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3년쯤 됐으려나.
이것저것 먹고 살길을 찾으려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통신선을 타설 하는 일을 해보게 되었다.
타설이 맞는 용어인지 모를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작업 지역은 집에서 무려 2시간 거리의 아파트 단지였다.
하는 일은, 통신선을 미리 잘라 아파트 꼭대기 층부터 통신 함을 통해 쑤셔 넣어 지하까지 잇는 것이었다.
거의 100m에 다다르는 선을 두서없이 막 쑤셔 넣다 보면, 단선이 될 정도로 선이 꺾여 버린다.
그래서 아파트에 들어서기 전에 밖에서 통신선을 8자로 꼬아 놓는 작업이 필수였다.
통신선이 물에 묻은 채 연결하면 하자가 생기기에 비가 내리면 일은 그대로 취소되었다.
그날의 하늘은 오전부터 잔뜩 찌푸린 얼굴로 부슬비를 뿌렸다.
아직 일이 취소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빗줄기가 굵어질 수도 있기에, 서둘러 8자로 통신선을 꼬기 시작했다.
이날 공치고 갈지도 모른다는 예상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예보에도 없던 비는 왜 오는 것이며, 채 손에 익지 않은 일을 서둘러야 하는 것도 짜증 나고,
취소된다면 다시 왕복 4시간 거리를 와야 하는 것도 짜증 났다.
진짜 이리저리 성질내며, 입으로는 시팔시팔 거리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흥얼거리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렸다. 여자 목소리였다.
그런데 음율도 박자도 제멋대로.... 정말 더럽게 제멋대로였다.
`아니 뭔 자신감이여? 밖에 다 들리게.`
주변을 힐끗 둘러보았지만 거리에 사람은 없는 게, 어느 집안에서 부르는 것 같았다.
이내 하던 작업을 서둘렀다.
여전히 짜증은 짜증을 부르며, 빗물 섞인 땀은 불쾌했고, 욕지기는 여전히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가느다란 흥얼거림은 내 신경을 미묘하게 긁기 시작했다.
부글거리던 내 울화통의 화살은, 죄 없는 흥얼거리는 사람을 향했다.
문득 하던 일을 멈춰 버리고는 소리를 찾아다녔다.
찾는다고 해서 뭐..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확인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는 곧, 3층의 어느 집 열린 창문 창틀에 턱을 괴고 흥얼거리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세상 엉망진창 음율을 노래하고 있었다.
박자도 여전히 엉망진창.
자신에 노래에 심취한 듯한 초점 흐린 눈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맞은편엔 다른 아파트가 있었으니.
그리고 나는 금세 깨달았다.
그녀는 지체장애가 있다는걸.
나도 모르게 그녀가 흥얼거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세상 가장 행복한 시간인 것 같았다.
그전까지 그렇게나 화나있던 내 마음은 어느샌가 가라앉아 있었다.
어찌 저리 행복해 보일 수가 있을까?
궁금했다.
뭐가 행복이길래.
의문이 들었다.
이런 비교 자체가 그녀에게 실례되는 일이긴 하지만...
나에게 지체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그녀보다 내가 행복하다 할 수 있을까.
그녀랑 나랑 비교했을 때 누가 더 행복한 것일까.
부슬비 속에서 그녀의 흥얼거림은 계속되었고,
그녀는 답을 내렸지만, 난 답을 내릴수 없었다.
잠시 후 작업을 마치기 위해, 그녀의 흥얼거림이 가늘어지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곧 비가 굵어져서 작업은 취소되었고, 작업 장비들을 비를 피할 곳으로 옮긴 후 집으로 갈 채비를 하였다.
집에 가는 차를 타기 전,
여전히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그녀의 흥얼거림은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