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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2/24 23:14:01 |
Name |
kama |
Subject |
[연재소설]Romance - 4. 데이트 |
네, 오래 기다렸습니다~!!(에, 아무도 안 기다렸다고요?;;;;) 4편은 좀 늦었군요. 복학 준비도 그렇고 서울로 올라오는 것도 그렇고 나름대로 바빴기 때문에 말이죠^^;;(현재 학교 근처에서 하숙집을 얻었습니다) 에, 물론 다른 이유에는 최근에 빠진 수퍼로봇대전MX와 데프 잼 파이트 for NY의 영향도 있습니다(아니, 이게 더 클지도ㅡㅡ;) 어쨌든 드디어 4편입니다. 총 8화 기획이니 이제 전환점을 돌았군요. 여전히 부실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4. DATE
date[deit]
1 (특정) 날짜; 기일, (일이일어난) 시일, 예정날짜; (기록으로 쓰는) 날짜, 연월일 (*장소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the ~ ofbirth생년월일
a letterbearingthe ~ ofJune 5 6월 5일자 편지
put the ~ topapers 서류에 날짜를 기입하다
What ~ isittoday? =What’s the ~ today? 오늘은 며칠이냐?
<주의>날짜를 쓰는 법―(1) 초청장과 같은 격식을 차린 사교문에서는 Juneintheyear 2001와 같이 쓴다. (2) 보통 《英》에서는18th June, 2001; 《美》에서는June18, 2001로 쓴다. 《美》에서는또한군대의 습관에 따라 일(日)을 월(月)의 앞에 내세우고 연(年)의 앞에서 콤마를 없애어 18June 2001와 같이 쓰는 방식이 병용되고 있다. (3) 특히 《美》에서는날짜의 1st, 2nd, 3rd, 4th 따위의 -st, -nd, -rd, -th는 쓰지 않는다. (4) 4자 이상의 달 이름은 다음과 같이생략할 수도있다: Jan. /Feb. /Mar. /Apr. /Aug. /Sept. /Oct. /Nov. /Dec. (5) 주로 《美》에서는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문체에서는 월·일˙연의 순으로 하고, 월은 로마자를 쓰는 경우도 있다: 18/6/99 또는18/Ⅵ/99. (6) June18을 Juneeighteen으로 읽는 사람도 있으나,보통은 June (the) eighteenth로 읽는다.
2 시대, 연대(年代).
출처 : 야후 영어사전......
역시 사전이란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내용만을 담고 있는 물건이란 말인가. 현실을 살아가는 이 힘겨운 청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만 잔뜩 써있다니. 아니, 여자와 약속이 있다고 당황하면서 사전을 찾아 이런 뜻이나 쳐다보고 있는 인간이 더욱 문제인 것이겠지. 하, 미치겠다. 살아생전 이런 일은 처음이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지? 돈은 얼마나 가져가야 하고? 그냥 친구들이랑 놀러갈 때처럼 하면 되려나? 으아, 지나가던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 엄두가 안 난다. 부모님께 상의를 해봤자 그건 정말 바보짓일 것이고 친구 녀석에게 물어봤다가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큰 사건이 되어버릴 것이다. 의식 형? 으음, 왠지 불안해. 가뜩이나 저번에 추긍에 가까운 시선을 받았는데 가뜩이나 이상한 의심까지 사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겉 모습과 달리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니까.
‘에라, 모르겠다.’
결국 침대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고민을 계속 하던 나는 결심을 굳혔다. 어차피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냐는, 사실상 자포자기에 가까운 결단이었지만. 손에 집히는 대로 입고(다만 개중에 가장 깨끗하고 잘 다려진 놈을 골라서), 지갑에 들어있는 대로(물론 어느 정도 잔고가 있는지 철저한 확인 끝에) 집을 나섰다. 애꿎은 친구 핑계를 대면서 어머니를 속이는 것은 기본적인 센스.
‘일요일 대낮에 이런 곳에 있는 것도 오랜만이로군.’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좀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날씨는 매우 상쾌한 편이다. 정말이지 가끔은 이런 곳에 나와서 바람을 쐬어주는 것도 확실히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특히 남편은 유모차를 끌고, 아내는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이 나라가 아직은 평화롭구나, 하는 안도감(?)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하고 다닐까나. 지금은 알 수 없는 여성의 손을 잡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서. 따스한 날씨에 동화가 되어서인지 평소에는 안하던 그런 희미한 기대감이 느껴진다.
“미안. 늦었지?”
깜짝이야! 흠, 타이밍도 정확해라. 하필이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당황스럽잖아. 나는 잠시 콜록거리면서 얼굴 표정을 재조정하고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휴, 일단 하나는 당첨? 그녀도 나와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복장이다. 이거, 안심을 해야 하는 건가.
“헤, 그러고 보니 사복 입고 만나는 것은 처음이네.”
뭐, 항상 교복입고 PC방에서만 봤으니까. 나는 살며시 고개를 돌리면서 그녀를 살펴보았다. 쾌청한 날씨에 어울리는 깔끔한 면바지와 상쾌해 보이는 파란색 남방. 화려한 맛은 없지만 간결한 것이 확실히 보기에 즐거운 복장이다. 다만 평소 교복을 입을 때는 묶고 다니던 머리를 풀어 헤쳐서일까나, 좀 더 성숙하고 활기차 보이는 것이 특징이랄까. 그러고 보니 얇게 화장을 한 것 같은 느낌도 나고, 머릿결도 찰랑거리는 게 상당히 좋아 보인다......하긴 이 또래의 여자들치고 외출할 때 간단한 치장도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어디 갈래?”
“에, 그런 건 보통 남자가 정하는 거 아니야?”
그, 그런 거야? 하지만 난 네가 바람 좀 쐬고 영화 좀 보고 싶다고 따라 나온 것에 불과한데?
“영화 보고 싶다고 한 것은 너잖아?”
“뭐, 그건 그렇지만. 일단 밥부터 해결하자. 점심 아직 안 먹었지?”
“응. 더치페이?”
“에~”
“가난한 학생에게 뭘 더 바라는 거야?......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런 눈 하지 마. 대신 내가 영화비는 내 줄께, 그럼 됐지?”
이거 왠지 초반부터 조금 말려들어가는 형국이다. 워3에서 보여줬던 초반 집요한 견제 플레이는 현실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인가. 어쩔 수 없다. 내 이동통신 카드여, 비싼 가입비 들어준 값어치는 똑똑히 해야 한다.
그나마 그 후의 진행은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생난리를 쳤던 나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그때는 참 어렸지,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정도로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간단하게 식사, 그리고 영화관으로 직행. 가연이는 새로 개봉한 어떤 액션 영화를 보자고 했고 그다지 불만이 없던 나는 그에 찬성을 하고 표를 샀다.(고맙다, 카드여!)
그리고 영화 관람. 실제로도 영화관 내에서 영화를 보기보단 옆에 앉은 여자의 손을 잡거나 하는 식으로 잿밥을 먼저 챙기는 늑대의 후예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나와는 거리가 매우 먼 종족일 것이다. 아까운 돈 주고 영화 보러 갔으면서 딴 짓은 무슨 딴 짓. 더군다나 그럴 맘이 있다곤 쳐도 레벨이 낮아 그런 스킬은 찍지도 못한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아, 나의 삶을 뒤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지갑에 남은 현찰 계산하고 있었다. 점심 식사나 영화 관람까지의 소비는 이해를 하겠는데 이렇게 좋은 날씨에 도대체 한 잔에 수 천원 식이나 하는, 도저히 먹기가 아까울 정도인 음료수들을 파는 이런 가게에는 왜 온 것인고. 물, 물론 인테리어가 깔끔한 게 보기에 좋기도 하지만, 벽이 커다란 쇼윈도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 구경하기 좋기도 하지만, 그리고 괴로워하면서 시킨 딸기 믹스가 정말 맛있어서 만족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돈 계산 하고 있었지.”
아, 남매는 역시 닮아가는 것일까. 이 여자도 알고 보면 무서운 인간일지도 모른다.
“하여튼 남자들은 분위기라는 것을 모른다니까.”
아마, 그 남자들은 나와 신의식 씨를 지칭하는 말이겠지. 의식 형도 예전에도 이런 자리에서 머릿속으로는 돈 계산 하면서 머리를 쥐어짜고 있던 것 같다.
“게다가 그동안 우리는 만나면 게임만 해댔잖아. 가끔은 이렇게 앉아서 대화도 좀 나누고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선 음료수에 꼿혀 있는 빨대를 앙증맞게 물고서 쇼윈도 밖을 바라본다. 먼저 말을 걸으라는 유언, 무언의 압박. 하지만 나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고 역시나 앞에 놓여진 믹스를 살며시 마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도 몰랐던 것이고, 무엇보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 때 그 만남 이후에 이렇게 보는 것은 처음이네.’
언제나 그녀와 만났을 때는 워3를 할 때뿐이었다. 그 외에는 처음 대면한 순간, 즉 PC방 입구에서 부딪쳤을 때와 어제 그녀가 내 교실로 찾아왔을 때 뿐. 그리고 워3를 하면서 봤을 때도 모니터에 집중하느라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살핀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문가연이라는 여자는 PC방의 한 구석에서 특유의 검은 의자에 앉아있는 교복 차림 모습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문가연은 그런 내 머릿속의 잔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야에 투영되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생겼고 이렇게 보여 지는 사람이다. 새삼 느껴진다. 나보다 작은 키에 작은 체구, 얇고 가느리며 새하얀 팔, 활기참이 묻어나오는 캐쥬얼한 복장과 어딘가 모르게 남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윤기 좋은 머리카락. 그리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맑은 눈, 얼굴에 비해 좀 작지만 싱그러운 입술까지.
문가연. 꽤나 복잡한 가정사를 보내고 어머니 혼자와 생활을 하며 프로게이머 오빠를 둔 18살의 소녀, 워크래프트3라는 한 게임을 무지하게 좋아하며 만만치 않게 좋아하는 다른 한 남자를 무참히 박살내는 것이 최근 취미가 된 여고생, 활짝 웃는 모습이 어울리며 밝고 활기찬 성격이 매력적인 여자. 그리고 지금 후르츠 믹스를 살며시 입술에 가져대어 사람과 세상과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 어쩌면 난 이 사람을,
“좋아하는......걸까.”
“응?”
“아니, 아무 말도 아니야.”
......못 들었다니 다, 다행이다. 에구, 심장이 쇠사슬을 메고 번지점프한 것 같다. 나도 참, 무슨 말을 입 밖으로 낸 거야.
이건 아마 의식 형의 그 쓸데없고 무의미하며 무성의했던 한 질문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좋아하냐고요?......이젠 잘 모르겠네요. 무슨 철지난 유행가의 가사처럼 말이죠. 여자와 이렇게 친해진 것도 처음, 여자와 같이 영화를 보고 밥을 먹은 것도 처음, 여자와 같이 이런 카페에 와서 마주 앉는 것도 처음이라서 내가 가진 이 마음과 이 감정이 단순한 착각일지도 모르니까. 난 다시 한 번 믹스로 목을 축였다. 만약, 정말 만약이지만 내가 당신의 연적이라도 되어버린다면 그건 자신의 책임이니 깊이 통감하세요.
“오빠가 스카웃 제의를 했다면서?”
“응? 아, 응.”
왠지 내가 사토라레라도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할 맘은?”
......이것도 잘 모르겠다.
“네 생각은 어때? 내 실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너잖아.”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천장을 바라본다. 입도 삐죽 나온 모양을 보니 아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나는 가연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마 의식 형보다도 더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던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그녀의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잘 모르겠네.”
어이.
“네가 노력하느냐의 문제겠지. 가능성의 측면으로는 나도 괜찮다고 봐. 오빠가 높게 평가해주는 것만 봐도 틀림없잖아. 세계에서 워3를 가장 잘하는 사람 중 한 명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하지만 가능성일 뿐이야. 실제로 프로게임계의 세계에서 잘 나가는 선수들은 가장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노력하는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도 실제 고등학교 다니면서 프로게이머가 된 인간들도 있잖아.”
“그런 사람들은 부족한 시간을 열정과 의지로 보충한 것이고. 어쨌든 네 선택에 달려있는 거라고 생각되는데. 그 세계로 뛰어들던, 아니면 그저 즐기는 게임으로 유지하던 간에 말이지.”
흐음,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 같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선택과 그 후의 노력이라는 말이지. 하지만 이런 무겁기도 한 주제는 조금 맘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는 곧바로 밝은 얼굴로 화제를 돌려갔다. 그런 점에서는 나도 찬성이라 별 저항 없이 받아들였고.
“그나저나 넌 그동안 클라임 리그 빼먹지 않고 모두 챙겨봤지?”
“그야, 당연하지.”
“우아, 좋겠다. 난 공부하느라 결과만 들어가서 봤는데. 재밌었어?”
“아, 저저번 주에 했던 C조 경기는 꼭 봐라......휴먼이 글쎄 선 파로를 선택해서.......”
솔직히 여자를 앞에 놓고 그렇게 열변을 할 내용이라고는 생각되지도 않았고, 나 자신 역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말을 잘 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소재가 워3였기 때문일까 조금은 말이 많아졌다. 아마 무엇보다 가연이 무척이나 훌륭한 청자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나의 말에 게임에서 보여주는 것만큼의 집중력을 보여주면서 일일이 반응을 해주면서 나로 하여금 다른 이에게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난 클라임 리그의 전 경기를 설명해주다시피 한 후에도 그녀와 나는 계속해서 어떤 맵에서는 어떤 영웅이 좋으니, 어떤 선수의 플레이가 맘에 든다드니 하는 식으로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새 각자 시켜놓은 음료수도 바닥을 보였음에도 우리는 웃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늦추지 않았다.
“아자자자잣!”
가연은 두 손을 깍지 끼고 위로 쭉~! 뻗으면서 기지개를 폈다. 그것도 부족한지 그 자세로 좌우로 몸을 흔들고선 콤보로 한 숨을 내쉰다.
“아직 피곤한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러더니 잠시 뜸을 들인 다음에 입을 연다.
“그냥 새삼 느낀 것 같아서.”
“뭘?”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자, 진정진정. 주어가 삭제되어 있잖아. 섣부른 추측은 금물, 여기서 이상한 반응 보여봤자 결코 도움이 될 일은 없을테니까. 자, 일단 심호흡 한 번 하고.
“으응, 원래 이런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어느 새 워3 이야기로 빠져들었잖아.”
......역시나 그 주어는 워크래프트3였던 모양이다. 안도와 씁쓸함이 교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참 젊은 남녀가 이런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서 나눌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고도 다양할 것인데 어째 우리는 여기까지 와서도 워3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 에구.”
하지만 그런 말과는 달리 표정을 밝다. 그리고 그런 표정을 유지하고선 팔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턱을 괸다. 순간적으로 거리가 좁혀지면서 그녀의 얼굴이 한 눈에 정면으로 들어온다.
“고마워.”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가연은 이 세상에서 ‘넌 좋은 사람이야’와 함께 남자가 여자에게 듣기 가장 싫어하는 단어를 내 가슴에 찔러 넣었다.
“......뭐가?”
물어보기는 싫었지만 안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
“덕분에 깨달았거든. 좋아, 결심했어.”
......그러니까 그 주어 생략하는 습관은 좋지 못하다고. 한국의 언어는 주어-목적어, 보어-동사, 형용사로 이어지는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단 말이다.
“나, 이번 클라임 리그 예선에 신청할 거야.”
이번에는 주어까지 확실히 붙인 완벽한 문장으로 그녀는 이야기를 했고 덕분에 나는 순간적인 반응으로 경악 할 수 있었다.
왁자지껄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 그래서 일까 TV에서 보이는 것만큼 커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흥분이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기도. 워3를 좋아하긴 하지만 관람을 오느니 그 시간에 PC방 가서 한 판이라도 더 한다는 마인드를 가졌던 나에게 이 장소는 신기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자리를 잡는 대신 가만히 서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미리 먹을 것을 사와서 시식 중인 커플의 모습도 보이고, 바닥에 주저앉아 응원 문구를 정리하는 팬들의 모습도 보인다. 물론 나처럼 교복을 입고 와서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는 학생들도 많은 편이다. 카메라를 만지면서 조정을 하거나 컴퓨터 앞에 서서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스탭들의 모습도 눈에 띄며 저쪽 한 구석에는 같은 팀이나 친분이 있는 선수들을 응원하러 온 낯익은 사람들도 들어온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 특히나 눈에 익은 한 명이 보였다.
“오늘은 시합이 없지 않아요?”
“응. 아쉽게도 개막전은 못 가지게 되었어. 하지만 어차피 오늘 시합하는 선수들과는 언젠가 맞붙을지도 모르니까.”
“정찰 겸 온 것이란 소리군요.”
“그렇지. 무대 경험이라는 측면도 있고. 유럽 쪽에서는 많은 시합을 했지만 한국에서의 공식전은 처음이니까.”
하긴, 의식 형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는 길드 쪽 활동만 하다가 외국으로 이민 간 후에 데뷔를 했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미 ESWCS결승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한 사람인데 이 무대에 오른다고 그렇게 떨릴까나.
“물론. 너도 같은 위치에 오르면 알게 될 거다. 떨리지 않는 무대란, 긴장되지 않는 시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지.”
난 다른 말을 꺼내는 대신 고개를 살짝 돌려 의식 형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마 누군가도 비슷한 이유로 이 곳에 왔을 것이다. 사실 나를 불러낸 것도 그녀이고.
“가연이라면 화장실 갔어.”
의식 형은 씩 웃으면서 자기 옆자리에 있는 책가방을 가리켰다. 음, 확실히 가연이의 책가방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다시 손을 반대로 돌리더니 반대쪽에 놓여있는 가방을 들어 무릎에다 올려놓았다. 음, 내 자리라는 소리인가. 나는 등에 매었던 가방을 풀어 앞쪽에 놓고선 자리에 앉았다.
“너에게도 이야기했지. 예선 치른다는 것.”
“네.”
“힘든 결정을 내린 거야. 녀석은. 그저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세계니까.”
경기 시작 시간이 가까이 왔는지 개막전을 치루는 선수가 무대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 각각 제멋대로 움직이던 관중들도 서서히 좌석에 모이면서 무대의 집중도가 갑자기 높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좋아해야만 하기도 하고.”
그 어느 프로의 세계가 녹녹하겠냐 만은 프로게임계는 정말이지 작두 위를 타는 것과도 같다. 특히나 안정화-정착화 되는 스타와 달리 아직도 미래가 불투명한 워3의 경우는 더욱. 상위권에 들지 못하면 제대로 된 수입도 들어오지 않는다. 더욱이 전성기는 빨리 지나가며 부활은 힘들다. 선수로 있을 기간도 짧은 편. 게임 자체를 봐도, 장기 레이스가 아닌 단기 리그전 위주에다 무승부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방식이라(무승부가 나와도 재경기로 끝끝내 승패를 갈라야 한다) 단 1패가 끝없는 침몰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애정이 없다면, 열정이 없다면 그런 직업을 계속 해 나가지 못할 것이다.
“가연은 이미 그 세계로 발을 들여놓기로 각오를 한거야.”
경기 시간이 다가올수록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사람들의 열기도 천천히 상승하여 오히려 주변은 좀 더 조용해 졌다. 해설을 듣기 위해 라디오를 꺼내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하는 이들도 서서히 많아진다.
그 사이에 가연이 다가왔다. 그녀는 여전히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고 그 것을 계기로 나와 의식 형은 다른 대화도 없이 가벼운 분위기로 그녀를 맞이했다. 이리 저리 가벼운 농담부터 시작, 최근 근황이나 오늘 경기를 하는 선수들에 대한 평가 등등의 대화가 오고 갔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했다.
“아, 재밌었어. 현장의 느낌이 팍팍 오더라고. 가끔은 직접 와서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
“나 경기할 때도 와. 멋지게 이겨줄 테니까”
“아니, 미안하지만 안 되네요. 이제 노는 것은 오늘로 마지막!”
“하긴. 예선까지 그렇게 많이 남은 것은 아니니까.”
약 한 달 정도. 가연의 현재 실력이 상위 길드원 수준에 맞먹는다고 해도 예선이라는 것 자체가 그런 인간들이 죽어라 연습해서 나오는 곳이다 보니 그녀 역시 그 사이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어, 그러고 보니 가연이는 연습을 어떻게 할 생각이려나. 어떤 길드에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연습을 도와줄 워3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닌데.
“의식 형이 도와주실 건가요? 하지만 WEGL 준비하느라 바쁠 것 같은데요.”
“아아, 나도 지금은 남 도와줄 형편이 아니지. 나도 그 얘기는 못 들었네. 무슨 방책이라도 있어?”
“물론이죠.”
가연은 별 문제 없다는 식으로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더니 그 미소를 유지한 상태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응?
“저기, 부탁 좀 할께. 나 좀 도와줄 수 있지?”
아, 물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와주지. 가연이 부탁하는 것인데 거절 할 수야 없지. 그런데 휴먼 전 연습 정도라면 해줄 수 있는데 다른 종족은 어떻게 하려고. 하긴 아무런 생각 없이 저러지는 않을 것이니 일단 나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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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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