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하다 보면 좀처럼 보기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세상 천지에 널린 거 같은데 인터넷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람들. 돈을 갚지 않는 사람들 입니다. 돈 빌려주고 떼먹힌 사람들은 많아도 돈을 갚지 않았다는 사람은 가뭄에 콩보다도 보기 힘듭니다. 또 조별과제의 트롤들도 보기 힘듭니다. 조별과제 관련 글이 올라오면 수많은 빌런들에게 당한 사례만 올라옵니다. 빌런들은 볼 수 없죠.
당연하긴 합니다. 본인이 돈을 떼먹고 조별과제에서 무임승차를 한 이야기를 인터넷에 적으면 욕을 먹으니까요. 한 치의 염치라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터넷에서 그들을 볼 수 없습니다. 단 한 명도 인터넷을 하지 않을 리 없고, 그저 조용히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겠죠. 다른 사례들을 보면서 '멍청한 놈들. 니들이 그래서 당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욕 먹을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인터넷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들어도 명절이 오면 볼 거 같은데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사람들이 드글드글 대죠.(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반대의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잘못은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걸까요? 명절에 화목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며느리 친정 간다는 데 눈치 주는 시어머니,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라는 할아버지, 재산은 남녀 차별 말아야지 하면서 받아먹고 제사나 벌초 같은 일들은 나몰라라 하는 고모와 이모들, 간섭만 하는 친척들. 안나 카레니나 소설에 나온 대목처럼 정말 다양하게 화목하지 않은 가정을 우리는 보기 쉽습니다. 특히나 명절이 되면 그렇습니다. 어김없이 조상 덕 봐서 해외여행 가는 짤과 제 입장에선 그냥 밥 한 공기랑 국 한 그릇만 더 올리면 되는 데 굳이 한 상 더 중복되게 음식을 올렸나 싶은 제삿상의 글들이 올라오며 댓글엔
저런 사연들 뿐입니다.
어디에 있을까요 잘 지내고 집안 사람들은. 과연 없는 걸까요? 화목하게 지는 가족들은. 제사에 있어서 어느 한 쪽만 부담을 지지 않게 합의를 하고, 친척이 모여서 무작위로 팀을 나눠서 윷놀이를 하는 집안,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을인 추석엔 꽃구경을 가는 가족, 설엔 추우니 열식구 넘게 시끌벅적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 명절 속 풍경을 닮은 TV에서도 보고 바깥 돌아다니다 보면 보는 거 같은데 인터넷에선 보기가 힘듭니다. 태반이 불화 이야기 입니다.
이런 식으로 입을 털었으니 그럼 너네는 어떠냐고 따지실 수 있겠죠. 저희 집안은 잘 지내는 편입니다. 100% 아무 불화 없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있죠. 알게 모르게 각자가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엔 가족 다 같이 큰아버지 칠순 케익을 잘랐습니다. 사촌누나들은 가족앨범을 준비해 각 집에 나눠주었습니다. 자리에 없는 고모네들 것도요. 올 초 집안에 가장 중요했던 작은 거목이 쓰러진 이후 설날은 이도저도 아니게 지나가게 되었는데 버스까지 대절했었던 49제를 지나 추석엔 다시 모였습니다. 다음주엔 저희 아버지 환갑이라 같이 식사를 할 예정입니다. 정말 조촐하게 저희 집 식구들만 할 수도 있었는데 전체 가족이 모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다들 가족이 모일 이유를 찾고 있고, 이유를 찾은 사람에겐 고마워하고 그렇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 글은 좀처럼 인터넷에선 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명절에 재산 때문에 싸우고 다신 작은 집 안 본다는 댓글에, 제사 때문에 아버지와 대판 싸웠다는 댓글에,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더이상 큰집 안가서 여행이나 간다는 댓글에 눈치없이(?)
'우리 집은 이번 추석에 노래대회 열어서 둘째 작은 어머니랑 큰 집 막내 듀오가 1등했어요'라는 자랑인 듯 자랑 아닌 듯한 댓글은 못 다셨겠죠. 그래서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지났지만 이번 추석에 가족끼리 좋았던 얘기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
본문은 끝나고 후일담같이 적으면 예전부터 생각을 했었던 주제였습니다.
사실 작년에 생각했을 당시는 좀 직설적이고 욕 먹을만한 제목이었죠.
'그냥 님네 집안이 콩가루인거지 명절 탓은 아닌 거 같은데....'
제사가 안지냈다면, 굳이 명절에 가족끼리 안 모였다면 그 집안이 화목했을 것이다.
100%는 아닌 거 같아서요.
잘 지내는 집안은 제사를 지내든 기도를 드리든 이번 명절엔 어디 집이 해외여행을 가서 빠지든 잘 지내지 않았을까요?
제사를 지냈던 집이라는 가정하에(안 지내는 기독교 집안이라든가 있으니까요) 제사라도 해야 가족이 모이는 게 아니라
모이는 가족의 모이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사나 차례 아니면 안 본다는 건 남이라는 얘기니까요.
이미 그 전에 관계가 깨진거겠지요.
명절은 죄가 없습니다. 사람이 죄지요.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거고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거고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이 앾아빠지게 행동하고
그래서 그 많은 명절날 불화스토리가 있는 거겠지요.
ps. (엑시트 스포 주의)
이번에 개봉한 영화 엑시트가 화목하게 지내는 가족의 예시입니다.
그 안을 자세히 파고들면 감독이 설정을 안해서 없겠지만, 조금의 투닥거림은 있더라도 그렇게 지내는 거지요.
화목하지 않은 댓글의 가족들이었다면 영화의 감동은 덜 했을거라 봅니다.
사촌들끼리 모여서하는 대화 장면, 화목하지 않은 가족이라면 불쾌한 긴장감(?)과 재난 후 트롤의 예고였겠지만
화목한 가족으로 설정되었기에 그냥 웃고 넘어가며 재난 후 서로 걱정하며 협력의 연속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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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에서는 조정석이 처한 상황을 최대한 극대화해서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괜찮은데 취직해서 여유있는 상황이면 '요즈음 뭐해'에 스트레스 받지도 않고(요것도 사족인데 자주보면 요즈음 뭐해랑 질문을 안하겠지만 오랜만에 봤을 땐 가장 떠오르는 질문입니다 . 저도 많이 들어봐서 정말 혼자 스트레스 받는 질문이어서 안해야지 생각해도 오랜만에 보면 말할거리가 없어 하게 되더라구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남은 음식, 술 싸가는 거에 대해 그렇게 짜증을 내진 않았겠죠(요 대목도 조정석이 처한 상황에 빗대어 가족들이 조정석 말을 잘 안듣는 걸 표현한게 아닐지)
가족 모여서 뭘 하는 게 피곤하긴 한데 나이 들수록 소중해지더군요. 어린아이때는 노래방노래방 어른들 앞에서 노래불렀는데 좀 크니 방에 짱박히거나 나가 돌아다녔는데 요새는 다시 뭘 하려는 방향이 되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다른 친척들 손님들에게 인사하기 싫은 것도, 메인무대(?) 나가서 노래나 춤추기 싫어했던 걱도 조정석이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아직도 취준생이란 상황 때문에 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머니 업는 것도 매형들에게 밀리지 않았겠죠. 자신감이 있었으면. 저도 경험이 있기에..... (저희 가족 생각해보니 대학 어떠니, 취직 언제하니, 결혼은 안하니 하는 질문 안했습니다. 참 서로서로 고마울 거예요. 묻지 않아줘서)
본문에도 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아래 범위에도 시끌한 일이 있는데 집안 범위가 더 커지면 묻혀있는 폭탄도 있죠. 그래도 어떻하든 붙잡으려는 거 같습니다. 외가는 더 많이 뭉치려고 해도 늦은 느낌입니다. 언제 삼촌이 돈 줄테니까 너희끼리(조카들) 꾸준히 만나라 얘기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