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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1/12 14:26:25
Name 낭만토토로
Subject [일반] [경제학] 한 경제학자의 극적인 변화
안녕하세요. 가끔 글 한 번씩 쓰는 낭만토토로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 중에 "거시 경제학은 믿음의 학문이다"가 있는데, 요 몇 년간 그 믿음이 극단적으로 바뀐 매우 유명한 경제학자가 있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미국의 FRB (Federal Reserve of Board: 연방준비은행)은 여러 지역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중에 미네소타의 미니애폴리스라는 도시에 근거를 둔 지역구는 Minneapolis fed (이하 미네소타 페드로 통칭하겠습니다)가 관할합니다. 여러 지역의 준비은행 중 미네소타 페드는 학술적으로도 유명한데, 특히 근처에 있는 미네소타대학 (정확하게는 미네소타 대학 중 미니애폴리스 캠퍼스)의 경제학과는 흔히 불리는 대표적인 민물학파 (fresh water: 정부의 개입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파) 거두들이 있는 곳이라서, 연준의 지원을 받되 연준의 행보나 정부 정책의 개입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연구기관으로 유명하죠. 이 학파의 유명한 이론 중 하나가 실물경기변동이론 (real business cycles theory: RBC theory)입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실물 경기는 화폐 부분과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어서 화폐정책은 의미가 없다고 하는 이론이죠.

이 미네소타 페드에 Narayan Kocherlakota 라는 유명한 미네소타 대학의 교수가 의장으로 몇 년 전에 임용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미네소타 대학 교수이다 보니 화폐/정부 정책에 호의적인 분은 아니었죠. 그런데 이 분이 의장에 임명된 후 학문적 입장이 급격하게 바뀌는데, 정부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주장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 유명한 사건이 이 미네소타 페드의 유명한 거시학자들 계약을 종료/혹은 해고하고 (이들은 정부/중앙은행의 정책에 부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정반대되는 학문적인 입장을 가지는 사람들을 임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사건이었죠.

더불어 이 분이 최근에 의장 임기가 끝나고 다시 연구를 시작하면서 새로 낸 논문이 있는데 제목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Fragility of Purely Real Macroeconomic Models," 즉, 앞에서 소개한 RBC 이론이 굉장히 이론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물론 증명이나 가정의 타당성은 제가 그렇게 깊이 본 게 아니라 말씀 못 드리겠네요) 논문입니다. 즉, 이 분은 단순히 학문적 입장이 바뀐게 아니라, 왠지 뼛속 깊이 자기가 있던 학교의 반대파가 된 듯한 느낌이네요.

특히 제가 이 논문의 도입 부분에서 인상 깊게 본 문구는 "However, their fragility means that purely real models are simply too incomplete to be useful in interpreting the world."입니다. 즉 RBC 모델은 정말 완성되지 못했다. (Prescott 이 들으면 기절할 소리를...)... 몇 년 전에, 미네소타 대학 (혹은 미네소타 페드)에서 유명한 거시경제학자들, Chari, Kehoe, McGrattan (2009, AEJ-Macro)이 쓴 논문의 제목이 "New Keynesian Models: Not Yet Useful for Policy Analysis"였는데 정반대의 논의를, 같은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 주장하네요. 이 정도의 급격한 학문적 입장 변화를 보이는 사람은 거시학계에서는 잘 없는데, Kocherlakota정도의 유명 인물이 이렇게까지.. 참으로 신기합니다.

매우 흥미롭게도, Kocherlakota 는 의장 임기가 끝난 후 RBC 모델의 중흥기와 함께한 로체스터 대학의 특임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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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츠나
16/01/12 14:27
수정 아이콘
이게 경제학이 아니고 종교학이었으면...
낭만토토로
16/01/12 14:29
수정 아이콘
아마 이 분이 원래 있던 학교에선 거의 배교자 수준으로 여기는 걸로.. "니가 우리한테 그렇게 할 수 있냐!!" 이런 식의..
세츠나
16/01/12 14:47
수정 아이콘
일종의 개종이라 볼 수도 있겠네요.
낭만토토로
16/01/12 14:49
수정 아이콘
네, 개종이죠. 심지어 그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가 자기 편(이라고 표현하면 좀 극단적이겠지만)들을 쳐내면서 한 개종이라 난리가 났었죠.
소독용 에탄올
16/01/12 14:32
수정 아이콘
종교학 쪽은 생각보다 저정도 대립이 잘 안생기는 영역이죠.

일단 학파가 다수 생기고 투닥투닥 할 정도로 분과학문이 크게 흥하고 주목을 끌어야 저런 일이 알려지는데 ㅠㅠ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6/01/12 14:33
수정 아이콘
자리에 따라 사람이 바뀌는 거야 머..
낭만토토로
16/01/12 14:36
수정 아이콘
자리에 따라 사람이 바뀔 수는 있지만, 거시경제학은 특성상 종교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서 저렇게까지 바뀌는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더 유명한 사례가 되었지요. 특히 저 경제학자는 학문적으로도 훌륭한 분이라..
BetterThanYesterday
16/01/12 14:33
수정 아이콘
와 충격이네요,, 저렇게 하기 쉽지 않을텐데,,,
저 신경쓰여요
16/01/12 14:43
수정 아이콘
저는 관련 지식이 없어서 저 학자의 본래의 믿음이 옳은 것인지, 바뀐 믿음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도킨스 책에 실린 일화가 생각나네요. 자신의 이론을 수십 년 동안 연구해온 노과학자가, 다른 과학자에게 그 이론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음을 지적 받자 그에게 다가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는... 이 경우는 스스로 생각을 바꾼 것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더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긴 하네요. 재밌습니다.
낭만토토로
16/01/12 14:50
수정 아이콘
네. 저도 제 믿음은 있지만, 어느쪽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런 사람도 바뀌는 구나..싶어서 신기할 뿐이죠.
16/01/12 14:47
수정 아이콘
알비시 엠비시!!! 반갑고 신기하네여 교과서에서 본 분이 변절하다니 크크크
낭만토토로
16/01/12 14:50
수정 아이콘
네 저쪽에선 변절자의 대명사가 되신 듯 합니다.. 대신 높은 직위에 다른 편을 얻었으니까요. 흐흐
16/01/12 14:58
수정 아이콘
작년에 한국에도 왔었는데 이런 배경이 있는 사람이었군요. 재밌는 글 잘 봤습니다. 소개해 주신 논문 읽어보고 싶네요.
김촉수
16/01/12 15:25
수정 아이콘
전에 어디선가 들었는데... 저런 정부관료?에 취임한 사람은 정부의 역할에 부정적이면 이쁨받기 힘들거나 취임이 안된다고 들은적이 있네요. 정부에서 뭣좀 해보려고 임명했는데 '정부 넌 할수 있는거 따윈 없으니 찌그러져 있으렴' 이라고 하면 흐흐
낭만토토로
16/01/12 15:32
수정 아이콘
네 아무래도 그렇긴 하겠죠. 그래서 전 대규모 경제학자들의 해고 (물론 그들은 다른데 이미 직장이 있거나 금방 잡는 사람들이니까 큰 문제는 아닙니다)에도 동의하는게, 정부 (혹은 중앙은행)의 돈을 받으면서 연구하고는 정부 역할 없다고만 주장하고 있으니 돈을 주고 싶을리가.......
고스트
16/01/12 15:39
수정 아이콘
이거 혹시 그거 아닐까요? 시한부 인생의 친구 폴과 다짐했던거죠.
"폴 내가 올라가서 학교를 바꿀거야!"
낭만토토로
16/01/12 15:41
수정 아이콘
빵 터졌네요. 그리고 그 시한부 인생이라고 믿어졌던 폴 (크루그먼)은 죽기 전에 열심히 공부하다 노벨상까지 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세인트
16/01/12 17:47
수정 아이콘
이분들 설계보소...크크크크크
Re Marina
16/01/12 16:02
수정 아이콘
비교하자면 요한 크루이프가 갑자기 킥 앤 러시를 해야한다고 외치고 다니는 그런 셈이겠네요...
낭만토토로
16/01/12 16:09
수정 아이콘
아니면 레알로 이적한 피구....
매벌이와쩝쩝이
16/01/12 19:46
수정 아이콘
칼레디하는 박태민?
윤아긔여어
16/01/12 17:28
수정 아이콘
배경지식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 참고로 말씀드리면...
경제학에서 학파란 것은 단순히 이론에대한 성향수준이 아니라 믿음, 종교, 고집에 가깝습니다. 크크
타 학문에 비해 아주 극명하게 이론이 갈리고 그 중심에는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이 필요한가 아닌가에 대한 찬반이있구요.

본문같이 고전학파계열의 RBC론자가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는건 크리스찬이 이슬람교로 개종한 수준입니다 크크크
레기아크
16/01/12 17:58
수정 아이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시니컬하게만 보면 돈과 권력의 유혹에 넘어간 배신자처럼 보이네요.
그런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어서리...
낭만토토로
16/01/12 21:11
수정 아이콘
제 생각엔 아마 반대쪽 입장이 필요한 일을 하다보니 자기가 반대 논리에 설득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블랙비글
16/01/12 18:16
수정 아이콘
전향했기 때문에 지방연준의장이 되었는가, 아니면 지방연준의장이 되었기 때문에 전향했는가는 endogenous 한 문제군요 크크
우린 단지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관찰할 뿐..
낭만토토로
16/01/12 21:12
수정 아이콘
아마 타이밍상 연준의장으로 몇년 일하면서 바뀐 거라 후자일 것이라 추론은 되지만 증명은 못하겠네요. 흐흐..
무식론자
16/01/12 18:25
수정 아이콘
종교 관련 얘기 나왔으니 말인데 앤서니 플루라는 사람이 생각나네요. 무신론계의 거두로 유명했는데 말년에 유신론자로 입장을 바꾸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죠. 어느 학계나 이런 일이 한번쯤은 있나보네요. 크크
트롤러
16/01/12 20:45
수정 아이콘
어느 학계나 그렇지마는 학파의 거두가 될 정도로 깊게 몸담았던 사람이 전혀 반대항으로 배교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니 신기하네요. 특히 경제학과 같은 경우는 차라리 일찍 빠져나와서 돈을 벌면 벌었을 냥반들이 많아서 그런가 돈 때문에 그렇다고 해석하기도 좀 못 믿을 구석이 있고요. 뭐 나온 결과로 해석하는 게 맞다면 차라리 명쾌하겠네요.
16/01/13 16:30
수정 아이콘
근데 RBC에서 케인지안이 되지는 않았을거고 한 통화주의 정도로 전향한건가요?
낭만토토로
16/01/13 22:45
수정 아이콘
뉴케인지언이 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아요. 가격의 경직성+화폐정책의 유용성 등을 뉴케인지언식으로 주장하고 그쪽 학자들을 끌어들여온 것으로 봐서..
내일은
16/01/13 19:58
수정 아이콘
반대로 짠물학파이었던 맨큐가 부시 정권에서 임용되고 맨큐 2판까지 있었던 레이건 정권 경제정책 까던 아티클을 3판부터 슬그머니 삭제했죠. 타과생이자 지식사회학 하던 입장에서 경제학 재수강 하면서 맨큐 편집 바뀐거보고 얼마나 웃기던지. 나중에 보니 크루그만도 이거 칼럼에서 까더군요. 크크
뭐 이쪽은 개종보다는 자리주니 바뀌는 변절에 가깝긴 합니다만
낭만토토로
16/01/13 22:58
수정 아이콘
사실 맨큐는 학문적으로는 뉴케인지언이라서 짠물학파라고 할 수 있지만 예전부터 (특히 블로그에서) 정치적인 활동은 전형적인 공화당의 행보를 보여왔죠. 학문과 정치적 입장이 정반대인 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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