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지금 안달루시아의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좁은 2차선 도로 위에 있어. 한시간을 넘게 달렸는데도 키가 작은 올리브 나무들이 지평선 너머까지 계속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바람은 여전히 막 구운 토스트처럼 따뜻하고 바삭해. 우리 가족은 평원의 조각 구름같이 느릿느릿 여행 하고 있어. 눈 앞에 반짝이는 모든 것들을 찬찬히 담고, 매 순간의 감정들을 하나하나 포옹하면서, 웃고 울고 떠들며 다녀. 우리는 도시를 둘러볼때 말고는 각자 시간을 보내. 나는 경치 좋은 곳에서 싸구려 와인을 마시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 짧은 시간에 마음의 여백이 제법 생겼어.
지난 며칠은 알람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그라나다랑 게야 시에라라는 작은 산간 마을에 머물렀어. 만년설이 덮힌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도시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서 공기도 청량하고 경치도 아주 근사해.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이슬람 세력이 남아있었던 곳이야. 이슬람 건물들을 파괴하지 않고 유럽식으로 덧대어 사용해서, 그때 유적들이 대부분 남아있어. 이슬람식 궁전 앞 바로크식 종탑 그 너머로 알프스 같은 설산. 특히 알람브라 궁전 망루에서 보는 도시 전경은 그림같아. 저녁에는 집시들이 모여산다는 언덕에 매일 찾아가. 조금 위험하지만 궁전이 마주보이는 야경이 아주 훌륭하거든. 그런곳에 있을때면 나는 역사의 우연이나 옛 사람들의 삶 같은걸 상상하게돼. 왕의 삶과 집시의 삶, 카톨릭과 무슬림의 삶 그리고 그들이 봤을 같은 도시 안 다른 세상.
어제는 한참 앉아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알리칸테 농장에서의 철 없던 시절이나 순례길을 걷던 스페인에서의 시간들을 생각했어. 어쩌면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돌려놓았을 몇개의 선택들도. 그럴때면 나는 그동안 삶의 선택들을 만들어왔던 두개의 모순된 모습을 봐. 나는 온 도시를 발 아래 두고 세상을 바꾸는 왕이고 싶었고 또 자유롭게 거리를 떠도는 음유시인이고 싶었어. 하지만 여기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으려고해. 그냥 눈 앞에 찬란한 풍경으로 하루를 채울 뿐이야.
일주일이 정신없이 가버렸어. 벌써 한참 지난 것 같아. 한국은 이제 오늘부터 연휴 시작이지? 눈이 많이 왔다고 들었어. 소식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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