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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6/11 23:33:11
Name 구름하늘
Subject [일반] 영화 악녀를 보고 나서(스포)
글은 썼는데 막상 아무도 안 읽어준다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PGR에도 올립니다.
반말체로 쓴 것이 불편할지도 모르니 미리 양해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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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빌의 액션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을 많이 할 것 같다.

킬빌을 본 게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으니까(케이블 티비에서 상영해주고 있었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사랑을 잃고 배신당한 여주인공이 조직의 두목을 찾아가 복수를 하려 한다는 내용의, 악녀와 아주 비슷한 전개를 가진 영화였다. 그 영화의 액션이 얼마나 피가 낭자하면서도 인상적이었던지, 나는 '이래서 킬 빌이 19세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비슷한 길을 선택한 '악녀'는 오히려 영화를 보는 대부분 시간이 지루함을 참을 수가 없다. 예고편에서 그렇게 멋졌던 장면들이 영화 속에선 왜 빛을 발하지 못하는지 참 답답하다.

영화의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매력 없고 스토리가 너무 뒤죽박죽이다.


1.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숙희의 능력

이미 국정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쌍검으로 일개 조직을 박살 낼 정도의 능력을 갖춘 숙희가 막상 임무를 부여받고는 영 시원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 이미 훈련을 받고 있던 다른 훈련생도들을 압도하는 실력을 갖췄는데도 특수요원으로서 역할 수행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좀 의아했다. 특히 숙희가 요정에서 기생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그랬는데, 제이슨 본이었다면, 혹은 다른 요원이었다면 잠자는 중에 몰래 집에 침입해서 피 보는 일도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옷만 입은 여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19세 영화지만 정사 장면까지 넣기는 그렇고 이런 거라도 보여줄게'라고 위로라도 해주는 것 같아 정말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결국, 어설픈 작전으로 USB 탈취가 탄로 나고 훈련생 시절 후배가 죽어 나간다. 숙희가 악녀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은 영화의 맨 처음과 맨 마지막뿐이다. 그리고 그 나머지 틈을 메우는 데 이 영화는 너무 서투르다.

2. 국정원 자체에 대한 의문

어떻게 여자들만 특수요원으로 전부 모인 것인지부터가 의문인데 여기에 대한 답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 한 장면을 예로 들면, 숙희가 적응하고 난 이후 들어온 여자는 숙희와 똑같이 칼을 들고 탈출하려 하는데, 그 여자도 숙희와 똑같이 남편을 잃고 복수하다 경찰에게 붙잡힌 후 국정원으로 넘겨진 것일까? 모두 제각각의 사연이 있을 것인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같이 여자이면서 숙희처럼 악에 받친 사람들처럼 행동할까?

숙희가 훈련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첫 번째 임무를 완수하면서 국정원의 존재는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연변에서 온 수수께끼의 깡패집단이 국정원 요원의 집에 다른 국정원 요원 둘(김선과 현수)을 인질로 붙잡고 폭탄을 설치하는데도 수수방관. 그중에서도 백미는 복수하려고 온 숙희에게 CCTV 영상을 보여주는 권숙. 마치 선생님의 지적에 어설픈 변명이라도 하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은 권숙이라는 인물의 카리스마를 땅바닥까지 떨어뜨린다. 현실의 국정원을 영화 속에 그대로 반영하려 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무기력하고 대책 없는 국정원은 도대체 무슨 역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답답하다.

3. 현수라는 남자

영화의 성격을 흐리는 데 이 현수라는 애매한 캐릭터가 일조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숙희와 만난 이후 현수가 계속해서 던지는 어색한 농담이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까지 전해진다. 부끄러움은 오로지 관객의 몫. 액션 영화 '악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로맨틱 코미디를 찍는 것은 현수 뿐이다 . 현수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의 장르가 애매해지면서 숙희의 캐릭터는 빛을 잃는다. 차라리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였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현수는 너무 쉬운 남자다. 영화 시작부터 숙희의 외모를 칭찬하면서 그녀의 딸에게 인형을 선물하는 등 자신의 속내를 관객들에게 아낌없이 내보인다. 현수가 숙희에게 결혼을 신청할 때, 그가 진심이라는 것은 권숙의 진심 어린 충고가 없더라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숙희만을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남편이 되는 것 외에 이 남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국정원은 숙희의 옆 집에 배치할 요원으로 왜 이 남자를 선택한 것인지 궁금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미모 만으로도 우리는 숙희와 현수가 연결되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뻔한 남자는 재미 없다.

4. 중상이라는 문제적 인물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중상이라는 인물의 어설픈 호의에서 시작된 거나 다름 없다. 숙희의 아버지를 죽이고도 무슨 측은지심의 발로였는지 숙희와 결혼식을 올리고 서울로 신혼여행까지 가는 중상. 소꿉놀이가 지겨워졌는지 중상은 첫날밤을 채 보내기도 전에 변사체로 발견된다.  가짜 변사체를 보고 분노한 숙희는 앞서 말한 일개 조직을 검 두 자루로 박살 내고 경찰에 끌려가 특수요원으로 변신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중상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재혼을 준비하던 연수(숙희) 앞에 새로운 타깃으로 등장한다.

중상이 왜 어설픈 호의를 베풀어야 했는지 영화 내내 궁금했던 관객들은 가스 폭발로 (추정상) 딸과 현수를 잃고 악녀로 변신하기 직전의 숙희를 통해 직접 답을 듣게 된다. '이게 네가 원하는 거니(듣고 싶었던 답이니)?' 사실 북한 사투리로 뭐라고 답을 했는데 정확하게 어투를 살리기가 힘들다. 왜 어설픈 호의를 베풀어야 했는지 관객들이 바라마지 않던 그런 이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방아쇠를 당겼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실존주의적 부조리한 이유 같은 것도 없다. 그냥 '숙희 혼자 좋아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했다'라고 중상은 주장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누가 믿으라고.

물론 중상이 실제로 원한 것은 돈이다. 숙희가 해치운 조직이 가진 그 돈. 그 보물. 숙희가 조직을 박살 낸 덕에 중상을 그걸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 시시한 이유로 숙희라는 악녀가 탄생했다는 데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겨우 이걸 알기 위해 관객들은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렸던 것이다. 중상의 역할은 사랑을 꿈꾸던 숙희를 실망하게 해서, 악녀로 만드는 것이 전부다. 답답했던 체증이 허무함으로 바뀜과 동시에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감독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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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연출에서는 헨드헬드 카메라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 방식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의 스토리부터 이미 산만하고 개연성 없는 전개로 몰입을 방해하는 데, 게임을 하는 듯한 1인칭 화면은 영화가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마치 '이건 게임이야.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라며 혹시라도 유혈이 낭자한 장면을 즐기는 혹은 불편해하는 관객들을 안심시키려는 것 같았다. 덕분에 몰입감은 오히려 떨어졌지만 말이다. 영화의 가장 큰 액션 장면인 맨 처음과 맨 마지막 장면 둘 중 하나라도 다른 방식으로 촬영했으면 어땠을까?

숙희의 복수가 완성되고 제작진 소개 자막과 함께 악녀의 웃음소리가 극장 내에 퍼지지만 관객들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 채연수도, 악녀로 탈바꿈한 숙희도 아닌 한국 영화 최초의 단독 여성 주연 영화라는 사실에 아쉽게 만족하며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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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넝숴
17/06/11 23:41
수정 아이콘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문제라 비판하고 싶은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영화였습니다. 단 하나 선명히 남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감독 정병길'이란 문구가 나오는데, 저 이름은 꼭 기억해야겠구나, 다시는 저 사람의 영화를 보지 말아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금불산입
17/06/11 23:52
수정 아이콘
기립박수는 왜 받은거죠..?
서연아빠
17/06/12 00:04
수정 아이콘
이걸 투자받아서 영화를 만들다니???? 크크크
gogogo[NADA]
17/06/12 00:00
수정 아이콘
영화 개연성 스토리 다 허접합니다 졸릴정도에요 영화끝나고 스토리는 아예 기억이 안납니다

근데 액션씬은 놀라움을 넘어 전율이 일어나는 장면이 몇군데 있네요
개인적으로 모든 액션영화중 끝판왕으로 느낀 레이드2 봤을때 전율이 다시 느껴졌어요
17/06/12 00:04
수정 아이콘
엌 이정도로 별로인줄 몰랐는데..
내일 보러 갈껀데 고민이 되는군욥
캬옹쉬바나
17/06/12 00:27
수정 아이콘
내가 살인범이다는 괜찮게 봤는데 악녀는 영 아닌가 보네요..;;
엘룬연금술사
17/06/12 00:30
수정 아이콘
오늘 보고 왔습니다. 진짜 어디서부터 까야할지... 감히 '아저씨'를 논하기엔 '아저씨'에게 너무 미안해야 할 듯 합니다.
17/06/12 00:33
수정 아이콘
어라 전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조작된도시 보면서 뭐 이따위 영화가 있나 했었는데, 다른사람들이 나름 볼만했다고 할때 다른사람들이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전 근 몇년 한국 액션영화중에는 최고였습니다
17/06/12 00:42
수정 아이콘
검사외전 이후로 오랜만에 보다가 도중에 나왔습니다.
말도 안 되는 개연성도 문제지만 대사들의 오그라듦을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다만 중간에 오토바이 액션신은 정말 좋았어요. 그 장면만큼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Rorschach
17/06/12 01:08
수정 아이콘
전 일단 유일한 장점이라고 말하는 액션이 제 취향이 아니라서 더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카메라 흔들어대는 것도 흔들어대는거지만 쇼트를 너무 짧게 이어붙여서 잘 구성된 액션을 보는 느낌이 전혀 안났어요. 오토바이 씬도 그렇고 버스 추격 씬도 그렇고...
Fanatic[Jin]
17/06/12 01:33
수정 아이콘
부산행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런 영화를 만들어??의 감탄이랄까요

영화내의 장면도 예쁜게 많았고요. 미술에 힘좀 쓴 느낌?

그런데...아쉬운점을 꼽자면

1. 부산행은 공유가 죽을때 실소가 나왔다면 악녀는 로맨스때마다 실소가...

2. 신하균은 왜????????최소한의 개연성은 있어야....

3. 존윅이 단순한 이유로 영화내내 때려부수지만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은근히 세계관을 관객에게 이해시켰다면...악녀는 국정원??여자??암살육성시설??차라리 로맨스를 절반으로 줄이고 여기에 공을 들였다면...

4. 아예 자극적으로 갈거면 기생신에서 약을 확 빨고 우리나라 영화 역사에 남을 액션신을 만들었으면...하는 아쉬움...그냥 네명다 웃통까고 칼부림 액션을 만들수는 없었을까요??영화사에 길이남을 자극적인 신 탄생!!

그럼에도 액션과 미술 중간중간 신경쓴듯 안쓴듯 적절한 음향까지...오직 자극만을 위한 영화가 나왔다는데 의의를 둡니다.
달토끼
17/06/12 08:25
수정 아이콘
1인칭 시점 때문에 게임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구요? 악녀도 그렇고 대부분의 액션영화들이 1인칭 시점을 쓰는 이유는 해당 상황을 관객이 직접 느끼는 듯한 체험감을 위해서이고 악녀의 1인칭 시점은 손꼽힐 정도로 훌륭했다고 봅니다. 저는 액션은 다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정원의 이상한 짓과 신하균의 이상한 짓은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요. 연변 조폭에게 밀리는 국정원이라니....
17/06/12 08:54
수정 아이콘
최악of최악이였습니다. 감독은 액션씬외에는 아무런 구상을 안 한거 같아요.
그나마 액션씬도 여러 영화의 장면이 너무나도 겹쳐요.
더구나 몇 장면은 오먀주가 아닌 그냥 킬빌의 장면과 똑같이 찍어대는 수준의 짓을 하더군요.
그 덕분에 쿠엔틴이 킬빌에서 그 장면을 왜 애니메이션처리를 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
그리고 오락영화를 만들면서 뭔 구구절절 설명이 많은지......
원해랑
17/06/12 11:42
수정 아이콘
스토리 = 독창성 전혀 없음, 어디선가 본 듯, 뻔하고 예측 가능
연기 = 신하균은 그냥 신하균(사실 이입할 만한 캐릭터 설정도 없었을 듯), 나머지는 뭐 그냥...
액션 = 다양한 (1인칭 1대 다수, 칼부림, 오토바이, 기녀, 총격전) 구성은 나름 괜찮았으나... 액션씬이 박수를 쳐주기에는 뭔가 아주 조금 모자람...

그냥 처음부터 예상하고 갔기에 실소를 지으며 억울하지 않게 본 영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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