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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3/23 00:36:56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몽골과 고려의 첫만남 "차라리 사대 할테니 조공이라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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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형제맹약은 1224년 저고여 피살 사건으로 중단되기까지 해마다 이행되었다. 몽골은 화호맹약에 정한 바, 1년 1회보다 많은 사절을 보내 공물을 수탈하였고, 높은 품질의 공물을 요구하기도 했다.



예컨대 1221년 8월 8일에 몽골 사신 저고여 등 13인과 동진인 8인이 고려에 왔을 때, 이들은 고려가 제지했는데도 대관전에 밀고 들어와 황태제 옷치긴의 균지와 함꼐 공납할 품목과 수량을 제하였고, 이전에 가져간 공물들 중 저급품을 품에서 꺼내 대관전에 내던지면서 시위하였다.



…… 옷치긴의 몽골 유수정권은 여자 어린이, 한어를 읽고 말할 줄 아는 사람, 솜씨가 뛰어난 각종 장인을 바치도록 요구했으며, 고려는 그러한 요구를 반복해서 거절했다.



……맹약에 대한 고려와 몽골측 양측의 인식이 달랐던 점에 대하여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몽골국은 강동성을 공략할 때 고려가 식량을 보내고, 군사를 지원한 것과 국서교환을 통해 고려가 평화적인 절차로 몽골국에 복속한 것으로 간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그 해 9월부터 매년 세공을 요구하였고, 특히 1221년부터 과도한 세공을 요구하였다.

 

반면 고려 측은 신흥 대국이 몽골을 상국으로 받들고, 매년 공물을 바칠 것을 약속했지만, 피복속국의 현실을 수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고려는 맹약을 맺을 당시 몽골 원수에게 "해마다 공물을 보내기를 청하고" 몽골 측이 원하더라도 고려가 원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고, 몽골과 절충하기로 했다.

 

이규보가 지은 몽골 칸에게 보낸 '진정표동전장' 의 표문도 "대대로 반드시 사대의 예를 행한 다음에 국가를 지킬 수 있었다." 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바, 이는 당초 몽골이 요구하는 세공을 고려 측이 피정복 지역 신민의 의무가 아닌 종래 요, 금에 보내던 사대의 예물로 이해하였을 말하는 것이다.



요컨데 여몽형제맹약의 실질은 몽골이 다른 정복지역에 부과했던 각종 요구와 다를 게 없었지만, 몽골 측의 이러한 공납 요구를 고려는 예의 '사대의 예물' 요구로 이해하여 대응한 것이다.


몽골 측의 과도하고 빈번한 공납 요구에 대해서도 고려는 크개 개의치 않았았고, 몽골 측이 원하지 않는 주포를 계속 바치면서, "상국의 용도에 전혀 맞지 않아도, 변변치 않은 물건이라도 바치는 뜻으로 해마다 보잘것 없는 물품을 갖추어 인정을 보이고 예를 닦을 뿐이다." 라고, 고려 자신의 사대의 도리만 다하면 된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13~14세기 고려 몽골 관계 탐구 중 中












고려와 몽골의 전쟁은 여지껏 한반도 역사상 있었던 그 어떤 북쪽에서의 침입보다도 더 길고 거대한 피해를 국내에 입혔던 전쟁이지만, 고려와 몽골의 첫 접촉이 처음부터 전쟁으로 시작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 양국 사이의 왕래는 외교적인 관계에서 출발했습니다.




고려 초기, 고려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와 전쟁을 펼쳤고 이 몇차례의 전쟁은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고려와 거란족의 싸움은 이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몽골이 북방에서 흥기하여 사방팔방으로 진출을 할 무렵, 원래 미리 중국 동북방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거란족은 몽골의 팽창 때문에 자연스레 밀려나게 되었고, 몽골 초원에서 내려오는 세력에게 압박당하는 거란족들이 물러날 곳은 한반도 외에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때문에 마치 훈족에 밀려난 게르만족이 대이동을 하듯, 거란족들은 속속 한반도 북방으로 몰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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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지롭던 시대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보며 고생만 죽어라 했던 인물인 김취려.




고려에도 당시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김취려(金就礪), 조충 같은 명장들이 종종 제법 효과적으로 대응하긴 했지만, 중앙에서 이를 관장하는 최충헌이 정말 믿을 수도 없는 정도의 트롤링을 일삼았기 때문에(너무나도 황당하고 장대한 수준의 트롤링이라 여기서 세세하게 설명하면 내용이 산으로 가서 여기선 설명 생략) 상당히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어찌어찌 남은 적들의 주력을 '강동성' 이라는 곳에 가둬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 거란족 말살을 선언한 몽골군이 고려 국경을 무단으로 넘어왔고, 강동성 앞에 있는 주둔해 있던 고려군에게 다음과 같은 서찰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려와 몽골의 첫 만남이었구요.




'한(汗-칸)께서 거란군이 너희 나라에 도망해 있은 지가 지금까지 3년이나 되었는데 거란을 능히 쓸어 없애지 못했으므로, 군사를 보내어 이를 토벌하니, 너희 나라는 군량을 도와 주어 부족함이 없도록 하라. 한의 명령이니, 적을 깨뜨린 후에는 조약을 맺어 형제가 되도록 하라.'




고려사에서는 이 서찰의 내용에 이어 '그리고 이어서 원군을 요청했는데, 그 말투가 매우 엄혹했다.'(仍請兵, 其辭甚嚴) 고 하니, 첫 만남부터 굉장히 강압적인 분위기 였던듯 합니다. 



고려 조정에서는 정말 난데없이 국경을 넘어온 몽골에 매우 당황했고, 당시 기록으로 "몽고는 이적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자들이고 일찍이 우호 관계도 없었는데 모두가 놀라고 진실이 아닐 것으로 의심하였다." 고 할 정도로 불안과 의심이 극심했지만 그렇다고 거란군이 바로 앞에 있는데 또다른 적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대국에서 도와주러 오셨다니 감사하다." 며 답변을 보내고 쌀배달을 해주며 몽고군의 싸움을 지원해줍니다. 





그렇게 해서 고려와 몽골은 '형제의 맹약' 을 맺게 되어 졸지에 형과 동생 사이가 되는데(물론 몽골이 형), 당초에 고려는 이 형제 관계라는 것에 대해 일상적인 사대관계,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예로 섬긴다는 형식의 또다른 표현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예전에 금나라나 송나라에 대해 하는 식으로만 대하면 충분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강동성 현장에서는 고려 장수들과 몽골 장수들이 서로 술도 마시고 의형제도 맺자고 하면서 생각보다 훈훈한 분위기였지만, 몽골에서 포리대완(蒲里岱完)이라는 인물이 사신으로 국서를 가지고 왔을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려 입장에서는 상국에서 사람이 왔으니 나름대로 왕도 준비를 하고, 관료들도 의관을 정비하고 사신을 맞을 준비를 하고 기다렸습니다. 기다렸는데...





관리들이 관복을 입고 늘어서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포리대완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포리대완은 자기가 머무는 역관에서 한발자국도 나서지 않고 있었고, 한참을 기다리다보니 들려오는 말은 이런 말이었습니다.



'고려 국왕이 직접 나와서 맞이하라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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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왕이었던 고종은 돌아가는 도무지 이해할 할 수 없었기에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라고 생각하며 포리대완에게 어서 나오라고 재촉했습니다. 



그제야 포리대완은 못 이기는 척 나오긴 했는데, 이때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름 국왕을 만나는 자리인데, 포리대완은 털가죽 옷 입고, 가죽신발 신고, 활까지 찬 채 무기를 휴대하고 나타났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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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만나러 온 자리인데 이러고 나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심지어 그 상태로 고종이 앉아있는 전상 위까지 성큼성큼 올라가서는, 고종 손을 직접 붙잡고 국서를 꺼내 직접 건내줬습니다. 이 상황에 고종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버렸고, 다른 관리들도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다가 최선단(崔先旦)이라는 인물이 화를 내며 지적하자 포리대완은 일단 잠시 자리에서 물러나 옷을 갈아입고 다시 왔지만, 여전히 짤막하게 예를 표시하기만 할뿐 절을 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고려에게 있어서 형제의 맹약이라는 것은 즉 사대관계로, 이쪽에서 저쪽을 예로 모시면서 적당히 예의를 차리고 체면을 세워주면 되는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몽골에게 있어선 애초에 사대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몽골에게 있어 형제의 관계란 '군사적 위협으로 점령된 피정복지.' 를 말하는 관계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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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서하 같은 나라가 몽골에 복속된 이후, 국가는 남아 있어도 몽골이 금나라와 전쟁하는 싸움에 끊임없이 물자와 군대의 차출을 요구 받으며 말 그대로 피가 빨리다가, 결국 못 참겠다고 이를 거부했다가 공격을 받고 멸망했었는데, 기본적으론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몽골에게 있어 고려의 필요 가치란 적당히 예의 차리는걸 받고 격을 세워주게 해주는 대상이 아니라, 그냥 필요한 자원 짜낼 수 있는 정복지 취급이었습니다.





일단 그렇게 형제의 맹약을 체결한 후, 몽골은 고려에 대해 과거 고려가 소위 상국에 바치던 "예물" 수준을 떠나 '자원'의 각출을 요구했습니다. 허드렛일이나 성노리개로 쓸 수 있는 어린 여자애를 보내라, 중국을 정복하고 관리하는데 필요한 한어를 아는 사람을 보내라, 몽골인들이 쓸만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자를 보내라 등등... 평소에 의례적으로 적당한 양을 보내던 예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자원들이었습니다.





고려는 몽골의 이러한 요구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몽골의 요구가 있을때마다 보내기를 거부했습니다. 사대관계에 익숙해진 고려로서는 저런 식의 무리한 요구는 그냥 국가간의 외교관계에서 일단 초장에 크게 질러놓고 보는 블러핑 비스무리한 것처럼 생각했고, 일단 그걸 거부한뒤 이쪽에서는 적당한 물건(몽골측에서는 요구하지 않는)을 마련해서 그걸 공물로 보내면, 우리는 보내면서 성의를 보였고 저쪽은 우리가 보낸걸 받아서 체면을 챙겼으니 괜찮을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슷하게 '고려의 왕이 몽골에 와서 복속된 성의를 보여라' 라는 '입조' 요구에 대해서도 "우리가 여태까지 사대관계 하면서 그런 예가 한번도 없는데 무슨? 저쪽에서 외교적으로 큰소리 좀 하는것 같은데 그냥 상황이 이래서 못간다고 하고 예의나 표시하자." 정도로 여기고, 입조 요구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거절했습니다.




즉 이런저런 말이 있어도 중요한 요지는 우리가 저쪽에 성의를 보이는 것, 그리고 저쪽에선 우리가 성의를 보여서 체면을 세워주는걸 알아주는 것, 그 정도로 생각했던 셈인데...




그러나 몽골의 요구는 그런 예의 차리기 아니라 자원 그 자체였고, 고려가 예의를 차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몽골이 필요한 물건을 조달해서 바치는게 중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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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사신으로 고려에 와서 물건 뜯어가기를 반복한 저고여. 이 사림이 국경 건너다가 죽은 사건으로 몽골과 고려의 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를테면 몽골의 사신이었던 저고여는 고려가 보낸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자, 국왕이 조회를 보는 대관전까지 여러 사람이 만류하는데도 뿌리치고 밀고 들어왔고, "우리가 필요한건 이런 물건들이다." 며 목록을 보이고 이전에 고려가 바쳤던 물건들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바로 그 자리에서 내던지며 "이따위 물건이나 바치느냐" 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몽골은 고려에서 과중한 물품을 여러차례 뜯어갔고, 본래대로는 1년에 한번 바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 뜯어가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이 있으면 더 좋은걸로 바꿔주라고 요구하기도 했었구요. 그러다가 이 임무를 맡은 저고여가 국경 근처에서 의문사를 하면서 전쟁이 펼쳐졌고....






다음은 역사저널 그날이라는 프로에서 이 부분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이런 TV 프로는 전문가 분들이 나오더라도 아무래도 TV 방송에서 설명하기 위해서 내용을 축약하거나 생략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서 없는 말 지어내는건 아니더라도 약간 주위를 하고 볼 필요는 있는데, 여기는 출연한 이익주 교수가 맨 앞에 언급한 해당 연구서 필진 중에 한분이라 관련 글을 쓴 본인의 언급이 나오니 괜찮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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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 ...그런데 형제가 우애있는 형제가 있고 불화하는 형제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몽골은 고려를 정말 형제처럼 대접해줍니까?

신병주: 의좋은 형제를 보면 형이 동생에게 곡식 주는데 이건 거꾸로에요. 동생에게 뺏는 관계가 되버렸다는 거죠. 그래서 몽골이 고려에 사신을 보내는데 가장 큰 목적은 고려에 공물을 요구하는 거에요. 실제로 1221년 8월에 몽골에서 요구한 공물 내역을 보면 수달 가죽 1만 장, 고운 주단 3천 필, 가는 모시 2천 필, 솜 1만 근 이런걸 요구하는데다가 문제는 몽골 사신들이 너무 자주 오는 거에요. 결과적으로 1221년에는 1년에 4번이나 사신이 와요.

이윤석: 의좋은 형제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흥부 것을 빼앗아 가는 놀부네요.

류근: 그래도 놀부는 가난할 때 뺏진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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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도대체 왜 몽골은 고려에게 무리하게 요구한 겁니까?

이익주: 형제관계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랐던 것 같습니다. 고려는 국가간의 형제를 맺는다는게 상당히 어색했을 것인데 마침 100년 전에 금나라와 똑같은 관계를 맺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고려는 칭신상표 즉, 신하를 칭하고 표문을 보내고 조공을 하는 것으로 관계를 맺었었는데 그것과 똑같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문제는 몽골은 형제관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투배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투항해서 복종한다는 뜻이죠. 몽골은 형제관계를 맺은 고려를 자기들이 복속시켰다고 생각했고 정복자로서의 자기 권리를 주장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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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 말이 좋아 형제맹약이지 지금으로 치면 불평등조약이네요.

최태성: 몽골의 무리한 공물 요구도 심했지만 사신들의 횡포도 장난이 아니었어요. 공물이 갔는데 마음에 안 들면 다시 가지고 와요. 그럼 던지는 거에요. 맘에 안든다는 거죠. 접대가 안 좋다 해서 활을 막 쏘고 몽둥이로 치고 두들기고 난장판을 벌이는 거에요. 아주 무례한 모습을 보이는 거죠.

저고여 등은 명령을 전달하고 전을 내려가면서 제각기 품속에 넣었던 물건을 꺼내 왕 앞에 던졌다. 저고여 등이 객관에서의 대접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에 노하여 활을 쏘기도 하고 몽둥이로 치기도 하였다. <고려사 고종 8년 8월>

신병주: 실제로 활을 쏴서 고려 환관이 중상을 입기도 해요. 

그대(몽골 사신)가 도호부에 있을 때 한 사람을 직접 쏘았는데 생사를 알 수 없습니다. <고려사절요 고종 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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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고려는 예를 통한 조공을 생각한거 같은데 몽골은 힘을 앞세운 갈취, 성취의 느낌을 받은거 같고 외교라는게 절차와 예의라는게 필요한건데...










즉 몽골과 고려의 첫 만남과 처음 맺어진 관계에서 맹약을 맺었어도 서로가 생각하는 이 관계의 의미가 달랐다는게 의미가 있는 부분입니다. 



당대인인 이규보 등이 몽골의 칸에게 직접 보낸 표문에서도 "사대의 예를 대대로 해서..." 등 과 같이 그 당시 고려인들은 철저하게 사대의 대상으로 몽골을 바라보았는데, 정작 몽골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항복해서 복속된 놈들이 왜 이렇게 건방지게 말을 안 듣냐." 정도로 생각하던 입장.




국왕 입조 요구 같은것도 "그냥 하는 소리일테고 우리야 예의 표시만 잘하면 되겠지." 라고 고려는 생각했지만, 결국 나중에는 전국토가 쓸려가고 난 이후에는 심지어 국가 원로 공신 딸도 가기 싫다고 버텨도 머리채 다 뽑히고 끌려가고(홍규라는 인물입니다) 고려 왕들이 뺀질나게 현지를 왕래하고...





본문을 더 옮기진 못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고려 측에서 금나라에 사람을 보내 "우리가 이후로 금에 더욱 사대를 열심히 할테니 몽골을 같이 쳐부수자" 는 절박한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몽골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싶어했던 당시의 금은 어물쩌물하면서 이 이야기를 넘겼다는 내용도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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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walker
19/03/23 00:51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최충헌 트롤링도 궁금하네요 크크
19/03/23 01:03
수정 아이콘
이런거보면 문화의 충돌이라는게 강아지,고양이의 꼬리 수신호 차이같은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ioi(아이오아이)
19/03/23 01:09
수정 아이콘
왜 헷갈리게 형제라 그래 크크크
나와 같다면
19/03/23 02:11
수정 아이콘
= 가족 같은 기업
명란이
19/03/23 02:35
수정 아이콘
와... 한방에 이해함.
Hastalavista
19/03/23 02:34
수정 아이콘
역사적으로 몽골쉑들 중국쉑들 일본쉑들
누적피해량 순으로 줄세우면 순서가 어떻게 될까요.
여진도 따로 카운트해야 되나.
19/03/23 02:42
수정 아이콘
연나라부터니 중국이랑 관계가 오래되긴 했을건데 누적딜은 누가 젤 많이 했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19/03/23 02:49
수정 아이콘
솔직히 중국은 요즘이야 먼지 발생기지만 역사적으로는 우리한테 해준 것이 많은 지라 (만력제, 글자, 율법 등등)..... 나머지랑 같이 놓으면 서운할 것 같습니다.
Hastalavista
19/03/23 03:4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중국한테도 많이 발렸다고 생각하는데요;
한나라→고조선(멸망), 위나라→고구려, 전연→고구려, 후연→고구려, 수나라→고구려, 당나라→고구려(멸망)+백제(멸망)+신라

대충 생각나는대로 모아놓고 보니 주로 고대국가 시절에 많이 털렸고,
송나라 이후부터는 정주민 국가한테 털리는 일은 없어졌네요.
19/03/23 04:12
수정 아이콘
예 그건 그런데, 우리 고대국가들이 중국하고는 교역도 많이 하고 가져온 것도 많은 지라, 마지막에 망했다는 사실만 기준으로는 보기 좀 힘들지 싶어요. 몽고나 일본은 뭐 얘기가 많이 다르고요.
Hastalavista
19/03/23 05:49
수정 아이콘
하긴 받아먹기도 많이 받아먹긴 했네요 크크
강미나
19/03/23 08:29
수정 아이콘
사실 역사 전반적으로 놓고 보면 중국 해준 거 많다는 소리는 일본이 근대화 시켜줬다는거나 별반 다를 거 없는 얘기같네요.
6.25 3년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일제 35년 동안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을걸요.
19/03/23 08:44
수정 아이콘
중국이 없었으면 임진왜란때 조선은 없어졌을 거라서... 뭐 그 이상 들어가기 시작하면 가치관의 차이니까 굳이 서로 설득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을 듯 하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강미나
19/03/23 08:44
수정 아이콘
애초에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지 않았으면 이후에 일본이 조선을 칠 엄두조차.... 뭐 다 그런거죠. 보는 시점의 차이가 맞을겁니다.
19/03/24 06:20
수정 아이콘
고구려가 계속 있었으면 조선 건국전에 몽골한테 더 심하게 털렸지 싶어요. 고구려가 가진 만주가 몽골에게는 쓸만한 땅이었기도 하고, 접할 기회가 더 많아서 원한도 많이 쌓였을듯합니다.
유소필위
19/03/23 09:53
수정 아이콘
동의가 안되네요. 한나라 때문에 고조선은 실제로 멸망하고 당나라에 고구려도 멸망하고.... 이쪽은 실제로 없어졌는데요?
19/03/23 09:56
수정 아이콘
한나라가 멸망시킨 고조선의 왕 자체가 중국인이라....
유소필위
19/03/23 10:05
수정 아이콘
왕이 중국인인거랑은 별로 관계가 없죠 망명한 중국인이 왕이 됬다고 한나라에 고조선 없어진게 달라집니까? 아니면 왕이 중국출신이니까 중국이 우리의 국가를 친거로 볼수 없다는 말이신지? 신라왕 석탈해도 외국인인 판에 그것도 좀 말이 안되네요. 애초에 그것도 위만도 반란으로 고조선 먹었으니 중국사람에게 고조선 멸망했다는 말이 성립 안되는 것도 아닌데요.
19/03/23 10:08
수정 아이콘
유소필위 님// 제 요지는 그게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음양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그 중에서 받은 피해만 따로 집계해서 중국으로부터 줄곧 당한 것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유소필위
19/03/23 10:29
수정 아이콘
OrBef 님// 네 저도 중국으로 부터 줄곧 당하기만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긍정적 영향보다 손해 본게 더 크다고 생각하는 거구요. 단순히 침략 당한거 뿐만 아니라 조선초기 국력 짱짱할때 북진하려다 명나라 압박에 그만 둔것과 같이 가능성 억제 당한것 까지 두루 고려해서요. 게다가 중국 아니었으면 임진왜란때 조선 없어졌을거란 예시도 적절치 않다고 봐서요. 애초에 중국으로부터 국가가 멸망한 적이 두세번 있는데 역사적으로 중국 해준거 많다는 소리 하면서 임진왜란 예시를 드니 납득이 안가서요.
오렌지꽃
19/03/23 12:55
수정 아이콘
유소필위 님// 조선초기 북진이라면
당시 여진족 지역들은 공식적으로 명나라령이었습니다만...
압박으로 그친걸 다행으로 여겨야되는게 아닐까요
19/03/23 10:12
수정 아이콘
그 시절까지 가기 시작하면 애초부터 고구려는 신라랑 같은 족속이라는 생각이 없었을걸요. 그리고 그때 기준으로 생각하면 일본은 백제을 거의 상전모시듯 하던 시절이고 도움도 많이 줬죠
유소필위
19/03/23 10:20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건 당연하죠. 고백신 삼국이 뭐 말은 통했다고 하니 중국에 비해 어느정도 동류의식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동족의식은 없었겠죠
다만 그와 별개로 현대의 우리는 삼국을 계승했다는 계승의식을 가지고 있으니 그 삼국이 중국으로 부터 받은 영향을 말하는거죠
19/03/23 10:04
수정 아이콘
장제스 없었으면 조선이 독립국이 되는거 자체도 힘들지 않았나요. 이런건 진짜 그냥 보는 관점의 차이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론 마오의 삽질이 없었으면 한국이 선진국 될 수 있었나 회의적이기도 합니다...
강미나
19/03/23 10:16
수정 아이콘
장제스는 대만이고 마오는 중국이죠. 마오 삽질이야 그냥 반사적 이익이니 상관없는거고요.
무다구치 렌야가 진짜 독립유공자인 건 아니잖아요.
19/03/23 10:20
수정 아이콘
장제스가 중국 본토 잡고 있던 시절에 카이로회담에서 드립쳐서 조선 독립 따낸건데 어떻게 장제스가 대만이에요. 장제스 본인은 단 한번도 자기가 대만인이라고 생각한 적 없을걸요. 죽을때도 본토수복하라고 유언남기고 죽은 사람인데. 차라리 중공이 우리한테 피해를 가장 많이 입혔다고 하면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 전체를 싸잡아서 최고로 피해 많이 입혔다하긴 좀 그렇죠.
19/03/23 19:24
수정 아이콘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인게 장제스 아니었으면 회담때 한국 독립 이야긴 인도 문제가 걸린 영국떄문에라도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떄 장제스가 박박 우겨서 한국(당시엔 조선) 독립이 거론되었고 선언에서 나온건데
19/03/23 10:11
수정 아이콘
사실 유럽만 해도 로마에게 수백년간 털려먹다가 복속되어 정신까지 포맷팅 당한 갈리아, 게르마니아의 후예들이 문화적 원류를 로마에 두고 또 로마 황제 운운 했으니까요.
부모도 아니고, 이웃한 선진 문명이 이웃의 후진문명 혹은 야만인에게 관대하다면 그게 어디 인간세상이겠습니까.
강미나
19/03/23 10:19
수정 아이콘
설득력 있는 말씀이긴 한데 하필 그게 딱 민족개조론이라(....)
19/03/23 10:27
수정 아이콘
네, 저도 써놓고나니 약간 웁스, 하긴 했습니다;

뭐 현대와는 다른 천년 이상 전에서 최소 수백년 전, 고대의 일이니 그러려니 하긴 합니다만.
19/03/23 03:37
수정 아이콘
딜교순으로만 따지면 일본이 첫손 꼽힐겁니다. 중국이야 서로 주고 받은 관계고 몽골은 누적딜이 좀 강하긴 한데
나중에 쥐어터지는거 생각하면 역시 일본이....

여진은 끕도 안됩니다. 오히려 맞았으면 더 쎄게 맞았죠.
명란이
19/03/23 04:55
수정 아이콘
최근에 맞은게 제일 아프죠.
근데 사실 6.25 가 젤 아프네요.
19/03/23 10:28
수정 아이콘
6.25 그건 중화가 아니라 중공...

우리에게 있어 중화는 장졔스 따거였죠. 큭큭큭
크레토스
19/03/23 07:54
수정 아이콘
일본 같네요. 걔들한테 받은건 적은데 피해 받은건 많아서..
왜구에 천년도 넘게 지속적으로 피해봤고
왜란때 고려시대나 조선전기 문화재들 싸그리 날아갔죠.
일제땐 조선 오대궁,사직단,관아,성 등등 문화대혁명보다 심한 수준으로 싸그리 파괴하면서 조선이란 왕조의 흔적을 없애버리려 했고요.
강미나
19/03/23 08:25
수정 아이콘
중국이죠. 그 전 역사도 역사인데 6.25 한방이 워낙 셉니다.
유소필위
19/03/23 09:56
수정 아이콘
중국이죠
19/03/23 10:09
수정 아이콘
아무리 봐도 몽골이 제일 쓰레기인게, 일본 중국은 한국 도와준 적도 있고(백제 서포트, 임진왜란 원군 등등) 한민족한테만 피해끼쳤지 타 민족한텐 그닥 피해를 안 끼쳤는데, 몽골은 인류 문명을 말아먹을뻔 한 놈들이라 볼때마다 짜증이 솟구칩니다. 저놈들때문에 동아시아 문명이 서구 문명에 밀리기 시작했죠
19/03/23 10:29
수정 아이콘
대신 후손들은 송의 산업혁명을 피해서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다던가...

송이 산업혁명에 도달한 대체미래라는 것도 때때로 보고싶어지긴 하네요.
Lord Be Goja
19/03/23 04:02
수정 아이콘
몽골이 정말 민폐덩어리에 악질인데 우리나라에서 90년대정도까진 이상하게 이미지가 좋았었죠.
고구려-몽골 기마 이미지 때문에 그런건지...
창조신
19/03/23 05:42
수정 아이콘
글 1줄 읽고 글쓴이 확인하고 자세 고쳐앉고 정독했습니다.

유익한글 감사합니다
처음과마지막
19/03/23 07:13
수정 아이콘
(수정됨) 몽고 침략의 피해가 아직도 우리 피 유전자에 남아들있겠죠? 아기때 몽고반점이요

최근 까지 피해를준 일본이나 중공군이 더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요



암튼 이런 역사글은 언제나 추천입니다

잘봤습니다
크레토스
19/03/23 07:49
수정 아이콘
몽고반점은 딱히 몽고인에게만 나타나는게 아니라.. 몽골로이드(황인)에게 나타난다고 붙은 이름일걸요. 실제로 유전적으로 한국인은 몽골과 딱히 가깝지 않고 일본인이나 만주족과 가깝습니다.
19/03/23 14:18
수정 아이콘
몽고반점은 이름만 몽고반점이지 동남아인이나 아메리카인디언들한테도 나타난다고 하네요. 일본인도 있고...
19/03/23 07:25
수정 아이콘
거칠게 원용하면 이번 북미 회담도 비슷하지요. 겉으로는 동등한 관계로 만났는데 양 측이 생각하는 관계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체급차를 반영하는 미국과 그렇지 않고 전략무기 철수를 운운하는 북한의 인식 차이는 뚜렷하지요.
동굴곰
19/03/23 07:55
수정 아이콘
당대 고려인 입장에선 외계인 만난 기분이 아니었을까...
19/03/23 08:56
수정 아이콘
워낙에 정보가 없던 시대여서 저런 오해가 일어난듯 합니다.
현대 선진국 사이에 전쟁이 안 일어나는 이유는 다들 정보에 빠삭해서 쳐맞을거 같으면 알아서 기어주니까..
근데 북한은 좀 불안합니다 정은아 제발 잘하자.
일리아스
19/03/23 15:36
수정 아이콘
우리는 사대한다고 하는데 저들은 정복자처럼 굴면 어떡하지 란 고민을 안했다는게
고려나 조선이나 묘한 선비의식이라고 해야할지
당연히 몽골이 저리 나오면 어떻하지 에 대한 고민을 했어야 되는 것아닌가...
19/03/23 18:01
수정 아이콘
선비의식이랑은 관계없고, 외교라는게 원래 서로 슬슬 간보면서, 필요할땐 우리쪽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면서 밀당하는거죠.
지금 김정은이랑 트럼프 하듯이요-_-
19/03/23 19:25
수정 아이콘
근데 사실 또 막상 당시에 뭐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었던것도 있긴 할걸요 당시 몽골이 그냥 단순한 깡패정도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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