習作(습작)
시, 소설, 그림 따위의 작법이나 기법을 익히기 위하여 연습 삼아 짓거나 그려 봄. 또는 그런 작품.
이상하게도 그 날은 날짜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날은 내가 좋아하는 축구 경기가 있던 날이었고, 난 학원에 가느라 그 축구 경기를 보지 못해서 굉장히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
그리고 그 아이 생일이기도 했고.
그 아이 생일을 딱히 외우려고 하거나 한 건 아니었다. 언제나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건 그 아이였고, 그런 내가 그 아이 생일에 갑자기 ‘생일 축하해’하면서 선물을 건낼 확률은 위연이 자오곡으로 내달려 장안, 낙양을 함락시키고 허도의 흙을 주군의 봉토에 뿌릴 확률에 가까웠다. 의례 중학교 교실에서는 교실 뒤가 허전하지 않게 뭔가를 꾸며놓는데, 주로 학생들의 꿈을 적어놓거나 멋진 그림을 걸어놓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게 우리 반의 경우 반 아이들의 생일을 하나하나 적어서 붙여놓은 것이었고. 공교롭게도 그 아이 생일의 월과 일을 바꾸면 또 나에게 의미있는 날짜가 되기에 더더욱 머리 속에 박혔던 것 같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고등학교를 상당히 먼 곳으로 가게 되었다. 중학교 때 그닥 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아이들이 많았기에 그 아이들과 연을 끊게 된 것을 굉장히 잘된 일로 여겼지만, 친한 몇몇은 물론 여러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그 아이와는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한가롭게 인터넷 메신저나 붙잡고 있기는 어려웠고, 자연스럽게 연락은 끊겼다. 사는 곳도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였기에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 내 생활 패턴에서 그 아이를 볼 확률은 없었다. 그러나 예외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주말에 학원에 갈 때였다. 학원은 그 아이가 사는 동네 근처에 있었고 그게 내가 집과 집 앞 슈퍼 그리고 학교 외에 가는 유일한 곳이었다.
중학교는 이미 졸업했고, 다들 공부하기 바쁜 마당에 이제 와서 새삼스레 따로 만나고 어쩌고 할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심지어 내가 아무 생각없이 거절한 일들도 있었다.) 다만 한번쯤 어떻게 살고 있나 스쳐 지나가면서 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언제나 그래왔듯 난 그 아이와 마주치더라도 먼저 입도 뻥긋 안 할 것이었고, 그 아이는 나에게 먼저 인사해주는 몇몇 드문 여자아이들 중 하나였으므로 ‘어, OOO다. 안녕’ 내지 ‘OO아 안녕’ 정도의 인사를 건낼 것이었고 그 정도면 족했다.
학원에 가는 방법은 2가지가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방법과 육교를 건너는 방법.
횡단보도를 건널 경우 최단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초록불이 아닐 경우 바로 건너지 못해 시간 손실이 발생하고 차에 치여서 죽을 가능성이 육교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육교를 건너는 경우 조금은 길을 돌아가더라도 기다리는 일 없이, 차들이 씽씽 달리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길을 육교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안전히 건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으므로 내가 육교를 건너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는 아니고 (...)
이런 저런 현실적인 이유를 제하고도 육교를 이용할 경우 조금은 돌아가지만 그 아이가 사는 곳과 가장 가까이 ‘인위적이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육교를 넘어서 더 길을 가는 것은 목적지 없는, 굉장히 인위적인 행위였고 그런 식으로는 싫었다. 또 한편으로는 혹시 만나게 되더라도 그 우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불인 경우에는 그냥 횡단보도를 건넜다.
물론 내가 육교를 이용한다고 해서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의 생활이라는 것이 대개 확실한 패턴이 정해져 있고, 그 패턴을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내가 몇 개월 동안 육교를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와 한번도 마주치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마주치지 않을 확률이 100%에 수렴하는 것 같았다.
그 날 횡단보도의 신호는 빨간 빛을 띠고 있었고, 난 생각 없이 육교로 향했다. 그렇게 육교를 건너 축구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궁금해하면서 계단을 내려가던 중 먼저 내려가던 할머니께서 들고 계시던 봉지를 떨어뜨렸고, 무슨 물건인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물건들이 전부 쏟아져 내려버렸다.
나는 절대 학원에 지각해 매를 맞을 조금의 확률을 감수하면서 길 가다 만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울 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왜인지 계단을 다 내려가 쭈그려 앉아 주섬주섬 물건을 주워드렸다. 그리고 그 때, 그냥 이상한 느낌이라고 해두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등 뒤를 돌아봤다.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계단 위를 올려다 봤을 때.
그렇다. 계단 위를 올라가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난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말을 걸 불가피한 사정이 생기면 가서 머리를 검지, 중지, 약지를 모아 톡 치거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면서 ‘야’라고 부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호칭을 생략하고 내 할 말을 해버렸다. 그 때도 잠깐 불러볼까 생각을 했지만 그만뒀다. 그 상황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야'라고 부르는 방법은 적절치 않아보였으며, 사실 굳이 그 아이를 불러세울 필요는 없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 이후로는 학원에 지각할 위기에 처하지 않는 한 육교로 가지 않았다. 그 날의 기억이 마지막으로 남는게 왠지 괜찮아보였다. 오히려 그 날부터는 반대로 물리적으로 마주침이 불가능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기도 했다.
얼마 전 다시 만나보고 싶냐고, 또 만나면 어떨 것 같냐는 글이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안 보는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지만,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딱 그 목적으로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으로 지인의 근황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더라.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니지만 건너건너 어쩌다 링크가 보여 최근에 그 아이가 여전히 생존해있음을 확인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필요하다고 믿는데, 그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난 그 날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애 처음으로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봤다.
한자로는 유성이라고도 하더라.
뱀다리)
그냥 정말 아무 의미 없이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자유게시판이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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