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게 밝아오는 새벽,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자동으로 씻으러가는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의 시작. 씻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을 열어보았을 때 본 평소에 장난 많은 동생에게서 온 딱딱한 문자. 부고. 죽은 친구는 적당히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었다. 그는 베트남으로 발령받은지 1년도 되지 않았었다. 복잡한 머리를 쥐어짜며 출근길에 부고를 보낸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이게 무슨말이야? 진짜야?
형, 정확히는 모르지만 자살인 것 같아요.
누구보다도 생산적으로 살고 밝고 붙임성 좋던 친구였다. 나는 그 능글능글함이 마음에 들어서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기 일쑤였다. 내가 취직한 후에는 바쁜 마음에 보지 않은지 꽤 되었고, 그 친구의 취직 축하 술자리에 전화로만 축하를 건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었다. 자살이라니...
팀장님께 사유를 말씀드리고 일찍 퇴근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베트남 발령은 업무강도가 빡세기로 유명해 그 회사 사람들이 모두 꺼리는 곳이라고 했다. 거의 신입이었던 동생이 떠넘기듯 발령받은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새벽두시까지 야근하고,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해 시리얼을 먹으며 일을 했다. 친구들에게도 내가 귀국을 하던지 귀천을 하던지 해야 될 것 같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결국 6개월이 지났을 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을 그만두면 되잖아. 그렇게 일이 힘들면. 왜 그런건데 대체?
팀장이 여권을 뺏어서 돌려주지 않았대요.
청천벽력이었다. 그게 지금 21세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그런 악마같은 인간이 있단 말인가? 새벽두시까지 일을 시키고 여권을 뺏고 자존감을 박살내는 낯선 타지에서 그는 하소연할 부모님도 친구도 없이 혼자 죽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회사는 당신 자식 때문에 회사일이 엉망이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래 그래야지, 인간이 아닌 짐승에게 인간의 윤리를 들이대 본들 통할 리가 없다. 우리는 친구를 잃은 슬픔과 분노를 술을 들이키며 밤을 새웠다.
오늘 퇴근길에 그 날 아침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나와서인지 그 날이 생각난다. 나에게 하는 작별인사 같았던 그 노랫말. 잘 가라. 이 술 한잔은 너를 생각하면서.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언젠간 풀려버릴 태엽이지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만
찬란한 한순간의 별빛이지
그냥 날 기억해줘
내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고 싶지 않아
시간이 만든 대로 있던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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