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외국인 친구 가쟈사라씨는 얼굴이 한국의 믹스커피 색깔과 비슷하고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하며 유머감각이 철철 넘쳐서 그와 함께 식사를 하면 웃다가 기도로 음식물이 넘어가는 것을 조심해야 했다. 그는 언젠가는 날 웃겨서 죽이겠다고 늘상 웃으면서 말했다.
날 죽이겠다는 사람과 난 점점 친해졌다.
하루는 그와 마침내 사우나까지 함께 가게 되었는데 목욕탕에서 처음으로 벗은 그의 몸을 보게 된 나는 너무 놀랐다. 군살이 붙은 그의 허리께에 길이가 내 손바닥만한 칼자국이 나 있었다. 흉터는 희미하지만 확연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누런 장판에 담뱃불 떨구면 생기는 자국이 갖는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사우나 안에서 땀을 질질 흘리며 조심스럽게 그의 흉터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그는 웃으면서, 아 이게 도마위에서 펄떡거리다 생긴 상처라고 그랬다. 자기는 원래 살던 고향에서 물고기였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농담인가 싶어서, 허허 웃으면서, 아니 당신 그럼 뭐 인어공주라도 된다는거요, 라고 했는데, 그는 애매하게 웃더니, 그러다가 점점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는, 자기는 어렸을 적에 고향에서 죽어야만 했다고 했다.
그 작은 마을에는 지배적이며 절대적인 미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마을 전체를 파멸로 이끄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는 아이가 있다고 믿었다. 마을의 제사장은 대략 4년에서 5년에 한번 꼴로 그런 아이가 태어난다고 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뿌리가 악마라고 믿었고, 그렇기에 신의 저주를 받고 태어난 아이는 커서 스스로 마을사람들 모두를 파멸로 이끈다는 미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 아이를 죽여야만 했는데, 태어나자마자 죽이면 또한 신의 저주를 받는다는 이유로, 그가 열일곱해를 무사히 살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 전날 죽이는 것이 관습화되어 있었다. 그 마을에서는 18살부터 성인이었으므로, 더이상 아이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나이에 죽이는 셈이었다.
그건 아주 오래된 미신이요 규칙이었다. 가자샤라씨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때도 있었던 미신이었고, 어쩌면 그 땅에 사람이 모여 살던 때부터 생긴 규칙일지도 몰랐다. 흉터같은 미신이었다.
가쟈사라씨가 태어나던 날 밤, 제사장은 북쪽에서 빛나는 푸른별과 남쪽에서 빛나는 붉은 별이 다른 별무리를 가로질러 밤하늘 한복판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엇갈려 달아나는' 듯한 움직임을 보았고, 가쟈사라씨가 운명의 저주를 받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다음날 마을의 어른들은 모두 그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의 부모님은 매우 절망했으나,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것보다는 자신들의 아이를 죽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아이는 또 나으면 되니까, 라고 가쟈사라는 웃으며 말했다.- 가쟈사라가 성장하는 17년동안 매일매일 굳혀갔다. 불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저주받은 부모들은 다들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걸 허용했다.
'선택 받은' 아이라는 사실을 아이에게 알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차별 없이 대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아이가 '제가 저주받았나요?'라고 스스로 물어본다면, 그들은 사실을 숨김 없이 밝힐 것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누군가는 전체를 위해 죽어야한다고 배웠고, 또한 그 죽음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배웠다.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인 아이들의 신화는 잠자리 머리맡에서 옛날이야기처럼 전해져 내려왔다.
가쟈사라의 아버지는, 가자샤라가 7살이 되던 해에, 그날따라 술에 취한 나머지, 가쟈사라에게 너는 열일곱살에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해버렸다. 아버지의 태도가 너무 담담했던데다가 아직 어렸던 그는 아버지가 그저 술주정을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어쩐지 전날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고, 그 말이 가진 무게를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종일 속으로 울었다고 했다. 언젠가 죽임을 당해야 할 운명인것을 알게 된 티를 내면 안 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날부터 가쟈사라는 열일곱살 이후의 생을 꿈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