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올바른 도덕관대로 살수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처참히 무너져내렸던건,
고1즈음 첫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스스로가 생각보다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이라는것을 자각했을때는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않은 나이였고,
내가 꽤나 심각한 질투의 소유자라는것을 자각하게 된 날 또한 이십대의 어느 겨울즈음이었던것 같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
그리고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타인의 고통으로 기쁨을 느끼는) 라는 독일의 단어를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꽤나 되는듯 보였다.
친구들보다 이른 나이에 취직을 해서 녀석들에게 맛있는 밥을 사줄때에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내가 취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리 좋은 직군이 아니었다는 방증이었고,
친구들이 하나둘 공채로 입사하면서 소득과 직군 모두 한번에 나를 추월했을때는 좋은것을 얻어먹어도 속이 마냥 편하지 않았다.
그결과 나는 정말 속이 좁고 쓰레기같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동안 고생했던 친구들이 마침내 성과를 이룩한 것임에도 나는 백프로 순수한 축하를 건낼 수 없었고,
낙방한 누군가에게 위로의 술한잔을 사주면서도 마음한켠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신기한것은 경력이 쌓여 정규직이 전환된 뒤,
나와 고만고만한 업종에 별로 차이나지 않는 소득으로 취업(혹은 버는만틈 빡세게 굴러야하는 직업) 하는 친구들에게는 털끝하나의 질투 없이 순수한 축하의 마음이 깃들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저 위의 두가지 말보다 나를 좀더 정확히 표현해주는 것을 찾을 수가 있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 는 말.
따지고 보면 친구가 낙방한 회사는 너무나도 좋은 회사였고,
취업을 하게 된다면 단번에 나라는 존재가 초라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자격지심이 가득했었다.
이십년가까이 보아온 죽마고우들이 단지 좋은곳에 취업을 했다고 해서 나를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단순히 무조건 비교우위에 서고싶은게 아니다.
나는 그저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발을 한자리 걸치고 싶었던 것이다.
예전에 비해 조금더 먹고살만해지자,
그리고 스스로 회사가 아닌 다른것에 가치를 매기기 시작하자 저주처럼 나를 따라다니던 내안의 질투와 샤덴프로이데가 거짓말같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타인의 아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스스로가 적응하지 못했을 정도로.
내가 갑자기 착해진걸까.
혹은 개과천선이라도 한것일까.
전혀 아니겠지.
그저 내가 타인을 위해 마음을 쓸 수 있는 곳간이 조금 더 넓어졌을 뿐이었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늘 공간이 부족했던 곳간이었다.
조금 더 먹고 살만해지자 약간 늘어난 마음의 곳간이,
나의 더러운 패시브들 말고 다른것들을 허락하기 시작한것이다.
지금이야 어느정도 좋은 마음을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나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지금도 마음의 곳간을 단숨에 꽉꽉 채우는 금수저 아무개를 보면 배알이 꼴리고,
언제라도 내 가치관이나 사정이 팍팍해지면 넓어진 곳간은 언제 그랬냐는듯 협소하게 줄어들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겠지.
예전에 적은 월급만으로 이리저리 지출을 줄이기위해 궁리를 한 적이 있었다.
통장을 쪼개보고 매일매일 가계부를 작성하고 생활패턴을 바꿔보고.
그러나 적지않은 시도후 내가 내린 결론은 나란 인간, 씀씀이를 줄이는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고,
'씀씀이를 줄일 수 없다면 소득을 키우자' 는 신조로 투잡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도 어찌보면 사정이 비슷하지 않은가.
마음의 곳간에 항상 자리잡고 있는 졸렬함을 없앨 수 없다면,
최대한 잘 살아서 곳간의 여유분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내가 떨칠수 없는 나쁜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그들을 위해 진심을 다할 수 있을테니까.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 격하게 공감합니다.
내가 여유가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더라구요. 곳간이 여유로운 적이 많지 않아서... 늘 궁상맞게 사네요.
나이가 조금 들어서 그런지...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성취에는 배가 많이 아프지 않더라구요. 단지 제 재능과 노력이 부족함을 탓할 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게... 개인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해당되는 게, 먹고 살만하면 사회 분위기도 훈훈해지거든요.
2000년대 중후반의 화두가 "웰빙"이었고, 2010년도 이후로 넘어오면서 "헬조선"으로 바뀐 것도 다 먹고살기 힘들어져서 그런 거고,
TV에 나오는 먹방(?) 프로그램만 봐도, 예전에는 건강식, 자연식 같은 걸 찾다가, 이후로는 맛있으면 장땡... 식으로 변하기도 하고요.
클란턴의 "중요한 건 경제야. 바보야."는 진짜 명언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