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기다리신 분들은 없으시겠지만 돌아왔습니다, 나도 따라 동네 한 바퀴!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는 여전히 KBS 1TV에서 토요일 오후 7시마다 방영 중이니 혹시 안 보시는 분들에게는 재차 추천드리고 싶네요.
아무튼 오늘 동네 한 바퀴는 나름대로 테마를 좀 잡아봤습니다.
다들 익히 아시겠지만, 올해 삼일절은 3.1 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그런만큼 삼일절 전날, 우리 동네 주변에 있는 의미 있는 곳들을 한번 돌아보고 싶어졌어요.
그리하여 준비했습니다, 근본투어!
근본투어의 시작은 국립 한글박물관에서부터입니다.
지금처럼 우리가 한글을 쉽고 간결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특히 뜻깊은 기간이니만큼, 한글박물관에서도 독립 운동과 한글 보존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한 분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글이 목숨" 이라는 최현배 선생의 글귀를 보면, 정말 이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글을 편하게 쓰고 있다는 실감이 들더라고요.
사실 그냥 전시만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마침 가니까 해설사 선생님 해설 시간이었습니다.
주시경, 이극로, 최현배 선생 등, 한글과 민족혼을 보존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조선어학회 사람들과 그 역사에 대한 좋은 해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따로 특별 전시관이 잡혀 있는 게 아니라 상설 전시관 내에 작은 테마 공간으로 꾸려져 있다보니 규모가 상당히 작은데, 그래서 더더욱 해설사 선생님의 해설을 들으면서 관람하는 걸 추천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기념품으로 잡지 "한글" 표지 모양의 마그넷을 받았어요!
이 마그넷은 해설을 들은 사람 대상으로 주는 기념품인데, 모두 4가지 디자인이 있다고 합니다.
무료 관람, 무료 해설이니만큼 관심 있으신 분은 3월 말까지 한번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한글박물관 2층에서는 특별전 "사전의 재발견" 전시도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어 사전이라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단어의 뜻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사투리와 표준어를 정하고 그 갈래를 나누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관심 있으신 분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전시일 거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최근 영화로도 개봉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던, 최초의 국어사전 "말모이" 의 실물 또한 전시 중입니다.
해당 전시품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직접 보여드리지 못하는만큼, 다들 직접 한글박물관에 방문해서 눈으로 보고 기억 속에 새기시면 좋을 거 같네요.
중앙 전시 공간에는 다양한 전문 용어 사전과 북한 문화어 사전까지 다양한 사전이 구비되어 있어, 오랜만에 직접 사전을 뒤져보는 체험을 해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효창공원.
원래 이 곳은 일찍 세상을 떠난 조선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의 묘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1944년 일제에 의해 문효세자의 묘는 고양시 서삼릉으로 이장되게 됩니다.
이후 비어있던 이 자리에 1946년 삼의사, 곧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묘를 모시게 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곳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현재의 효창공원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사실 이곳을 찾은 이유 중 하나로는, 3.1 운동 만세 재현행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해서 만세 행렬을 마주할 수 있었네요.
성장현 용산 구청장을 필두로, 자원봉사로 참가한 학생들이 함께 도로를 걸으면서 100년 전 만세 운동을 재현하는 모습입니다.
원래는 체험행사나 식전 공연 같은 것도 있었는데, 한글박물관에서 해설까지 듣고 오다보니 계획보다 좀 늦어져서 대미를 장식하는 만세운동 모습만 겨우 봤네요.
기왕 온 거, 효창운동장에도 한번 들어가 봅니다.
1960년 AFC 아시안컵 개최를 위해 개장한 종합운동장으로, 1960년 대회는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이 우승한 마지막 아시안컵 대회로 남아있습니다.
한때는 대한민국 축구의 심장과도 같은 경기장이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내주고 WK리그 서울시청의 홈구장이자 아마추어 축구를 위한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이날도 어김없이 할아버지들이 공을 차고 계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참 뷰도 좋고 효창운동장만의 분위기가 있어서 종종 WK리그 경기를 보러 찾아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작년부터는 조명탑이 설치되면서 야간 경기도 가능해져서 더 좋네요.
인조잔디 구장이라 프로 경기 유치가 불가능하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잠시 한눈을 팔았지만, 이제 다시 근본투어로 돌아갈 차례입니다.
광장을 지나 공원 오른편 산책로를 따라가면, 임정 요인 묘역이 나옵니다.
이 곳에는 임시정부 초대 주석이었던 이동녕 선생, 북로군정서 소속으로 무장투쟁을 벌였던 조성환 선생, 임시정부의 파수꾼이라 불렸던 차리석 선생까지 세 분의 독립운동가가 묻혀 있습니다.
저 역시 조국 독립을 위해 인생을 바친 선열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묵념을 올렸습니다.
공원 정상에 가까워질 무렵, 원효대사 동상이 보입니다.
익히 알고 계실 원효로, 원효로동의 이름을 바로 원효대사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다만 이 동네랑 원효대사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건 딱히 아니더라고요.
원래 일제시대에 모토마치, 원정(元町)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일본인 거주지역이었는데, 해방 이후 원정과 효창공원 근처니까 반반씩 따온거라고 합니다.
마침 이름난 고승인 원효대사도 계시다는 것에 착안하여, 원효대사랑은 별 상관이 없지만 원효로라는 이름이 붙어버렸다고 하네요.
원효대사가 당나라로 향할 때 이 동네를 거쳐갔다는 이야기도 있다고는 하는데...
공원을 크게 한바퀴 돌아 반대편으로 내려오면,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이 보입니다.
임시정부의 주석이자,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상징과도 같던 역사의 거목.
끝까지 통일된 조국을 바라셨지만 결국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비운의 정치가이기도 합니다.
추모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묵념을 올렸습니다.
백범 선생 묘 왼편에 조성되어 있는 이봉창 의사의 동상입니다.
도쿄에서 쇼와 덴노를 암살하려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그 뜻을 다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봉창 의사의 묘역 또한 오른편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효창공원의 효시, 삼의사 묘역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삼의사 묘역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가보면 묘가 총 4개가 있습니다.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외에도, 안중근 의사를 위한 가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사형 이후 뤼순 야산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현재까지도 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언으로 조국 독립 이후 조국의 땅에 묻어달라고 말하셨던만큼, 언젠가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발굴되어 이 묘역에서 모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사당은 의열사라는 사당인데, 효창공원에서 모시고 있는 독립운동가 분들의 선영을 모신 곳입니다.
저도 다시 한번 독립을 위해 인생을 바치신 분들에게 감사하며, 방명록을 남긴 채 돌아왔습니다.
의열사 인근에는 태극기 조형물도 있는데, 독립 운동사에서 의미 있는 태극기 10개의 모습을 담아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각자의 사연만큼, 저마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었겠죠.
효창공원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백범 김구 기념관을 돌아봤습니다.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 어떤 전시물이 있는지는 전해드리지 못하지만, 김구 선생의 인생과 사상, 독립 운동과 민족 통합에 대한 이야기들을 잘 녹여낸 좋은 기념관입니다.
특히 윤봉길 의사가 의거 전 김구 선생과 바꿨다는 회중시계, 친필 백범일지, 암살 당시 입고 계시던 혈의 등 의미 있는 전시물이 많기 때문에, 효창공원을 찾게 되신다면 기념관 또한 찾아가시길 추천하고 싶네요.
스탬프도 있길래 평소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찍어봤습니다.
이런 거 정말 좋아합니다 크크크크...
이제 효창공원에서 삼각지로 이동합니다.
가는 길에 열정도 쪽으로 슬쩍 빠져서 오락실 잠깐 들른 건 비밀...
저는 게임을 좋아하는데 왜 이렇게 게임을 못할까요 따흐흑.
삼각지 넘어가는 고가도로에서 바라본 용산 풍경입니다.
철도와 재개발 현장, 그리고 철거 지역이 뒤섞인 게 뭐라 말하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더라고요.
옛날에는 저 재개발 된 곳들 밤에는 무서워서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곳이었는데 참 많이 달라졌다 싶었습니다.
삼각지라고 하면 역시 돌아가는 삼각지!
과거 삼각지에 있던 회전 교차로를 소재로 한 배호 선생의 히트곡입니다.
지금은 회전 교차로가 사라졌지만, 노래와 기념비는 남아 있네요.
삼각지 쪽에는 아직도 옛날 풍경들이 꽤 남아있는 편입니다.
1970년 지어진 아파트, 삼각 맨숀이라던가, 아직도 필름 인화를 맡아주는 삼각 스튜디오라던가.
이 주변도 재개발 계획이 잡혀 있어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사라질 풍경이지만요.
원래 대구탕 골목으로 유명한 곳입니다만 저는 혼자 다니기 때문에 차마 먹을 수 없는 메뉴네요 흑흑...
결국 서울시 착한가게로 선정됐다는 중국집 영빈관에 들어가서 볶음밥을 시켜먹기로 했습니다.
가격은 6,000원.
나름 맛있게 잘 먹었어요!
식사도 했겠다, 다시 힘을 내서 걸어가 봅니다.
삼각지역에서 조금 걸어 올라오면 전쟁기념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몰랐는데 저 전쟁기념관 글씨는 노태우 前 대통령이 쓴 거였더라고요,
역시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는 곳이지만, 안까지 다 돌아보려면 근본투어 2박 3일은 잡아야 하기 때문에 외부 조형물만 간단히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원래부터 종종 찾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전쟁과 동족상잔의 슬픔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쟁터에서 재회한 형제 동상 주변을 지나가는데...
뭔가 기념식수 같은게 있어서 봤더니 맥아더 장군 나무라고 써 있더라고요.
미국에서 기념물로 지정된 위스콘신 주의 맥아더 장군 나무의 씨앗을 받아와서 전쟁기념관에 심어 놨다고 합니다.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에도 같은 씨앗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하네요.
신기한 일입니다.
전쟁기념관에 오면 또 외부에 전시된 무기들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밀리터리에 딱히 큰 관심이나 조예는 없지만, 이렇게 전시된 걸 보면 어린이처럼 가슴이 뛰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특히나 비행기가 멋있어서 사진을 몇장 찍어왔습니다.
이 시계탑은 오른편 시계가 북한의 남침시각,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멈춰 있습니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오른쪽 사진에 있는 시계로 바꾸어 새로운 시간이 가게 할 거라고 하네요.
이 날 있었던 북미정상회담이 마땅한 결과를 내지 못했던터라, 새삼 시계탑을 올려다보면서 씁쓸하면서 안타까웠습니다.
언제쯤 전쟁이 끝나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을까요.
우울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오늘 근본투어의 마지막 목적지로 향합니다.
녹사평역까지 올라간 뒤 경리단길을 거쳐, 쭉 올라가다보면 나오는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입니다.
사실 그렇다고 부군당을 보려고 여기까지 올라온 건 아니지만요.
이 곳에는 유관순 열사 추모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원래 이 곳에 있던 이태원 공동묘지에 유관순 열사의 묘가 있었지만, 이장 과정에서 유해가 실전되면서 현재는 묘마저 없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유관순 열사를 추모할 수 있는 곳은 이 곳 뿐이네요.
나라를 위해 인생을 바치고,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고도 그 넋을 기릴 곳조차 제대로 없다니 안타깝고 안타까운 마음 뿐입니다.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곳에서도 묵념을 올렸습니다.
이태원 부군당 앞에는 넓게 펼쳐진 공간이 있어, 왼편으로는 63빌딩부터 오른편으로는 남산타워까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목숨 바쳐 지켜주신 나라에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는 감사함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근본투어, 열심히 걸어다닌 보람이 있었네요.
마지막으로 보광동 쪽으로 내려와, 한강을 따라 걸었습니다.
삼일절, 단순히 하루 쉬는 날이 아니라,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동네 한 바퀴 돌아본 것 같아 혼자 뿌듯했네요.
여러분도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삼일절의 의미를 생각해 보실 수 있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건 자투리컷!
돌아다니면서 눈에 들어왔던 독특한 것들입니다.
왼쪽 위는 국방부 앞 공원 화장실의 세면대인데, 마치 개구리 같은 모습을 한게 재밌어서 한장.
오른쪽 위는... PGR 여러분이 좋아하실 거 같은데... 똥꼬에서 응가 주머니를 뿜어내고 있는 동물병원 조형물입니다.
센스가 좋네요!
왼쪽 아래는 경리단길 지나가다 만난 해골바가지 친구.
먼지도 많이 낀 날이었는데 야외를 고집하는 멋쟁이였습니다.
오른쪽 아래는 보광동 폴리텍 대학에서 마주친 코리안 트랜스포머입니다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