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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3/04 12:39:21
Name 이치죠 호타루
Subject [일반] 작전과 작전 사이 (5) - 공피고아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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攻彼顧我
위기십결 제3.
적을 공격할 때는 나를 돌아보라.
무작정 공격하다 반격을 얻어맞아 패배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돌아보라는 말.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지도를 먼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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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러시아의 지도입니다. 검은 선이 철로, 주황색 선이 주 도로망이죠. 1942년도 전장 지도와 비교해 봐도 크게 다르지 않고 무엇보다 중요 라인(독일군과 소련군이 대치 중인 전선)에 이르기까지의 보급로가 거의 차이가 없어서 그냥 가져와 봤습니다. 지금까지 모자이스크니 그자츠크니 뱌지마니 르제프니 하면서 여기저기 참 헷갈리셨을 텐데 위치를 잡아보는 게 지도를 보는 첫째 목적이고, 둘째는 소련군의 공격에 대하여 논하기 위함입니다.

르제프 - 그자츠크 - 칼루가로 이어지는 소위 말하는 쾨니히스베르크 선까지 독일군이 후퇴했다고 이야기를 했었죠. 그리고 소련군은 그러한 독일군을 전면적으로 박살내면서 중부 집단군을 크게 포위 섬멸하는 한편 뱌지마를 탈환할 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1월 초부터 남쪽의 칼루가 일대의 틈은 벌어질 대로 벌어져서 독일군의 방어선에 큰 구멍이 뚫렸던 터라 실제로 독일군의 대 위기라 할 만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공격하는 건 좋다 칩시다. 근데 대체 무슨 루트로 공격을 한단 말입니까? 상대적으로 기동과 보급이 용이한 도로망과 철도망이 하필이면 딱 붙어 버린 덕분에 공격 루트가 제한되어 버렀고, 소련군은 결국 공세를 위해서 당시로서 가장 중요했던 기동력이라는 요소가 반감된 채 공격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 이는 소련군에게 있어서 꼭 불리하게만 작용한 것은 아니었는데, 배후를 어지럽히는 소련군을 소탕하기에는 독일군도 지형과 날씨가 상당히 부담이 되었기 떄문이죠. 그래서 늦봄에 가서야 독일군이 배후를 정리합니다.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하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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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똑같은 지역인데, 녹색이 죄다 삼림과 늪지대입니다.

이런 모양새였으니 공격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방어자(독일군)에게 유리한 결과를 안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위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선봉 부대가 빠른 기동력으로 돌파를 시도한 후 그 틈으로 물밀듯이 밀고들어와 거대한 솥을 만드는 것이 정석인데, 그 첫 단추부터 제대로 꼬여버린 거죠. 여기에 더해, 스탈린의 과욕이 화를 키웠습니다. 스탈린은 전면적으로 독일군이 약체화된 것을 보고 독일군이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중부 집단군을 노렸어야 할 목표가, 중부 집단군과 북부 집단군 전체를 노리는 엄청난 스케일로 변경되었습니다. 남부에서도 공세가 개시된 것은 덤이었죠. 쉽게 말해서 전 전선에 대해서 총공세가 실시된 것인데, 물론 독일군도 약체화되긴 했습니다만 바르바로사 작전 내내 여섯 달 동안 그야말로 실컷 두들겨맞은 소련군 역시 약체화된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주코프가 기를 쓰고 반대를 했습니다만 소용이 없었죠. 이런 상황에서는 성과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남쪽에는 이미 교두보가 확보되어 있었고(칼루가), 이제 북쪽의 교두보 - 다시 말해서 르제프가 확보되면 철길 등을 이용해 뱌지마로 물밀듯이 진격할 수 있었고, 이는 곧 중부 집단군의 포위를 의미했기에 소련군은 르제프 인근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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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 섬멸을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르제프를 넘어 뱌지마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무려 다섯 개 야전군(22, 39, 29, 31, 30)과 1개 기병군단(11)이 제9군을 공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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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삼림 지대에서 제3충격군과 제4충격군은 토로페츠 방면으로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이 조공이 성공할 경우 갖는 이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로 제9군과 제16군간의 유기적인 연계를 차단하고, 둘째로 중요 도시인 스몰렌스크(남쪽)과 벨리키예 루키(남서쪽)을 탈환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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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좌익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지도 않았습니다. 이쪽은 남쪽에 열린 구멍을 이용해서 밀고들어가 남쪽에서 뱌지마를 공격할 심산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아마도 바그라티온 작전에 버금가는 대위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된 것은 한 개의 군(그 군이 좀 거대해서 탈이었지만)에 불과(?)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무려 4개의 군(제9군, 제4군, 제3기갑군, 제4기갑군)이 포위 섬멸당할 위기였으니 소련군이 온전히 이 곳에만 전력을 집중했으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봅니다. 백 프로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승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공격 능력을 반감시킨 것도 소련군으로서는 죽을 맛이었는데, 여기에 더해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집니다. 분명히 뚫리고도 남았어야 할 르제프가 도통 뚫리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죠.

그 중심에는 1월 15일자로 제9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발터 모델이 있었습니다.

제9군은 그야말로 삼면에서 공격을 받는 상황이라 절대 효율적인 전투를 벌일래야 벌일 수가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돌출부에서 피해 없이 병력을 물리기만 해도 잘 했다고 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뱌지마로 가는 길이 열려버리니 중부 집단군 전체의 목숨이 위험할 판이라 독일군으로서는 뭔 수를 쓰더라도 삼면에서의 피해를 받아낼 걸 각오하면서 무조건 버텨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그래서 애초에 이런 상황을 만들지 말고 빨리 후퇴하여 재정비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모델은 병력을 온존한 것도 모자라서 아예 돌출부에서 제대로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이게 독일군 중부 집단군의 전멸을 막았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몇 번이고 강조하는데 르제프는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뱌지마가 양쪽에서 공격받으면 오래 버틸 수 없고, 그것은 곧 중부 집단군이 거대한 포위망 안에 갇힌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모델은 그런 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적을 막아낸 것이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다섯 가지 비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 최신의 정보망. 정보만큼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드뭅니다. 괜히 간첩이 최대의 포상을 받고 또 괜히 스파이를 즉결 처형해도 제네바 협약에 위배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몇천 년 전부터 손자가 줄창 강조해 온 것이 간첩과 정보죠.
- 선형 배치. 그 방어선이 얼마나 얇던지간에 상관없이 최대한 구멍 없이 연속적으로 병력을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는군요. 물론 보헤미아의 상병처럼 냅다 모든 병력을 최전선에다 박아버리고 후퇴불가 이딴 이야기를 하자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 적의 돌파에 대응하여 바로 반격할 수 있는 예비대. 바로 이 예비대를 항상 확보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선형 배치가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포병 집중 및 직접 통제. 여기서 말하는 집중이란 포병을 찍어내는 데 주력했다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포병부대를 한데 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걸 자기가 직접 통제했죠. 모델과 다른 독일군 장교들의 차이가 여기에서 드러나는데, 모델은 쉽게 말하면 자기가 모든 걸 쥐고 통제하는 스타일이었고, 다른 독일군 장교들은 임무분권형이라 하여 정해진 목표까지 알아서 길을 찾도록 내버려두는 타입이었다는군요.
- 다수의 정지 방어선. 이거 원래 히틀러가 금지했던 사항입니다. 후방에 방어선이 있으면 그걸 믿고 최전선의 병사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이었죠. 모델은 이러한 히틀러의 지시 사항을 가볍게 씹어 버립니다.

이러한 사항들이 있었기 때문에 훗날 모델이 큰 부상을 입고 장기간 전장에서 이탈해 있었을 당시에도 제9군이 멀쩡하게 르제프를 쥐고 버틸 수 있었던 거죠. 보통 명장이라 하면 스스로 뛰어난 성과를 발휘하는 것에서 그 능력을 찾을 수 있는데, 모델은 그를 넘어서 자기가 없어도 뛰어난 성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명장 이상의 명장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모델 개인에 대한 찬양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공세의 진행상황을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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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간 막대한 병력을 퍼부었는데, 토로페츠 방면의 조공은 그런대로 꽤 성공적이었지만 정작 주공인 르제프는 이러한 모델의 능란한 방어에 휘말려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11기병군단이 어찌어찌 후방에 침투하긴 했습니다만 워낙 전력이 허약하여 독일군의 교통선을 제대로 차단할 수 없었죠. 녹색 글자는 러시아 국방부에서 활용하고 있는 지도가 구글 지도라서 저게 표기된 거지 전쟁과는 전혀 상관없으니 패스하시면 됩니다(저거, 해석하면 스몰렌스크 호수 국립 공원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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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방면도, 상당히 독일군을 밀어낼 수 있었긴 했습니다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단, 제33군의 경우 처음에 제가 보여드렸던 지도에서의 두 도로망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동이 용이했고, 따라서 방어선을 뚫어 뱌지마 코앞까지 진격해 오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리 되니 모델의 방어가 얼마나 중요한 상황이었는지 실감이 가시는지요. 어쩌면 (낫질 작전 때처럼 소 뒷걸음질하다가 쥐 잡는 격이었겠지만) 히틀러의 현지사수 후퇴불가라는 명령은 적어도 르제프에서만큼은 유효했다는 반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렇게 복잡했던 1942년 1월이 지나고 2월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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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티아
18/03/04 16:19
수정 아이콘
항상 글만 읽다가 댓글 처음으로 남겨봅니다. 언제나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다음번 글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김태동 No.1
18/03/04 16:3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Multivitamin
18/03/04 20:41
수정 아이콘
좋은 정성글에 항상 추천만 하다가 댓글 달고 갑니다.
미키맨틀
18/03/04 22:31
수정 아이콘
그런데 정작 독일군은 세부적인 정보는 몰라도 전략적 규모의 정보전에서는 무척 약한 모습을 보였죠.
에니그마 털린 것부터 시작해서 말이죠.
이치죠 호타루
18/03/06 23:08
수정 아이콘
애초에 정보전 능력이라고 할 만한 게 있었나 싶습니다. 정보부의 총책임자인 빌헬름 카나리스가 검은 오케스트라의 고문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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