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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4/27 17:38:43
Name 깐딩
Subject [일반] 동물의 고백(9)
무덤덤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네 어쩔 수 없죠. 불금인데 열심히 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라고 보내려는 찰나

-꼭 이번 주에 봐야 하나요? 다음 주 토요일은 안되나요?

답장을 보고 발걸음이 멎었다.

와 이거 진짜 나쁘지 않은 각인가 보다.

-제가 내일 1박 2일로 스키장에 가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없어요.

침착하게 대답하자. 급할 것도 없다.

-아, 친구분들이랑 놀러 가시나 봐요? 어디로 가세요? 양지?

-동호회 사람들이랑 홍천가요. 비발디요.

-오 좋은데 가시네요.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 봐요.

-네 감사합니다. 불금인데 힘내서 일하시고요^^

진짜 그날은 신기하게도 며칠 동안 안 풀리던 일들이 술술 풀렸다.




"너 소개팅 처음 아니었어?"

영화 약속이 있는 그 주 수요일에 모임에서 주선자를 만났다.

"네, 저 소개팅 처음 하는 거였어요. 왜요?"

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걔가 소개팅 나가서 그런 적이 처음이라면서 또 지루하게 호구조사 당하는 거 아니냐고 그랬는데

너 가서 그런 거 하나도 안 물어 봤다며? 그냥 잡담만 했다던데?"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

뭐 하는지, 어디 사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그런 건 말하지 않았다.

"네, 굳이 그런 거 물어봐야 하나요? 회사 뭐 잘 다니시겠죠.

어딘가에서 출퇴근하시겠죠. 가족들 잘 지내시겠죠."

"술값 계산도 미리 했다며?"

"네 뭐 어차피 제가 할 것 귀찮아서 화장실 갔다 오는 길에 했어요. 왜요?"

주선자가 내 멱살을 잡는다.

"이 새끼 선수였어!"

그걸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보고 장난 아니라면서 마시라며 술잔을 내민다.

모르겠다. 뭐가 선수고 뭐가 장난 아닌지.

그냥 나는 내가 편한 대로 했을 뿐인데.

이 사람들이 날 놀리는 건지 진짜로 날 선수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네.

소개팅이지만 여자랑 놀고 싶어서 놀러 나간 자리이니 그냥 편하게 잡담이나 한 거고

요즘 또 뭐 소개팅 비용이 남자는 얼마 내고 여자는 얼마 내고 다 그런 거 귀찮고 해서

애초에 돈 쓸 생각으로 나간 거라 아무 생각 없이 내고 온 건데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그날 진짜 재밌었다면서 나한테 연락 왔더라."

"그래요?"

"그래 임마. 잘해봐."

정작 나는 무덤덤한데 주위에서 더 난리다

"와 드디어 오빠 서울 여자 만나는 거야?"

"쟤 여친 생기면 여기 안나오는거 아니야?"

등등 벌써 봄철 데이트 코스 추천해주고 난리도 아니다.

그날 모임은 끝날 때 까지 내 얘기만 오갔다.

사람들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었지만

'소개팅' 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이상하게 나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덤덤해져 갔다.

이제 처음 만났고 앞으로 몇 번을 더 볼 수 있을지 모르고

잘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벌써 부터 샴페인을 따자고?

벌써 내 감정을 소비하자고?

어림없지.

나 혼자 감정 소모하며 힘든 날을 보내온 건 앞서 있었던 두 번의 경험으로 이미 충분하다.

"와 저 새끼 쪼개는 거봐라 좋아죽네! 죽어"

아니 그래도 기분은 좋으니까 웃음이 나는 걸 어떻게 합니까?

헤헤헤.




-내일 3시 30분에 ◇◇역에서 보실래요?

-좋아요! 그럼 내일 봐요^^

영화가 약 두시간쯤.

시작이 4시, 끝나면 6시 조금 넘고 그 시간쯤 저녁 먹고

조금 걷다 카페 들어가서 커피 한잔하면 완벽하다.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자자.

그렇게 뜬눈으로 4시간을 뒤척이다 새벽 3시가 조금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배고프시죠?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자기는 아무거나 괜찮단다.

"한식 중식 양식 중에 하나 고르면?"

양식을 좋아한단다.

근처에 괜찮은 파스타 집으로 들어가 미리 봐둔 메뉴로 주문했다.

"영화 엄청 재밌네요!"

"맞죠? 애틋하면서도 애절하고 특히 손에 이름 적자고 할 때 진짜 눈물 나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요! 이름 적어 주는 줄 알았는데 좋아한다고 쓰고"

"가슴 잡고 우는 거 되게 웃기지 않았어요?"

여자가 그 장면 아직도 생각난다고 손뼉 치며 웃는다.

밥 먹으면서 영화 이야기를 실컷 떠든다.

그러다 자연스레 내 이야기로 넘어간다.

"저 다음 주에 일본여행가요."

"일본 어디로요? 혼자요?"

"후쿠오카가요. 가는 건 혼자인데 거기 사는 친구가 있거든요. 같이 여행하기로 했어요."

"와 좋겠다. 저는 일본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중국 한번, 동남아 한번 가봤어요."

그렇게 또 여행 얘기로 넘어간다.

어느새 카페로 들어와 또 잡담을 시작한다.

시간이…. 벌써 11시가 다 돼간다.

슬슬 다음 약속을 잡아보자.

"볼링 치는 거 좋아하세요?"

활동적인 걸 좋아하니까 너무 격렬하지 않으면서도 재밌는 운동을 물어본다.

"딱 한 번 쳐봤는데 엄청 재밌었어요."

반응은 괜찮군.

"저 일본 다녀와서 그 다음 주 주말에 같이 볼링 치러 가실래요?

치고 나서 근처 공원 산책 좀 하다 치맥 한잔 콜?"

"좋아요!"

그렇게 다음 약속을 잡고 기분 좋게 일본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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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27 17:39
수정 아이콘
8편이 다음페이지로 넘어가면 9편 올리려다가

다음주가 연휴라 9편 올려봅니다! 다들 즐거운 연휴되세요!
17/04/27 17:45
수정 아이콘
이 분 스킬이 갈수록...
4그레이
17/04/27 17:45
수정 아이콘
대나무 깍다 멈추신분들 계속 깍으시면 되겠습니다.
자유형다람쥐
17/04/27 18:04
수정 아이콘
접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깎는걸 멈추지 말 것을
이시하라사토미
17/04/27 21:18
수정 아이콘
저두요! 계속 깍아야겠네요
MiguelCabrera
17/04/27 17:51
수정 아이콘
이제 저도 대나무 손질 하나 해야겠네요. 흐흐흐

근데 제가 대리만족 해도 되나요? 정말 알콩덜콩합니다.
17/04/27 18:03
수정 아이콘
대나무 손질 거의 끝나갑니다.
김제피
17/04/27 18:12
수정 아이콘
이미 10개 구비해놨습니다. 필요하신 분 줄 서세요.
나른한오후
17/04/27 18:19
수정 아이콘
특별히 2개로 손이요!
신지민커여워
17/04/27 18:14
수정 아이콘
죽창 렌트해드립니다 무료~ 질좋은 서비스~ 오죽헌산 대나무~
17/04/27 18:28
수정 아이콘
이 XX 선수였어!
-안군-
17/04/27 18:45
수정 아이콘
"삭삭삭~ 삭삭삭~"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이 소리는 피지알러들이 깐딩님의 글을 읽으며 죽창을 깎는 소리입니다.
17/04/27 20:07
수정 아이콘
"너 절단신공 처음 아니었어?"
"이 새끼 선수였어!"
이시하라사토미
17/04/27 21:19
수정 아이콘
10편은 연휴 이후에 나오나요??
17/04/27 21:22
수정 아이콘
연휴중에 한편 올릴 수 있을꺼 같습니다
17/04/28 01:45
수정 아이콘
그 동안 연재를 못하신 이유가 드러나고 있는 느낌이군요 크크
제발 해피엔딩이기를 바랍니다 크크
eternity..
17/04/28 07:49
수정 아이콘
부들부들.. 죽창이 어디에 있더라... 주섬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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