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간간히 책장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사두고 읽지 않은 책들이 태산이었다. 나는 왜 읽지도 않을 책을 이리도 샀을까. 이제라도 읽게 되었으니 상관없는 일이다. 책 한 권을 골라 펼친다. 익숙하지 않은 유명하지 않은 작가다. 작가 소개를 흘낏 본다. 익숙하고 유명한, 하지만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그럼에도 제법 잘 쓴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핏줄이었다. 아마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샀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은 필요 이상의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다. 소설은 기대 이상이었다. 피의 힘일까. 이내 나는 소설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다 읽고 작가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그는 몇 년 전에 타계했다. 아쉬운 일이다. 물론 작가가 살아있다고 해서 내 삶이 변할 것도 없고, 나와 작가 사이의 관계가 변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어딘가 아쉬운 일이다. 나는 미래를, 차기작을 기대할 수 없다. 데뷔한 지 20년 된, 당장 내일 은퇴 선언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아티스트의 팬으로 살아간다는 건, 혹은 몇몇 요절한 아티스트들의 팬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좋아할 수 있을 때 좋아하고, 기대할 수 있을 때 기대하고, 갚을 수 있을 때 갚아야 한다.
작가와 나를 이어준 사람을 확인한다. 번역이 좋거나 나쁠 때 번역자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에는 전자였다. 물론 나는 소설의 원문을 읽어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으로부터 추론되는 원문 문장의 정서는 굉장히 까다롭고 미묘한 느낌이었다. 이야. 대단한데. 누가 번역했지. 앗.
그렇게 나는 십 몇 년 전의 부채와 마주하게 되었다.
십 몇 년 전 이맘때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사이의 짧은 시간,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일종의 대입 축하 여행 같은 것이었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리고 여행지에는 핏줄과 친분이 복잡하게 얽힌-그러니까 친척의 친구나 친구의 친척이라고 해 두자-한 분 살고 계셨다. 어찌저찌 일주일 간 그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 무렵의 일들이 그렇듯, 자세한 내막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친구의 조카가 서울에 놀러오며 내게 몸을 의탁하려 한다면? 물론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밤에 출근하고 새벽에 들어와서 대낮에 일어나는 바텐더에게 사람을 맡길 얼간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러모로 그다지 품행이 단정하다거나, 타인에게 신뢰를 주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니까. 그래도 만약에 만약에, 친구 중 누군가가 조카랍시고 스무 살짜리 코찔찔이를 들이밀며 내게 잠시 맡겨두려 한다면? 받아주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적절하게 아침을 챙겨준다거나, 본인의 애인과 함께 근사한 곳에 데려가 저녁을 사 준다거나 하는 호의를 베풀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그게 실제로 내 피와 이어진 조카라 할지라도, 아마도. 하지만 나는 그런 호의를 받았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까맣게. 후에 몇 번 뵈었다. 거기서 감사의 인사 정도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나는 내가 진 신세의 무게를 몰랐고, 이제 나는 당시 그분의 나이 정도가 되어 좀 더 무엇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민망해졌다.
이 모든 호의와 민망함을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지. 상황이 좋지 않다. 뭐, 복잡한 건 아니다. 그저 돈이 없다. 뭐, 벌이는 최악을 간신히 면하고 있지만 치워야 할 빚이 너무 많다. 그런 것이다. 이십대가 삼십대에게 할 수 있는 보은이라면 감사의 말이나 가벼운 선물 정도면 될 것이다. 일 년 정도 연체한 보은이라면 괜찮은 식사나 적절한 선물 정도면 될 것이다. 하지만 삼십대가 오십대에게, 십 몇 년을 묵힌 보은이라면, 그만한 무게를 지녀야 할 게 아닌가. 이건 마음이나 말 따위로 갚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갚을 수가 없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당장 갚아야 할 돈들이 신세들이 태산이다. 당장 나는 내 곁에 있는 일상적으로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폐를 많이 끼치고 있다. 자원이 있다면 일상적으로 접하는 그들에게 먼저 감사와 삶을 돌려야 할 것이다. 효도라거나 하는 것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래 된 은혜의 이자는 계속 쌓여갈 것이고 내 마음은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상황 자체도 그다지 유쾌한 건 아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나와 그분을 이어주는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그렇게 그분의 안부를 묻고, 연락처를 받았다. 이런. 그분은 내가 다음 출장을 생각하는 곳 근처에 살고 계셨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이거, 다음 출장 때 반드시 처리해야 할 문제가 되었군. 이걸 처리하지 못하면, 출장을 갈 수 없을 것 같아.
천우신조, 그분께서 곧 짧게 방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아. 내 홈그라운드에서 처리하자. 나는 그렇게 나쁜 바텐더는 아니고, 내 바도 어찌저찌 코리아 베스트 바 100의 말석에 이름을 올렸으니까. 좋은 술을 멋지게 대접해야지. 그렇게 손쉽게 십 몇 년 묵은 보은을 해치워버리자. 조금 양심의 가책이 있지만, 역시 양심보다는 실재가 우선하는 것 아닌가.
대충 고민을 그렇게 정리하고 오늘에서야, 방금 전에,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저는 누구누구입니다. 어쩌고 저쩌고. 하여 감사합니다. 하는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민망함을 떨쳐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카카오톡에 1이 없어졌다. 그분에게 답이 온 것이다. 그분께서는 아쉽게도 이번 방한 일정은 스케쥴이 가득 차 있으니, 이쪽 올 일 있을 때 한번 보자고 이야기하셨다. 그래, 차라리 이 편이 홀가분하고 확실할 것이다. 나는 다음 출장에서-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근시일 내에-신세를 진 그 분께, 그리고 이제는 남편이 된 그분의 애인에게, 아주 멋진 저녁 식사를 대접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이미 늦어버린 은혜를 갚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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