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는 운전석에 앉아 시속 240마텔까지 악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자신의 얼굴을 점검했다.
원래 피부 톤보다 한 톤 정도 밝은 파운데이션으로 베이스를 환하게 꾸미고, 그 위에 사랑의 신전을
얹듯 눈꺼풀에는 반달 모양의 연푸른빛 셰도를, 그리고 아래는 약간 묵직하고, 위로 갈수록 연해지는
그라데이션을 펴 일종의 점층법을 이룬 얼굴이었다. 특히 바비는 필멸자 여성에게 아이래시 구입을
재고하게 만들 정도로 풍요롭고 화사하고 그러면서도 공작새의 깃털처럼 방사형으로 샤프니스하게
스프레드 된 눈썹의 소유자였다.
거기에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이시리스와 오시리스, 제우스와 헤라, 트리스탄과 이졸
데, 우유와 오레오, 제다이와 광선검처럼 영원한 한 쌍으로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칭송 받을 가장 아
름다운 부분, 바로 그녀의 입술이었다. 그녀의 표준 와인레드색 입술은 일종의 전설로서 많은 업체에
서 이를 재현하거나 영광에 편승하려고 와인레드니 러시안레드니 레드와인이니 막 만들어대지만 그
모든 시도는 이를 수 없는 꿈처럼 사그라드나니.
해서 그것은 극치. K리그 포항 대 울산 경기장 응원단 앞을 왕복하면서 "나는 그녀, 바비의 입술을 숭
배하며 그녀의 제단 샵마텔닷컴에 비자 카드를 바친다."라고 소리높여 경탄하여도 떳떳하고 남부끄럽
지 않을 미의 향연.
그녀가 포르셰를 고속으로 몰면서, 운전에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자기 미적 현황 점검 시간을 갖는 동안
그녀는 레고 블럭 점심을 먹으러 집단으로 걷던 레고 시티 광산 시리즈의 광부 레고 인들을 다수 치었다.
하지만 그들이 출혈 없이 그저 조각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바람에 바비는 사고 자체를 전혀 인지하지 못
했다.
미모에 문제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바비는 힘들여, 마지못해 이 점을 인정했다.
코 근처가 문제였다.
코는 원래 연질 플라스틱으로서 콧대가 높기에 펄없는 옅은 브라운 색상의 섀도나 아이브로를 이용해
음영감을 줄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으나, 코 양옆의 광대가 빛의 짓궂은 장난으로 각도에 따라 너무 도
드라져 에보니 바비... 엣헴... 그래 그러니까 블랙... 그쪽과 혼동이 될까 봐 항상 걱정이었다.
"지겨운 인종 차별 금지 같으니."
바비는 화풀이처럼 약속 장소 직전인 바비 3 스토리 드림하우스(179.99달러, item#x3551)에서 좌측으로
그 왜 거 한 바퀴 구를 듯 속도를 잃고 주춤하다가 그 왜 거 다시 속도와 관성을 회복해서 코너를 부드럽
게 돌고 쏜살같이 앞으로 나가는 그 특수 기술로 재빨리 움직였다. 240 마텔에서 1마텔도 줄지 않은, 그
야말로 쾌거였다.
*
켄은 저 멀리 바비 2 스토리 비치 하우스(39.99달러, item#w3155) 앞에 서 있었다. 보타이에 하얀색 셔츠
를 받쳐 입은 검은색 턱시도 복장이었다. 다행이었다. 자신의 붉은 라이더 무스탕 재킷을 저 무채색의 턱
시도가 더욱 붉게, 더욱 튀게 만들어줄 것이다.
만약 그가 비치 하우스 앞이라고 하와이안 셔츠에 카고 반바지를 입고 서 있었다면 분노에 차서 당장에
패션 감각 없는 머리통을 뽑아 버렸을 것이다.
그녀가 차를 세우자 켄이 감탄하며 차 주위를 돌아다녔다.
"히야, 이거 무슨 차냐?"
바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 이 차 이름이 뭘까나. 말 그림이 있으니 말 차? 아님 빨강 차?"
"...아니 아니. 이름 말고. 차야 포르셰 911 캐브리올레이잖아. 차가 어떻게 생겼냐고."
바비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차를 산 적도, 빌린 적도, 빼앗은 적도 없었다. 그냥 오늘 보니 있길래 끌고 나왔을 따름이다.
원하긴 했었다. 자신의 입술처럼 와인레드 색 차에 재킷, 롱 스커트를 원했다. 가끔은 원하지도 않는 물
건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번처럼 소원이 이뤄지는 일이 태반이었다. 새삼스레 기쁨이 끓어올
랐다.
자신은 주목받고 있었다.
켄에게는 앞뒤 다 설명하기가 귀찮아 얼버무리기로 마음먹었다.
"글쎄, 어쨌든 있으니 새끈하게 드라이브 한 번 하면 되지 않을까나. 어때."
켄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물었다.
"나도 운전하게 해 줄 거냐?"
"봐서. 착하게 굴면."
켄이 특유의 살인 미소를 지었다.
"헤헹, 그럴 줄 알고서 미리 선물을 사놨지. 바비 디자이너블 헤어 익스텐션 팩(10.99달러, item# w4503).
원하는 대로 네 아름다운 금발 머리를 확장하거나 꼬거나 커트할 수 있어."
켄은 처음에 바비가 화난 줄 알았다. 눈을 홉뜨고 턱을 치켜든 채 계속해서 쏘아봤기 때문이다. 오해였다.
곧 바비는 와앙 기뻐 울면서 켄에게 안겼다.
"너밖에 없어. 너뿐이야. 너랑 영원히 함께할래."
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과거 같으면 이 말을 믿을 수 있겠지만 스티븐이니 대런이니 하는 놈들이 생긴
마당에는 이처럼 지속적이고도 깜짝 놀래키는 선물 공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운전대는 바비가 고집했다. 켄의 순서는 먼 미래의 일일 것 같았다.
켄이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빨간 차"가 질주했다. 켄은 가속력으로 조수석에 꽂히면서도 크게 환호했다.
차가 금세 240마텔을 돌파해 290까지 끓어올랐다. 주위 풍경이 쏜살같이 흐르며 차체가 마치 다른 공간에
도달한 것처럼 느껴졌다. 차는 한계가 없어 보였다. 아마 300마텔도 식은죽 먹기일지도 몰랐다.
포르셰가 행인을 치었다. 이번에는 켄과 바비 둘 다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둘 다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친 자는 레고만도 못한 존재였다.
치이면서 로브를 입고 있다가 터지면서 바닷물을 차에 튀겨 차를 더럽힌 점도, 과거에는 나름 짱짱했으나
현 시대 들어와서는 레고만도 못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1)
동행으로 보이는, 거대한 뱀을 닮은 희미한 형상이 엄마를 살려내라고 울부짖었지만 바비는 속도를 높여
그를 소실점으로 만들어 버렸다. 2) 어차피 바빌로니아(Barbielonia)에는 바빌로니언(Babylonian)을 위한 자리
는 없었다.
고속 주행음 빼고는 소리가 없는 짧은 침묵 속에 바비는 제단에 카드를 바치는 고객, 또는 인터넷 쇼핑몰이
나 오프라인 대형매점 일테면 토이저러스 같은 성당을 방문하여 지속적으로 자신들을 경배하고 되새기는
필멸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들이 신심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충전시키고 방대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바빌로니아는 유지는 커녕 수축기로 들어가 이 캐비 뭐라는 붉은 차도, 잘난 척하는 바비도, 남친 켄도, 아니
바빌로니아 자체가 아예 없었을 것이다. 정치 난민이 근처 주변국에 피난하듯 이젠 잊혀져 간신히 이름이 비
슷한 이곳에 남은 저 두 신들이 냉정한 현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침묵을 못 견디는 켄이 칭얼대듯 말했다.
"난 군대에 가고 싶어."
"연예병사 말고?"
"그럼. 일선에 서는 용감한 군인이 되고 싶어!"
바비가 쓰게 웃었다.
그가 원했으니 언젠가는 그도 군복을 입고 무기를 거머쥘 가능성이 있었다. 그 시기는 양자의 소망이 딱 맞아
야 하므로, 마텔 사 본사가 군신 또는 군신의 상相이 필요하다고 결정할 때가 될 것이다.
휴고 보스가 디자인한 의상, 블랙워터가 감수한 무기 일습, 제너랄 다이나믹스가 디자인한 탈것 등등 정치적인
부분만 해결되면 상업성은 끝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공한다면 새로운 필멸자들이 몰려와 새로운 숭배와
신선한 제물을 바칠 것이다. 그럼 지아이조 랜드 침략도 꿈이 아니었다.
정복과 확장을 연잇다 보면 더 큰 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긋지긋한 장난감 수준이 아니라 다르고 더 멋
진 몸, 오락을 넘어서서 생활 전반에 강제를 가할 수 있는 교리, 그러니까 필멸자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그런
강력한 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작은 신.
바비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되길 빌게."
1) 티아마트. 바빌론 신화에서 바닷물의 여신이며 다수의 괴물과 뱀을 낳았다.
2) 킨쿠. 티아마트의 몸에서 탄생하였으며, 티아마트가 낳은 괴물 중 가장 강력하고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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