 많고 많은 나라가 있고 어느 나라나 도로는 다 깔려 있게 마련입니다만 철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섬나라만 해도 철도를 깔 공간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고(웃긴 게, 섬나라라고 다 없는 건 아니고, 남태평양에 있는 나우루라는, 서울 강남구 절반만한 크기의 좁쌀만한 나라에는 철도가 있습니다...; 인광석 수송용인데... 이건 언젠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철도 자체가 의외로 관리를 많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라서... 깔기도 힘들고 지역에 따라서는 깔아놓고 관리하기도 힘든(제가 저번 이벤트에서 보여드린 북한의 철도가 대표적이죠) 터라, 철도 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땅 되고 돈 있는 나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맨날 코레일 타임 코레일 타임 합니다만 대한민국의 철도 체계는 세계권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 보니 꼭 섬나라가 아니라 해도, 심지어 내륙국임에도 철도가 있는 나라가 있고 없는 나라가 있게 마련이죠. 철도가 '있었던' 나라도 존재하구요(남미의 파라과이가 대표적입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06년 이후로 올스톱 상태라고 하네요). 있을 법한데 철도가 없는 나라도 있고(쿠웨이트가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꽤나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만... 근데 여기는 어차피 항구로 다 실어나르면 되는 판이라 딱히 철도가 필요할 이유가 없기는 하죠. 옆에 있는 이라크는 막장이고 사우디아라비아까지는 도로가 쭉 있어서 굳이 개고생하면서 철도를 깔아야 할 이유가 딱히 없죠). 다만 어느 경우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어느 경우든간에 철도가 있으면 역은 항상 있게 마련이라는 거죠. 애초에 철도를 깐다는 것 자체가 그만한 물동량을 수송하기 위함이고 그러면 그만한 물동량이 오르고 내릴 물자 집결소, 즉 '역'이 반드시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다못해 국경을 넘나드는 수준이라 하더라도 보통은 그 국경지대에 역, 정말 하다못해 관리소 같은 거라도 설치하고 '사용료'라도 받게 마련이죠.
근데 영토 내에 철도는 깔려 있는데 역이 없는 나라가(그것도 파라과이처럼 서스펜드된 게 아니라 멀쩡히 굴러가는 철도인데도 역이 없는 나라가)... 황당하게도 있긴 있다는 겁니다. 나라라고 적기는 몹시 애매한데 이 이유는 뒤에 가서 설명드리죠.
더 황당한 것은... 그런 철도 자체도 황당합니다만, 이 뒤에 얽힌 이야기는 더더욱 골때립니다.
우리 나라는 사실상 섬이나 진배없는 꼴이라서 쉽사리 국경을 넘나드는 철도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만, 대부분의 나라는 국경을 손쉽게 넘나듭니다. 유레일 패스 같은 게 대표적이죠. 유럽여행을 갈 때 여러 나라 탐방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걸 다 비싼 항공기 타고 넘나들기는 좀 그렇고 말이죠. 화물수송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전세계적으로 화물이 없는 나라는 거의 없죠. 하다못해 식민지를 쥐어짜기 위해서 깔아 둔 철도를 독립 이후에도 어쨌든 써먹기도 하는 케이스가 왕왕 있죠. 우리 나라의 경부선, 호남선 등이 아주 대표적입니다. 경부선의 경우는 수탈뿐 아니라 러일전쟁의 병참수송을 위해서 깔아둔 것이기도 하고요(그래서 공사를 급하게 한 것이고 덕분에 조령이니 뭐니 하는 난이도 높은 문경새재구간을 통과할 엄두도 못 냈고 공주시도 통과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오늘 이야기할 지역도 바로 그런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입니다. 나라라고 하기도 뭣하기는 한데 분명히 국경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는 하고 이것 참 뭐라고 딱 정리하기 어려운... 그 문제의 나라는 바로,
서사하라입니다.
'사하라'라는 지명에서도 짐작하시겠지만 이 지역은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서부입니다. 이 뒤에 얽힌 이야기가 참으로 복잡한데, 어이없게도 19세기의 제국주의까지 끌고 와서 설명해야 할 판이거든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해외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르투갈 같은 나라만 해도 본토 외에 앙골라와 모잠비크라는 본토 영토의 수십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죠(HoI2 하면서 독일군으로 플레이하며 포르투갈에 선전포고했다가 아프리카까지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멘붕했던 적이 있습니다). 스페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곳이 현재의 서사하라 지역입니다. 그리고 이 서사하라를 둘러싸고 있는 모로코, 알제리(눈곱만큼 경계선이 있습니다), 모리타니는 모두 프랑스의 식민지였죠(알제리가 프랑스 식민지였다는 건 아마 꽤 유명한 사실일 겁니다. 전쟁도 전쟁이지만 불멸의 축구스타 지네딘 지단이 바로 알제리계 아닙니까).
말로 설명하기는 복잡하니 직접 지도를 보시죠.
북쪽으로 쭉 붙은 게 모로코. 모로코 바로 동쪽으로 진~짜 눈곱만큼 살짝 붙어 있는 게 알제리. 그리고 동부와 남부로 모리타니가 접해 있습니다. 대륙 건너편의 섬 몇 개는 카나리아 제도라고 해서 현재도 스페인령이구요. 아, 여담인데 이 카나리아 제도에서부터 역사를 바꿀 흐름이 한 번 일어났던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1936년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유혈 쿠데타입니다(...)
하여간 프랑스가 전쟁 끝에 식민 통치에서 손 떼고 독립의 바람이 전 세계의 식민지에 불어닥쳤는데 여기라고 딱히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서사하라도 독립...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이후의 이야기가 많이 복잡한 관계로 잠깐 뒤로 미뤄두고, 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갑시다.
자 근데 눈 씻고 찾아봐도 철도가 없잖아? 자네 지금 사기치슈?라는 말이 나오실 법도 하겠네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사하라 자체라기보다는 서사하라 남쪽의 국경을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있는 모리타니의 철도입니다.
출처는 위키피디아의 Mauritania Railway 항목입니다. 지도를 봐 주세요. 오른쪽 하단의 지도에서 이제 이해하셨으리라 봅니다. 근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어요. 자, 여기에서 천천히 읽으시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보통 남의 영토를 걸쳐가다가, 개/보수할 일이 생기면 원래 남의 영토를 지나갔다 하더라도 새로 철로를 깔면서 자신의 영토 측으로 틀어버리는 게 정석입니다. 일단 남의 영토를 지나다니는 동안에 발생하는 통행비는 어쩔 것이며, 관리는 누가 할 것이며, 여권 같은 건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이래저래 복잡한 일만 생기거든요. 이런 일에는 항상 각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게 마련입니다. 왜 그 얼마 전에 러시아 피해서 터키로 송유관인가 가스관인가를 뚫네 마네 하고 국제사회에서 서로 입씨름 놓고 러시아가 "니들 가스관 뚫어버리면 재미없을 줄 알아라?" 하고 으름장 놓고... 뭐 그런 비슷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런 거죠. 근데 이 점을 상기하고 오른쪽 하단의 작은 지도를 보세요.
선로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흰색이고 하나는 붉은색이죠? 붉은 색이 폐선입니다. 그리로 안 지나다닌다는 말입니다. 근데 국경을 보니 흰 선이 국경을 넘고 있고 붉은 선이 국경을 돌아가고 있네요? ????????? 그러나 지도가 잘못 나온 게 아닙니다. 뭔가 일이 거꾸로 벌어진 거라는 거죠.
앞서 이야기했습니다마는 철도를 까는 목적 중에는 식민지의 수탈이 있다고 잠깐 언급했었죠. 그게 말입니다... 사막 깡촌의 모리타니에도 수송할 껀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과정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지도 동북쪽에 표시된 게 죄다 광산이거든요. 철광입니다. 철을 대량으로 수송하기 위해서 선로를 깔아둔 겁니다.
참고로 그 수송량이 어느 정도냐 하면...
아 뭐 물론 기름 살 돈조차 없는 나라다 보니 최대한 한 번에 몰아다가 수송하니 저렇게 길어지는 감은 있겠습니다만 하여간 저런 양의 화물을 수송하기 위해서 깔아둔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열차 중 하나인데, 열차의 길이는 무려 3km! 감이 안 잡히시면, 기관차는 용산역에 돌입하고 있는데 화물차 맨 끝칸은 아직 서울역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만하면 구글 어스에도 찍힐 법하지만 노선 전체의 길이가 서울-부산 거리의 1.4배에 달하는 관계로 찾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포기해버렸습니... 여하간 일 년에 1천 6백만 톤의 화물을 수송하는데, 국내 화물철도 노선의 본좌라고 할 수 있는 중앙선의 2014년 한 해 동안 철도 수송량이 8백만 톤이라고 하니 그 두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이죠. 이 어마어마한 양의 철광을 수송하기 위해서 프랑스에서 돈을 들여서 선로를 깔았는데, 초움(Choum) 근교에서 선로를 깔 일이 생기자 몹-시 골치아파진 겁니다.
A : 이거 스페인 국경(앞서 이야기했듯이 서사하라는 스페인의 관할 하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죠) 넘어갔다가는 분명히 쟤들이 뭐라고 할 텐데. 통행료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리겠지?
B : 돌아가면 되잖아.
A : 여기 지형은 보고 이야기하는 거냐...
(구글 어스의 해당 지역 사진. 빨간 선이 구 선로, 즉 프랑스에서 뚫었던 철로입니다)
B : 아 사막 한가운데에 웬 놈의 산이래?
C : 야, 그래도 국경 넘어가는 것보다는 터널이 낫다. 스페인에서 내세운 조건이 너무 터무니없더라고.
A : 미쳤어? 여기 돌 재질이 뭔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화강암이라고, 화강암! 이거 뚫으려면 얼마나 피터지게 고생해야 하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고?
C : 닥치고 뚫어!!!
(...)
그래서 화강암으로 된 단단한 지반을 폭파해 가면서 눈물을 머금은 삽질 끝에(...) 2km 길이의 터널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스페인과 프랑스가 각각 물러가고 얘들이 독립하고 나니까... 때는 1976년. 이 때는 서사하라의 독립 요구는 좀 산발적인 편이었고, 게다가 서사하라가 역사적으로 우리 땅이었다고 모로코가 주장하고 나서서(...) 모로코-모리타니-스페인 삼자가 마드리드에서 합의해서 북부와 중부는 모로코가, 남부는 모리타니가 나눠먹기로 합의를 본 일이 있었죠. 대충 이렇게 말입니다. 출처는 위키피디아.
그러다 보니 해당 지역은 모리타니가 잠시 접수하게 되었고 그 틈에 "야, 뭣하러 터널에 신경쓰고 그래야 하냐? 그냥 노면에다 신선로 깔아버려!"의 결과로 현재의 선로가 깔리게 됩니다. 덤으로 그 터널에 붙은 재미있는 이름이 있는데, "Monument to European stupidity in Africa"라는 이름이에요. 번역하면 "유럽이 아프리카에서 벌인 멍청한 짓을 기념하는 기념물"(...)
그런데 모리타니가 이 지역을 접수한 것도 잠시, 이번에는 폴리사리오(서사하라 해방전선쯤 될까요?)에서 독립을 주장하면서 들고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폴리사리오측과 모리타니의 전쟁이 격화되고 결국 모리타니가 물러나면서 일단 남쪽은 대충 폴리사리오측에게 넘어갔는데... 여기에 더 큰 복잡한 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앞서 삼자합의를 본 일이 있다고 했었죠? 원래 스페인은 이걸 귀청으로도 안 들었는데, 모로코에서 사람들이 짐 싸고 내려가서 서사하라 지역에 걸터앉아버리면서(...) 스페인에서 두손 다 들어버린 거죠. 이게 그 소위 말하는 녹색행군(Green March)입니다. 그래서 모리타니가 철수하자 모로코가 재빨리 남은 지역을 싸그리 접수... 이 때 피해를 무시하고 다 접수했다면 또 모르겠는데...
하필이면 대충 접수하고 나니까 모로코 입장에서는 저 남은 땅덩어리를 다 먹기에는 들어가는 군사비가 너무 아깝고 게다가 이대로라면 대서양 지나갈 때 반드시 모로코를 거쳐가야 할 편인 이웃 알제리가 폴리사리오를 지원하면서 어쨌든 쭉정이는 남아 있는 상태가 된 거죠. 그래서 모로코는 인명과 돈을 들여가면서 먹고 계속 폴리사리오 게릴라들에게 당하느니 아예 서사하라에다가 벽을 쳐 버리자라는 발상을 떠올리게 되고... 그게 모로코 방벽(Moroccan Wall)입니다. 이름은 방벽이긴 한데 그냥 벽이라기보다는... 지뢰밭.
그 결과가 이겁니다. 역시 출처는 위키피디아이구요.
파란색이 모로코, 녹색이 폴리사리오 점령지역. 그 와중에 알제리 입을 막으려는 심산인지 눈곱만큼 폴리사리오-알제리 접경 국경지대는 또 남겨놨어요. 알제리한테 "꼬우면 니네가 폴리사리오를 관통하는 철도를 뚫든 도로를 뚫든 하던가, 그게 싫으면 얌전히 통행료 내던가" 하고 강짜를 부리는 듯한... 앞서 이야기했듯이 알제리가 폴리사리오 뒤를 봐 주기도 했고 알제리와 모로코 사이에 국경전이 벌어진 전적도 있어서 둘 사이는 영 좋지 않습니다.
왜 모로코가 굳이 남은 저 쭉정이들을 먹지 않고 방벽을 쳤냐 하면 말입니다...
구글 어스상의 모리타니-서사하라 국경지역 지역인데... 이 남은 지역이 대체로 이렇습니다. 황~량하죠.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속된 말로, 뭣도 없는데 먹고 싶겠습니까? (...)
다행인지 하필인지 하여간 이 폴리사리오 점령지역에 해당 선로가 깔려 있고 폴리사리오도 모로코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다가 저 지역이 저런 관계로 국경에다가 관리소를 설치할 인프라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관계로 오늘도 모리타니의 철도는 서사하라의 지역을 5km 정도 자르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철도는 있는데 역이 없는 나라가 생겨난 겁니다. 약소국의 설움이요, 강대국에게 외면받는 슬픔이자, 역사의 비애가 함께하고 있고 그게 철도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비극의 현장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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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말레이시아 측에서 두 나라가 동일 국가였던 시절에 깔았던 거라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고, 싱가폴이 철거하려고 벼르고 있었지만 몇년전이 되서야 겨우 철거했다죠... 고로 예전에는 기차타고 싱가폴 한 가운데에 와서야 출국심사를 받게되는 기이한 풍경도 있었는데.... 크크
독립 붐의 시기가 6~70년대라서 상당히 고착화되기도 했거니와 일단 자기 나라 땅이 줄어드는 걸 눈 뜨고 볼 나라가 거의 없어서... 거기까지면 그나마 모르겠는데 독재 or 내전의 막장상황으로 치달은 나라들이 한둘이 아니다보니 어떻게 교통정리를 할 만한 큰 소리칠 나라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래저래 답이 없어요.
서사하라의 역사가 좀 독특해서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철도에 대한 이런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당사자들에겐 하나도 재미없겠지마는...). 가능성은 적겠지만 서사하라가 모로코로부터 독립하게 된다면 또다른 분쟁의 씨앗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말 그대로 유럽이 아프리카에 벌인 멍청한 짓 때문에 독립해서도 고통받는 상황의 대표적인 예일지도...
영토 주체가 제대로 잡히면 백프로 이야기가 나올 사안입니다. 사실상 무단점거나 진배없는 꼴이라...; 수틀리면 아예 터널을 부활시킬 수도 있죠. 이거 하나도 이렇게 골치인데 이런 잠재적 분쟁요소가 아프리카 전역에 널린 걸 생각해 보면 진짜 유럽이 아프리카에 한 짓은 엄청나죠. 물론 안 좋은 의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