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부산에 내려갔다.
대학간다고 서울에 간 이래 생일을 한 번도 함께 보낸 적이 없다는 엄마의 말이 꽤나 서글펐기 때문이다.
사실 어렸을 적에야 빨리 어른이 되기 위해, 또 선물을 받기 위해 자기 생일을 기다린다지만,
어느 만큼 머리가 굵어지고 나면 낳고 길러준 부모님께 감사를 해야 하는데, 그리도 무심했구나 싶었다.
결국 그 한 마디에 미루던 결정을 짓고 내려가니, 언제나처럼 환한 두 분 얼굴이 너무도 행복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마음 속 얘기 한 움큼, 눈물 한 줌 쏟아내니
사람 사는 게 별 게 아니라는 개똥철학이 머리를 스친다.
엄마는 생일 날엔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며,
학교 식당에서 그리도 자주 나온다는 미역국을 해서
벌써 10년째 챙겨먹지 않은 아침을 꾸역꾸역 먹인다.
그리 좋아하지도 않은 미역국을, 자다가 일어나 먹으려니
고역일 법 한데, 의외로 술술 넘어간다.
역시 우리 엄마는 요리를 잘 하는가 보다.
그리곤 오랜만에 생일 선물을 한다며,
커다란 아울렛에 데려가 이 옷도 입히고 저 옷도 입혀본다.
그 놈의 자식사랑이 뭔지
운동화 신은 내 발바닥도 슬슬 아파오는데
이미 봐둔 옷들이 있다며
구두를 신고서 잘도 찾아나선다.
어제는 그 마음에 드는 코트가 비싸다며 쥐었다 놓았다 하더니
오늘은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자며 쥐었다 놓는다.
돌아오기 전 마지막 밤 아들보다 한참 나이먹은 엄마는 못난 자식이
나이 먹는 게 애닳아 TV에서 봤다며, 처음 보는 팩을 만들어 온다.
이리 누으라더니, 아들 얼굴에 한 번 칠하고,
조금 남았다며, 남편 얼굴에도 한 번 칠을 한다.
그 덕에 엄마의 말썽꾼, 아들놈과 배나온 아빠가 나란히 눕는다.
제법 웃긴지, 엄마 얼굴에 살포시 웃음이 샌다.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그렇게 팩을 끝내고선,
지나간 영화를 한 편 찾아 가족 셋이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본다.
예전엔 성룡 영화를 제외하곤
영화만 켰다하면 액션, 스릴러 가릴 거 없이
연신 졸아대던 아빠가 눈 한 번 감지 않고 보는 게 아들은 마냥 신기하다.
따뜻한 전기장판 위 푹신한 이불 아래서
아들은 영화에 몰입한 두 사람이 너무도 정겹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엄마가 문득 지나가듯 말한다.
"같이 살면 좋겠다."
생각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는다는데,
나는 개구리 띠도 아니건만, 여직 그 말이 마음에 남아 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자주 찾아야겠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