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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8/20 02:50:51
Name Love&Hate
Subject [일반] 장미전쟁.
웹서핑하다 보니 장미전쟁에 대해서 쉽게 풀어놓은 동영상을 발견해서 퍼옵니다.
간단하게 잘 풀어놓았지만 영상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약간의 설명도 첨부해볼까합니다.
자신은 없지만 가급적 한편으로 끝내고 싶으니 굵직한 사건만 짚고 넘어가려고 해보겠습니다.
하나 확실한건 족보가 매우 꼬여있고 이름이 똑같다는 겁니다.



먼저 감상하시고 가보겠습니다.








1. 플랜태저넷왕조와 이사벨라

플랜태저넷 왕조는 영국의 노르만왕조 다음왕조입니다. 어떻게 플랜태저넷 왕조가 들어섰는지 이야기하면 너무 길어지니 이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자왕 리처드와 그의 찌질한 아우 존 왕이 이 왕조의 왕입니다. 브레이브하트의 노회한 영국왕 에드워드 1세도 이 왕조의 왕이고, 100년전쟁도 이때 일어났습니다. 본 동영상은 브레이브하트의 노친네 영국왕이었던 에드워드 1세의 손자인 에드워드 3세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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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1세의 며느리, 에드워드 3세의 어머니 소피마르소 아니 이사벨라는 프랑스의 공주였습니다. (물론 에드워드 3세는 멜깁슨의 자식이 아닙니다)  영국의 클리타임네스트라라고 불리는 이사벨라는 여러가지 이유로 남편인 에드워드 2세를 퇴위시키고 살해하고 왕위를 아들 에드워드 3세에게 넘긴 다음에. 자신의 정부 로저 모티머와 아들의 섭정을 합니다. 정부인 로저 모티머와 함께 권력을 누리고 이 모든게 자기 세상인줄 알았죠. 하지만 달이차면 항상 기울게되어 있고, 특히 섭정권력에 생리는 항상 그러합니다. 이사벨라 역시 추후 성장한 에드워드 3세에 의해 정리됩니다. 애인이었던 로저모티머는 죽음을 당하고, 이사벨라는 죽음까지 당하진 않고 권력을 빼앗기고 그냥 왕의 어머니로 돌아가게 되죠.




이사벨라는 프랑스 공주였기에 일반적인 중세 유럽왕가를 비춰본다면 프랑스의 계승권도 가지고 있어야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살리카법을 발굴합니다. 살리카법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여성에게는 계승을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왕가들은 아들보단 계승순위가 밀릴뿐 딸역시 상속권을 가지고 있었고. 딸이나 딸의 아들 그러니깐 아들이 없는 왕의 입장에서는 외손주인 남자가 승계를 하기 마련이었는데 살리카법은 딸과 외손주 계통은 원천 차단한 법입니다. 원래 상용하던 법도 아니고..프랑스왕 필리프 5세가 본인보다 계승순위가 앞서는 여성들과 그의 자식들의 계승권을 박탈하고 본인이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그 옛날 프랑크 왕국 법전에서 발굴한 법입니다. 그리고 필리프 6세가 이를 똑같이 써먹으면서 프랑스에는 까페왕조가 단절되고 발루아 왕조가 개창됩니다. 이때 에드워드 3세가 자신이 까페왕조의 혈통이던 이사벨라의 자식임을 내세워 '살리카법 X까'라고 외치면서, 프랑스와 벌린 전쟁이 바로 100년 전쟁입니다.




2. 곤트의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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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세로줄은 위에서부터 에드워드 3세, 흑태자 에드워드, 리처드 2세, 왼쪽 세로줄의 가운데 흑태자 에드워드 우측으로는 곤트의 존, 랭글리의 에드먼드, 라이오넬] 


바다 건너 프랑스의 까페왕조는 아들이 없어서 문제였지만, 에드워드 3세는 아들이 많아서 문제였습니다. 에드워드 3세의 장남 흑태자 에드워드는 아버지 보다 먼저 죽어버립니다. 소프트맥스가 만든 창세기전의 흑태자는 이분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이 맞습니다. 에드워드 3세의 아들들은 순서대로 흑태자 에드먼드, 라이오넬,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 요크의 공작 랭글리의 에드먼드 이렇게 4명을 기억하면 됩니다. 에드워드 3세의 말년에는 곤트의 존이 섭정을 했었는데, 왕위계승권은 흑태자 에드먼드의 어린 아들에게 있었죠.  에드워드 3세가 죽자, 흑태자 에드먼드의 아들인 리차드 2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나이가 아직 어렸기에 역시나 곤트의 존이 섭정을 맡았습니다. 이거 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 꼴입니다.




하지만 곤트의 존은 큰 권력은 가졌으나 왕위를 노리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죽기전까진 일단 그랬죠. 곤트의 존이 죽자 오히려 꼬장꼬장하게 간섭하면서 큰 권력을 가졌던 숙부가 불만이던 리차드 2세가 그 후손들에게서 랭커스터 영지를 몰수해버립니다. 그러고는 아일랜드를 시찰하러 갑니다. 그 틈을타 곤트의 존의 아들이던 국외로 추방되있던 볼링브로크의 헨리가 잉글랜드를 습격하고, 리차드 2세를 제압합니다. 리처드 2세는 감금된후 사망했으며 잉글랜드 왕위는 공석이 되었습니다. 리처드 2세는 흑태자 에드워드의 사실상 외아들이었고, 본인은 아이가 없이 죽었습니다. 자 그럼 잉글랜드 왕위는 누구에게 가야할까요.






3. 헨리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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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4세의 찬탈. 비슷하게 생겼지만 고트의 존 아닙니다. 그 아들이에요.]

앞서말한 에드워드3세의 4아들들을 생각해보면 다음 계승권은 라이오넬의 자손에게 있습니다. 라이오넬은 외동딸 필리파만 남기고 요절했고, 필리파는 앞서 말했던 이사벨라의 정부였던 로저 모티머의 증손인 에드먼드 모티머와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그 필리파의 후손인 남자에게 왕위 계승권이 있었으며, 남편인 에드먼드 모티머의 장남은 또 죽어서 장남의 아들 즉 손자인 7살박이 에드먼드 모티머..(죄송합니다) 에게 첫번째 왕위 계승권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필리파의 남편 에드먼드 모티머의 차남이 7살밖에 안된 에드먼드 모티머의 후견인이었는데, 그 분 이름 역시 에드먼드 모티머...입니다. 여기서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라이오넬의 딸 필리파에게 앤 모티머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는겁니다.




여튼 적법한 계승자는 7세 에드먼드 모티머였지만, 본토를 침공해서 왕을 몰아낸 마당이고 본인도 왕족인 마당에 권력을 순순히 넘겨줄리 없죠. 볼링브로크의 헨리는 라이오넬한테는 딸밖에 없는데 딸만 있으면 형제에게 계승권이 넘어가야 하는거 아니냐고 얘기합니다. 한마디로 내가 왕하고 싶다는 이야기였죠. 먼 개소리야 라고 했어야됐지만 법보단 주먹이 가까운 상황이죠. 볼링브로크의 헨리의 개소리에 적법한 계승자의 숙부였던 후견인 에드먼드 모티머가 자발적으로..... 거기에 동의해서 볼링브로크의 헨리가 즉위합니다. 그가 바로 헨리 4세입니다. 헨리4세의 아버지 고트의 존이 랭커스터의 공작이었기때문에 편의상 분류로는 랭커스터 왕조로 불립니다만 크게는 플랜태저넷 왕조라고 봐야됩니다. 에드먼드 모티머 시리즈는 이제 잊으셔도 좋습니다.




헨리4세가 리처드 2세를 몰아내고 적법한 계승자 에드먼드 모티머를 놔두고 본인이 즉위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적법하지 않은 계승은 클레임을 살아숨쉬게 합니다. 물론 섭정중이거나 여성계승자이거나 계승전쟁중일때 말이죠.




  
4. 요크의 리처드

헨리 4세는 14년간 왕으로서 권력을 누리다가 가고, 아들 헨리 5세가 계승했습니다. 헨리5세는 발루아의 캐서린이라는 프랑스 공주와 결혼해서 헨리 6세라는 아들 한명만을 낳았습니다. 잠시 에드워드 3세의 아들들로 다시 돌아가보겠습니다. 흑태자, 라이오넬, 고트의존 바로 다음에 있었던 요크의 공작 에드먼드.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고 그 아들은 코니스러버의 리처드이고 코니스러버의 리처드는 라이오넬 혈통의 앤 모티머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들이 요크의 리처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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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의 리처드는 원래 왕위계승 순위는 랭커스터 가문에 비해 뒤질수 밖에없습니다.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던 랭글리의 에드먼드가 고트의 존의 동생이었으니깐요. 하지만 어머니가 라이오넬 가문이네요! 요크가문은 이제 랭커스터 가문에게 본인들이 왕위계승권이 앞선다고 주장할수 있게 된겁니다. 안그래도 헨리 4세가 왕위에 오를때부터 랭커스터도 썩 그닥 정통성 있는 후계자는 아니었으니깐요. 다만 헨리 5세의 치세에는 얌전했습니다. 그런데 영상에서도 나오듯 헨리 5세가 어린 아들을 두고 급사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들은 즉위해서 헨리 6세가 되었으며 요크의 리처드는 왕위를 호시탐탐 노리게 된 상황입니다. 게다가 헨리6세는 정신착란 증세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클레임을 걸기에 좋은 상황입니까.




5. 보퍼트 가문 과  네빌 가문

잠깐 이야기를 더 하기전에 몇몇 인물들을 더 살펴봐야 합니다. 에드먼드 3세의 4아들중 하나였던 고트의 존은 정실부인에게서 아들은 헨리 4세 뿐이었으나 캐서린 스윈포드라는 정부에게서 낳은 사생아가 있었습니다. 검은 피의 사생아들은 이전 가문에 속하지 않고 새 가문을 열어야 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보퍼트 가문입니다. 다만 이 보퍼트 가문의 특이한 점은 고트의 존이 정실부인이 죽은 다음에 캐서린 스윈포드와 결혼을 해서 사생아들이 정식 자식들로 인정받은 것에 있습니다. 보퍼트 가문이지만 사실상 랭커스터 가문에 속하게 된거죠. 고트의 존은 보퍼트가문을 아들 존 보퍼트에게 서머셋을 영지로 하사했습니다. 존 보퍼트에게는 존 보퍼트...라는 아들과 에드먼드 보퍼트라는 아들이 있었고, 아들 존 보퍼트는 일찍 죽어서 보퍼트가문의 당주는 에드먼드 보퍼트가 됩니다. 일찍 죽은 아들 존 보퍼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이 바로 마가릿 보퍼트입니다. 에드먼드 보퍼트와 마가릿 보퍼트는 후에 나오니 기억해야합니다. 요약하면 '랭커스터의 사생아 가문중에 정식으로 인정받은 보퍼트 가문이 있다.'입니다.



네빌가문의 랄프 드 네빌은 앞서 말한 고트의 존의 딸인 보퍼트 가문의 조앤 보퍼트와 결혼합니다. 그 사이에는 리처드 네빌과 세실리 네빌을 낳습니다. 리처드 네빌의 아들은 리처드 네빌....인데, 이 아들 리처드 네빌은 워릭백작 리처드 라고 불립니다. 세실리 네빌은 요크의 리처드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이 결혼으로 말미암아 워릭백작 리처드는 요크의 리처드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죠. 워릭백작 리처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묘한 것은 워릭백작 러차드의 고모는 세실리 네빌이고 요크가문으로 시집가지만, 네빌가문을 일으킨 랄프 드 네빌의 처 그러니깐 워릭백작의 할머니는 또 조앤 보퍼트라서 랭커스터 가문이라는 겁니다. 네빌 가문은 사실 양쪽다 걸쳐 있다고 보면 되고 이런 점이 나중에 워릭백작의 행동에 영향을 줬으리라고 예상됩니다. 요약하면 '네빌가문은 요크가문의 프렌드이지만 랭커스터 가문과도 인연이 있다' 정도 겠네요.





6. 요크의 리처드(요크) vs 에드먼드 보퍼트(서머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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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보퍼트와 마가릿 헨리6세 그리고 맨우측이 요크의 리처드]

헨리 6세에게 후사가 없다면 다음 왕위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까요. 결국 요크가문 아니면 보퍼트가문이 될것이었습니다. 각 가문에서 계승 순위가 높은 요크공작 리처드와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는 이런 관계였습니다. 고트의 존에서의 혈통을 중시한다면 보퍼트가문이, 에드먼드 3세의 혈통을 중요시한다면 라이오넬의 후손과 결혼한 요크의 가문이 왕위에 오르게 되겠죠. 헨리 6세와 그의 아내 마가릿은 에드먼드 보퍼트를 지지했습니다. 요크에게는 워릭백작 리처드가 있었구요. 이후로 요크의 리처드는 요크로 에드먼드 보퍼트는 서머셋으로 표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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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셋을 재판에 회부시키려던 요크]

처음에는 서머셋이 앞서보였습니다. 일단 왕의 총애를 받던 몸이니깐요. 요크는 아일랜드에 영지를 받아 사실상 국외로 추방당합니다. 이에 반발한 요크는 군사를 모아서 런던으로 진격했고, 헨리 6세는 요크의 기세가 무서워 협상에 임하게 됩니다. 요크가 군대를 일으킨 명분이 '헨리 6세를 서머셋의 손에서 구하자'였고 아직 왕에게 반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로 요크는 서머셋을 재판에 회부한다는 조건으로 군대를 해산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헨리 6세는 이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군대를 해산하고 왕을 알현하러 간 요크는 그 자리에서 체포당하고 3달동안 구금당하게 됩니다.  다시는 왕에게 무기를 들이대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나서야 요크는 풀려날수 있었습니다. 서머셋은 당연히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고요. 이 일로 인해 요크는 왕에게 무기를 적당히 들이댄것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제대로 들이대게 됩니다. 



일단 여기서 헨리 6세와 마가릿 사이에서 후계자가 탄생합니다. 바로 웨스트민스턴의 에드워드였죠. 요크는 더더욱 차기 왕위와 멀어지는 일이되었습니다. 요크에게는 큰일난겁니다. 같은 계승자 싸움이어도 서머셋이야 왕위를 못물려받아도 현재 왕의 총애라도 받아서 궁중에서 요직을 차지하면서 딩가딩가 하면 되지만, 요크는 그것도 아니었으니깐요. 왕위는 둘 모두에게 물건너가겠지만 서머셋과 요크의 싸움은 서머셋의 승리로 이 게임이 끝나는 분위기가 되는거죠. 그런가 했더니 갑자기 큰 변수가 생겨납니다.  헨리6세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의 패주로 말미암아 드러누워버린거죠. 국정을 돌볼 상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귀족회의에서 섭정을 뽑게되었는데, 여기서 그만 요크가 뽑혀버린겁니다. 요크는 귀환했고, 이번에는 서머셋이 감금당하게 되었습니다.



요크가 섭정으로 귀환해서 서머셋이 감금되어서 둘간의 싸움이 끝났냐.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헨리 6세가 다시 정신차리게 된거죠. 요크는 왕의 섭정으로 14개월동안 잉글랜드를 통치했지만, 헨리6세가 다시 정신차리게되고 요크는 섭정자리에서 물러나게되었으며, 왕이 정신을 차리자 서머셋은 복권되었습니다. 요크는 북쪽으로가 군대를 몰고왔습니다. 요크는 지난번에 배운 교훈이 있었죠. 왕에게 무기를 들이대려면 제대로 들이대자! 협상을 거부하고 랭커스터와 크게 한판 붙습니다.  그게 세인트 올번즈 전투입니다. 세인트 올번즈 전투에서 요크가 승리를 거두고, 서머셋이 전사하면서 왕실의 실권자는 요크가 될것 같아 보였습니다.




7. 에드워드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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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를 쫓아내는 마가릿]



요크가 득세하는 것이 가장 눈엣가시였던 사람은 헨리 6세의 아내였던 마가릿이었습니다. 요크는 어떤 의미에서는 국왕보다 계승권이 앞서는 인물이라, 본인의 아들의 계승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다분했기 때문이죠. 마가릿은 의회를 장악해서 요크를 쫓아냅니다. 그리고 워릭의 백작 리처드와 요크의 리처드를 반역자로 선포해버리죠. 다시 요크와 헨리6세(마가릿)는 충돌이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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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샘프턴 전투 후 계승권을 받은 요크의 리처드, 좌우가 요크의 아들 에드워드와 리처드]



요크측은 블로스히어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러더퍼드 다리에서 패배하며 지휘부가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워릭백작과 요크는 다시 전열을 정비해 진격하여 노샘프턴 전투에서 왕을 사로잡는 쾌거를 이룹니다. 요크는 왕을 사로잡으면 왕위를 이어받을거라 생각했으나, 귀족들과 백성들의 지지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에게 무기를 갖다댄것도 그렇지만, 이전에 다시 무기를 들지 않겠다는 서약도 어겼다는 사실도 큰 아킬레스건 이었고요. 지지는 예상같지 않고 헨리 6세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마당이라, 요크는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헨리6세는 두고 헨리 6세가 죽었을때 자신이 다음 왕위를 계승하기로 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결정합니다. 바로 왕위에 오르지 않고 섭정을 하다가 죽고나면 왕위를 계승하기로 한거죠. 요크가 먼저 죽는다면 요크의 후계자들이 왕위를 계승하기로 했습니다. 헨리 6세의 처 마가릿만 없었다면 요크는 정말 왕이 될수도 있었습니다.



요크와 요크의 후계들의 헨리 6세 다음의 계승권이 인정된다는 것은 곧 마가릿의 아들 웨스트민스터의 에드먼드의 계승권이 박탈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 마가릿과 에드먼드는 웨일즈 지방에 있었는데 다시 군대를 일으켜 요크에게 반격합니다. 그게 웨이크필드의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요크의 리차드는 대패하고 전사합니다. 마가릿을 중심으로한 랭커스터의 반격으로 요크의 대위기가 도래한거죠. 이제까지 봐오신분들은 아실겁니다. 랭커스터가 이기고 적의 수장을 사살했으나, 이대로 요크가 끝나진 않을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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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의 리처드가 전사했지만 요크는 저물지 않았습니다. 요크에게는 두명의 아들들이 있었고 처가계통의 워릭백작 리처드가 아직 건재했으니깐요. 요크의 리처드의 아들 에드워드는 거병해서 랭커스터를 차례로 물리치며 왕을 사로잡고 대관식을 올립니다 그가 바로 에드워드 4세입니다. 에드워드 4세는 도망치는 마가릿과 에드먼드를 타우턴까지 추격해서 완승을 거둡니다. 이제 왕위는 요크의 아들 에드워드의 것일것만 같았습니다.





8. 워릭의 배신과 요크가문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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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우드빌, 에드워드 4세 맨 오른쪽이 워릭백작 리처드]



워릭의 백작 리처드는 에드워드 4세의 어머니의 혈족이며, 든든한 우군이었고 킹메이커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에드워드 4세가 프랑스의 공주와 결혼하기 바랬는데, 에드워드 4세는 신분이 한미한 젊은 미망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몰래 결혼해버립니다. 프랑스와 국혼을 추진중이던 워릭을 엿먹여버린거죠. 그리고 한미한 가문에서 처를 들인 왕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에드워드 4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동생들을 그러니깐 처남들을 여기저기 꽂아넣으면서 처가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이게 볼썽 사나웠던 워릭은 요크를 배신하고 랭커스터 편에 붙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과의 결혼을 반대한 이유 중 다른 하나가 우드빌 가문이 랭커스터 편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죠. 워릭이 랭커스터 편에 붙자 랭커스터가 이제는 급물살을 탑니다. 워릭과 마가릿의 왕당파들은  헨리 6세의 복권을 시도하고 또한 잠시간 성공도 했었습니다만, 결국 에드워드 4세에 의해 정리되고 쫓겨납니다. 마가릿-웨스트민스터의 에드먼드-워릭의 랭커스터는 바넷전투에서 워릭이 사망해서 몰락하고, 남은 잔존세력을 끌어모아서 웨스터민스터 에드먼드가 항전했으나 투크스베리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웨스트민스터의 에드먼드가 랭커스터의 마지막 직계후계자 였고, 후계를 잃은 랭커스터는 와해되고 요크가 끝내 승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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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크스베리 전투에서 전사하는 웨스트민스터의 에드먼드. 후계자가 없으면 클레임이 사라지는데 ㅠ]




9. 요크의 내분과 헨리 튜더


이렇게 요크가 승리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 평화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 4세가 죽어버린것이죠. 에드워드 4세가 죽고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아들인 어린 에드워드...가 에드워드 5세로 즉위하지만, 그때 그는 고작 12살이었습니다.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인 리처드....가 섭정에 나섰습니다만, 리처드는 섭정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리처드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탄핵해버립니다. 에드워드 5세의 어머니이지 에드워드 4세의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비밀결혼을 했기 때문에 인정할수 없다는 명목이었습니다. 왕비를 인정할수 없는데 그 배에서 나온 자식은 인정할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럴수 없겠죠. 그럴 이유도 없구요. 에드워드 4세의 동생 리처드는 조카를 폐위하고 스스로 왕에 오릅니다. 그가 곧 리처드 3세입니다. 리처드 3세가 왕이 된 뒤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아들들 즉 조카들은 행방불명이 되어 버립니다. 영국의 수양대군 쯤으로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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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는 헨리튜더]


요크가의 내분은 결국 요크의 경쟁자이던 랭커스터에게는 호재입니다. 요크의 내분은 랭커스터에게 다시 명분을 주었습니다. 앞서 웨스트민스터의 에드먼드의 죽음으로 랭커스터는 직계후계자를 잃었다고 했는데, 직계후계자는 없었으나 앞서 말했듯 랭커스터 가문에는 고트의 존의 사생아들로 만들어진 보퍼트 가문이 존재했습니다. 랭커스터의 방계(단순히 방계라는 말로 표현하긴 미묘한 감은 있는데 혈통은 후술하겠습니다)에서 헨리 튜더가 랭커스터를 규합해 일어섭니다. 헨리 튜더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딸이며, 리처드 3세에 의해 행방불면된 왕 에드워드 5세의 누나였던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해, 요크 중에서도 리처드 3세에 대해 반발하는 세력들도 흡수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잘 알려진 장미전쟁 이야기입니다. 요크와 연합한 랭커스터의 헨리 튜더가 보즈워스 전투에서 승리해 리처드 3세는 죽고 헨리 튜더가 왕으로 즉위합니다. 그가 바로 헨리7세이며 튜더왕조를 열었던 왕이죠. 랭커스터 아버지와 요크 어머니의 아들인 양측가문의 후계자인 헨리 8세와 그의 후손들이 튜더왕조를 이어가고요. 자 이제 복잡한 계승전쟁은 끝이 나고 국내 정세는 좀 조용해 지겠네요. 뭐 내전이 끝난 튜더도 조용한 왕조는 아니었지만요. 




크게보면 플랜태저넷 속의 방계가문의 전쟁이었고, 랭커스터와 요크의 전쟁이었고, 랭커스터와 요크도 당시 그 두 가문의 공작위를 붙힌 편의상 호칭일뿐 서로가 싸울때는 우리가 원조 플랜태저넷이라며 싸웠는데, 플랜태저넷은 어디가고 승리자는 왜 튜더왕조를 열었을까요? 이건 앞서 말한 보퍼트 가문 이야기로 돌아가야됩니다. 보퍼트 가문은 앞서말한 고트의 존의 사생아 가문이었으나 적자로 인정받았단 이야기는 위에 썼습니다. 헨리 6세의 어머니이자 헨리 5세의 왕비인 발루아의 캐서린은 헨리 5세의 사후, 웨일즈의 몰락한 귀족이었던 오웬 튜더와 눈이 맞아 재혼합니다. 오웬 튜더가 궁정에서 시종같은 직위에 고용됐는데, 눈이 맞아서 재혼했습니다. 당시 아직 헨리6세가 어렸고 처음에 이야기한 이사벨라와 로저모티머의 케이스를 경계한 섭정단이 둘의 결혼을 묵인했으나 승인하지 않았기에 발루아의 캐서린은 사실상 헨리 6세 즉 어린 왕의 어머니로서의 권력은 잃게됩니다. 둘 사이에서는 에드워드 튜더를 낳죠. 에드워드 튜더는 헨리 6세와 어머니가 같으니 이부동복 동생이 되는것이었습니다. 헨리 6세는 이런 에드워드 튜더를 총애했습니다. 그래서 보퍼트 가문의 상속녀였던 서머셋공작 에드먼드 보퍼트의 조카딸이자 큰 존 보퍼트의 손녀이자 작은 존 보퍼트의 딸, 고트의 존의 증손이었던 마가릿 보퍼트와 결혼시킵니다. 보퍼트의 상속녀를 에드워드 튜더에게 붙혀주고 싶었거든요. 마가릿 보퍼트는 원래 다른곳에 시집가려다 헨리 6세때문에 에드워드 튜더에게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에드워드 튜더와 마가릿 보퍼트 사이의 아들이 헨리 튜더입니다. 장미 전쟁으로 인해 랭커스터 가문의 귀족 남자가 많이 죽어나가서 씨가 말랐고, 보퍼트 가문의 승계자는 마가릿 보퍼트의 아들인 헨리 튜더가 되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랭커스터 가문의 후계자도 헨리 튜더가 되게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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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전쟁 가계도. 위가 가계도고 아래에는 주석을 붙혔습니다. 아래를 우클릭해서 새창으로 보기 하면 확대됩니다. 화살표가 남편 ←아내 입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장미전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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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20 04:57
수정 아이콘
오랜만이시네요.
MiguelCabrera
17/08/20 09:30
수정 아이콘
교수님 오랜만의 글이 역사라니... 흐흐
그래도 잘 읽었습니다.
임나영
17/08/20 11:59
수정 아이콘
대단하네요. 잘읽었습니다
닉네임을바꾸다
17/08/20 12:08
수정 아이콘
치고받고 열심히 싸워 얻은건 없는 느낌이군요 두 가문은...
TheLasid
17/08/20 18:32
수정 아이콘
아, 장미전쟁과 왕좌의 게임을 엮어 설명한 영상이군요. 저도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공들여서 잘 쓰셨네요. 잘 봤습니다.

플랜태저넷 왕가를 플래태저넷이라고 하신 게 옥의 티인 듯합니다.
Love&Hate
17/08/20 18:5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수정하였습니다
TheLasid
17/08/20 18:36
수정 아이콘
그러고 보니 국내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글의 8번 시점에서 시작되는 영드 '화이트 퀸'이 제법 볼만합니다. 한글 번역도 되있었던 듯하고요. 관심있으신 분들은 보실만 하실 거예요.
17/08/20 19:10
수정 아이콘
호에에에에엥 pgr 접으신줄 알아짜나여 넘모넘모 글 보고 싶었어여 앞으로도 많이 써주세여
17/08/20 20:34
수정 아이콘
반갑습니다
17/08/21 02:34
수정 아이콘
님의 연애글에 목말라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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