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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6/05 19:18:56
Name 선비
File #1 3333333333333.jpg (105.5 KB), Download : 55
Subject [일반] 굉장히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나는 무엇인가?).


어제 저녁 잠들기 전에 이런 저런 잡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다가 딴 생각을 잠깐 하는데, 원래 하던 생각이 계속 이어지는 겁니다.
마치 두 사람이 동시에 내 머리에다 대고 이야기를 하는 거 같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생각이 여러개가 되니까 마치 인격 또한 둘이 되어버린 듯한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머리속에 이어지는 목소리(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네요)가 별개의 인격을 갖고 있고 통제 불가능하다는 기분이 드는 겁니다.
신기하면서도 황홀한 체험이었어요.
그 목소리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생각해보니 '나'는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더군요.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를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죠?
그래서 '나'라는 것을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주체로 가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의 물리적인 범위를 묻는 질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흔히 '나'라는 것은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신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손톱이나 머리카락은 나일까요? 심장이나, 적혈구, 팔다리는 나에 해당할까요?
이러한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는 유기체들의 합을 나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목욕탕에서 때를 밀거나, 머리를 자르면서 나의 일부를 잃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팔이 부러진 사람은 의수를, 심장을 기증받은 사람은 기증받은 심장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샴 쌍둥이나 다중인격, 즉 해리성 정체 장애(논란의 여지가 있는 질병이지만)는 한 신체에 두 개 이상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이아 이론은 제임스 러브굿이 주창한 가설로, 지구의 생태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러브굿은 지구의 구성요소 하나 하나가 가이아라는 하나의 유기체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내 몸의 폐가 없다면 이를테면 뇌가 존재할 수 없듯이, 나무나 숲이 없다면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죠.

물리학의 유명한 실험 중에 이중슬릿 실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이 부분은 전공자가 아니니 틀릴 수 있지만, 하나의 유비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실험대상을 이중 슬릿 실험 장치에 통과 시키면 해당대상이 입자인지 파동인지 알 수 있도록 고안된 실험입니다. 파동이 두 개의 슬릿으로 된 장치를 빠져나오면 간섭 무늬가 생길 것이고 입자라면 그렇지 않겠죠. 그런데 입자라고 알려진 전자를 쪼이는 실험에도 파동의 간섭 무늬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모든 물체(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드브로이는 이 생각을 발전시켜 '물질파'라는 개념을 정립합니다.
물질이 즉 파장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슈뢰딩거는 파동성이야말로 물질의 속성이며 물리적 사물은 일종의 거품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물질파는 파동함수로 제시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자의 세계에서 파동함수에서 측정되기 전의 입자는 오직 확률밀도로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걸 설명하는 게 코펜하겐 해석입니다. 모든 입자는 가능한 모든 위치에 존재하고 있다. 퍼져 있을 수 있는 모든 공간에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지만 동시에 아주 적은 퍼센티지로 미국이나 캐나다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측정되는 순간 저는 여기에 존재합니다. 파동함수는 측정되기 전에는 전 공간에 퍼져 있지만, 측정하는 순간 한 위치로 붕괴한다. 즉, 측정하는 순간 다른 위치에 존재하는 파동이 모두 사라져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코펜하겐 해석입니다(물론 그런 거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세한 건 전공자분들이 알겠죠).

그렇다면 나의 존재를 신체로만 한정하는 건 왠지 불합리해 보입니다. 물질이라는 것 자체도 절대적인 게 아닐진데 말이죠.
그럼 나의 존재도 파동함수와 같이 밀도를 통해 설명하는 것은 어떨까요? 나는 내 신체 주위에 가장 많이 존재하지만, 내 자유의지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 전체에 있다. 즉, 나의 의지가 미치는 모든 범위가 곧 '나'라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나'는 내 신체와 이어져 움직이는 의수나 냉동실에서 꺼낸 얼음 등도 포함되겠죠.

물리적 범위는 공간적 범위 뿐만 아니라 시간적 범위도 포함됨으로 '나'의 시간적인 범위를 정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태어나서(정확히는 태어나기 전 어떤 시간) 죽기까지라고 하면 적절할까요? 죽은 후에도 '나'로 인해서 세계가 변화되긴 하겠지만, '나'의 의지로 그걸 바꿀 순 없으니까요.

아니 쓰다보면 정리가 될 것 같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대체 나는 무엇인가요? 제가 체험한 다른 인격은 정말 실존했던 것입니까?
'나'는 정말 무엇인가요? 생각에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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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깡다구
13/06/05 19:22
수정 아이콘
공학도이지만 뭔가 좀..... 기분 나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주변인에게 들은 인격의 공존이라거나 같은 증상은 대부분 병리학적 근거와 관련이 깊었습니다. 생각을 정리해보시는게 어떨지요.
13/06/05 19:32
수정 아이콘
사실 길게 이어진 체험은 아니었어요. 어쩌면 다시 경험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냥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했다고만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13/06/05 19:25
수정 아이콘
양자역학에 대한 얘기는 좋습니다만, 너무 과하게 나가신 것 같은데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궁극적으로 물리학이 되었다는 견해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직접 겪으신 신비한 일의 경우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을 동원할 게 아니라 심리학과 의학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요.
13/06/05 19:35
수정 아이콘
제가 의학의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약간의 의견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그리고또한
13/06/05 19:37
수정 아이콘
물질파가 우리 신체를 논할 만큼 거시적인 물리세계에서 성립이 되던가요?

고등학교때 이중성에 대해 배우긴 했지만 그때는 아주 작은 입자에서 파동성을 동시에 관찰 가능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켈로그김
13/06/05 19:40
수정 아이콘
우리 신체정도의 단위로 오면,
이미 미시법칙의 상호작용이 거의 완결된 상태로 존재한다고 봅니다.
유미니다미니
13/06/05 19:48
수정 아이콘
물질파 파장은 h/p이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파동의 성질을 가지려면 전자(electron)일 경우나 가능합니다.

이중슬릿의 경우에서 빛의 파동성을 입증하는 실험인데, 간섭과 회절이 파동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기본 입자일 경우 많은 횟수의 실험을 했을 경우, 그런 확률 분포를 갖는다는 말이구요.

그리고 글쓴이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범신론과 범재신론의 혼돈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네요...^^
13/06/05 19:51
수정 아이콘
범재신론이 뭔지 모르는데 찾아보겠습니다.
13/06/05 19:51
수정 아이콘
물리학 이야기는 그저 하나의 유비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예시로, 플라나리아는 몸을 두 개로 나눠도 재생합니다. 몸이 잘라진 플라나리아는 자르기 전과 같은 개체일 수 있을까요? '나'라는 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 하는 고민이지, 거시 세계에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을 논하려는 글은 아니었습니다.
유미니다미니
13/06/05 19:57
수정 아이콘
물리학 전공자로서, 철학에 조금 관심을 가졌을 때 비스무리한 생각을 했었던 거 같습니다.

기독교의 기본 사상인 범재신론과 그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이단 사상들의 관점 차이를 공부해보시면 조금 도움되실 거 같네요.
미메시스
13/06/05 20:13
수정 아이콘
보통 현재 느끼는 자신의 감정, 기억 같은 것들.. 자아를 곧 나 라고 생각하죠.

물론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논파당하지만요.
(예를들어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면 내가 아닌 또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인가..? 또는 시뮬라크르 같은)

'나'를 정의하는건 매우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레지엔
13/06/05 20:59
수정 아이콘
의학 전공자로 '나'는 뇌의 연계와 신호에 의해 존재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신경학 관련해서 꼭 나오는 사례 중 하나가 전두엽이 손상된 피니어스 게이지라는 사람입니다. 전두엽이 손상돼서 인격이 변했고, 그의 지인 중 하나가 했던 말이 '그는 더 이상 내가 알던 피니어스 게이지가 아니다'라는 말이었죠.
13/06/05 22:56
수정 아이콘
저야 신경학은 잘 모르지만, 뇌과학 교양서적에도 자주나오는 사례네요. '나'라는 것이 단순히 현상이라면 자유의지라는 가설과는 상충되겠네요.
13/06/05 21:13
수정 아이콘
이런 글 좋아요. 저도 미메시스님이나 레지엔님처럼 전통적인 의미의 '나' 라는 것은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쪽으로 좀 파고들어가보면 "자유 의지"나 "의식"도 전통적인 의미로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지라.
13/06/05 23:00
수정 아이콘
전통적 의미의 '나'라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개념일 뿐이라는 말씀이군요.
13/06/05 21:54
수정 아이콘
공돌이 타입으로 유사과학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글은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근데 글의 내용이 철학이나 신경학 정신과학의 영역이라기 보단 언어학의 영역 같습니다. '나' 라는 '단어' 를 정의하기에 달린 거니까요. 엄밀하게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나'를 보는 각각의 관점에 따라서 각자 다른 용어를 붙여야겠죠.

덧붙여 심리학이나 정신과학에 관련된 재미있는 실험들을 보면 '나'와 '나의 뇌' 또한 차이가 있다는 게 보입니다. 머릿속에는 있는 기억임이 확실한데 '나'는 그 기억이 있다는걸 모르는 경우가 있거든요. 서브리미널 효과 또한 이런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는 거고요.
13/06/05 23:04
수정 아이콘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인 문제는 언어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던 게 떠오르네요. '나'와 '나의 뇌'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말엔 정말 공감합니다.
김미영팀장
13/06/05 22:11
수정 아이콘
글쓴이님께 읽어보실만한 관련 SF소설로 쿼런틴을 추천하고 싶네요.
테드 창의 숨결이란 소설도 괜찮을 것 같고요.
http://zigolade.egloos.com/4272734
13/06/05 23:05
수정 아이콘
추천 감사드립니다. 테드 창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S/F 작가네요.
영원한초보
13/06/05 22:46
수정 아이콘
이게 많이 이상한 일인가요? 기본적으로 감정적 자아와 이성적 자아는 구분되있는거 어닌가요? 여러관점으로 생각 많이하다보면 만화에 나오는 천사와 악마가 대화하는 상황정도는 겪는거 아닌가요?
13/06/05 23:11
수정 아이콘
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생소한 체험이었습니다. 말씀하신 상황과는 다른 게, 대화가 아닌 서로 다른 주제의 말을 동시에 떠든다고 하는 게 비슷하겠네요.
영원한초보
13/06/05 23:21
수정 아이콘
다른 주제로 동시에 떠든 다고 한다면 제가 말한것 과는 다른 이야기네요. 이런...
그런 의미라면 댓글에 정신불열 이야기까지 나온게 너무 심한 것 까지는 아니군요.
그렇지만 선비님이 본문에 쓰신글은 평상시에 많이 생각해 봤던 이야기고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드네요.
개인적으로는 밥먹으면서 밥을 맛있게 먹고 음식이 이상이 없나하는 뇌가 돌아가면서
오늘 해야 될일을 걱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제 이야기 나눈 여성이 생각을 또한 하기도 하니까요.
무의식과 의식은 따로 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동시에 소리로 들린적은 없습니다.
13/06/05 23:31
수정 아이콘
'의식' 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댄 데넷이라는 미국 유물철학자가 꽤 설득력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식이라는 것이 박테리아도 가지고 있느냐 척추 동물부터 가지고 있느냐 인간만이 가지고 있느냐? 라는 질문에서 시작 (은 아니고 사실은 결론) 하는 이 사람의 논증은, 일단 의식이란 것이 존재하려면 언어 능력과 장기 기억이 필수이고 이 두가지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느니만큼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의 복잡한 의식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사실 장기 기억이라는 것부터가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지라) 물론 돌고래도 단순한 수준이나마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 돌고래도 낮은 수준의 의식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의식은 진화 과정에서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백만년까지는 의식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없다가 백만년 전부터 생겼다고 보는 것도 조금 웃기지요. 해서 데넷은 의식의 등장이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문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일단 '의식' 이라는 것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데 생물은 그럭저럭 여러가지 입력을 통일성있게 처리합니다. 데넷은 뇌가 이런 높은 수준의 행동이 가능한 것은, 뇌 속에서 고통/시각/청각/배고픔/성욕/등등 을 관장하는 각 모듈이 서로 공챗을 날리고 '현재 이 유기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XX' 라고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우리는 배고플 때에는 내일 시험 생각을 하지 않지만 일단 밥을 먹고 나면 시험 걱정에 잠이 오질 않지요. 농구 시합 중에는 집단을 위해서 뛰기 때문에 자의식이 그다지 강하지 않지만 소개팅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갑자기 자의식이 강해집니다.

여기에 문화가 끼어들게 되는데요, 인간은 성대 구조가 언어를 사용하기에 적합했고, 수만년에 거쳐서 특정한 소리로 특정한 개념을 지칭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폭발적인 효과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동물을 기술 하나를 배우는 데에도 부모로부터 수백번에 걸쳐서 반복 훈련을 받아서 몸에 새겨야 하는데 비해, 인간은 그 소리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훈련과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고 one shot learning 이라는 종특이 생겨납니다. 교육과 문화의 시작이지요. 더욱 중요한 것은, 특정 개념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데 1MB 짜리 이미지 화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10 byte 짜리 ASCII 로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장기 기억이 가능해 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의식이 출현했다는 것이 데넷의 결론입니다. 기존에는 뇌 속에서 고통/시각/청각/배고픔/성욕/등등 을 관장하는 각 모듈이 서로 instant message 공챗을 날리고 그 공챗은 고작 몇십 초 후에는 사라졌던 것에 비해서, 인간은 공챗을 장기 기억에 저장함으로서 한참 전에 올라왔던 공챗을 다시 소환해서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 결과로 보다 통일적이고 선견지명에 바탕한 행동 역시 가능해졌고요. 그리고 그 공챗 + 장기 기억은 스스로를 '나' 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 라고 데넷은 주장합니다. 고로 '여러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는 상황은, 데넷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본질에 가깝습니다.

이 사람 책은 무거운 개념들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읽기 쉽진 않지만 매우 재미있습니다. 의식을 유물론 기반으로 설명하는 것에서 이 사람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서울대 장대익 교수도 데넷 밑에서 학위를 땄지요.
흰코뿔소
13/06/06 01:46
수정 아이콘
음......흥미롭지만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동물은 '나'라는 것을 인지할까라는 부분이 걸리네요.
동물에게도 '나'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는지라 설득력이 약하게 느껴집니다.
13/06/06 01:55
수정 아이콘
그 부분은 우리가 영원히 확인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개미같은 놈들은 분명히 뇌가 존재하는 데도 불구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오로지 집단을 위해서 죽음의 그 순간까지 먹이만 나르다가 죽는데, 이 놈들이 가진 '나' 라는 개념은 분명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그것과는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데이빗 챌머스라는 철학자가 '철학적 좀비' 라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었습니다. 우리의 컴퓨터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달해서 인간과 행동 양식이 '외견상으로는' 구분이 가지 않는 사이보그를 창조했다고 가정할 때, 이 사이보그는 '나' 라는 개념이 없겠지만 '나' 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겁니다. 이 사이보그가 그럼 외견상 사람이니까 실제로도 사람이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직관적으로' 뭔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 직관을 바탕으로 챌머스는 '따라서 우리의 자아와 정신은 비물질적인 것이다' 라고 논증을 했지요.

거기에 대해서 데넷은 '직관으로 진실이 결정되는 것이라면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도는 것도 진실이다. 인간의 직관 따위는 인간의 이성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니다' 라며 '니가 말하는 철학적 좀비가 바로 인간이다. 니가 자아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정말로 자아가 존재하는 게 아니지' 라고 반박했습니다. 물론 실제 반박은 상당수의 실험과 연역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꽤 탄탄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인지과학 ~ 인식론에 걸쳐서 수십년간 대 논쟁 중인지라, 제가 감히 결론지을 깜냥은 되지 않지만, 저는 데넷쪽의 이야기가 더 와닿더군요.
흰코뿔소
13/06/06 02:20
수정 아이콘
몇 가지 생각이 드는데 일관적으로 엮을 것이 아니라 번호순으로 정리하자면,
1) 데넷의 주장은 십분 이해가 됩니다. 직관으로 진실이 결정되지는 않지요.
2) 비단 개미까지 가지 않아도 사람마다 '나'라는 개념 자체는 차이가 많이 나리라 생각합니다.
3) 저는 철학적 좀비와는 주고 받을 마음이 없기에 철학적 좀비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네요.
4) 데넷이 어떤 실험과 연역을 통해서 반박했는지 흥미롭네요. 하지만 제가 데넷과 뜻을 함께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니가 환상이라고 해서 있는 것이 없어지진 않지'라고 말하고 싶거든요.
13/06/06 02:42
수정 아이콘
저도 읽은 지 오래되어서 상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외부 세계와 구별되는 자아라는 개념이 성립하려면 1인칭의 경험 - 철학쪽에서 Qualia 혹은 감각질이라고 말하는 - 이라는 개념이 필수인데, 그러한 것이 논리적으로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몇 단계의 실제 실험과 사고 실험을 통해서 논증을 했습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두 장의 비슷한 사진을 0.2초 간격으로 화면에 띄워서 번갈아서 두두두두 보여주면, 대부분의 사람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근데 일단 변화하고 있는 부분을 인식하고 나면 '우와... 이렇게 눈에 띄는 것을 왜 몰랐지?' 라고 말하죠. 그럼 이 인식 시점 이전과 이후의 1인칭의 Qualia 는 변화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서, 어느 쪽으로 대답을 해도 그게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것을 증명했었는데, 논증 구조는 제 불분명한 기억을 더듬어서 설명해봤자 오히려 혼란만 드릴 것 같네요. 대신

http://ko.wikipedia.org/wiki/%EA%B0%90%EA%B0%81%EC%A7%88

여기서 감각질에 대한 챌머스와 데넷의 논쟁을 조금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흰코뿔소
13/06/06 01:33
수정 아이콘
우선 영혼의 존재유무부터 설정이 되어야겠죠.
불교에서는 4 가지 자아를 설정합니다.
상주아 - 육신을 나라고 생각하는 단계
주재아 - 영혼을 나라고 생각하는 단계
충만아 - 우주의식과 하나가 된 단계
진아 -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의 단계. 불교의 궁극적 목표. 진정한 의미의 자유의지를 가질라면 여기에서나;
어느 단계에 속하느냐는 의식의 수준에 달려있구요. 대부분의 사람은 상주아에 머무를겁니다.
상주아에서 주재아로 넘어가게 되는 체험중의 하나가 유체이탈이라고 합니다.
내가 나의 육신을 보고 있으니 육신이 나라는 생각을 안하게 되지요.
하지만 의식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서, 그런 체험을 하고서도 스스로가 믿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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