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아이의 친구가 집에 놀러온 것이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장모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그러시더군요.
  오늘 집에 놀러왔던 OO가 페어리루 스티커를 잔뜩 가지고 왔는데, 저희 딸아이가 하나만 달라고 애걸복걸해도 안 주더라고.
  
  페어리루는 딸아이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러면 페어리루 스티커는 또 뭐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대충 이런 물건이었던 모양입니다.
  



  요즘 애들 상대로 상술이 참 대단하네 쯔쯔... 하고 혼잣말로 꼰대질을 하면서도
  30여년 전에 학교 문방구 앞에서 뽑았던 드래곤볼 카드나 스트리트 파이터 카드 생각도 나고
  15년 전에 한창 열중했던 매직 더 개더링 카드 생각도 나고 해서
  역시 아빠 닮아서 뭔가 모아야 하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별 생각 없이 넘어갔죠.



  그리고 다음날 아이의 책상 위에는 이런 게 놓여 있었습니다.
  



  페어리루 스티커가 너무나 갖고 싶었던 나머지 자기가 직접 만들었던 거죠.  
  이걸 본 순간 뇌리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아빠로서의 본능이 깨어났습니다.



  그래서 마트에 갔습니다.
  
  그까짓 거, 아빠가 사 줄게! 한 박스 통째로!



  
  다 뜯어!



  응? 뭐 정리하는 앨범인가 뭔가도 있다고?
  
  그것도 사! 아빠 월급 받았다!



  응? 앨범에 빈 칸이 남는다고?
  
  비어 있으면 채우면 되지!



  그래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워낙 예전 일이라 저는 기억이 안 납니다만,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예전에 제가 아주 어릴 때 남의 셋방에 세들어 살았는데
  제가 주인집 딸내미가 타고 다니는 세발자전거를 그렇게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를 쫓아다니며 한 번만 태워달라고 사정을 해도
  그 아이도 자기 걸 자기가 타고 싶었을 테니 안 태워줬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방에 와서 세발자전거 타고 싶다고 엉엉 울고 있는데
  마침 그날따라 일찍 퇴근하셨던 아버지가 그 모습을 목격하셨다지요.

  다음날 아버지는 세발자전거를 들고 퇴근하셨습니다.
  월급 23만원 받던 시절, 그거 받아서 15만원은 할머니 보내 드리고 8만원으로 한 달 생활비 할 때에요.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