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해외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는 지에 대한 의식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어떠한 사회, 심리학적 배경을 통해서 발현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외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태도가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질문이 아마도 "두 유 노우 강남스타일?"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은 이에 대한 지적들도 많이 나와서 반성하고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이 된 것 같은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해외에서 누가 방한을 하면 그가 가순지 배운지를 가리지 않고 항상 "두 유 노우 싸이?", "두 유 노우 강남스타일?"을 부르짖었던 거사 같습니다. 이러한 질문들의 자매품으로 "두 유 노의 킴치?"와 이제는 한 풀 꺾였지만 "두 유 노우 지성팍?"과 "두 유 노우 유나킴?"도 있었지요. 오죽 했으면 아래와 같은 티셔츠가 우스갯소리로라도 나왔겠습니까?
뉘에~! 뉘에~! 다 압니다요~!
그런데 80년대 중반 이러한 모든 것의 원조 격이라고 할 만한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80년대는 지금과는 달리 가요보다 팝송이 더 인기가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라디오에서도 팝송을 더 많이 틀어주던 시대였지요. (사실 그런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저는 요즘 해외 친구들의 K-Pop사랑이 어리둥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해외 팝스타들 가운데 캥거루를 아주 싫어하는 나라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3인조 밴드 Joy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경쾌한 댄스곡인 [Touch By Touch]라는 곡으로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등장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Joy...
기실 Joy라는 밴드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밴드는 결코 아니었고 유럽에서도 겨우 이름이나 좀 알린 정도의 밴드였습니다. 요즘 같았으면 아마 국내에서 그만한 인기를 얻을 정도의 밴드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도 그땐 한국에서 Joy의 인기는 남부럽지 않을 정도였지요. 이들이 한국으로 프로모션을 올 즈음해서 [Touch By Touch]가 수록된 앨범의 후속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때 이 새로운 앨범에 놀란 만한(?) 곡이 하나 수록이 됩니다.
그 노래의 제목은 다름 아닌 [Korean Girls]였습니다. 제목 그대로 [한국 소녀들]이었지요. 지금처럼 K-팝이 나름 큰 인기를 끌던 시기도 아니고 삼성이 소니를 누르고 전자제품계의 왕자로 등극하던 시기도 아니었던, 한국이라고 하면 외국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던 시기에 그래도 (우리가 보기에는(!)) 제법 인기가 있는 해외 밴드가 한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를 만들어서 자신들의 앨범에 실었다?...큰 사건이었습니다. 기왕이면 팝의 본고장에서 빌보드 차트를 휩쓰는 미국의 밴드가 그런 노래를 불러줬더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것까지는 언강생심 바라지도 않았고 아무튼 오스트리아도 잘은 모르겠지만 느낌상 나름(?) 유럽의 선진국 아니겠습니까? 한국 팬들의 큰 사랑에 보답하고자 Joy가 한국 팬들을 위해 특별히 만든 노래라는 것이 당시에 알려진 이 노래의 배경이었습니다. 노래 하나에 괜히 대한민국의 국력이 인정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상상이었을까요? “국가의 위신 = 나의 위신”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 시절, 저 역시 왠지 모르게 뿌듯해 했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음을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Korean Girls]는 국내에 전파를 타기 시작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라디오를 틀면 나오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노래가 나온 지 채 한 달도 안됐나 싶은 시점에서 갑자기 한국에서 이 노래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하루아침에 라디오에서 더 이상 이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연인즉슨, 원래 Joy가 후속 앨범에 실었던 원곡은 [Japanese Girls]라는 노래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지만 음악시장의 크기는 한국이 일본에 비할 바가 못 되고, 중국은 아직 그렇게 해외 음악에 대한 문호가 활짝 열려있지 않던 시기였기에 Joy 입장에서는 [Japanese Girls]는 당연히 일본 시장을 노리고 또 그런 계산 하에 충분히 앨범에 넣을 수 있는 곡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일본 가는 길에 한국에도 프로모션 투어를 오려다 보니 한국에서 그 노래를 부를 순 없으니까 급하게 제목과 가사에서 "Japanese"라는 부분을 "Korean"으로 바꾸고 다시 녹음한 노래가 바로 문제의 [Korean Girls]라는 노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고 나자 더 이상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 전파를 탈 수 없었습니다. 노래 도입부에 "안녕하세요? 한국 아가씨?"하고 친절하게 한국어 가사를 집어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많고 많은 나라들 가운데 하필이면 일본이라니. 2010년대도 아니고 80년대에 말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안기는 사건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아예 노래를 안 만들었으면 모를까 원래 일본을 대상으로 만든 노래를 가사와 제목만 바꿔서 한국 팬들을 위한 노래인 것처럼 소개를 했으니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지요. 이 일 때문이었는지 Joy의 인기도 이후 곧 시들해져 버렸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해외에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정과 해외 밴드가 한국을 소재로 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그 뿌듯함이 불러온 한편의 희비극이자 해프닝이었습니다. 그래도 노래 자체는 그렇게 나쁘진 않았는데...이제는 아무리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신청을 해도 들을 수 없는 노래가 되고 말았습니다...--;;;...혹시 모르겠습니다...철수 형님께서 틀어주실지...신청이나 한번 해 볼까요?...--;;;
문제의 노래...[Korean Gir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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