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춥네요. 다들 꽃샘추위 감기 조심하세요!
그나저나 폰바꿔야하는데 단통법땜에 뭐 살 엄두가 안나네요. 폰 왜이리 비싸졌죠?
어쨌든 글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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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이와 데이트도 하고, 연주의 고마운(?) 독촉에 시험 공부도 하다보니 어느덧 주말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리고, 학교는 바야흐로 대 시험 기간이 열렸다!
학생들의 활기는 가라앉고, 한숨과 정체모를 늘어짐이 난무한다.
공부를 몇 분이라도 미루고 싶은 흡연자들의 출몰이 여기저기서 증가한다.
잦은 과제에 쌓인 피로를 풀기도 전에 시험이라는 거센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나 역시도 그 거센 파도를 헤치는 미개한 경영학도 중 하나일 뿐이니,
바라는 것이라곤 제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부분에서 시험 문제가 나와주길 바랄 뿐이었다.
첫 시험에 들어가기 앞서 남는 시간동안, 한 번이라도 더 책을 훑어보기 위해 비장한 마음으로 과실로 향한다.
과실에 도착하니 현중이외 남자 후배 녀석들이 시체놀이라도 하는 듯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아마 시험 공부 한답시고 공부방으로 바꾼 과실에서 밤을 샌 것 같았는데,
주변에 널린 참혹한 치킨의 시신들과 맥주병들을 보니 뭣하러 여기서 밤을 샜는지 모르겠다.
"야, 일어나. 임마."
정신 못차리고 기절해 있는 현중이에게 다가가 뺨을 툭툭 쳤다.
"아으, 으으으음."
포식하고 술까지 쳐먹고 잔 까닭인지 아주 제대로 잠든 모양이다.
좋은 말로해서 안 일어나면 이쪽에서 거칠게 나갈 수 밖에.
갓 전역한 녀석에게 이보다 좋은 알람은 없겠지.
- 빠빠 빠빠빠 빠빠라빠빠 빠빠빠! 빠빠 빠빠 빠라빠라빠!
"김현중 이병 기상! 기상!"
군대의 기상 나팔. 전역한지 꽤 된 나조차도 무의식 중에 듣게되면 움찔하게 되는 마성의 알람이다.
크, 그루브 죽인다.
"어으으? 뭐야? 나 전역했다고!"
현중이는 나팔 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잠시 부르르떨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났냐?"
"아 형! 진짜 놀랐잖아요."
"크크크, 그러니까 좀 좋게 깨워줄 때 일어나지 그랬어. 군대 다시 간 꿈이라도 꿨냐?"
"아 진짜. 내 더러워서."
짜식. 저렇게 반응하는 맛에 괴롭히는 재미가 있단 말이야.
현중이의 소란과 함께 뒤에 쓰러져있던 나머지 시체들이 좀비마냥 움찔거리며 하나 둘씩 일어났다.
"근데 니네 시험공부 한다고 여기서 밤샌 거 아냐?"
"그렇죠."
"근데 이 치킨들이랑 맥주병은 뭐냐?"
"음, 그것들은 열심히 공부한 저희 스스로에게 주는 금일봉이랄까..."
아주 우리 현중이가 개소리하고 자빠졌다. 안 봐도 비디오다.
아마 대충 공부한답시고 좀 끄쩍거리다가 사다리 타고, 치킨에 맥주를 때렸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공부하겠다고 펜을 잡아 봤겠지만, 결과는 꿀잠.
"에휴, 됐고 다들 세수라도 하고 정신차리고 대충 책이라도 훑어봐라."
"아유, 형. 형까지 잔소리에요? 형 그러고보니 지금 뭔가 연주같았어요."
"뭔소리야 연주정돈 아니다. 그냥 니 꼬라지를 보니 노파심에 한 마디 한 것 뿐이라고."
암. 그렇고 말고.
"그랬어요 선배? 저도 지금까지 다 노파심에 그랬던 거에요."
"그래 맞아 다 노파심에..."
응?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현중이한테 뭐라고 하기 전에
선배부터 잘하시는 게 어때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연주가 어느새 과실 앞을 턱 가로 막고 서있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사람의 아픈 곳을 쿡쿡 찌른다.
"어머? 선배 왜 대답이 없어요? 자기는 그렇게 주말에 영화도 보고 펑펑 놀더니."
"뭐? 형! 주말에 영화 봤어요? 누구랑요?"
젠장. 이대로 현중이 녀석에게 까발려지면 학과 내 소식이 퍼지는 건 5분 컷이다.
이럴 땐 역시 삼십육계 줄행랑을...
팍!
"어디 가시려구요?"
연주가 박력있게 한 팔로 입구를 가로 막는다.
이럴 수가... 이것이 세계챔피언을 상대하는 도전자들의 심정인가.
찌, 찌를 구석이 없다!
"저랑 얘기 좀 하시죠.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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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연주에게 붙잡혀 매점에서 빵과 음료를 헌납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떠벌이인 현중이 녀석이 신나서 매점까지 따려오려는 것을
연주가 째릿, 패기로 차단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참 주말동안 팔자 좋으셨겠네요. 선배?"
"아니, 그래도 일요일에는 공부했어."
희망을 버리지 말자. 내겐 아직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어.
"영화는 재밌었어요?"
순간 연주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다.
효과는 굉장했나?
"재밌더라. 너도 시간나면 '소꿉놀이도 사랑이 필요해' 봐."
"그 영화라면 저도 참 보고 싶어하던 영화였는데,
남자들은 그런 영화 혼자선 안 보잖아요. 그래서 누구랑 보셨는데요?"
효과가 굉장하긴 개뿔. 그대로 연주의 거미줄에 걸려버렸다.
지연주, 괴물같은 계집애.
내게 남은 방법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밖에!
"영화 좀 볼 수도 있지. 누구랑 봤는지가 그렇게 중요해?
누구랑 보던 무슨 상관이야. 고, 공부는 내가 진짜 오늘부터 열심히할게!"
"..."
바로 타박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연주가 잠잠하다.
"그러네요. 선배가 누구랑 영화를 보던. 저랑은 상관 없는 일인데."
응? 뭐야 이 분위기는. 따갑게 추궁하던 연주가 차갑게 식어버렸다.
어째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해버린 느낌이다.
지금 내가 무슨 큰 실수를 한 건가? 뭐지.
"그렇네요. 미안해요 선배. 하아.
먼저 가볼게요."
연주는 내가 사준 빵과 음료도 그대로 남겨버리고 사라져버렸다.
뭔가 더 이상 타박을 듣지 않고 잘 넘어간 것 같긴 한데, 마음 한 켠이 굉장히 갑갑해졌다.
이런 연주의 반응은 아예 처음이다.
"어 현우오빠다."
벙쪄있는 내게 은성이가 아는 체 해왔다.
그래 은성이라면 연주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지도 모른다.
"연주 못봤어요?"
"아 보긴 봤는데 그게, 잠깐 내 얘기 좀 들어줄래?"
방금 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은성이에게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은성이는 대뜸 쯧쯧하고 혀를 차기 시작했다.
"오빠 진짜... 심각하네요. 저는 연주 찾아 가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사라졌다.
매점에 남은 내 머릿 속에는 물음표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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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오늘 하루 시험은 치긴 쳤는데, 이 맘 때쯤 시험은 어땠냐며 물어보는 연주의 연락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기에는 은성이의 전례를 봤을 때, 아닌 것 같고.
"미치겠군."
"여어, 친구 뭐가 미치겠는데?"
혼자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주찬이가 자연스럽게 접근해 어깨동무를 걸었다.
"이 형님께 얘기해봐. 뭐가 문제야?"
"그게...아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하잖아. 뭔데?"
이걸 말해? 말어?
다짜고짜 다 털어놓기는 그렇고 대충 간만 봐야겠다.
"그냥 연주한테 말실수를 한 것 같은데 평소랑은 반응이 달라서. 뭔가 기가 죽었달까... 차갑달까..."
"연주가? 에이 나쁜 새끼. 그럼 니가 죽을 죄를 졌네."
아니 함주찬 얘는 뭐 앞 뒤 사정도 안 들어보고 견적을 내냐.
"내가 뭘?"
"몰라. 그냥 연주가 그랬으면 니가 뭘 했어도 한 거겠지. 연주 걔가 왠만한 일에 반응하는 하는 거 봤냐?
세상에 그 연주가 기가 죽었다고? 안 들어봐도 뻔하다 임마. 내 친구지만 나쁜 새낀거지."
미치고 팔짝 뛰겠군. 웃긴 건 주찬이의 말을 들을 수록 정말 내가 연주에게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다.
"고민이고 나발이고 니가 먼저 좀 연주한테 연락해서 말 좀 잘해라.
뭐 내가 앞 뒤 사정은 모른다만, 연주가 그랬으면 이유가 있겠지 임마.
그리고 어차피 그런 일로 머리싸매봐야 답도 없어. 당사자간 일은 당사자간 대화로 풀어야지."
가끔 이럴때 보면 주찬이 얘는 현자같은 면이 있다.
그래 지금 당장 나 혼자 이 찝찝함을 풀려고 해봐야 답이 없다.
나는 그대로 주찬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연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
몇 번이나 수화음이 반복된다.
설마 전화도 안 받으려나?
- 여보세요.
"아, 나야."
- 알아요. 선배.
다행히 전화는 받았는데, 뭐라고 말을 꺼내야 좋을까.
"내가 너한테 뭔가 실수한 것 같아서!"
- ..., 실수같은 거 한 적 없어요 선배. 다른 일 없으면 끊을...
"아냐, 진짜 주찬이 말대로 니가 이러는 거 보니까 내가 뭘 잘못하긴 했네. 만나서 얘기 좀 하자."
- ..., ...., 지금은 쭉 공부할거니까 이따 공부 끝내고 밤에 가기 전에 잠깐 봐요 그럼.
35 끝. 36에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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