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게글 "79224 지각을 할 것 같다."을 읽고 나름 해피하게 맞이한 결말을 보다보니 예전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서 글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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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서 나서는 순간, 화장실을 잘 안가게 되는 생리적 증상을 가지고 있다.
정확한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여행성변비라는 단어로도 정리가 되는데,
1박2일이든 2박3일이든 집밖으로 나들이를 하는 순간 큰일을 보는 기능이 일시 정지된다.
문제는 이 때 발생된 일시정지기능이 언제 풀리냐라는 것이다.
집으로 가까워 질 수록 정기기능이 해제되기 시작하면서 집도착이 임박했을 때,
바리케이트 저지력의 한계가 임계점을 맞이하게 된다.
흔히 알고 있듯이 동물들은 자기가 살던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본능이나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간단하게 말해서 귀소본능이라고 한다.
인간도 동물이고, 나라는 인간도 동물이다.
당연히 나라는 인간도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내 생리적 특성과 결합하여 이 증상을 "
귀소본똥"이라고 명명했다.
네이x, x글, 나xx키 에 검색해도 이런 단어가 없으며,
최소 20년전부터 생각했던터라 작금에 이르러서는 최초 명명자라는 일말의 자부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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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 이사간 우리집은 아파트 14층이었다.
아파트 단지내 최고층은 23층이었지만 우리동만은 옆동네 일조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라인별로 층수가 달랐으며, 우리집 라인은 최고층이 19층이었다.
14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시간은 28초,
19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시간은 넉넉잡아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당시 학교의 파격적인 결단으로
토요일이 4교시에서 3교시로 줄어들었던 그 날.
귀가중의 버스안에서 귀소본똥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귀소본똥에 대해서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이지만
당시는 아직 풋풋한 신입사원과도 같았던지라 귀소본똥에 대한 마땅한 대비책도 없었던 노비스였다.
가까스로 도착한 아파트 단지입구, 우리단지를 알리는 머릿돌을 보며 나와바리에 왔다는 각인과 함께
그 본능은 강해졌고 걸음걸이와 학문의 불규칙적인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네x버 지도검색이라는 편리한 기능을 이용해보니 당시 아파트 입구에서
우리라인 입구까지거리는 214M인데, 아마 평생을 통틀어 가장 길었던 214M 였었지 않았나 싶다.)
도착한 우리라인의 1층에서 보니 엘레베이터는 19층에서 사용중인 상태였다.
사람이 내리던지 타던지 앞으로 1분만 기다리면
엘레베이터가 올것이라 마음을 놓았던것이 화근일까...
엘레베이터는 1분이 넘고 2분이넘고...
5분이 넘어도 내려오지를 않았다.
하염없이 19층 표시등과 역삼각형 표시등만 떠 있을 뿐 미동조차 없었고
그 극한상황에서 5분여를 더 기다려줬었던 괄약근이 대견했을 따름이었다.
등교 전,후 몸뚱아리의 전체무게는 비슷했겠지만 몸밖과 몸안의 무게는 달라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그 날 입은 팬티가 삼각팬티였던것뿐.
그덕에 하반신에 걸친 의류중 양말은 건졌다.
왜 조금만 더 참지 못참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속사정이 어찌됐었든간에 이미연씨가 명성황후를 100화 이후
하차했던 이유와 동일하다고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시간싸움과 줄다리기가 의미없어진 가운데 내려오는 엘레베이터를 보며,
탑승자에게 원망과 증오, 미움, 그 모든것이 한데 섞인 눈빛을 보낼것인가,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도망을 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딱히 걸음걸이를 크게 땔 수도 없는 관계로 1분은 금방 지나갔고
마침내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탑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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