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셨다. 늘상 있는 일이다. 친구는 또 우리 집 앞에서 자지 말고 집으로 잘 들어가라고 하며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 택시를 잡는다. 걷자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취했다. 늦은 시간의 택시는 언제나처럼 짧은 길을 이상하게 우회해가고, 나는 화를 낼 여력도 없이 카드를 찍고 내린다. 아 졸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적당한 곳에 앉는다. 집까지의 거리는 대략 20미터. 20미터만 더 걸어가면 편안하게 잘 수 있는데 굳이 또 길바닥에 앉아 잠든다. 멍청한 일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사람은 멍청해진다. 애초에 멍청한 사람들이나 술을 그렇게 마신다. 하여 이는 자주 있는 일이다. 그렇게 잠든다. 일어난다. 누군가가 나를 깨우고 있다. 자주 있는 일이다. 술과 잠이 본드처럼 붙어 있는 눈꺼풀을 온 힘을 다해 밀어올린다. 모르는 여자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눈을 뜨자마자 모르는 여자의 얼굴을 본다는 건 역시 대체로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니. 머리를 흔들어 후두둑 술과 잠을 밤 거리에 털어본다. 죄송합니다. 길에 앉아 자는 건 모두에게 죄송할 일이다. 나를 깨운 여자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도 상대방을 빤히 바라본다. 역시, 전혀 모르는 여자다. 그녀는 씩 웃으며 '집에서 창 밖을 보다가 전 남자친구인 줄 알고 내려와봤는데, 그냥 취객이었네요. 아무튼, 일어나세요.'라고 말했다. 이런 일은 자주 없는 일이다. 아, 취객, 이라는 단어는 내가 기억을 재구성하며 선택한 단어다. 술과 잠은 이를테면 옛 사랑처럼 머리를 두어 번 흔든다고 털어내지지 않으니. 그렇군요. 고마워요. 죄송합니다. 나는 되는 대로 말을 늘어놓고 몸을 일으켰다. 뭐가 고맙고 뭐가 죄송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맙고 죄송스러웠다. 우리는 빙긋 웃고 빙글 몸을 돌려 서로 갈 길을 갔다.
나를 깨운 사람은, 얼굴도 목소리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좋은 느낌이었는데. 그리고 집 근처 길바닥에 앉아 자고 있는 전 남자친구를 챙겨주려 할 정도로 상냥한 사람인데. 그러다가 결과적으로 모르는 취객을 깨워 집으로 보낸 훌륭한 선행을 하게 된 사람인데, 그런데 어찌저찌 사정이 있어서 누군가와 헤어지게 되었다. 다정함과 상냥함과 별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건 역시 자주 있는 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20미터를 걸으며 핸드폰을 확인하니 친구에게 네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를 건다. 너 또 우리집 앞에서 잘거 같아서 아까 확인해봤는데 없더라. 잘 들어갔냐? 음. 어. 들어가고 있어. 우리 집 앞에서 잠깐 잤지만. 그렇게 집에 들어와 나는 맥주 한 캔을 까고 두 보금 정도 마시고 잠들었다. 아침에 어제의 일을 되새기면서, 주머니를 확인해보니 지갑이 없어졌다, 같은 뻔한 반전을 내심 기대했지만 다행히 지갑도 핸드폰도 멀쩡하게 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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