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어떻게든 취업이란걸 해서, 마지막 학기 한과목을 취업계로 대체하기 위해 부산행을 했다.
우리 과 수업이 아니라 타과 교수님이었기 때문에 '교수님! 한번만 살려주십쇼! 이렇게 각골난망으로 빌겠습니다!' 이렇게 빌기 위해서 였다.
어찌됬든 취업계는 잘 처리되었고, 지도교수님 만나서 말씀드리고, 교수님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냥 흔한 이야기였다. 앞으로 사회에서 많은 난관이 있을거고, 네가 취업한 곳도 결국 쉽지 않으니 잘 해보아라.
술을 연거푸 따라주셔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놈이 계속 받아먹은거 같다.
교수님은 술이 불콰해지셔 음식점에 차를 둔채로 그대로 교수 아파트로 퇴근하셨고 나는 고향 가는 버스는 놓친지 오래.
결국 그날 저녁 부산에서 일하는 동기들 집에 가기도 뭣 해서, 후배가 먹고 자고 하는 대학 연구실에 신세지기로 하고 전화로 '야. 나좀 재워줘' 하고 터덜터덜 걸어서 대학으로 돌아오는길이었다.
배가 사르르르 아팠다.
익숙하지도 않은 정장을 입은 채, 구두도 길이 안들어서 발이 계속 아팠다.
수많은 안좋은 상상이 나를 괴롭혔다. 산모(産母)님들이 출산을 하실때, 진통이 주기를 가지고 찾아온다 하셨던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때 한번은 정신이 아득해질정도의 천둥 번개가 뱃속을 강타했고 등허리는 식은땀으로 축축히 젖었다.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을때, 주변 대로변 가게 어디 한군데라도 연 곳의 화장실로 뛰어들 작정으로 발걸음을 빨리 했지만 부산 영도의 가게들은 밤늦게 영업하는곳이 드물었다.
하필...
부산 경제를 말아먹은 허시장을 원망하고, 참을 인자를 쉴새없이 되뇌이며, 학교 순행 버스의 막차를 타고 그대로 학교 공대 본관 1층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이제는 자유다!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길이 덜든 정장 벨트가 안풀어지더라...
정장 벨트를 푼답시고 손을 바들 바들 떨면서 손을 계속 놀렸다.
머릿속으로 타이머가 돌아갔다.
3.
2.
1.
...
벨트를 끄른것과 뱃속이 고통과 괴로움에서 해방된것은 거의 동시였다.
바닥으로 무엇인가가 뚝뚝 떨어지는것을 느끼며, 나는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일단 조심스럽게 바지를 벗고 팬티와 바지를 봉인...했다.
잔여물을 일단 닦아낸 후에, 바지와 팬티를 물로 일단 손빨래를 했다.
따로 가지고 있던 가방에, 정장바지 불편할까봐 반바지를 챙겨놓은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상의는 와이셔츠, 노팬티에 반바지라는 조합으로 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야, 나 오늘 랩실 말고 다른데서 자기로 했어. 그래. 치킨은 나중에 먹자. 수고해라.
공대건물과 따로 떨어진 복지관에 샤워장이 있다는걸 기억해내, 거기 공용으로 놓인 비누로 제대로 빨았다.
온갖 자괴감이 나를 지배했다. 접싯물에 코 박을수 있다면 박고 죽고 싶었다.
옷을 주섬 주섬 챙겨 입은 후. 어딘가 갈곳이 없었기에 복지관 식당 앞 휴게실 좌석에 드러누운채 잠을 청했다.
바지가 말라야 뭐 행동의 운신이 생기고 말이다.
평생의 비밀로 가져갈 생각이었다.
인생의 흑역사는 많고도 많았지만...
그때, 술먹은 불알 친구의 전화가 왔다.
회사 일에, 정의롭게 살고 싶지만 그럴수 없는 현실에, 스스로에게 실망해, 자괴감에 지쳐버린 친구의 술취한 목소리였다.
울고, 또 넋두리하고, 좌절한 이야기.
나도 오늘 스스로의 괄약근에 좌절했다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수가...
없었는데.
이대로 콱 죽어버리고 싶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오늘 내가 경험한 일을 이야기 했다.
술취한 새끼가 그렇게 우울해하다가 배를 잡고 웃더라...
내가 대신 죽고 싶었다. 아니, 진짜로 복지관 3층에서 뛰어내리면 죽을까 살까 생각까지 들더라.
그래도 술 제대로 취한상태고, 이런 상태에서 다음날 지가 무슨이야기 했는지 기억못하는 놈이었으니 까먹겠지 했지.
샤워장 비누는 잘 챙겨서 버린 뒤, 새 비누를 다음날 아침 매점에서 사다 비치했다.
나는 잘 마른 바지를 다시 입을 생각을 하지 못 해 양복 상의에 반바지 차림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물론 세탁 다시 맡기고 다시 잘 입고 다니지만, 그땐 그렇더라.
친구는 기억 못할줄 알았는데, 이 새끼가 그것만은 기억해서 술자리에서 계속 놀린다.
왜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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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알이라 그냥 한번 적어봅니다. 어차피 친구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이야기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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