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가까이 혼자 살아오며 깨닫게 된 사실들이 몇 있다. 이를테면 초파리는 자연발생한다거나, 책과 옷이란 유성생식을 통해 그들의 자손을 늘려간다거나 하는 사실들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내 방 안을 가득 채운 옷과 책과 그 위로 날아다니는 초파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과학적인 이론이란 없다. 분명 최근 두어달 간 옷을 산 기억도, 책을 산 기억도, 과일을 사먹은 기억도 없음에도.
홀로 15년 정도를 살다 보면 초파리 자연발생론이나 의류/서적 유성생식론 등의 우주를 관통하는 과학적 진리 뿐 아니라, 사소하지만 중요한 인생의 통찰을 깨닫기도 한다. 이를테면, 최고의 끼니 요리는 샌드위치다. 싸고 보존성 좋은 단백질(햄), 탄수화물(빵), 섬유질(양상추 혹은 기타 집 근처 마트에서 할인 판매중인 풀떼기), 향신료(케첩, 마요네즈, 허니머스터드 등)로부터 당신은 5분만에 한 끼 식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가스레인지는 커녕 전자레인지의 전원을 켤 필요도 없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예열한 뒤에 마침내 계란을 까 넣고 뒤적거린 당신은 5분만에 겨우 계란 후라이 하나를 건지고 기름을 뒤집어쓴 후라이팬과 뒤집개와 접시를 설거지하고 계란 껍질을 치우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지만, 샌드위치는 완전무결하다. 도마, 칼, 접시 하나면 충분하다. 기름을 닦아낼 필요도,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열 필요도 없다. 결정적으로, 계란 후라이 하나는 끼니가 되지 않지만 햄 샌드위치는 적절한 영양 밸런스를 가진 한 끼가 되어준다. 굳, 끼니는 제때 먹어야지.
그렇게 전날과 전전날처럼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출근해 일을 보고, 집에 들어 온 어느 날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소소한 것들이 꼬여 소소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있었기에, 기묘한 우울감을 맥주로 이겨내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를 열자마자, 5킬로 정도 되는, 정확히는 4.2킬로 정도 남은 햄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며칠 전, 동네 마트에서 햄을 할인해서 1킬로 짜리 다섯 개를 사둔 참이었다. 햄을 사들고 온 그 날은 뭐랄까 적장의 머리라도 잘라 가져오는 개선 장군이라도 된 기분이었는데, 냉장고에 쌓여 있는 햄을 보니 기분이 어딘가 갑갑해졌다. 맥주는 먹지 않기로 한다. 이런 날의 맥주 한 캔은 결코 맥주 한 캔으로 끝나지 않으며, 다음 날의 곤란을 보증하게 된다. 두어 달 전쯤 새로 깨닫게 된 인생의 진리다.
하지만 그냥 잠들기에는 속이 헛헛하니, 햄이나 씹기로 한다. 샌드위치를 해먹는 것 마저도 귀찮다. 대충 햄을 썰어 접시에 담고 케찹을 휘휘 뿌린다. 두어 번 씹어본 뒤에, 두어 달 전쯤 깨달은 인생의 진리를 의심해보기로 한다. 진리란 무수한 의심과 반증과 실험을 통해 검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맥주를 꺼낸다. 맥주는 맛있고, 햄은 그렇지 않다. 햄 자체에 본질적인 하자가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햄을 좋아하는 편이니까. 하자는 대충 끼니를 때우기 위해 대량으로 구매한 햄이라는 맥락 속에 존재할 것이다. 아, 도시의 삶이란. 하루를 버티기 위해 햄 샌드위치나 씹어야 하는 그런 삶이란 역시 뭔가 낭만적이지 못하다. 뭔가 그럴싸한 이름이 붙은 요리를 앞에 두고, 재즈를 들으며, 와인을 홀짝이는, 그런 멋진 삶도 있을 텐데. 싸구려 햄이나 씹어먹으며 이십 년 전에 나온 대중음악 앨범을 들으며 편의점 맥주를 마시는 삶이라. 조금 너무 싸구려의 느낌인데. 잠깐 그런데, 햄이 언제부터 싸구려 음식이었더라.
하는 생각으로부터 어린 시절의 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역시 맥주의 부작용일 것이다. 맥주는 한 캔으로 끝나지 않고 내일을 망치고 말겠지.
어린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집에 자주 놀러 오던 동네 친구가 있었다. 가족끼리도 친했던 것 같다. 내 인생 첫 야구 관람의 추억은 그 집안과 함께 했던 것이었으니. 국민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이었거나 국민학교 저학년 때 즈음이었으며,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로 기억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그러했을 것이다. 내 고향의 최고 인기 팀은, 20세기에나 21세기에나, 타이거즈였으니까. 이건 다다음 단락에 이어질, 타이거즈가 우승하던 날에 대한 이야기가 확실하게 증명해준다. 아무튼 그 친구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고, 나도 그 친구네 집에 자주 놀러갔다.
그 친구는 어린 내 기억에 남을 정도로, 햄을 좋아했다. 마치 햄을 먹기 위해 우리 집에 오는 것 같을 정도로. 어느 날, 아무런 악의도 없이 나는 그에게 물었다. 너는 햄을 참 좋아하는구나. 그도 아무런 맥락 없이 대답했다. 응. 나는 니네 집이 부러워. 우리 엄마는 햄을 안 해줘.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 친구네 집에 갔을 때 햄 같은 걸 먹어 본 기억은 없었다. 아마도 그 시절, 햄은 꽤 비싼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가 장을 보진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역시 여러 가지 것들을 미루어 추정컨데, 그러하다. 19세기의 이야기가 아닌, 1990년대의 이야기다. 아, 90년대의 모든 곳에서 햄이 비싼 음식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도 웰빙과 슬로우 푸드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어디에선가는. 하지만 해태 타이거즈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내 고향 동네에서, 햄은 꽤 비싼 음식이었다. 이건 다음의 이야기로 확실하게 증명된다.
스물 몇, 다른 동네 친구 녀석이 입대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베스트 프렌드 중 하나였다. 그가 입대하던 날, 나는 그의 입대를 배웅하러 새벽부터 그의 집에 찾아갔다. 입대를 배웅할 친구는 나 뿐이었다. 그의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동네 친구들은 대체로 바쁘거나, 군대에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굉장히 반가워하시며 아침상을 차려 주셨다. 대략 네 종류의 햄과, 김치와 김이 있었다. 외동 아들이 입대하는 날의 아침상이라는 건, 아마도 보통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정성을 들인 음식일 것이다. 그리고 밥상에는 네 종류의 햄과 김치와 김이 있었다. 맛있었다. 친구와 한 상을 먹고, 친구를 배웅했다. 그날 녀석의 어머니는 엄청나게 우셨고, 나도 좀 울었지만, 녀석은 안 울었다. 그 녀석은, 내가 아는 녀석 중 제일 강고한 녀석이었으니. 이는 21세기의 일이다. 대충 15년 전, 한일 월드컵과 아테네 올림픽 사이 언젠가의 이야기. 그때까지도 햄은 그럭저럭 비싼 음식이었다. 적어도 그 시절의 우리 동네의 어느 가정에서는.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비로소 우리 동네 최고 인기 팀 타이거즈가 우승하는 광경을 피씨방에서 목도한다. 당시 나는 동네 피씨방에서 햄 샌드위치를 씹으며 창 모드로 와우를 하며 다른 창 모드로 야구를 보고 있었다. 햄 샌드위치는 그 피씨방에서 팔던 음식 중에 제일 싼 음식이었다. 별안간 저 앞에서 괴성이 들렸다. 그리고 옆자리의 사람이 와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화면에서는 아직 나지완이 조용히 타석에 서 있었다. 이윽고 PC방에 들어찬 사람들의 80퍼센트 정도가 괴성을 지르며 만세를 부르는 상황이 되었으며, 내 화면 안의 채병용이 공을 뿌렸다. 따악. 나는 대한민국 독립의 순간을 상상했다. 대한 독립이 발표된 날 이랬겠구나. 젠장 하지만 어쩌지, 나는 SK와이번스의 팬인데. 대한 독립이 발표된 날 일제 앞잡이의 기분이 이랬으려나 하는 상상을 하며 나는 야구창을 닫고 알터랙 계곡을 내달리는 데 집중했다. 2009년 어느 가을, 서울 변두리 슬럼가의 피씨방이었다. 서울 변두리란 그런 곳이었다. 타이거즈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햄이 비싼 음식이었던, 내 고향.
서른 몇이 된 나는 서울의 변두리를 어떻게 벗어나, 하루를 버티기 위해 햄을 씹는다. 아, 내가 삶과 시간과 돈을 좀 덜 낭비하며 살아왔다면 좀 더 그럴싸한 음식을 먹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거면 되었다, 싶은 기분도 들고 그러하다. 햄은 싸지만 어쨌건 맛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내년 쯤에는 햄을 좀 덜 먹는 삶을 살도록 계획해봐야지. 맥주도 조금 덜 마시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