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엔, 세잎클로버 사이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을 좋아했다. 네잎은 행운, 세잎은 행운을 품은 희망, 난 희망 사이에서 행운을 찾았다.
성인이 된 지금은 더이상 클로버밭을 뒤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삶의 형태가 별반 다르지는 않다. 클로버 대신 하루하루 벌어지는 무미건조한 일들 사이에서, 가끔 생기는 좋은 일을 통해 잠깐이나마 행복을 만끽한다. 길을 건너는데 때마침 신호가 바뀌니 기분이 좋고, 버스를 타려는데 때마침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해서 기분이 좋다. 참으로 사소한 행운이지만, 기본적으로 사는게 워낙 팍팍하다보니 별게 다 기분이 좋게 느껴진다.
뭐 행운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나에게 무엇보다도 큰 행운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바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나이가 들 수록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인지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각자의 삶이 이토록 다르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오래동안 살았는데도, 마음이 맞아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듯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나에겐 10년지기 친구가 한명 있다. 녀석과 친해진 계기는 몇가지를 꼽을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성격도 한몫을 했을테고, 이런저런 생각을 글로 즐겨 적는다는 것도 똑같다. 취향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녀석은 어머니가 없고 난 아버지가 없다. 고3쯤에 난 아버지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고, 녀석은 얼마 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 부분에서 참 씁쓸하게도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뭘 모르고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녀석의 말은 아니었다. 별 대단한 위로를 해준건 아닌데도, 나같은 사람이 또 존재하고, 나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큰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불행 뒤 행운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 전 나와 참 많이 닮아있는 사람을 또 한명 만났다. 그동안 시원치 못했던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공감해줄 사람이 또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큰 행복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나눌수록, 그 사람이 견뎌왔던 삶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 10년지기 친구 또한 그랬다. 이들이 나에게 행운이 되어 나타기까지 얼마나 큰 성장통을 딛고 왔는지 난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고 당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극복하지 못했다면, 혹은 내가 극복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만나서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지 못했을 것이고, 좋은 인연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클로버의 잎은 처음부터 네개로 태어나기도 하지만, 짓밟혀 상처가 난 성장점에 잎을 하나 더 틔우며, 네잎이 되기도 한단다. 그렇게 틔운 네번째 잎은, 클로버에게는 상처의 흔적이지만, 우리에게는 행운이라 불리운다. 짓밟힌 희망속에서 생긴 상처의 흔적은, 시간이 지나 극복한 뒤엔 누군가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무언가로 성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행운을 마주치는 것도, 행운과 스쳐 지나가는 것도, 어찌보면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일 같지만, 그럼에도 내 인생에서 행운이 되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