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을 때 사용하는 두 가지 물건. 하나는 숟가락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의 자랑 젓가락입니다. 줄여서 ‘수저’.
그런데 생긴 모양이 이상합니다. ‘수’와 ‘저’에 ‘가락’이 붙어서 만들어진 단어라는 건 쉽게 알겠는데, 왜 수 밑에는 디귿이 붙어있고, 저 밑에는 시옷이 붙어 있을까요? [수까락], [저까락]. 발음은 똑같은데 뭐죠? 맞춤법 사정할 때, 위원들이 잠깐 졸았었는지? 아니면 젓가락이 워낙 위대한 문물이기 때문에 숟가락과는 차별을 둬야 해서..?
숟가락의 탄생 사연은 맞춤법 사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관련된 한글맞춤법 관련 조항은 이렇습니다.
[제29항
끝소리가 ‘리을’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리을’ 소리가 ‘디귿’ 소리로 나는 것은 ‘디귿’으로 적는다.]
(아놔, 초성체 금지 미워요. 태가 안 남.)
리을..? 숟가락에 어디 리을이...? ‘한 술 밥에 배 부르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숟가락의 가락을 제외한 부분은 ‘수’가 아니라 ‘술’이라는 것. 29항에는 ‘숟가락’ 이외에도 ‘반짇고리, 사흗날, 삼짇날’ 등의 예가 적혀 있습니다. ‘반짇’은 ‘바느질’에서, ‘사흗’은 ‘사흘’에서, ‘삼짇’은 조금 어려운데, ‘삼일(三日)’에서 온 것입니다.
오케이, 알겠어요. 그러면 단독으로 쓰일 때는 리을 받침이던 게, 다른 단어랑 합쳐졌을 때 받침 디귿으로 소리나거나 뒤에 나오는 소리를 경음화 시키면 디귿을 쓰면 되네요. 그런데, [수까락]의 [수]는 ‘술’로부터 왔으니까 디귿을 쓰지만, [저까락]의 [저]는 ‘절’로부터 온 게 아니니까 제 1항을 따라서 발음나는대로 쓰면 되는 거군요!!
아니, 잠깐.. 그렇게 어물쩡 넘어가려하지 말고. 왜 발음이 [술까락]이 아니라 [수까락]이 된 건데요..? 리을은 어디갔어요?
발가락을 받까락이라고 안 하잖아요. 물개는 묻개인가염.
바늘+질, 사흘+날, 솔+나무에서 리을이 사라진 건 저도 알겠거든요? 니은, 디귿, 지읒 앞에 있는 받침 리을이니까 사라지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아드님, 다달이, 싸전처럼.. 근데 [수까락]은 니은, 리을은커녕 시옷, 지읒도 없는데요? 왜 리을이 없어졌습니까? 거짓말하지 마시죠.
예전에는, 그러니까 세종대왕님 살아계실 때, 그 무렵에는 단어 두 개를 연결하려면 꼭 시옷을 중간에 집어넣었어야 했습니다. 네,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사이시옷’이란 건데, 그 당시에는 솔+시옷+방울 = 솘방울, 술+시옷+가락 = 숤가락, 이렇게 만들어진 단어였습니다.
자, 이렇게 보니까 리을이 시옷 앞에 오게 되네요..? 그러면 리을은 그 모습을 감출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숤가락 -> 숫가락 이 됩니다. 시대를 지나오면서 발음은 [수까락]이 되었고, ‘술’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상하게] 리을이 없는 숫가락은 ‘숟가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이시옷은 요즘 맞춤법에서 다 표기를 합니다. 귀+시옷+밥 -> 귓밥, 선지+시옷+국 -> 선짓국 등등. 이 단어들은 다행히도 단어 끝에 리을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모습 그대로 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라에 불어닥친 영어 열풍 때문에, 영어 단어 암기를 위한 여러 가지 좋은 방법들이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고급 영어 단어를 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방법 중 하나는 접두사의 어원을 통해 해당 단어의 대략적인 뜻을 유추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외국인으로서 단어를 공부하다보니 스펠링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영어에 대해서는 일종의 어원 의식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이렇게 이렇게 나누어 지니까, 대략 이런 뜻이겠네’ ‘impossible, inappropriate, irrespective... 음 불가능을 뜻하는 접두사는 i[m, n, r]이구나.’
그런데 한국어는 너무 자연스럽게 쓰는 우리말이다 보니 단어를 찬찬히 뜯어보면 발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현상들을 자기도 모르게 지나치게 됩니다. 그런데... 한국어 단어도 열심히 살펴보면 참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