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가 20프로. 자기 전에 충전하는 것을 깜빡했나보다.
평소엔 60%이하로 떨어지는 꼴을 보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요즘은 보조배터리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통화하는데 생각보다 배터리 소모가 심하다.
그녀는 밤에 통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이 좁은 나에겐 그녀의 목소리가 마냥 반갑진 않다. 집구석 어디서 통화를 하던 동생의 애정 어린? 갈굼과 방해를 각오해야만 한다. 다행이 요즘은 날씨가 좋아 슬슬 집 밖으로 걸어가 하천을 거닐면서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
그녀와 난 아직 소위 “썸” 단계이다.
착하지만 매력은 없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줘서 고마운 친구다.
처음에 그녀를 보았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나랑 크게 관련 없는 친구였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는 친구였고.
하지만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었고, 저녁 약속도 먼저 신청했고.
말하다보니 재미있고 매력 있는 친구다. 데이트 약속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먼저 했다.
이런 친구와 이렇게 많이 말하고 걸어본게 얼마만인가.
하루하루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직장의 다른 부서의 그녀와는 가끔 복도나 사무실에서 각자의 용무로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눈빛을 담느라 일에 손이 잡히지 않는다. 몇몇 눈치 빠른 친구들은 의미심장한 농담을 건네지만 ‘조용히 해줄래?’라는 의미를 담은 침묵으로 대응한다. 눈치 빠르잖아 동료들아 ^^
저번에는 퇴근 후 심야에 여의도 공원을 거닐다 무심한 듯 손을 꼬옥 잡았다. 따뜻한 손길은 당황스러운 듯 다만 날 놓친 않았다. 유게의 어떤 게시글이 불현 듯 생각이 난다.
퇴근길은 따뜻한 그녀의 손길이고 저녁은 그녀의 웃음과 함께한다.
다만 요즘 들어 말 못할 고민이 하나 생겼다.
사실... 난 한 번도 안 해봤다. 나이 30인데.
바보 같은 고민인 것 안다. 설레발일지도 모른다. 더욱이나는 모쏠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사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한 번도 못 해본 게 쏠로와 다름없다면 모쏠이라고 해도 되겠다.
여튼 과거이야기는 덮어두고..
얼마 전 새벽 한 시에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술 마시는데 데리러 올 수 있냐고 했다.
라디오스타를 기분 좋게 보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려고 하는데, 당황스럽긴 했지만 택시를 타고 그녀에게 갔다. 내일도 출근이잖아.
그녀는 24시간 카페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네. 오빤 날 정말 좋아하나봐.
피곤해.
그리곤 그녀와 함께 걸어갔다.
24시간 사우나로. 같이 식혜도 먹고 편히 잤다. 난 한숨도 못 잤지만.
같이 택시잡고 출근했는데, 안전팀 직원에게 같이 택시에서 내리는 걸 목격당한 것 같다. 그 친구가 사시이거나 입이 무겁길 바란다. 사내연애는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니까.
요즘 그녀와 일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나는 일본을 조금 가봤고, 그녀는 친구들과 앙코르와트 방문외에 해외여행 경험이 없다. 불현 듯 일본여행 경험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크게 번진 듯, 어느덧 둘 다 늦은 여름휴가 일정을 계획했고, 카페에서 알콩달콩 계획을 짜고 있다.
숙소도 정하는 중이다. 비즈니스호텔. 혹은 에어비엔비. 게스트하우스.
사실 에어비엔비나 게하. 캡슐은 메인디쉬를 위한 곁가지 음식들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녀도 마찬가지겠다.
내 머릿속은 숙소에서 방을 잡고. 들어가면?? 이 생각뿐이다. 그녀는 사교적이고 아주 가끔 도발적이지만 그녀와 난 일주일이 갓 넘은 숙성된 썸 커플이다.
오늘은 쉬는 날, 집에서 이것저것 숙소를 검색하고 있다. 신주쿠 쪽 비즈니스호텔 디럭스 더블베드를 생각 중이다. 트윈베드보단 더블베드가 왜인지 끌린다.
내일 퇴근 후 숙소 문제를 상의해봐야 하나. 무엇을 상의해야 하나. 사실 잘 모르겠다. 처음 여행 꺼낼 때와 숙소 이야기 할 때의 묘한 긴장감은 나만 느꼈을라나.
말 못할 고민이다. 내일 퇴근길을 거닐면서 자연스럽게 말해봐야겠다.
그녀의 따뜻한 손을 잡고 있으면 무엇이든 솔직해져라 주문을 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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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요즘 고민중인 이야기를 털어나봤습니다.
나이 30에 ㅜㅜ 바보같다면 바보같겠죠.
근데 아직 고백을 안했네요. 내일 저녁 먹으면서 말해볼까 합니다..
재미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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