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 라는 말이 있다. 그 중에서 가난만큼은 정말로 숨기기가 쉽지 않다.
아는 형이 한 명 있다. 2008년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는데,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 때 당시 이미 30살이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만학도랑 다르게 나이 많은 신입생이 아니라 그냥 98학번이었는데 개인사정으로 재적처리가 되었다가 재입학을 한 경우다. 어쨌든 학년은 같은 1학년이라 필수교양 과목을 같이 수강했고, 우연히 같은 조가 되어서 팀플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1학년 때 그에 대한 기억은 학교에 대해서 아는게 거의 없다는 것과 (심지어 98년도에는 수강신청을 인터넷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써서 했기에 인터넷으로 수강신청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적어도 자기 앞에서는 동생들이 밥이나 커피 등을 제 돈 내고 사 먹게 놔두지 않았다.
내가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 집의 가세가 많이 기울어있었다. 다행히 학자금 대출이 있어서 학교를 못 다닐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말 알바만으로는 예전처럼 돈 걱정 없이 놀러다니고 그럴 수는 없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지하철을 타면 기본요금 900원에 추가요금 700원이 찍혔는데 역 2개 전에서 내리면 추가요금이 600원이었기에 그 요금으로 정기권을 끊고 운동삼아 걸어다녔다. 밥은 가능하면 집에서 해결하고 시간표상 어쩔 수 없는 경우는 학식에서 해결했다. 다름 사람들과 어울리면 군것질도 하게되고 학식이 아닌 비싼 밥을 먹게 되니 의도적으로 피했고, 그렇다보니 당연히 내 인간관계는 다 끊어지거나 멀어졌다.
그렇게 1년을 다니고 그 형이 복학했다. 가사휴학과 특별(?) 휴학을 전부 써서 2년 동안 휴학을 했다는데 그 이유가 모아둔 돈이 떨어져서 노가다를 뛰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움에 밥 1~2번 먹었지만, 그 이후로 나는 역시나 이래저래 핑계를 대면서 피했다. 물론 이 형은 그 때도 예전처럼 동생에게 밥 값을 내게 하지는 않았고, 나도 예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얻어먹으면 되는거였다. 그런데 내가 돈이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일이, 주머니가 비어있으니 심적으로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고 결국은 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형은 기어코 나를 찾아냈다. 사실 대학에서 공강시간에 있을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곳은 학교 중앙 도서관(자습실) 밖에 없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자습실을 돌아다니면서 나를 찾아내고 혼자 밥 먹기 쓸쓸하다, 모르는게 있는데 밥 먹으면서 알려달라 등 등의 이유를 대면서 나에게 점심을 사 먹였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해서 뭐하냐? 어디냐? 심심해서 해봤다 그러고, 자기가 가입해 있는 동아리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무너지고 닫히다 못해 자물쇠에 못질까지 되어있던 내 인간관계를 조금이나마 회복해줬다.
졸업을 하고나서 (지금까지도...ㅠ) 취업을 못 하고 알바로 그냥저냥 살고 있을 때도 이 관계는 지속되었다. 물론 조금 달라진건 있다. 예전처럼 학교를 다니는게 아니라서 알바도 평일에 하고 그러다보니 돈의 여유가 조금 있어서 커피값 정도는 내가 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작년 10월 형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기사 자격증을 준비한다고 했다. 지인으로부터 기사 자격증을 따면 회사에 관리자였나 책임자였나로 뽑아준다는 제안 때문이었다. 그 동안 모아둔 돈이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350만원 정도 있다고 했다. 시험이 3월이니 아끼고 아끼면 반 년 못 버티겠냐고 그랬었다.
그런데 새해가 되자 연락이 뜸해졌다. 1주일에 못 해도 2~3번은 연락하던 사람이 1주일에 1번 연락하기도 힘들어졌다. 어찌어찌 연락이 되면 공부해야 된다는 변명을 하면서 연락도 만나는 것도 회피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한테 그런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이 형은 초집중해서 1~2시간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은 놀고 먹고 자는 사람인데 공부하느라 바쁘다니... 아니 애초에 공부하느라 바쁜 사람이 왜 배틀넷은 접속중인건데?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몸으로 배운 방법이 하나 있다. 사전에 얘기 없이 무작정 집 근처로 찾아가서 연락을 했다, 받을 때까지. 전화가 되면 지금 근처에 있는데 나와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좀 쉬시라고, 멀리서 왔는데 나오시라고, 지금 영하 10도인데 얼어 죽겠으니 빨리 나오시라고 했다. 그렇게 매주 찾아가서 커피 사고, 밥 사고 심지어 지난 설연휴에도 찾아갔다. 내가 당한(?) 그대로 똑같이 되갚아 주려고 말이다.
그렇게 설 연휴까지 찾아오니 형으로서 부담이 되는건지, 동생이 걱정되는건지, 마음은 고맙지만 이제 교통비 낭비하지 말고 그만 찾아오라고 그랬다. 그래서 한 마디 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형한테 배운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래요. 저 공부하느라 바쁠 때 맨날 불러내서 밥 먹자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이게 다 형이 뿌린 씨앗인디요?"
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너 이 새X 어디서 못 된 것만 배워가지고 말이야, 내가 그래서 이 모양 이 꼴인거잖아. 너 뒷바라지 하느라. 나처럼 살래?'
"네, 저도 나이 마흔에 공부한다는 핑계로 하루종일 와우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러면 너도 이제 서른이니 졸업 취소하고 학교나 다시 다녀라. 그게 날 따라잡는 첫 걸음이다 이 새X야 크크크'
돌아오는 일요일 3월 5일에 시험이 있다. 붙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글 쓰고 있는 지금도 이 형은 배틀넷 접속 중이다. 심히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