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08/22 02:52:41
Name 저팔계
Subject [일반] 술을 끊어야겠습니다.. (부제: 좋아하는 순간 이미 진건가.. 글의 후기) (수정됨)
며칠 전 '좋아하는 순간 이미 진 건가...에 대해서'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https://cdn.pgr21.com/pb/pb.php?id=freedom&no=82253&page=3)

이 글은 그 후기..이기도 하고, 제가 몰랐던, 혹은 무의식 중에 존재하고 있었던 폭력성을 깨우치게 된 계기, 그리고, 술이 웬수다. 술을 마시지 말자...라는 새삼스러운 자각을 하게 된 계기입니다. 앞서 썼던 글에서 최근 조금씩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물론 잘 안 됐으니 안심하시고(?) 읽으셔도 됩니다.

앞서 쓴 글의 내용처럼, 저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행동과 태도가 너무 어색해져버려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던 적이 많습니다. (물론 해당 글의 댓글에서 지적해 주셨듯이 상대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외모라면 어색한 행동과 태도조차 귀엽게 느껴지게 되겠지만요;) 어쨌든 역시 글에서 밝힌 대로 근래 마음에 조금씩 들어오는 사람이 생겼'었'습니다. 이성이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면, 그냥 아닌 겁니다. (제 경험상 그랬다는 것입니다 쿨럭;) 이번의 경우에도 그냥 아닌 거라는 판단이 일찌감찌 들었었고, 그러한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물러나거나, 혹은 길게 끌고 가거나 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역시 어떤 분이 댓글로 지적해주신 것처럼, 멀티(?)를 시도해도 문제가 없겠고, 오히려 그것이 가능성이 더 큰 방법일지도요.  

네, 어쨌든 불과 3, 4일 전에 올린 글의 그 상대와 며칠 사이 평화롭게 관계를 잘 유지하며 지냈다...는 아니고, 사건, 아니 사고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상대에게 너무 빠져서 일을 그르친 것도 아니고, 그냥 술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평소 제 주량은 소주 3병, 오랫동안 좋은 안주와 마신다면 그 이상도 괜찮습니다. 생애 첫 음주였던 스무살 이후로는 술 먹고 누군가에게 진상을 부린 적도, 사고친 적도 없습니다. 취하면 오히려 말이 없어지고, 술도 길게 오래 마시는 것보다는 굵고 짧게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그와는 별개로 최근 저는 이직을 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하고, 준비하는 공부도 잘 안 돼서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습니다.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고, 뭔가, 해소할 길이 필요했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변명입니다;)

그러던 어제, 연락이 왔습니다. 오. 술자리가 있으니 함께 하자고. 이미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그 약속을 미루고 달려갔습니다. 미룬 약속을 생각하니 찜찜하긴 했습니다. 뭔가, 이 결정에 따르는 댓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은근히 들었습니다. (정말 당시에 달려가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폭음도 안 하는 제가 저도 모르게 너무 달렸던 것이었습니다. 어지간하면 전 취할 무렵 알아서 멈춥니다. 근데 어제는 이상하게 그게 안 되더군요. 그냥 스트레스가 심해서 현실 도피하고 싶었던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어쨌든 어느 정도 차수를 이은 술자리가 저물 무렵, 둘만 남아서 마셨습니다. 문제는, 이미 기억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불안했습니다. 카톡을 보니 화가 나 있는 상대의 메시지.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르겠고, 책장의 책은 왜 죄다 넘어진 것마냥 쏟아져있는지도.. 아마 몸을 못 가눠서 부딪혔겠죠. 기억은 80% 정도가 날아가 있고, 상대는 화가 나 있다. 기억나는 바는? 내가 상대의 집앞에서 상대를 두고 놓아주지 않았던 장면장면. 얘기할 게 있다고 하고 얘기는 안 하고 진상을 부린 것입니다.. 술 먹고 꼬장부리는 거야 그럴 수 있지. 뭐. 처음에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상대도 술이 꽤 취했던 상태였고, 피곤하고 졸린데, 만취한 사람이 얘기하자고 놓아주지는 않고(물리적으로 그런 건 아닙니다;), 1시간 가까이 실랑이 벌이다가 그냥 집에 들어간다니 건물 현관까지 뒤따라 가서 잡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문제였죠. 여자 입장에서 굉장히 불쾌하고 민감할 문제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회복되고, 회복되는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친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으니 평생 안 그러던 애가 왜 그랬냐고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 얘기 같다고.  다른 말 할 것도 없이 사과하고 사죄했습니다. 술에 취해서 그랬다는 말은 해서도 안 되고, 하기도 싫었습니다. 평소 절 잘 아는 사람이 그랬다면, 원래 안 그런 애가 왜 그랬대하고 말겠죠. 평생 저지른 적도 없는 술꼬장은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상대에게 보였으니, 뭐 말 다했죠. 술떡되니 인성 알겠다 싶었겠고. 어쨋든 사과는 받아들여주었지만, 관계는 이미 회복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만취했든 아니든, 여자에게 위력을 행사하려 한 사람으로 남겠네요. 일적으로 어찌됐든 볼 일이 종종 있는 관계다 보니, 사과는 받아들이고, 반성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다음 주에 제가 일하는 곳 쪽으로 올 일이 있으니 그때 보자고 하더라구요.


평생 술 마시고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어제 그런 일이 있고, 그런 기억이 많이 회복된 오늘 저녁 이후, 거하게 현타가 오더군요. 평소에 억압받는 게 있나. 부모님 영향으로 여자에게 폭력을 쓰는 남자가 그렇게 싫었고, 그런 사람은 당연히 되지 말자는 생각을 신념처럼 갖고 있었습니다. 사람 별 거 없네요. 너무 비관적인건가 싶기도 하지만, 심하게 현타가 왔고, 애주인으로서 정말 술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을 했습니다..

세줄 요약
1. 마음에 들어오는 상대가 있었음.
2. 평소 좋아하는 상대에게 오히려 잘 못해와서 걱정했음.
3. 그냥 술 잘못마시고 진상 한 번 부리고 end..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9/08/22 03:09
수정 아이콘
저도 술을 좋아하고 종종 마시는 편입니다만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목적은 함께하는 시간을 더 즐겁게 만드는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라는 시각을 바꾸셔야 될거같네요.
저팔계
19/08/22 03:11
수정 아이콘
네.. 맞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 계속 주변인과 지인들에게 스트레스를 어떤 식으로 푸는지 물어봤어요.. ㅠ.ㅜ 제게 맞는 방식이 무엇일지도 생각해보게 되었구요.. 말씀 감사합니다..
19/08/22 03: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술로만' 스트레스를 푸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팔계
19/08/22 03:21
수정 아이콘
네 '만'이 포인트군요.. 최근 너무 힘들었었는데 그게 폭음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안 좋을 때는 그냥 술을 멀리해야겠어요.. 말씀대로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이유도 즐겁기 위해서라는 것도 잘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08/22 03:50
수정 아이콘
잠이 최곱니다...흠흠
19/08/22 04:13
수정 아이콘
생각만 해도 지옥 같네요...

힘내세요ㅠㅠ
저팔계
19/08/22 08:29
수정 아이콘
네.. 지옥이었습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그래도 좀 낫네요..
19/08/22 04:39
수정 아이콘
그... 술 먹고 진상피기 시전해도 END는 거의 없던데
한 일주일 쪽팔려서 창피함을 견디기 힘들어서 그렇지
저팔계
19/08/22 08:56
수정 아이콘
그렇죠.. 시간이 약입니다..
19/08/22 05:07
수정 아이콘
(수정됨) 필름이 끊길때까지 갔을 때 무서운 것이 교육과 교화 자기훈련을 통해서 유순하게 만들어 놓았던 본성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이 동물인 이상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숨겨진 면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식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화를 한다거나 어떤 행동을 한다고 했을때 저는 제 자신이 과연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모습일지 확신이 없네요... 그래서 조심하고요. 다행히도 선을 크게 넘으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크게 넘으셨었다면, 지금쯤 유치장에.. 쿨럭)

글에 써 주셨던, "이성이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면, 그냥 아닌 겁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상대방 또한 눈치를 보고 있을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게 가볍게 관심있는데 커피나 한잔하자고 데이트 신청하면 보통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이런식으로 별 관심없어 보이던 사람과 꽤 오랜시간 사귀게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거절당하더라도 너무 깊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안맞는 사람인가보다 하고 다른 끌림있는 분께 시도하시다보면... 화이팅입니다.

조심스럽긴한데요, 저는 오히려 잘 되실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아닌 느낌이.. 취하셨을때 돌직구식으로 그분을 좋아하는것 티는 다 냈을 것 같거든요. 일단 조용히 반성하시는 모습보여드리면서 반응을 살펴보시길.. 실수하고 선넘어도 될 인연은 되더라고요! 너무 자책하시지마시고 마음을 잘 추스리시길. 누구나 다 흑역사 한번쯤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팔계
19/08/22 08:59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너무 제 방식대로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오히려 잘 될 것 같다는 건.. 너무 긍정적인 해석이 아닌가 하는.. ;; 그래도 될 인연은 실수하고 선 넘어도 된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저도 술 먹고 진상부리는 사람들을 평소 너무 싫어해왔는데, 저조차도 그런 부류가 된 것 같아 더 자책하게 되었네요.. 반성합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캐모마일
19/08/22 08:47
수정 아이콘
저는 예전에 섞어 마셨다가 기절하고 토하고 업혀가고.. 그런 경험을 겪고 나서 올소주 인생을 살고 있어요. 크크
경험하셨으니 앞으로 잘 조절해서 마시면 되죠! 멘탈 수습 잘 하시기를...
저팔계
19/08/22 11:43
수정 아이콘
네.. 술이 술을 부른다고.. 일단은 조절도 어려울 것 같아서 입에 안 대려 합니다.. 멘탈 수습은 다행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는 듯합니다.
인총난
19/08/22 09:47
수정 아이콘
괜찮습니다... 얼마전에 술도 안마시고 관계를 망쳐버린 못난이가 여기 있습니다. 힘내세요!
저팔계
19/08/22 11:44
수정 아이콘
우리 모두 다 못난이.. 힘들 냅시다!
19/08/22 09:56
수정 아이콘
술 끊으세요. 단호하게 마음먹고 죽을 때까지 드시지 않겠다고 마음먹으세요. 술 드시고 기분이 좋아지는 타입이 있고, 반대로 화가 나거나 평소 감정을 표출하는 타입이 있는데 글쓴분은 후자신거 같고 정말 인생 크게 후회하시기 전에 단주하시길 조언드려봅니다. 혹시 잘 조절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시면, 안된다고 드리고 싶습니다. 술은 조절이 안되요. 나는 술을 마시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저팔계
19/08/22 11:44
수정 아이콘
네.. 이번 일을 계기로 끊으려 합니다..
스테비아
19/08/22 10:10
수정 아이콘
힘내십쇼.. 지난 글에서 말씀하셨듯 덜 좋아하는 마음으로 '그래 내가 ×××다ㅠㅠ' 하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된거라면... 호..혹시...
저팔계
19/08/22 11:44
수정 아이콘
해..행복회로 발동..?? 그냥 잊고 지내려고요.. 적어도 당장은 그러는 게 제 멘탈이 성할 길인 듯합니다.
고분자
19/08/22 17:08
수정 아이콘
필름끊김을 기록하다보니 주기가 짧아지더군요 6개월 3개월 2개월에 1번 이런식으로.
위로드립니다 한병안넘기자 지키려 노력중입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2321 [정치] [조국] 리얼미터 지지율 발표 외 [59] sakura14254 19/08/22 14254 10
82320 [정치] 조국 딸에 관한 여러가지 추가 의혹들 [229] 루시우15697 19/08/22 15697 26
82319 [정치] 조국 자제분 유엔인권 인턴쉽 의혹 [265] LanceloT15146 19/08/22 15146 16
82318 [일반] 술을 끊어야겠습니다.. (부제: 좋아하는 순간 이미 진건가.. 글의 후기) [20] 저팔계5653 19/08/22 5653 2
82317 [일반] 봄날은 간다. [3] ohfree7555 19/08/22 7555 1
82316 [정치] 네트워크를 통한 계급의 재생산 [54] chilling6314 19/08/22 6314 9
82315 [정치] 특목고 나와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 본 조국 딸 사건 [49] 다록알10315 19/08/22 10315 0
82314 [일반] 오늘 뜬금없이 펑펑 울었습니다 [10] HALU5988 19/08/22 5988 17
82313 [일반] 왜 갑자기 안 하는 짓을 하고 그러는겨 [5] 삭제됨4611 19/08/22 4611 9
82312 [정치] 조국과 현 정부. 왜 조국을 못 버리는가? [121] 오렌11815 19/08/22 11815 27
82311 [정치] 또 한번 느끼는 답답함... [46] MyBubble6949 19/08/22 6949 8
82310 [일반] 맛집을 찾는 방법 [30] 치열하게14861 19/08/21 14861 11
82309 [정치] 최근 사태를 바라보는 경증? 피지알러의 생각 [28] 뽀롱뽀롱5119 19/08/21 5119 0
82306 [일반] 후쿠시마앞 바닷물 128만톤이 한국 영해에 방류됐답니다 [36] 홍승식11222 19/08/21 11222 6
82305 [일반] 갑자기 센치해져서 끄적이는 어느 날의 기억. [1] FLUXUX3573 19/08/21 3573 1
82304 [정치] 조국 논란 관련 저의 심정을 백프로 표현한 글 [84] aurelius12503 19/08/21 12503 9
82303 [정치] 조국이 정말 무섭긴 무섭나 봅니다. [128] 520015050 19/08/21 15050 6
82302 [정치] 이한상 교수님의 조국 관련글 [54] 반성맨10712 19/08/21 10712 51
82301 [정치] 내로남불. 좋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진짜 내로남불이 뭔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60] 쿠루쿠루9170 19/08/21 9170 6
82300 [정치] 폐기된줄 알았던 조국 딸의 자소서가 남아있었군요 [77] 파이어군16880 19/08/21 16880 27
82299 [정치] 서울대 우종학 교수의 조국 딸 논란 관련 SNS 발언 [175] 호느님14091 19/08/21 14091 7
82298 [정치] 그때는 신나게 떠들었지만 지금은 조용한 분들.jpg [64] 차오루12391 19/08/21 12391 28
82297 [정치] 민주당 "조국 딸, 특혜 아닌 보편적 기회" [88] 미뉴잇10138 19/08/21 10138 2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