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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7 09:19
1800년대 초에 일본이 무슨 흑룔강으로 가서 만주를 점령하니 중국을 지배하느니 이 정도면 환단고기급 헛소린 것 같은데, 딱 100년 뒤에 잠시지만 그거 비슷하게 해낸 것 보면 덜덜덜하네요. '꿈은 이루어진다'도 아니고, 어찌됐든 잠재력은 있으니 그런 망상같은 계획이 가능했던거겠죠?
19/10/17 09:27
거란, 여진, 몽골 등을 필두로 사실상 변변한 문명을 이루지도 못했고 아주 오랜 기간 절대적 열세 속에 살았던 수많은 이민족들이 중국을 완전히 혹은 상당 부분 정복했던 역사가 꽤 많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대륙 정복이라는 게 특정 시점으로 한정짓지만 않는다면 무조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로서는 대륙을 넘보는 것이 정말 영 불가능했던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고요.
19/10/17 09:43
유목민 특유의 기병 중심의 극강 전투력때문에 가능한거지 우리나라는 농경민족이죠. 농경민족은 보병 중심이라 기본적으로 숫자싸움입니다. 이리 보면 중국에 안먹힌게 대단한 겁니다
19/10/17 10:16
지금 보면 하북에서 한반도까지의 거리가 사천성 가는 거리랑 비슷해 보이는데 진짜 안먹힌게 대단하네요. 예전의 중국 오랑캐(?)들은 많이 중국에 편입되었는데 한국은 독립적으로 국가를 유지한게 특이하네요
19/10/17 12:12
애초에 중국 땅에서 북부지역을 보면 산 밖에 없는데 정복욕이 생길리가 없었을거라 봐요
침입은 자주 해도 정복 목적으로 들어온 적은 없는 듯
19/10/17 10:21
일본이 지금 미국한테 하는거 보면
사실 중근세 시절에 자기중심 사고가 가능했던 것도, 중국한테 [안 당해봐서] 그랬던거 같아요 =_= 임진왜란/정유재란때 간접적으로 붙어본게 다인데도 명군한테 밀린거 보면 뭐... 조선이라고 뭐 사대 하고 싶어서 했겠습니까 -_- 압록강이 조금만 더 넓어부렀으면 좋았을걸...
19/10/17 10:50
전쟁이 사람을 참 실용적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수천년간 전국시대에 살았던 유럽이야 당연한 것이고, 중국도 춘추전국시대 때는 실용을 추구하고 재치가 번쩍였던 것 같은데, 송나라를 거쳐 명나라 즈음 오면 고리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일본도 전국시대를 공부해보면 공부해볼수록 너무 자세해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유명한 전투는 각 부대의 동원규모가 50명 단위로 집계되고, 깃발만 봐도 어느 소속이고 어느 가문인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무장 상태는 어떠했는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군이 움직였는지, 동시대 유럽에서 벌어졌던 전투들 만큼이나 자세하게 복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에 비해 조선의 전투 기록은 누가누가 용맹하게 싸웠다. 적을 크게 무찌르고 수급 몇 백개를 취했다 정도가 끝이죠. 애초에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 - 중국 - 를 눈 앞에 두고 굴복하여 평온을 얻는 것과, 내가 주위에 있는 니들 어떻게든 전부 다 눌러주고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마인드는, 한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아요. 일본사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절대로 일본이 단순하게 운이 좋아서 - 포루투칼 범선 몇 척이 일찍 표류해 왔다거나 혹은 지정학적 위치가 좋았기 때문에 - 일찍 근대화에 성공하여 열강이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19/10/17 11:02
운을 잡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봐야겠네요.
마치 불타는 군단의 침략에 대비하기위해(?) 미리 전쟁을 시켰던 워크래프트같은 거군요! 이제부터라도 대환국의 영광을...
19/10/17 12:06
다른 의미에서 보면 일본은 기존 중화질서의 변두리에 있었기에 그 단물을 얻어먹지 못 했었던 것이 변혁기에 빠르게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는데는 도움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죠. 섬이라는 지정학적 요인 덕에 중화질서로의 편입이 생존의 문제 수준까진 가지 않았던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고.
19/10/17 12:22
맞습니다. 삼국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삼국+가야나 야마토나 민족구성이 크게 차이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물론 대륙에 더 가까웠던 반도가 문화나 체제적으로 조금은 더 발전 되었겠지만 그때 삼한사람이랑 야마토사람이랑 1:1로 자리바꾸기 했었어도 이후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거 같지 않습니다. 결국은 대륙과 연결된 반도라는 특성, 대륙과 분리되고 자연재해가 많은 열도라는 특성에 맞게 빌드업되어서 민족성이나 문화가 적응해나가지 않았을까요?
19/10/17 12:30
아시아에선 압도적으로 날카로운데
2차대전 미국 앞에선 그렇게 무모하고 멍청했다니 그만큼 두 나라의 간극이 큰건지 1800년대 후반의 스피릿이 썩어 문드러져 1900년대 중반에 멸망한건지 궁금하네요
19/10/17 18:09
1차대전 종전 즈음을 기점으로 정신적으로 좀 변화가 왔다고 합니다. 명치유신 이후 그때까지의 기조가 '서구열강을 따라해서 성장해 'one of them'으로 인정받자'였다면, 종전협상에서 국력에 비해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느끼게 되면서 '아, 우리는 결국 저 서구 백인종 강대국들의 그들만의 리그에 동등하게 가입할수는 없고, 일종의 2진 내지는 명예회원 정도가 끝인 모양이군' 쪽으로 가게 되거든요. 그래서 근대화를 추구하던 그간의 기조에서 벗어나 '근대의 초극'같은 새로운 모색도 나오고, 서구열강에 대응되는 아시아에서의 독자적 패권에 대한 열망도 강해지고...
뭐 물론 이건 정신적인 예비단계(?)같은거고, 실제 전쟁으로 에스컬레이트되는 과정에서는 이런저런 현실적인 구상이나 구조들도 영향을 많이 미쳤습니다. 예컨대 만주사변은 일본 내부의 경제적 침체를 외부로의 확장과 계획경제로 극복해보려던 군부 통제파의 관점과도 맞물리고, 노구교같은 경우는 공명심에 눈이 먼 현지 소장파 장교들의 일탈과도 맞물리고...
19/10/17 21:18
그렇잖아도 일본정치외교사 같은 걸 보면 얘기나올 수 밖에 없는 게 1차대전까지의 일본과 그 이후의 일본은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뭐 그 덕에 우리는 독립을 얻은거지만.... -_-; 나중에 기회 되시면 가토 요코의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읽어보세요. 꿀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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