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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3/08/12 22:08:33 |
Name |
aura |
Subject |
[일반] <단편> 카페, 그녀 -1 (연애하고 싶으시죠?) |
안녕하세요. aura입니다. 디링디링을 마치고, 다른 신작으로 찾아뵙게 되었네요.
이번에도 조금 모자랄 수 있는 글이겠지만, 전 작과 마찬가지로 한 분이라도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이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그럼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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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내 기분은 최악이다. 왜 최악이냐고? 차였으니까! 아주 뻥!
“미안해.”
차라리 변명이라도 해줘. 그럼 그냥 그렇구나, 그래서 헤어지자는 거구나 하고 스스로 받아들였을 텐데. 하지만 나의 소박한 바람들은 언제나 반대로 어긋난다. 야속하게도 여자친구의 입에서는 단 한마디 변명도 나오지 않는다.
단지 헤어지자, 미안하다 그것뿐이다. 깔끔하다 못해 결벽적인 이별이 나를 더 비참하고 괴롭게 만든다. 헤어지는 데 그 어떤 이유도, 변명도
없다는 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어떻게 해도 그녀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뜻이니까.
왜? 내가 뭘 잘못했어? 말해봐.
“괜찮아. 이걸로 마지막이네. 잘 가.”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대답한다. 붙잡아도 붙잡을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알아버려서일까. 미련 없이 작별인사를 하고 뒤돌아선다. 지금 그녀 눈에 비치는 내 뒷모습은 어떨까?
한 번도 붙잡지 않고 돌아서는 모습이 쿨해 보일까? 안쓰러워 보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이미 반대로 돌아서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생각이야 어찌되었건, 지금 내 기분은 최악이다.
이 일이 어느새 9개월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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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응?”
갑자기 어깨를 치며, 주의를 깨우는 하이톤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다,
“제 말 안 듣고 또 다른 생각하고 있었죠?”
“아 뭐 말했어?”
정곡을 찌르는 말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능청스럽게 상황을 모면하려 시도한다.
“요새 왜 이리 생각이 많아요? 아 진짜! 안 그래도 지금 과제 때문에 머리 아픈데.”
그러나, 지연주, 그러니까 내 앞에 있는 이 당찬 여자 후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녀는 어딜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 가려고 하냐는 듯, 이마에 손을 얹고 도리질하며 퇴로를 봉쇄한다.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안 먹히겠지?
“예? 옛날 생각이요? 하필 지금 과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요?”
역시! 얘는 진짜 어디 갔다 놔도 억울해서 죽을 일은 없겠다.
“미안! 다시 집중할게.”
“예? 맨 입으로요 선배? 제가 한 두 번이면 넘어가는데, 아아 이번이 몇 번째더라.”
세 번째야 임마!
연주는 동그란 눈을 가늘게 바꿔 뜨고서 내 지갑을 툭툭 압박해온다. 허허 녀석. 어디 가도 굶어 죽진 않겠어.
“알았어! 내가 미안하니까, 커피 산다.”
결국 백기를 들어버린다. 지연주 진짜 치사한 녀석. 후배가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되겠냐. 하지만 잘못의 원인은 나에게 있는 바, 어쩔 수 없다.
“그래요? 그럼 다시 한 번 알려줄 테니까 잘 들어요?”
커피 산다는 말에 연주의 도끼눈이 금세 동그랗게 돌아온다. 참 저 둥그런 눈만 보면 귀여운데 말이야. 속은 아주 오래 묵은 능구렁이 같단 말이지.
“넵.”
꿍시렁대는 내 속과 달리 입은 능구렁이님의 하해와 같은 은총에 굴복한다.
“그러니까, ABC(activity based cost)에 대한 사례를 조사해야하는 데...”
연주는 똑 부러진 입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할당해준다. 하긴, 선배랍시고 다른 과목 때문에 후배한테 이런 도움을 받고 있으니 커피쯤 사는 거야 당연하지 싶다. 이렇게 생각하니 왠지 속이 덜 쓰린 느낌이다. 사실은 정신승리일 뿐이겠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다 들었죠?”
어째 저 능글능글한 눈을 보니 못 들었길 바라는 느낌이다. 설마, 밥이라도 뜯어낼 참이냐.
“응. 확실히 다 들었어.”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정신 팔지 않고 다 들었다. 이 이상의 타격은 허락할 수 없지.
“그럼 다행이네요.”
저거 분명 아쉬워하고 있다. 나는 녀석의 표정을 읽으며,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이 능구렁이 같은 녀석. 분명히 이번에도 정신 팔았으면, 커피 이상의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휴 어쨌든 이대로만 하면 되는 거지?”
대충 과제 할당이 끝난 것 같아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들었다.
“뭐 수업이에요?”
“응. 교양과목.”
“어디서 듣는데요?”
그러니까 어디더라?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시간표 어플을 살폈다.
“공대 2건물. 304호네.”
“에이. 선배! 벌써 학기 시작한지 한 달 되어가는데 어디서 수업 듣는지도 못 외웠어요?”
“그야 시간표 어플께서 은혜를 베푸시니까.”
귀찮게 외울 필요도 없고, 어차피 어디 건물 몇 호인지는 몰라도 위치는 알고 있으니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내 말에 연주는 피식 웃더니 자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헐, 설마 이거 지금 수업인데도 커피 사달라는 거? 야이 매정한 후배야!
“그렇게 기억력이 안 좋아서야... 선배 길 잃어버릴까봐 안되겠는데요? 어차피 저 지금 학교 내려 갈 건데 같이 가요.”
미안하다. 이 못난 선배가 오해를 했구나. 나는 밀려드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무슨 치매도 아니고, 길 잃어버리겠냐.”
“에이 언제라도 치매가 와도 이상한 나이가 아니죠! 벌써 25살이라고요. 선배.”
“네네.”
우리는 서로의 장난에 킥킥대며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선배.”
“응?”
“선배는 여자 친구 안 사귀어요?”
뭐? 나는 녀석의 기습 공격에 하마터면 다리가 꼬여 넘어질 뻔했다. 아니 얘가 또 뭘 하려고 갑자기 이러지?
“헤어진 지 꽤 오래된 걸로 아는데, 벌써 1년 가까이 됐죠?”
“뭐 그런 것 같네. 근데 그건 왜?”
정확히 1년은 아니고 9개월 쯤 이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이 소리를 들으니 속이 쓰리다. 애써 생각해봐야 좋을 게 없다. 나는 고개를 휙휙 저으며, 달라붙는 기분 나쁜 것들을 떨쳐냈다.
“그냥요. 나 모르는 사이에 또 여자 친구 생겼나 해서요. 요새 들어 자주 멍 때리는 게 여자 문젠가 싶기도 하고.”
“미안. 앞으로는 진짜 안 멍 때릴게. 뭐 그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내 대답에 연주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갑자기 멈춰서는 녀석을 따라 내 발걸음도 멈춘다.
“왜?”
무슨 문제가 있나?
“아뇨. 그냥요. 이러다가 선배 총각 귀신 될 까봐서요! 빨리 예쁜 여자 친구 사귀시라고요. 전 가볼게요!”
제 할만 해버리고 녀석은 자리를 쏙 내빼버린다.
“야!”
아무리 그래도 총각 귀신은 아니다.
“나 총각 아니거든?”
그러니까 총각 귀신이 될 염려는 없단 말씀.
나는 멀어지는 연주의 모습을 보며, 외치려던 말을 목구멍으로 꾹 삼키며,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터뜨린다.
“아... 벌써 도착했었구나?”
난 또 왜 갑자기 멈춰서나 했네. 나는 어느새 도착한 공대 2건물로 몸을 돌렸다.
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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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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