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9-1에서 이어집니다. 채끝까지 했으니 안심 나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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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부드러움의 끝판왕, 안심
비싼 스테이크 가게에서 ‘투른느도 로시니’나 ‘샤토브리앙’이니 하는 희한한 이름을 본 적이 있는가? 이게 다 안심 스테이크를 일컫는 말이다149). 요리 이름이 무슨 사람 이름을 닮았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한데, 옛날 옛적 요리사들이 새로운 요리를 발명한 뒤, 유명 인사나 자신을 후원해 준 귀족의 이름을 붙인 경우가 많았기에 그렇다. 아마 가장 유명한 예는 전설이 또 다른 전설에게 헌정했던 ‘페슈 멜바’150)가 아닐까. 어찌됐든 이런 전통있는 요리 이름이 많다는 것 자체가 안심이 예로부터 널리 사랑받아온 부위라는 것을 말해 준다.
각설하고, 안심은 허리뼈 안쪽에서 뻗어나와 골반을 지나 넓적다리뼈 위쪽으로 이어지는 큰허리근 및 작은허리근(psoas major/minor)을 말한다. 구글을 열심히 뒤져 봐도 이 근육을 주로 단련하는 고립운동법은 없고, 스트레칭만 나와 있을 정도로 운동하기 애매한 위치에 있는 녀석인데, 그 덕택에 가장 부드러운 부위로 손꼽힌다. 게다가 소 한 마리 잡아봐야 약 5.8 kg 정도밖에 생산되지 않는 것까지 더해져 서양에서는 스테이크 3대장의 수장 격으로 취급한다152).
단일 근육이라 굽기가 쉬워 보이지만, 기름기가 적은 탓에 조금이라도 과하게 구웠다가는 퍽퍽해져 요리를 망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기름기가 적어 맛이 좀 심심한 탓에, 마블링을 좋아하는 한국에서는 꽃등심보다 저렴한 값에 팔리고 있다153).
< 그림 30. 소 안심과 사람 골반 근육의 비교>154)
④ 스테이크계의 짬짜면, 티본 & 포터하우스
채끝을 시키자니 안심이 울고, 안심을 시키자니 채끝이 눈에 밟히시는 분? 좋은 스테이크 가게라면 여러분을 위해 티본(T-bone)과 포터하우스 (poterhouse) 스테이크를 준비해 놓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지만, T자형 뼈를 사이에 두고 채끝과 안심이 나란히 붙어 있는 일종의 짬짜면 같은 녀석일 뿐이니 괜히 쫄지 말자.
위에서 살펴보았듯, 안심 역시 꼬리 쪽이 두껍다. 그래서 채끝과 안심을 동시에 자르되, 머리에 가까운 쪽이면 안심이 적게 붙은 티본이 나오고, 꼬리에 가까운 쪽이면 안심이 크게 붙은 포터하우스가 나온다. 그러니 채끝이 고프면 티본을, 안심을 많이 먹고 싶다면 포터하우스를 고르면 된다. (이건 언제나 헷갈리므로 ‘집에 오면(porterHOUSE) 안심이 된다’라고 외워 두자.)
‘한우 티본 스테이크는 없나요?’라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다. 사실 뼈째 썰어내면 그만인 것이라 한우라고 티본을 못 먹을 이유는 없다. 다만, 한우는 공식 소분할부위로 티본/포터하우스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보니, 채끝과 안심을 따로 썰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덕에 아무 정육점이나 들어가서 한우 티본 달라고 하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티본은 무조건 수입산’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퍼진 것이다.
서울에 산다면 발품을 팔아 구입할 수도 있고, 그게 싫다면 인터넷으로 구입하면 쉽다. 하지만 단골 정육점이 있다면 일주일쯤 여유를 두고 티본 스테이크 용으로 썰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제일 쉽고 빠르다.
<그림 31. 티본과 포터하우스의 비교> 머리쪽에서 잘라내 안심의 크기가 작은 것이 티본, 꼬리쪽에서 잘라내 안심의 크기가 큰 것이 포터하우스다. 보다시피 안심 크기는 차이가 많이 나지만, 채끝 크기는 차이가 별로 없으므로, 티본보다 포터하우스가 더 비싸다.156)157)
* 고기는 뜯어야 제맛 : 본갈비(1~5), 꽃갈비(6~8), 참갈비(9~13), 마구리
① 갈비의 왕 생갈비 vs. 고소하고 달콤한 양념갈비
갈비집에 가서 가격표를 보면 희한하게도 생갈비가 양념갈비보다 비싼 것을 알 수 있다. 양념값이 더 들어갔는데 왜 더 저렴한 것일까? 맛이 덜한 부위를 양념으로 보완해 팔 수 있어서? 일부는 사실이다. 고급 생갈비에 쓸 수 있는 부위는 두툼한 꽃갈비 뿐이고, 양념갈비의 경우에는 비교적 살이 적고 마블링이 덜한 본갈비를 쓰기 때문이다.158)
갈비는 당연히 갈빗대에 붙은 살이고, 갈비가 13대 있다는 것도 알겠는데, 대체 왜 부위별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생물학 시간에 배운 숨 쉬는 법을 떠올려 보자. 폐가 스스로 팽창하여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횡격막이 내려가고 갈비뼈에 붙은 근육들이 흉강을 팽창시켜 공기를 빨아들이게 된다. 결국 갈비도 숨을 쉬기 위해 꾸준히 움직여야 하는 근육이고, 그렇다면 큰 힘을 쓰지는 않지만 꾸준히 운동하는 근육인 셈이다. 제대로 숨을 쉬려면 머리 쪽에 가까운 근육은 갈비를 위로 들어올려야 하고, 꼬리 쪽에 가까운 근육은 갈비를 아래로 잡아당겨야 한다. 가운데 있는 근육은? 비교적 움직임이 적다. 그리고 숨을 크게 쉬어 보면 알겠지만, 아래쪽 갈비가 위쪽보다 움직임이 크다. 이 차이가 고기 결의 차이를 만들고, 결국 고기값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비싼 순으로 가장 덜 움직이는 꽃갈비(가운데) > 적당히 움직이는 본갈비(머리쪽) > 많이 움직이는 참갈비(꼬리쪽) 순이다. 갈빗대 번호가 헷갈린다면 ‘야구는 클린업(3,4,5번 타자), 갈비는 그다음(6,7,8번 갈비)’이라 외워 두자.
갈비 중 가장 부드럽고, 살치살과 함께 마블링 투탑을 다투며, 고기도 두툼하게 붙어 있어 상품성이 높은 꽃갈비는 갈비 중의 갈비로 손꼽힌다. 운동량이 적다고는 해도 어찌됐든 갈비인 만큼, 근막이 잘 발달돼 있고, 근섬유가 등심이나 안심에 비해서는 두꺼운 편이다. 이는 진한 맛을 낸다는 장점과 함께, 고기를 질기게 만든다는 단점도 함께 갖는다. 따라서 고기에 칼집을 넣어 이 단점을 해결한 뒤 구워 먹는 것이 최선이다.
단백질 맛과 지방 맛 모두 진한 순서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부위니만큼, 코스의 가장 마지막에 미디움 정도로 구워 먹기를 권한다. 물론 양념한 고기가 있다면 그보다는 앞에 배치하는 편이 낫다.
본갈비는 갈비 삼형제 중 둘째로 꼽히는데, 마블링은 좋지만 근섬유가 조금 질긴 것이 흠이다. 전통적으로 이를 양념으로 해결해 왔는데,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간장의 산 성분과, 양념에 포함된 과일의 단백질 분해 효소들이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덤으로 칼집을 내서 더욱 부드럽게 만들고, 양념이 잘 배어들도록 돕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질기다는 단점을 들어내면 진한 맛이라는 장점만 남으니, 양념갈비 역시 훌륭한 구이용 고기로서 손색이 없다 하겠다. 진한 양념 맛 덕택에 코스의 맨 뒤에 구워 드시기를 권한다.
<그림 32. 본갈비, 꽃갈비, 참갈비의 구분> 갈빗대 번호에 따라 구분되며, 앞쪽부터 본갈비, 꽃갈비, 참갈비 순서다. 등, 배쪽 끄트머리에 붙은 자투리 살이 마구리가 된다.159)
<그림 33. 생갈비(꽃갈비)와 양념갈비(참갈비)> 다이아몬드 칼집을 넣은 생갈비는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다. 고소하고 달콤한 양념 맛으로 먹는 본갈비 역시 씹는 맛이 좋고, 진한 단백질 맛이 강한 양념 맛을 받쳐주는 훌륭한 구이용 부위다.160)
② 갈비탕에 어울리는 참갈비
앞서 살펴보았듯, 갈비 삼형제 중에서는 가장 운동량이 많아 마블링이 적고 질긴 부위가 바로 참갈비이다. 덤으로 뼈와 고기 비율이 좋지 않기까지 해서 (= 뼈가 많고 살이 적다) 상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기도 하다.
뼈에 붙은 채로 굽기에는 살이 적어 초라해 보인다는 단점을 가리기 위해 살만 발라내어 구워 먹기도 한다. 이렇게 뼈를 발라낸 갈비를 갈비살이라 부르는데, 꽃갈비에서 발라내면 꽃갈비살, 본갈비에서 발라내면 본갈비살이 된다. 그러나 떡갈비를 먹더라도 굳이 갈비뼈를 바닥에 붙여 인증을 하는 판에, 그 귀한 꽃갈비와 본갈비에서 뼈를 발라내 팔 이유가 없다. 그래서 별다른 언급 없이 그냥 ‘갈비살’이라고만 쓰여 있다면 참갈비살이라고 보면 된다.
저렴한 갈비집에서는 본갈비, 참갈비 구분 없이 구이용으로 쓰기도 하지만, 고급 갈비집이라면 참갈비는 갈비탕용으로 쓰인다. 2장에서 살펴보았듯, 결이 거칠고 연결조직이 잘 발달된 ‘삶아 먹는 고기’는 장시간 조리했을 때 그 장점을 발휘한다. 이 부위는 갈비탕에게 양보하도록 하자.
③ 너도 갈비냐? 마구리
마구리라는 말이 딱히 친숙하지는 않지만, 사전을 찾아보면 ‘길쭉한 토막, 상자 따위의 양쪽 머리 면’ 이라고 나와 있다161). 그러니 소갈비의 마구리란 갈비뼈의 등쪽 및 배쪽 끄트머리 (이 경우는 늑연골이나 가슴뼈)에 붙은 살이 된다.
뼈에 착 달라붙은 살답게 맛은 진하지만, 뼈에 붙은 상태로는 굽기가 너무 나쁘고, 그렇다고 일일이 발라내자니 손이 너무 가고, 굳이 발라내 본들 구워먹기엔 양도 너무 적은데다 연골도 붙어있고, 좀 질기기까지 한 계륵같은 부위다. 그러니 이 친구는 육수에게 양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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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49) 투른느도 로시니는 푸아그라를 얹은 안심 스테이크로,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로 유명한 작곡가 로시니의 이름을 땄다. 샤토브리앙은 안심의 가장 두툼한 부위를 써서 만든 스테이크인데, 작가, 외교관, 정치가 등으로 활약했던 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의 성을 딴 것이다.
150) 영어로는 Peach Melba. 요리계의 올타임 레전드 에스코피에가 자신의 단골손님이자 당대를 휩쓸던 가수 넬리 멜바에게 헌정한 요리이다. 시럽에 절인 복숭아, 라스베리 퓨레,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이 메뉴는 전설이 되었다.
151) 주선태, 『고기박사 필로 교수가 알려주는 82가지 고기수첩』, 2012
물론 1kg도 채 안 되는 생산량을 자랑하는 몇몇 특수부위들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양이다. 하지만 수십 kg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메이저 부위들인 등심, 채끝과 비교하면 적은 양이며, 스테이크 집에서의 수요를 생각해보면 더욱 더 그렇다.
152) Item No. 189 - Beef Loin, Tenderloin, Full / 1189 - Beef Loin, Tenderloin Steak
USDA, 『Institutional Meat Purchase Specifications - Fresh beef series 100』, 2014
153) E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 가격: 꽃등심 8,450원, 안심 7,700원 (1등급 한우, 100g 당 정가, 2018년 2월 27일 현재).
154) 인체 해부도는 Henry Gray, 『Anatomy of the Human Body』, 1918,
통 안심 사진은 pixabay,
썰어놓은 안심 사진은
155) 미국 규정에는 정확한 커팅 위치를 지정하는 대신, 붙어 있는 안심의 크기에 따라 둘을 분류한다. 등뼈의 길이방향과 평행하게 안심의 길이를 재는데, 가장 넓은 부위가 3.2cm (1.25 inch) 이상이면 포터하우스, 1.3cm (0.5 inch) 이상이면 티본으로 부른다.
Item No. 1173 - Beef Loin, Porterhouse Steak / 1174 - Beef Loin, T- Bone Steak
156) 그래서인지 캐나다 규정집에는 “포터하우스를 티본이라고 해도 되지만, 티본을 포터하우스로 부르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NOTE: PORTERHOUSE may also be referred to as T-BONE, yet T-BONE, as described, may not be referred to as PORTERHOUSE.)
Canadian Food Inspection Agency, 『Meat Cuts Manual』, 2004
157) 두 사진 모두 flickr, Carnivore Locavore 사진첩에서 가져옴.
t-bone: https://www.flickr.com/photos/46722918@N08/8637752697
porterhouse: https://www.flickr.com/photos/46722918@N08/8638951128
158) 고급 갈비집에서는 참갈비를 갈비탕용으로 쓰지만, 저렴한 갈비집에서는 본갈비와 참갈비 구분 없이 모두 양념갈비용으로 쓰기도 한다. 단, 마구리를 구워먹으라고 내놓는 집은 답이 없는 경우이니 호갱이 되지 말고 다른 집으로 가야 한다.
159) 수요미식회 소갈비편 (2015년 12월 16일 방송분) 캡쳐
160) 좌측: 벽제설화한우생갈비 (http://www.ibjgalbi.com/story/story1)
우측: 조선옥 양념갈비 (수요미식회 소갈비편 (2015년 12월 16일 방송분) 캡쳐)
161) 네이버 국어사전, 마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