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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3/03 12:57:14
Name 시드마이어
Link #1 https://brunch.co.kr/@skykamja24/124
Subject [일반]  어머니의 교육법 (수정됨)
모든 사람은 자기에 대해선 박식하다.



초등학생까지 나는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해왔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본 시험에서 450명중 180등이었다. 잘한다는 자부심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성적은 내려갔다. 중학생이 끝날 무렵엔 300등즈음까지 내려왔고, 사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살겠다는 굳은 포부도 있었다.



보통의 경우 성적이 내려가면 위기감은 부모님들이 느낀다. 놀랍게도 시험친 당사자는 예상한 결과에 두려움이 없다. 위기의 부모님은 학원에 돈을 지출한다. 몇몇은 매를 들어 정신을 refresh 한다. 이 외에도 대북제재를 가하듯 용돈을 줄이거나, 스마트폰 압수, 컴퓨터 사용금지 등의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음식을 맛본 후 비참한 평가를 내리는 고든램지를 보는 것 같다. ("네 국어 성적을 보니 까막눈이시던 할아버지가 더 잘 보실거 같구나.")



나 역시 내 점수에 대해 박식했다. 국어 점수는 평균 이하였고, 영어는 항상 나빴다. 이상하게 운이 좋았던 미술만 점수가 높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국어, 영어는 보이지 않으셨나보다. 언제나 가장 잘 본 미술만 보셨다.



단 한 번도 점수로 혼내지 않으셨다. 가장 잘 본 과목을 칭찬하셨고,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초등학교 밖에 못나와서 공부도 못했는데, 아들은 엄청 잘했네!"



나는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내 햇볕정책의 큰 수혜자였다. 공부하지 않을 자유를 가지고 살았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 부모님의 기대를 위해 살지 않았다. 점수가 높던 낮던 언제나 믿고, 칭찬해주신 기억밖에 없다. 그 이유 때문이었을까. 나는 고등학생 때가 되어서야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영어 독해집과 단어장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3년간 점수를 올려 전교 1등으로 졸업했다.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인 이유가 있다. 
본인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분간하지 못하기에 어리다.

어른은 모래성이 영원할 것처럼 놀 수 없다.

나는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다. 그러나 부모가 되면 아이의 편이고 싶다.
장점말곤 보지 않으시던 어머니처럼 한결같이 응원해주고 싶다.

나는 점수를 평가하는 고든 램지가 아니라 언제나 네 편인 부모님이란걸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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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월(陳山月)
18/03/03 13:01
수정 아이콘
그러지 못한 부모가 되고 있는 것 같아 딸아이에게 미안하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아점화한틱
18/03/03 13:15
수정 아이콘
저도 저런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늘 생각하지만, 저렇게 생각하는 부모는 많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로 저렇게 대해주는 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죠. 만약 내 아이가 막상 다른과목 다 낙제점을 받아왔는데 미술만 잘 받았다고 한다면 거기서 미술을 잘하는구나! 이렇게 칭찬해줄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은 없네요. 오히려 다른 과목들을 어떻게 올려줘야할지 걱정부터 들듯. 이런걸 생각해보면 글쓴이분 부모님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서린언니
18/03/03 13:23
수정 아이콘
크 어머님이 교사라서 초딩때부터 온갖 문제집과 학습지를 풀었습니다. 문제풀이 재능산수 웅진 어쩌구 홈스터디 세상에 학습지가 그렇게 많은줄 몰랐...
결혼생각도 없지만 아이한테 조기교육 절대 안시킵니다. 진짜 아무것도 안시킬거임....
아점화한틱
18/03/03 13:27
수정 아이콘
조기교육이 오히려 애들을 공부에 흥미를 잃게 만들고, 조금씩 성장하는 재미를 없애고 사유하기보다는 암기하는 식의 바보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모든 폐단을 다 알고있습니다만, 이젠 다른게 걱정되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조기교육, 학원 등이 일상이 되다보니 막상 나중에 내 자식이 친구하나 없이 지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남들 다 알고있는걸 저만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일종의 열등감을 느끼게 될 우려도 있구요... 막상 공교육인 초등학교에서만도 '이정도는 다 알고 왔겠지'에 맞춰서 수업을 한다고 하니...ㅠ
최종병기캐리어
18/03/03 13:36
수정 아이콘
제 주변에 대다수의 학부형들이 처음에는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어쩔수 없이 선행학습을 시키더라구요.

학교에서도 '어련히' 선행학습 해왔거니 생각하고 수업을 진행하는게 크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가장 큰 요인은... 모르면 '왕따' 당한답니다. 우리 어릴 때 '바보'라고 놀림받는것처럼 말이죠. 지인이 선행학습 하나도 안시키고 하고싶은거만 하게끔 하고 아이를 키웠는데, 어느날 아이가 '엄마, 나 바보야? 애들은 다 아는데 난 하나도 몰라.. 애들이 나 바보래'라면서 펑펑 울었다고 하더군요. 평범하게 키우려면 남들하는만큼은 해야하는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하더라구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18/03/03 16:44
수정 아이콘
좋은 생각이신데 그러려면 어디 산골 초등학교 가던가 국제학교 가던가 해외가던가 아니면 혁신초등학교라도 보내야 합니다. 일반초등학교는 ....
Blooddonor
18/03/03 13:29
수정 아이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모님이 때리거나 욕을 했어도 글쓴이의 성적은 지금과 비슷할 것 같아요. 부모님이 훌륭한 점은, 그 과정에서 가족관계가 무너지지 않게 하셨다는 것이겠죠.
신동엽
18/03/03 17:43
수정 아이콘
여기에 동감합니다.
웨인루구니
18/03/03 19:24
수정 아이콘
오. 그런 관점도 있군요.
Janzisuka
18/03/03 19:39
수정 아이콘
저는 저희 어머님의 교육방식에 감사하며 삽니다.

저희 사촌들의 경우는 수능까지 집에 TV없이 살고 무조건 공부만 시켰거든요
(물론...누나들 전부 공부쪽에서는 상당한 경지를...취업도 변리사도 되고..뭐...여튼)

반대로 저희 어머니는 조금 달랐어요.
국민학교까지 걸어서 30-40분 걸리는 전원주택단지에 살았는데
당시 아이들에게 인기있던 미술학원, 컴퓨터학원, 주산학원 등을 안보내셨어요.
(통학버스가 저희 동네는 안간다고해서....퉷퉷)

평일은
학교-과학반or보이스카웃-개울가-집-강아지(라기엔 커다란 진돗개)산책
-저녁식사-피아노수업(동네누나네집)-방에서 책보다가 잠들기

주말은
마당잡초뽑기-유채화놀이(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림좀 그리싶...)-동네에서 알아서 돌아다니기

동네에 제 나이또래가 없는 곳이라 산아래 전원주택단지+수인산업도로(위험)
친구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시내에서 형들에게 팽이돌리는 법 같은걸 배워오셔서 알려주시거나
마당에서 럭비공 갖고 놀았네요

공부에 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아침마당에 그때 그사람들?주제로 출연하신적이 있는데 저를 [방목]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지금 여쭤봐도 어릴때 공부건 뭐건 원하는걸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데 시킨다고 하겠냐 라고 하시고
저야 막내고모나 나이차이 꽤 나는 누나들의 책들을 어릴 적부터 욕심내고 읽고 좋아해서
전교1등을 유지하거나 올림피아드에 흥미가 있었고..여동생은 정반대로 육상부쪽에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전학관련으로 상담하러 처음으로 학교 오신 어머니가 교감선생님의 만류를 듣고 제 성적을 처음 아셨을 정도로 관심이 없...

중학교 입학전에 문제은행이라는 학습지를 접하였는데 엄청 어렵고 재미있는 수학문제가 많더라구요
어머니테 졸라서 개인집에서 하는 공부모임에 나가서 형누나들하고 고3진도를 끝냈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 후로..공부에 취미가 없어진 저는...연극부를 들어가는데..(뭐 이후는 제가 만든 인생이니..)

아버지는 그림이 꿈이셨는데 처음 해외입상작을 집안에 자랑하는 순간 할아버지의 분노로
공부와 럭비만 하신 케이스.
어머니는 부잣집에서 이모들과 그룹사운드 리드기타 출신..

본인들의 격은 것을 그대로 되물림 하는것이 아니라 장단점을 아시고 방목(?)과 조언을 잘 해주셨습니다.
동생이 엇나가더라도 어머니는 크게 혼내시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느끼고 힘들떄까지 두셨죠..
(서른이 되어서 직장이라는 것의 필요성을 느낄때까지...)
제가 의대원서를 없애고 수능도 마음대로 칠 적에도 냅두셨습니다 격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좋아하는 것을 하기에 전공은 중요하지 않으며 배움의 폭이 넓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에서 원하는 삶을 살다가 외할아버지의 질환과 할머님의 별세로
대학과 목표였던 여군생활을 포기하시고 직장을 다니시다 결혼하셨죠.
저희들에게 본인깨서 격은 세상이 옳다 그르다라는 판단을 내리면 그건 어머님의 인생이지
저희들의 인생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실패건 좌절이건 최대한 젊을때 격을 만큼 마음껏 격어라]
[마음가는 방향이 생긴다면 그게 바닥을 치더라도 최선을 다해보아라]
[그렇게 힘들어지면 너희 먹을 저녁은 차려놓을 식탁이 있으니 힘내라]

매일매일 어머님께 감사합니다.
물론 오늘도 저에게 카페를 맡기고 아버님과 영화보러 가셨지만요.
Janzisuka
18/03/03 19:55
수정 아이콘
아 맞다...첫 성인식에 이것저것 선물 집에 가져왔는데
어머님께서 축하한다고 책상에 놔두신 콘돔은 아직도 잊지 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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