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금 할 때가 됐는데...'
인사팀에서 월급을 잘못 계산해서 줬다며, 다음 번 나올 인센에서 까겠다고 했다면서 툴툴대는 여친,
그리고 그 옆에서 막걸리를 홀짝 들이키며 엄마한테서 이혼 상담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고 말하는 나였는데,
그 어떤 계기도 없이 슥 하고 머리를 스쳐간 생각이다. '오늘이었는데?!'
스타 리마스터링 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걸로 행사를 한다고 했다. 광안리.. 지난달에도 가서 회를 진탕 먹고 술에 취해 돌아왔었던 그 곳.. 그래.. 거기에서 임진록도 하고, 국기봉 아저씨도 나오고 막 그런다고 했었다. 젤 마지막은 3명이서 한다던데 이건 뭐지? 셋이서 앨리전 하는건가??
"GG투게더"
오늘 네이버에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검색하니, 가장 먼저 나오는 정답형 검색, 그리고 '경기 영상'을 눌러보니 바로 재생되는 것이, GG투게더 행사 Full 영상이었다.
망할것들, 어제는 스베누만 있더만, 언제 올려놨대..
하. 재생시간이 4시간이 넘는다.. 지금은 저녁먹고 밤 9시 20분이 살짝 지난 시간. 이걸 다 보면 새벽 두시는 되겠는걸.. 1경기는 영 구릴테니 건너뛰면 좀 줄을까?? 그렇게 일단 로딩을 걸어놓고 가을에 갈 여행 계획을 짜본다.
네이버는 로딩이 한참이니깐. 그래도 사전에 광고는 안트네?!?! 크크크크 (그렇다고 로딩해논다고 앞에 나올 것이 이쁘게 나오지도 않는다.. 이차 빡침 주의...) 테레비 앞에 술잔을 셋팅하고, 안주도 갖추고,, 이제 틀어본 GG투게더..
야.. 이건 진짜다. 가끔 영상콘텐츠를 보면 와닿는 것들이 있다. 그건 연기가 아니다.
카메라를 마주보며 한마디씩 꺼내어놓는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의 진심이 묻어나는 영상은 정말 흔하지 않다. 맨날 그런것만 보면서 PD하겠다는 사람은 모를것이다 진심이 가지는 힘을. 근데 이건 진짜다. 진짜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를 후려치는 그 한 사람. 뭐 나오는 모습도 안 비춰주고서는 관중석 보여주더니 이미 떡하니 나와있다. "게임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용준입니다." 캬.. 뭐 그냥 이걸로 끝났다고 본다. "시작~~~~~ 하게씀니다아!~!~" 이거는 뭐 뻔하니깐. 근데 알 것이다. 그 뻔한 말들을 얼마나 많이 우리는 들어왔고 얼마나 많이 그리웠었는지..
홍진호 입장하는 영상만 보고 재생스탑, 또 쓸데없이 피쟐에 들어왔다.
어디서 찾는게 빠를까.. 그래, 아무래도 유게겠지? 유게에 들어가 제목검색을 한다.
'질풍'. 역시.
본문에 있던 링크는 이미 짤렸고, 댓글에서 찾은 영상을 본다.
고작 2분이었나? 근데 영상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눈에 눈물이 괸 듯 하다. 망할놈에 질풍가도.
여친은 칠번방에서도 팡팡 울고, 명량에서도 팡팡 울었댔다. 이번에도 군함도 보러가잖다.
아아 나는 질색이다. 망할놈에 "울어라!~!~ 이래도 안울어!!!)가 나는 정말 싫단 말이다.
근데,, 내가 울음을 못 참는건 이런거다. 그냥 어떤 한 사람이 혹은 어떤 한 집단이, 열심히 연습해서 하나의 마음으로 하나의 일을 해내는 것,, 그게 성공이든 실패든 떠나서.. 난 그런거에 약하다.(질풍가도 보고나서 '사이버포뮬러 신' 검색해서 엔딩씬 본건 함정. 그냥 난 패자를 좋아하나부다.. -_-;;)
역시나 왠걸, 벙커링들 드론 다섯마리 끌고와서 막아내는 걸 보면서 에휴 글렀네 싶다가도, 힘내라 홍탐정 힘내라 홍상회(?)하는 게 나였고, 이어가는 플레이들(물론 적절한 스킵은 재방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면서 그래 맞아 이런 재미였어.. 나의 옛날은 이랬지 하는 마음이 기쁘고도 슬프고, 벅차면서 서럽고, 들뜨면서 후회스럽다.
스타를 잘했냐? 아니다.
사업을 거덜내고 이사왔지만, 그래도 집안의 관심을 받던 내가 중1때 '세진컴퓨터랜드'가서 사온 것은 '세븐킹덤즈'라는 게임이었다.
분명 알고있었다. 워2를 만들었던 블리자드에서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을 출시했다고, 게임이 괜찮다고..
사보던 것은 아니었지만 줏어보던 게임잡지에서 익히 봤었고, 같이 세진에 간 친구가 스타 사러 가자고 했었으니깐.
근데 망할놈에 홍대 음악 부심마냥 '아니 난 이거 살래' 이러고서 스타를 안 샀었지..
사실 그떄 제일 열심히 했던건 IRC켜놓고 밤새 잠도 안자며 했던 울온이었고, 삼국지랑 프린세스메이커 등 오프라인 게임도 많았으니깐.
국기봉 경기부터(물론 스킵을 엄청 했다) 쭉 보다보니, 그야말로 퀀텀점프다.
요즘 트렌드로 말하자면 바둑두던 알파고가 갑자기 내 주둥이에 젖병 물리면서 밧데리로 쓰는 모양새인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더 한 격차일지 모르겠다.
그게 하루를 지나 자정을 넘기며 진화하는 스타크래프트 같았다. 마치 개발자들을 백사장에 앉혀놓고서는 "이걸 니네가 만들었다고 뻐기는거야? 아니 이건 우리가 만들었어! 너네는 이런거 생각도 못했잖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길고 길어 보였던 네시간 반은 훌쩍 끝났다.
그래.. 나도 옛날사람이구나..
그래.. 알아 나도..
형들이 당구장 갈때 나는 피씨방 갔었잖아? 그치? 그냥 그런거야..
이 짤방이(아마 디씨가 제일 처음이었겠지?? 늘 그렇듯), 나도 멀지않았겠구나.. 싶다.
(아재 클릭 금지이므로, 링크로 대체합니다. (
https://cdn.pgr21.com/?b=10&n=310039)
알아. 근데 아는 건 뭐 옛날엔 몰랐나? 그때도 다 알았다.
그냥 우리가 더 이상 모이면 피씨방을 안 갈 때부터, 그냥 우리가 모엿 피씨방을 가도 카트 아이디도 못찾아서 어색하게 워크 유즈맵 한판 하고 나오던 거(물론 그 한판을 세시간 하는 건 함크정크)
근데 그냥 뭐랄까.. 그 스타가 어느덧 19년이 됐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내가 19년을 나이 먹었단 것. 친구들도 19년을 나이먹어서 누구는 아이 아빠가 됐고 누구는 아이 엄마가 돼서 더 이상은 보기조차 힘든 것.
우리집 멍멍이도 나이들어 죽고 새로 온 멍멍이도 이미 할머니가 된 것, 엄마도 나이들어 죽겠다는 말을 쉽게 하는 것.
나도 이제 회사와 직장생활에 대한 열정을 잃은 것...
그래 참 시간은 많은 것들을 바꿔놓더라.. 그래 그게 바로 시간의 역할이지, 누구를 탓하랴.
그 시절 나의 찬란한 시절을 함께해준 내 동기들과 선배들, 후배들에게 간만에 장문의 문자를 보내본다.
물론 그들에게는 새벽 1시에 오는 진상 문자일 수 있겠지만.
시간은 공평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누구에게나 지구 위에 있다면 하루 태양이 뜨는 시간이 동일할테니.
근데 우리는 이런것에 반골이 가득하지 않나?? 왜냐면 우리는 하루에 8시간 넘게 했거든.
1만시간의 법칙? 하루에 8시간씩, 한달에 20일, 그렇게 5년 하면 1만시간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우리나라가 배틀렛 독립 서버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_-;;
근데 뭐랄까.. 스타는 그냥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그 시절 그 시기를 나와 함께 했던 그 무엇이고,
나와 내 친구들을 엮어줬던 그 무엇이고, 나를 더웃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해주었던 그 무었이었던 것이었다.
게임기자를 꿈꾸던 내 친구, 물론 지금은 00전자의 회사원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주야장천 근로에 힘쓰고 있지만,,
그 친구가 나에게 피지알을 소개시켜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처럼 노무현입니다를 보면서 눈물 질질 짜는 애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난 좀 냉소적이니깐..
사람은 혼자 크는 사람 없고, 함께 크는 거라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스타라는 게임은 얼마나 나의 세계를 키워줬고 또 얼마나 나를 만들었을까
오늘 또 가만히(는 아니고 술에 취해) 생각해본다.
아~ 내일은 면접이다. 면접관이 요새 관심사는 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하지??
면접관은 나보다 열살은 더 많은데, 그냥 스타 봤다고 하면 더 좋아하려나.. 부디 그들이 스타를 좋아하는, 적어도 한때 좋아했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 인생은 세월의 흐름따라 아무도 리마스터 해주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