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 영화 <택시운전사>, <군함도>, <베테랑>, <내부자들>, <괴물>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공간] 사이다 : 신파의 교묘한 진화
류승완의 <베테랑> 얘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베테랑>은 통쾌한 오락영화다. 시원하게 악을 응징하며 관객에게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는 이 꿀잼 영화에서 유이하게 거슬리던 장면 둘이 있다.
#1. 병원 밖 - 최상무가 배기사 부인에게 돈봉투를 건네주고 간 후 서도철(황정민)과 관할 담당경찰(김민재)의 대화
[서도철 : 저기 누워있는 저 양반, 조태오 사무실에서 구타당했다고.
관할 담당경찰 : 아, 왜 남의 관할에 와서 자꾸 소설 쓰는 건데! 우리도 조사해서 다 맞춰봤다고!! 오히려 투신 때문에 신진물산 법무팀에서 업무방해로 입은 피해 고소하겠다는 거 조태오 실장이 막은 거잖아!
서도철 : ...니네 돈 먹었지?
관할 담당경찰 : 같은 식구라고 보자보자 하니까!
서도철 : (담당경찰의 팔목을 꺾으며)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수갑차고 다니면서 가오 떨어질 짓 하지 말자.]
#2. 경찰서 안 - 서도철의 아내 이주연(진경)이 경찰서에 찾아와서
[이주연 : 야, 서도철! 너 결혼할 때 나한테 뭐라 그랬어? 어? 잘사는 건 몰라도 쪽팔리게 살진 않게 해주겠다 그랬지? 근데, 회사까지 사람들 찾아와서 날 쪽팔리게 만들어?!
서도철 : 야, 회사까지 와서 지금 뭐하는 거야?
이주연 : 우리 전세금 모자라서 대출받아야 되는 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세요?
서도철 : 뭐?
이주연 : 신진물산인가 뭐시긴가 하는 데서 나 찾아왔더라. 우리 도와준다고, 명품백에, 5만원짜리 다발로 채워서.
서도철 : 이런 샹노무새끼들.. 진짜. 어떤 새끼가!
이주연 : 여보세요! 그건 당신이 형사니까 알아서 찾아내시고! 당신이나 나나 서로 각자 일하는 거 터치 안하기로 했지만 내가 한마디만 한다. 우리 쪽팔리게 살진 말자.
서도철 : 야, 이주연!
이주연 : 너 내가 정말로 쪽팔렸던 게 뭔지 아니? 내 앞에 명품가방하고 돈다발 올려졌을 때, 나 흔들리더라. 나도 사람이고 여자야. 알았니?]
억지 감동을 강요하는 신파에 대한 요즘 우리 관객들의 평가는 냉정하다.(<부산행>의 분유 광고씬이 얼마나 많은 관객들의 혹평을 받았는지를 떠올려보자.) 그러다보니 최근의 한국영화들에서 대놓고 관객의 눈물을 짜내려는 지나친 신파 연출은 확연히 줄었다. 그에 반해 요 몇 년 새 눈에 띄는 것은 관객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려는 ‘사이다성 연출’이다. 현실이 워낙 막장이다 보니 영화를 통해서라도 정의구현을 하고 악을 응징함으로써 통쾌함을 안겨주는 흥행영화들이 많아졌다. 2015년의 최대 흥행작 <베테랑>을 필두로, 최동훈의 <암살>, 우민호의 <내부자들>, 2016년의 <검사외전>, 그리고 최근의 <군함도>까지. (특히 <군함도>에서 악(이경영)을 처단하는 황정민-송중기의 티키타카 응징씬에선 <베테랑>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있다.)
물론 사이다 연출 그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팍팍한 현실에 치여 사는 관객들이 극장에서나마 시원한 청량감과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나름 즐거운 일일 것이다. <베테랑>의 결말에서 결국 조태오(유아인)가 서도철을 따돌리고 유유히 출국을 하게 된다면 보는 입장에서 얼마나 짜증나고 답답하겠는가. 이렇듯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그림을 영화적으로 속 시원히 풀어내는 ‘사이다’ 그 자체를 비난하고픈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 ‘사이다’가 너무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설정되거나 작품 전반에 남용될 때, 그것은 또 하나의 신파로 변형될 가능성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 소개한 <베테랑>의 두 장면인데, 이 둘은 장면 자체만 놓고 보자면 속시원함과 짠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유명한 씬들이다. 돈은 없지만 자존심만은 잃지 않고 살아가는 소시민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살짝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면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일종의 영화적 판타지로 일관하는 연출이기도 하다. 언뜻 보기엔 리얼해보이지만, 현실과 비벼지는 끈끈한 맛이 없다는 얘기. 그런 차원에서 과도한 사이다는 통쾌하지도, 속 시원하지도 않다. 이것이 결국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황정민의 일갈이나, “우리 쪽팔리게 살진 말자.”라는 진경의 한마디가 내게 울림 있게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불씨와 폭죽
더불어 이 두 장면의 기저에 깔려있는 그 감성 자체가 노골적이고 촌스럽다. 관객이 원하는 그림을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연출과 대사 자체가 오글거린달까? 이야기를 쌓아올린 후 행동으로 악(조태오)을 제압하고 처단하는 것과, 이런 식으로 자꾸 대사를 통해 감독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관객의 기호에 맞추려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처럼 대사로 간편하게 ‘정의구현’을 하는 것은 손쉽지만 진부한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사이다 감성이 과해지면 과해질수록 사족이나 억지 감동으로 흐르기도 쉽다. 결국 이런 식의, 대사를 통한 사이다 연출이 <베테랑> 구석구석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이른바 ‘통쾌함의 늪’에 빠진 느낌이랄까? 판타지도 적당해야 한다. 진정한 카타르시스는 현실과 비벼지는 리얼한 과정 속에서 더 진해지고 강력해진다. 그닥 세련되지 못한 수준의 연출을 보여준 <내부자들>이지만 그 중 인상 깊던 장면이 하나 있다. 극 중 조양식 회장에게 돈을 받은 아버지를 추궁하던 우장훈 검사(조승우)의 통화씬.
#3. 다리 밑 주차장 - 아버지가 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우장훈 검사와 아버지의 통화
[우장훈 : 아, 아버지.. 아버지 돈 받았어요?
아버지 : 니 장훈이가..?
우장훈 : 돈 받았는교! 안받았는교!!
아버지 : 뭔 돈을 말하는 기고?
우장훈 : 그 조양미래건설.. 조양식 사장 만났습니까..?
아버지 : (....)
우장훈 : 아버지.. 아버지, 돈 안 받았다아입니까.. 내말이 맞지예..?
아버지 : 이게.. 받은 게 아니라 빌린 기다. 복덕방 김사장이 소개해가..
우장훈 : (힘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음)]
엔딩에서 악을 응징한다는 정의구현식 연출 면에선 별반 다를 게 없는 <내부자들>이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현실적 장면들은 오히려 내게 울림 있게 다가왔다. 아무리 영화지만 이것이 우리네 현실임을 절감할 때, 그리고 내가 저 상황이라도 어찌할 수 없음을 공감하게 될 때 오히려 그 이후의 카타르시스는 진하게 생성될 수 있다. 비슷한 측면에서 봉준호의 영화에 사이다가 없음에도 독특한 울림과 감동이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지점들 때문이다. 영화 <괴물>의 후반부, 남일(박해일)이 괴물의 입을 향해 회심의 화염병을 던지던 순간, 모든 관객들은 화염병이 괴물의 입 속으로 들어가며 시원하게 폭발하는 통쾌함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봉준호는 이러한 관객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화염병이 손에서 미끄러지는 ‘삑사리의 미학’을 선보인다. 결국 관객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현서(고아성)는 죽음을 당하고, 살아남은 꼬마아이를 거두어 송강호가 밥을 먹이며 끝나는 <괴물>의 엔딩씬. 속 시원한 ‘사이다’가 사라진 자리에, 아이러니하게도 ‘애잔하고 끈끈한 희망’이 서려진다. 평론가 이동진의 말처럼 ‘봉준호의 세계에서 희망은 언제나 횃불이 아니라 불씨’였다. 반면 류승완의 최근 세계에서 희망은, 언제나 불씨가 아니라 통쾌한 폭죽이다.
사이다도 적당히 하자
물론 모든 한국영화가 봉준호틱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곤란하다. 하지만 관객을 속 시원히 만드는 사이다성 연출을 하더라도 때와 장소를 적절히 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훈의 <택시운전사>의 후반부 ‘분노의 택시추격씬’은 마치 관객에게 “이런 속 시원한 장면을 원했지?”라고 노골적으로 말을 거는 듯하다.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탑승한 만섭(송강호)의 택시를 맹렬하게 추격하던 군인들의 지프차들은 동료 택시들의 헌신적인 카체이싱(?)에 의해 결국 시원하게 가로막힌다. 그 과정에서 클로즈업되는 동료 택시기사들의 비장한 얼굴과 유해진의 마지막 짠한 대사는 덤. 사이다와 신파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 조잡한 장면을 보며 한국 상업영화의 현주소를 다시 한 번 체감했다. 그 자체로 충분히 담담한 감동과 울림을 전달하던 <택시운전사>에 굳이 이런 진부한 장면을 사족처럼 넣으며 작품의 질을 떨어뜨린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박진감과 상투적 MSG를 첨가해야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그들이 선보이는 얄팍한 대중성이라는 게, 관객들의 눈높이보다도 못하다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우리 관객들이 아무리 순진해보여도, 느낄 건 다 느끼고 알 건 다 안다. 그러니 사이다도 좀 적당히 하자. 적당한 사이다는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지만, 과도한 사이다는 마시면 마실수록 오히려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기 십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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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 사이다에 집착하면 사이다패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요...흐흐. 근데 솔직히 저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이다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진 않습니다. 다만 그걸 자연스럽게 드링킹하게 만드는 감독이나 작가들이 흔하지 않더라고요. 대부분은 노리고 만든 연출이 너무 티나서, 혹은 연계가 부자연스러워서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져요.
요즘은 영화계에도 무분별한 사이다가...
장르문학 좋아하는데 그놈의 사이다패스 때문에 고통받는 입장에서는 본문의 논지에 크게 동감합니다. 사이다, 카타르시스, 이런 거 없애라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과하면 오히려 짜증만 일어날 뿐이죠. 뭐, 요즘 세상살이가 워낙 팍팍하다보니 사이다 찾는 사람 늘어나는걸 이해 못하지는 않습니다만.
일견 동의하는 게, 사이다를 들이부을 꺼면 완전 스프라이트 샤워 수준으로 들이붓던지 해야하는데
몇몇 영화는 막 한발짝 물러서서 객관성 유지하는 것처럼 전개해 나가다가 갑자기 이런거 원했지? 하면서
뜬금 노골적인 사이다를 주문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예도 그렇고, 군함도도 전반부 후반부 공기가 너무 달라서 씁씁하더군요.
사실 본문서 말하는 간지러움 등이 제가 한국영화를 극장서 잘 보지 않는 이유에요. 유독 외화보다 엄선하고 검열하여 초이스하는 게 아무래도 나와 같은 피부색에 문화, 언어를 공유하기 때문인 듯 싶습니다. 과거 아마겟돈이나 인디펜던스데이, 에어포스원과 같은 치사량급의 뽕클리세 영화를 볼 땐 낄낄거리면서 말아도 유독 한국영화에 대함 엄숙주의를 요구하는 제 자신도 사실 실망스러워요.
뭐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영화들이 김기덕 감독 작품처럼 고구마x100 하면 흥행이 안되니까요;;
하다못해 디즈니 영화들만 해도, 원작의 플롯을 뒤집어서라도 어거지 해피엔딩을 만들잖아요...
만약 라푼젤이나 인어공주가 원작 그대로의 스토리였다면... 애들 다 울고불고 난리났을듯;;;
전반적인 내용에는 공감하지만, 그게 꼭 한국영화에만 국한된 건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고대 그리스 희곡에서부터 흔하게 사용되던 작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