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아홉시부터 다음날 새벽 7시반까지. 장장 22시간 풀 근로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회의는 정말 16시간 반을 달려 새벽 6시반에 끝이 났으며,
그나마 오늘이 휴일이라는 것에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회의가 왜 그렇게 길어졌느냐면, 이른바 명분과 실리의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즉, 제품도 서비스도) 철학이 깃들어져있으며 그 철학을 어느 정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철학은 알겠고 근데 사실 매출(돈)이 중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다.
그거 하나 만으로, 정말 그거 하나 만으로 장장 16시간을 넘는 회의가 이어졌다.
(물론 각각 진영의 입장을 가다듬고 논리를 곧추세우는 작업을 위해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도합 6시간 정도 있었다.)
퀭한 눈으로 집에 돌아와 자고 일어나니 이미 오후 4시.
그간 여러날 홀짝홀짝 작은 잔으로 한잔 씩 마셨더니 벌써 바닥이 잘랑잘랑 해진 글**딕 위스키가 눈에 아른거렸다.
아.. 지금 따면.. 아아 안주가 없어...
타오위안 공항도 아닌 쥐콩만한 송산공항 면세점에서, 비행기 문닫기 10분 전 부랴부랴 남은 대만달러를 탈탈 털어서 산,
우리나라 돈으로 5만원도 채 안하던 글**픽 엑스페리먼트2 위스키였는데,
근 2주일 넘게 매일 밤을 함께 해오다보니, 그 정이 누워있는 내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정 중에 무서운 정이 바로 X정이라더니..
몸을 일으켜 이빨만 닦아냈다. 세수따위 어차피 머리 안감으면 똑같은 거지새끼다.
마트로 차를 몰았다. 가성비로 유명하다던 코**코 위스키를 사기 위함이었지.
더불어 안주 겸 저녁으로 먹을만한, 가격 대비 사이즈가 어마어마한 회를 사려고 했다.
코**코 술 코너에서 20만원인 코**코 커**드 XO를 집어들었다가 넣었다.
회의 결과가 나름 잘 나오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좋게 끝난것도 아니었다.
뭐 잘났다고 내가 이걸 먹을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현대카드도 없는 내 지갑을 후려쳤다.
6만 얼마인 코**코 커**드 12년 스카치 블렌디드 위스키를 들었다. 100ml 당 5,***원.
그리고 그 옆에는 글**딕 12년 싱글몰트 위스키가 있었지. 100ml 당 15,***원.
싱글몰트란 오직 맥아만을 이용하였기에, 맥아 외 당밀이라든가 옥수수라든가 여러가지를 섞은 블렌디드보다 당연히 비쌀 수 밖에 없으며 블라블라 갖가지 잡 지식이 헝클어진 머리를 훝고 넘어갔지만,
뭐가 대수냐 코**코 커**드 12년 위스키가 곧장 내 카트로 들어왔다.
그리고 코너를 돌아 맥주를 사려던 차,
년수가 적혀있지 않은 코**코 커**드 1.75L용량의 위스카가 무려 2만원대였다. 100ml 당 2***원
오, 어머니.
어차피 알콜빨, 병라벨에 큼지막히 적힌 80proof 가 내 눈을 유혹했고, 나는 바로 12년산을 집어들고 다시 매대 박스로 쳐박았고,
저렴한 뚱뚱이 위스키를 카트로 담았던 것이었다.
X바..
보안을 위해 꽁꽁 싸맨 병뚜껑을 따내어 첫 잔을 따라 마신 후, 내 머릿통을 후려친 생각이다.
이건 술이 아니다. 물이다. 술에 물을 탔다.
나**키는 구라쟁이가 아니었다.
저렴이 위스키는 그저 고도수로 뽑아낸 저렴이 원액에다가 물을 때려박았다는 것이 뻥이 아니었다.
첫 노트부터 단순한 알콜향이 글**딕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실험실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복합적인 풍미가 오래 입안을 메우지 못하고, 그저 입천장에다가만 나 알콜이얌마! 외치고 공허하게 사라질 뿐이었다.
그나마 "오크"숙성이라는 것을 애써 자격증으로 내세우려고 하는 듯,
그저 부끄러운 소심한 향이 아주 잠깐 스치울 뿐이었다.
X바.. 그 글***딕도 고작 5만원이었는데..
내가 원래대로 코**코 커**드 12년산을 집어들었으면 달랐을까?
남 몰래 소리 안나는 방구를 뀌고선 고상한 척 하려던 나는,
나조차도 예상못한 물컹한 기운을 엉덩이로 느낀 것처럼 쪼그라들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