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른 생각을 중얼거리자 머리가 아파지며 하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그저 생각 없이 반복하는 업무일 뿐인데도 단순한 생각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가 없다.
평소처럼 12시에 정해진 대로 점심을 먹고 1시부터 일을 시작했을 텐데 그사이 일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오늘 나에게 할당된 약 봉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24시간 날 바라보는 저 CCTV를 돌려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알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나의 안전을 위해 설치했을 뿐인 저것은 언젠가부터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내가 일하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는 것이리라
내 안전은 그저 핑계였을 텐데 나는 그저 순순히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의 안전을 걱정하는 그들은 나의 안전을 위해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약 봉투를 뜯어 약을 만져보았다. 이름 모를 갈색과 흰색의 알약 몇 알
몇 개월째 복용하고 있는 약의 감촉은 매번 만져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 건강이 걱정된다며 멋대로 처방한 새로운 알약도 눈에 들어왔다
젊었을 적부터 신경 쓰지 못한 내 몸이 이제는 내 건강을 위협한다니…
이런저런 씁쓸한 생각을 하며 오늘 할당된 약을 입안에 가볍게 털어 넣었다.
알약의 씁쓸한 맛에 미간이 찌푸려져 황급히 물을 마셨다
점심 약을 먹었으니 다시 일을 시작하자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내 손을 놓았다.
머리를 식히고자 인터넷에 자주 가는 커뮤니티 몇 군데를 열어보았다.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는 어제 개봉했다는 영화에 대한 분석으로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정신병에 대한 온갖 의료지식을 늘어놓았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전문가적 견해를 쏟아냈다.
대단히 있어 보이는 어휘로 가득 찬 평론을 내놓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영화를 봤지만 이러한 광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병에 걸리면 이해할 수 있을까
문득 고개를 돌려 비어있는 약봉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점심을 먹었던가?"
그저 파스텔 톤의 벽만이 눈에 들어오며 이내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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